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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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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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로사회’ ‘투명사회’ 등으로 강력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는 재독(在獨) 철학자 한병철의 사랑에 관한 철학서다. 100쪽을 넘는 얇은 책인데 총 7개의 장(멜랑콜리아, 할 수 있을 수 없음, 벌거벗은 삶, 포르노, 환상, 에로스의 정치, 이론의 종말)에 담긴 에로스에 관한 묵직한 논증은 어렵지만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지적 욕구의 충족이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나 보다.




2. 핵심은 앞쪽 3개의 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타자’와 ‘할 수 있을 수 없음’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 에로스는 성과와 할 수 있음의 피안에서 성립하는 타자와의 관계다. ‘할 수 있을 수 없음 Nicht-Können-Können'이 에로스에 핵심적인 부정 조동사다. 할 수 있음 자체의 불가능 상태를 의미하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체제의 바깥을 지시한다.

아직까지 무슨말인지 잘 모르겠다면 알랭 바디우(‘사랑의 재발명)’의 서문을 보면 된다.

“이 책은 진정한 사랑의 최소 조건, 즉 사랑을 위해서는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데 대한 철두철미한 논증” 6쪽

“타자는 오직 할 수 있을 수 없음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사랑의 경험은 불능에 의해 만들어지며, 불능은 타자의 완전한 현현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인 것이다. 8쪽



: 우리는 끊임없이 ‘할 수 있음’을 추동 받는 사회를 살아간다. ‘넌 할 수 있어’는 곧 ‘넌 해야 돼’로 변질되고 우리는 ‘난 왜 안될까’라는 자책에 갇힌다. ‘타자’는 내가 꺾어야 할 경쟁 상대이며 나의 몫을 앗아갈 잠재성을 지닌 존재다. 이런 생각은 우리는 ‘동일자의 지옥’에 빠지게 하고 사랑의 본래적 의미를 변질시킨다.




3. “정신의 삶”은 헤겔에 의하면 “죽음 앞에서 겁을 먹고 파멸로부터 온전히 스스로를 보존하는” 벌거벗은 삶이 아니라 “죽음을 감내하고 죽음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해가는 삶”이다. 56쪽

사람들은 평화를 맺고 우정을 맺는다. 우정은 하나의 결론이다. 사랑은 절대적 결론이다. 사랑은 죽음, 즉 자아의 포기를 전제하기에 절대적이다. “사랑의 진정한 본질”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포기하고, 다른 자아 속에서 스스로를 잊어버린다는 점”에 있다. 57쪽




: 사랑에 빠지면 내가 아닌 타자가 우선이다. 바디우의 말처럼 사랑은 ‘둘의 무대’이며 각자가 타자 속에서 자신을 잊어버리는 상호 망각의 순간에 빠지면 사랑은 깊어진다. 뼛속까지 아리는 절절한 사랑은 타자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 해도 큰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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