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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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이 책은 빌리지 않고 샀다. 부천시의 ‘희망도서대출’ 정책은 시민 한 사람 당 월 20권씩 동네서점과 연계해 새 책을 빌려 주는 제도다. 대개 소설, 여행에세이, 웹툰 류는 빌려 읽고 시집은 온라인서점을 통해 산다. 그런데 이 책을 ‘희망’도서로 빌리지 않고 ‘소장’하기 위해 샀다.

내가 신청해서 빌리는 ‘희망’도서와 사서 책장에 꽂아두는 ‘소장’도서를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 책장을 넘기며 그을 수 있는 밑줄과 하이라이트 표시일까, 다시 읽고 싶을 소장하는 것일까, 읽기 전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가능할까, 소재와 작가에 대한 신뢰일까. 나아가 소장 한 책 중에 책장에 남아있는 책과, 중고서점에 팔려 나가는 책과 버려지는 책은 어떻게 다를까.

소장도서와 희망도서는 다르다. ‘소장’이라는 낱말은 내게 ‘소망(所望)’처럼 들린다. 소망은 ‘어떤 일을 바람. 또는 그 바라는 것’, 희망(希望)은 1)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2)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 으로 정의되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차이를 구분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희망이란 미래에 이룰 수 있는 유형적인 것들에 대한 긍정적 바람으로, 소망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존재에 대한 불가능한 외침으로 내겐 들린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중편「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실려 있다.

전자는 2017년 제11회 김유정 문학상 작품집(당시 ‘웃는 남자’로 발표)에서 읽었고, 후자는 처음 접했다. 작가의 단편집 『파씨의 입문』에 실린, 「d」의 모태가 된 단편 「디디의 우산」을 읽은 터라 'dd'를 떠나보낸 ‘도도’에 감정을 이입하며 읽었다. 물론 「d」는 ‘d’와 ‘dd'의 이야기 뿐 아니라 세운상가에서 중고 오디오 수리점을 하는 ’여소녀‘와의 관계가 보태진다. 창문 없는 방에서 방만한 오디오 세트를 여소녀로부터 마련해 들여 놓은 뒤 d가 음악을 듣는 장면, “죽음엔 죽음 뿐이며, 모든 죽음은 오로지 두 개로 나눌 수 있을 뿐”이며 죽음에는 오직 “목격되거나 목격되지 못”하는 죽음만 있을 뿐(113쪽)이라는 d의 인식이 깊이 마음에 남았다. d는 사물과 사물의 반향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그래도 달팽이처럼 천천히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는 옅은 희망이 보인다.

반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읽는 내내 힘겨웠다. 몇 단락을 읽고 자주 쉬었고, 밥을 먹고 나서, 자고 나서, 날을 넘기며 읽었다. 이 소설에 담긴 내용은 너무 광범위에 한 번에 소화하기 힘들었다. 최근 한국 현대사에 굵직굵직한 사건들(1987년 민주 항쟁, 1996년 연대 집회, 2002년 대통령 선거,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집회, 2009년 용산참사, 2014년 세월호 사건, 2016년 촛불혁명)이 배경으로 담겼다. 화자인 김소영이 언급하는 니체, 롤랑바르트, 생텍쥐페리, 슈테판 츠바이크, 한나 아렌트의 생애와 저작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동성애의 주제들 그리고 부끄러움, 답답함의 감정들.

한나 아렌트가 언급한 악의 상투성(banality)에 대한 통찰과 비맹인이 말할 필요가 없었던 점자의 세계가 아닌 묵자((墨字)의 세계에 대한 언급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묵자가 상태가 상식이라서 그걸 부를 필요도 없이, 그것이 너무 당연해 우리는 그것을 지칭조차 하지 않는다.”(274쪽)

내가 떠올리고 내뱉고 적어 내려간 묵자들이 침묵하며 살아온 누군가에게는 상식과 상투의 옷을 입은 바늘이 아니었을까. 광장에 모인 우리가 모두 승리했다고 자축하고 해산한 뒤에 왜 우리들은 또다시 광장에 촛불과 깃발과 피켓을 들고 모여들고 있을까. 1987년, 2002년, 2008년, 2016년 그리고 2019년에도 말이다.

희망도서들이 소망이 될 때까지, 묵자의 세계가 침묵의 세계로 변할 때까지 읽고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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