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애슐리 테이크아웃 1
정세랑 지음, 한예롤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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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대표인 심석희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재판 및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소위 '그루밍' 성폭력이 의심되는 사안인데, 나는 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심 선수가 떠올랐을까.

책의 말단에 있는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 소설 집필 동기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은은한 폭력 속에 살아온 사람이 어렵게 껍질을 벗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은은한 폭력'이라는 말이 책을 덮고도 자꾸 떠올랐다.

사전적 의미로 첫째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아니하고 어슴푸레하며 흐릿하다"는 뜻이 있고, 세 번째 정도의 의미에는 "냄새가 진하지 않고 그윽하다"라는 뜻도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냄새가 나는(fishy) 폭력, 그 내음이 몸에 새겨져 아무리 닦고 씻어내도 절대 빠져나가지 않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구멍에 고이는 시퍼런 폭력의 잔해들.

주인공 애슐리의 애칭인 애쉬(ash), 섬에는 수백 명의 애슐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았고, 주인공 애슐리는 본토 사람의 얼굴을 갖고 태어나 섬에 사는 경계인. 가족으로부터 섬의 직장에서도 언제나 주변을 떠돌아야 했던 그녀가 살아가며 ‘은은’하게 체득한 체념과 수동성이 슬펐다. 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청년회의 대표로서 ‘아투’가 ‘앞서가는 거북이’라는 애슐리는 ‘꼬리를 물고 끌려가는 거북이’ 중의 하나다.

애슐리는 이미 자신이 되어버린 폭력의 껍질을 벗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싱처가 난 줄도 모르고 덧나고 굳어버린 껍데기는 이미 그녀의 일부이기에 체념과 수동성이라는 날카로운 칼로 그녀의 온몸에 새겨진 슬픔의 문신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가릴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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