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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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소설, 송의경 옮김, 은밀한 생, 문학과지성사


1. 이 책을 소설이란 장르로 한정짓기엔 충분치 않다. 사랑에 관한 소설이자, 철학에세이, 자서전, 시 또는 그 모두라 불릴 만한 책. 사랑과 언어에 대한 은유와 상징이 풍부하면서도 철저히 논증하려는 시도도 게을리 하지 않는 특이한 책. 서사성이 짙은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하겠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 이전의 기억에 잠시 푹 빠질 수 있었다. 비사회적이고 비언어적인, 결혼과 생식이 목적이 아닌 사랑의 본질을 추구하며 철저히 변방에 머무르길 주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지독한 탐구다.



* 키냐르는 1996년 1월 『소론집』과 소설을 집필 중이었는데 갑자기 심한 출혈로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삶으로 귀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그 즉시 모든 일을 중단하고 그때까지와는 다른 어떤 것, 총체적인 모든 것(사상, 소설, 삶, 지식 등)이 포함된 단 하나의 육체와도 같은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이 작품(1998년 출간)을 썼다고 말한다. (해설 중에서 480쪽)



나는, 내가 읽으면서 몽상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쓰려고 한다. 나는 몽테뉴, 루소, 바타유가 시도했던 것에 완전히 감탄했다. 그들은 사유, 삶, 허구, 지식을, 마치 그것들이 하나의 몸인 듯 뒤섞었다. 한 손의 다섯 손가락들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었다. 292쪽


- 아무르 amour​ 는 말을 하는 입이라기보다는, 배가 고파 입술을 앞으로 내밀어 본능적으로 젖을 빠는 입 모양에 더 가까운 단어다. 15쪽



- 그런데 사랑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은밀한 생, 분리된 성스러운 삶,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인 이유는, 그러한 삶이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어둠 속, 목소리도 없는, 출생조차도 알지 못하는, 태생胎生의 삶.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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