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바다, - 보라카이 (2)



1. 닭 울음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를 조금 넘었다. 술자리에서 대여섯 명이서 하는 '눈치게임'처럼 하나가 끝나자 마자 딴 놈이 울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필리핀 사람들은 닭을 많이 먹기도 하거니와 싸움닭 용으로 닭을 집집마다 대여섯 마리씩 기른다고 했다. 가끔 오후 늦게 우는 닭도 있는데 수입닭은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새벽시간에 맞춰 운다고 들은 것 같다. 수구초심은 닭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구나. 앞으로는 '닭대가리'라는 말을 비하투로 쓰지 말아야지. 내가 닭띠기도 하고.




2. 이틀째 일정은 여유있게 정오경부터 시작해서 오전에 조금 여유롭게 움직였다. 조식을 먹었는데, 최근에 생긴 호텔이고 한국 고객들이 많아서 그런지 김치, 밥도 있고 입맛에 잘 맞았다. 식사 후에 '화이트 비치'를 따라 난 길을 걸었다. 해가 쨍쩅하다가 금방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마저 감싸는 산호초로 이루어진 모래사장을 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골목길 사이로 'd talipapa'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시장인데, 각종 기념품, 옷가지부터 수산물과 과일을 파는 전통 시장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지만 여행지의 시장은 그 자체로 설렘을 준다.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길 대신 메인 도로를 따라 마사지숍이 많은 station 3로 가다가 과일과게에서 망고를 샀다. 보라카이에는 망고나무가 세 그루 밖에 없다고 한다. 망고는 다 육지에서 공수해온 것이고 랍스터 같은 것도 근해에서 잡히는 것은 거의 없다. 특히 나물이 귀한데 섬 사람들이 주로 먹는 채소는 '깡콩'이다. 외형은 시금치 나물처럼 푸르고 식감은 시금치보다는 아삭아삭 조금 더 씹히는 식감이 있다. '깡콩'한 접시 가격이 치킨카레 한 접시 가격이다. 맥주는 San Miguel 이 유명한데 한국돈으로 한 캔에 1,200-1500원 정도였다. 술을 좋아했으면 종류별로 사먹어 보고 비교해보겠는데 그러다가 호텔에서 몸저 누울 수도 있으므로 그건 포기했다.





3. 오후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다. 그냥 자유시간. 아내와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바다로 나갔다. 보라카이 섬의 전체구조는 station 1에서 station 3로 긴 화이트 비치가 펼쳐져 있고 station 1으로 갈수록 모래 알갱이가 작고 곱다. station 3 쪽은 한국, 중국 관광객이 많았고, station 1으로 근접할 수록 조금 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한가롭게 썬 탠이나 책을 읽는 서양인들을 볼 수 있었다.



바다는 바다였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물 속에서 놀고, 모래 사장에서는 필리핀 얘들이 모래로 'I LOVE BORAKAY' 글자를 넣은 모래 조형물을 만들어 사진 1장에 1달러를 받았다. 마사지나 호핑투어를 예약하라고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상인들, 누워서 썬 탠을 하는 여자들, 그리고 물 침대같은 바닷물에 몸을 맡기고 드러누운 우리. 바다는 바다다. 가끔씩 입 속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은 짰지만.



4. 저녁식사를 마치고 Staion 2의 중심가인 'D MALL'로 가서 자몽,망고스틴도 사고 망고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아내가 미리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마사지숍을 알아둔 덕분에 전신마사지를 받았다. 평소에 휴양지에서 물놀이하고 마사지 받는 그야말로 힐링 휴양 여행을 원했던 아내의 로망이 조금 충족되었으려나. 하긴 지난 6월의 이탈리아 여행은 퍽 힘들었었다. 생전 처음 받아본 전신마사지를 받았는데 이거 중독될 것 같다. ㅎ

#보라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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