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삶에 홀리다 - 손철주 에세이, 개정신판
손철주 지음 / 오픈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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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 에세이, 꽃피는 삶에 홀리다, 생각의 나무


1. 손철주 선생의 글은 차지다. 꼬두밥(고두밥의 사투리)도 괜찮지만, 목넘김이 좋은 차진 밥 같다. 정식으로 평단에 데뷔한 것이 아니라 일간지기자로 미술 기사를 쓰고, 책을 낸 덕분에 미술 평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상의 에피소드를 2-3페이지로 축약해 싣지만 글이 가볍지 않다.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한시와 인용구들은 천천히 꼭꼭 씹어 삼켜야 하는 맛난 반찬이다. 소개된 그림의 대부분은 우리나라 화가(신윤복, 김홍도, 강세황 등)가 그린 것이이다. 초보자도 쉽게 접근 가능한 미술 에세이로 추천할만하다.




2. 메모

- 문인화가들은 매난국죽 중에서 난초를 가장 먼저 배우고, 국화를 가장 늦게 배운다. 붓과 먹의 기본을 난초에서 익힌 뒤 까다로운 묘사를 국화에서 완성하는 순서로 나아가는 것이다. 223

- 전형적인 국화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국화는 가슴에서 먼저 그려져야 운치가 표현된다고 흔히 말한다. 운치는 어떻게 드러내는가. 꽃은 높고 낮은 것이 있으면서 번잡하지 않고, 잎은 상하좌우전후가 서로 덮고 가리면서도 난잡하지 말아야 한다. 가지는 서로 뒤얽혀 있어도 잡스럽지 않아야 하고 뿌리는 겹쳐 있으면서 늘어서지 말아야 한다. 잎은 두텁고 윤기가 있는 게 좋다. 꽃과 꽃술은 덜 핀 것과 활짝 핀 것을 구비하되 만개한 것은 가지가 무거우므로 누워 있고, 미개한 것은 가지가 가벼우니 끝이 올라가는 것이 제격이다. 올라간 가지는 지나치게 꼿꼿해선 안 되고 누운 가지는 너무 많이 드리워선 못쓴다. 233-244



- 옛 화가가 게를 그릴 때 작심하는 뜻은 흔히 ‘과거급제’다. 등딱지(甲)에서 ‘장원’을 떠올려보라는 수작이다. ... 곧 ‘무장공자(無腸公子)’와 ‘횡행개사(橫行介士)’다. ...
먼저 ‘무장공자’를 보자. ... 딱한 껍질은 갑옷이요 뾰족한 집게는 창에 비유되니, 겉보기는 용맹한 무사와 빼닮았는데 막상 속을 까보면 창자가 없다. ... 창자가 빠지면 영판 실없는 꼬락서니가 될까. 천만에, 외려 남부러운 장점이 생긴다. ‘창자가 끊어지는 설움’을 모른다는 것. 미물에게 그나마 ‘공자’라는 점잖은 신분을 안겨준 연유가 그것이다. ...
다음으로 ‘횡행개사’는 ‘기개 있는 옆걸음질의 무사’란 뜻이다. 강골 이단아의 이미지
259-260

- 김홍도 강세황, 송하맹호도, 18세기, 호암미술관 소장
이 호랑이 그림은 남근주의나 마초의 기상을 뽐내기 위해 그려진 것일까. 우리 옛 그림은 보는 그림이라기보다 읽는 그림에 가깝다. 그러니 속내를 잘 짚어봐야 한다. 소나무와 호랑이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다. 소나무는 장수와 정월의 상징이다. 매화와 동백, 수선 등 해가 바뀌는 것을 알리는 식물 가운데 으뜸이 소나무다. 음력으로 한 해의 첫 달을 뜻하는 정월은 ‘인월(寅月)’로도 불린다. ‘인’은 물론 호랑이다. 소나무와 호랑이의 공통적인 상징이 바로 ‘새해’다. 새해를 맞은 사람에게 액막이하고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그린 것이 이 그림이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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