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
조은 지음 / 로도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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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또또'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에서 '또또'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녀가 발췌해 준 문장만으로도 '또또'가 자꾸 눈에 밟혔는데, 다른 작가의 에세이에서 '또또'를 또 만나게 됐습니다. 평소 (남녀노소가 아닌) 수컷 암컷 대소를 불문하고 개라면 피해 다니기 바빴는데, 희한하게도 '또또'는 자꾸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유일하게 우리집에 잠시 머물렀다 간 강아지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일까요? 그 녀석의 이름은 '뽀뽀'였고, 키울 능력이 부족했던 우리를 만나 6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보내져야만 했습니다.

사직동에 사는 동안 나는 몸도 건강해졌고, 의식도 성장했다고 느꼈다. 느리고 굼뜬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 세월 동안 한결같이 내 곁에 있었던 존재는 상처 받은 채 내게로 왔던 작은 개 또또였다.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은 여러 이유로 변덕이 잦았지만, 또또만이 고른 마음으로 내 옆에 있었다. 잡종개였던 또또만이 내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슬픔도 묵묵히 덜어내 줬다. 또또는 한 번도 내게 싫증을 내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나의 시시한 면면을 누설하지 않았고, 인간을 통해서는 줄일 수 없었던 내 아픔을 조용히 나눠 가지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동안 내게 기쁜 일도 있었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밖으로 나도느라 우리가 같이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으니 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또또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처럼 나는 삶이 내게 주는 무게를 또또를 통해 덜어 내곤 했지만, 같이 사는 동안엔 그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했다. 뒤늦게 그걸 알고 뭉클뭉클 솟구치는 고마움을 느꼈을 때 또또는 이미 폭삭 늙어 버린 뒤라 우리 앞에는 안타까운 시간만 남아 있었다. 10쪽

한번 키워보고 싶다며, 어느 날 동생이 무턱대고 데려온 '뽀뽀'. 하지만 우리에게는 '뽀뽀'를 제대로 보살펴 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져야만 했던 '뽀뽀'는 우리가 떠난 현관 앞에서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하루종일 우리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요?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않고, 하루종일 집 안에 혼자 두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뽀뽀'를 하루종일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지인에게 입양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입양 보낸 우리가 어디가 좋다고, 가끔씩 그 지인이 하는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뽀뽀'는 헤어진 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줬습니다.

'뽀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마도 저였을 거예요. 알레르기도 있고, 강아지도 무서워해서 곁에 두지 않았는데 집에 있을 때면 늘 뒤에서 맴돌고 있었나봐요. (곁에 있는 건 워낙 싫어하니까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책상에 앉아 있다가 의자를 뒤로 뺐는데,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의자 바퀴에 작은 발이 끼여 버렸던 것입니다. 동생이 여행을 가고 온전히 혼자 '뽀뽀'를 돌보게 됐을 때는 영양실조에 걸리게 했고, '뽀뽀'를 데리고 이동해야 할 때는 가까이 안아주는 게 아니라 멀찍이 들고 다녔습니다. 저도 제 나름의 사정(알레르기와 공포)이 있었지만, 지인들은 '뽀뽀'가 너무 무서울 것 같다며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뽀뽀'는 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뒤에서 맴돌고 있었죠. 제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절대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말이죠.

또또는 죽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받은 나쁜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도 편히 자지 못하던 또또를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워 악몽으로부터 건져 내야 했던 밤의 기억이 너무도 강해 나는 아직도 그들의 말에 얼른 동조하지 못한다. 그때를 제외하면, 말년의 또또는 평화로웠다.

(…) 상처투성이로 내게로 왔지만, 또또는 내게 어떤 마음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공포감을 다스리지 못해 저도 모르게 나를 물기는 했지만. 물고 나선 곧바로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녀석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꽤 오랫동안 안간힘을 썼고, 그동안 녀석의 증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냥 번쩍 들어 품에 안아 줬으면 녀석은 명랑하고 상냥한 태생적 본능을 잃지 않고 예쁘게 살다 죽었을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그랬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했을 것이다. 11쪽

원래 '또또'는 조은 시인이 세 들어 살던 개량한옥 주인집의 개였습니다. 십 대 후반의 두 아들과 살고 있는 주인집은 평소에는 너무도 조용하고 강아지도 방 안에서 키웠는데, 가끔씩 이 강아지를 학대하는 장면이 시인에게 목격됩니다. 주인집 아저씨는 강아지를 때리기도 하고, 추운 겨울밤에 목욕을 시킨 후 말려주지도 않은 채 마당으로 쫓아내기도 합니다. 겨우 1만 원짜리 강아지라며 막 대하고, 개 장수에게 줘버린다는 말도 합니다. 이런 '또또'가 불쌍해서 시인이 가끔씩 돌봐주자 '또또'의 안부를 시인에게 묻기도 합니다. 지난밤에 얼어 죽지 않았는지, 새벽에 나가는 걸 봤는데 돌아왔는지 등.

갈색 실꾸리 같은 것이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 끼어 내 쪽으로 굴러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 그것이 둥글게 오므라들며 마른 큼직한 플라타너스 잎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뒤 그 나뭇잎이 회오리치는 바람에 굴러 내 발목에 와닿았다. 열리지 않는 문의 의미를 병적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을 때였다. 곧이어 무엇인가가 내 바지를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고, 그 느낌은 계속되었다. 뭔가가 이상해 허리를 굽혀 발치를 내려다보던 순간, 깜짝 놀랐다. 갈색 나뭇잎이거나 실꾸리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도 예쁘게 생긴 작은 강아지였다. 나는 그때껏 그렇게 예쁘게 생긴 강아지를 본 적 없었다. 강아지는 상냥하고, 명랑하고, 예쁘고, 포근하고, 사교적이었다.

(…) 강아지는 내가 일찍이 본 적 없이 예뻤지만, 나는 녀석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19쪽

사실 시인은 개와 가까워지는 게 두렵습니다. 어릴 때 키웠던 '마루'가 아빠 친구들에게 잡아먹힌 사건 이후로 충격을 받아 더이상 개는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매일 마주치는 이 '또또'를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기만하면 물어버리는 '또또', 시인 역시 여러 번 '또또'에게 손을 물렸습니다. 아픈 '또또'를 치료하기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의사는 이런 예민한 성격에, 잘 먹지도 않아서 3년도 못 살거라고 말합니다.

집주인과 공동으로 '또또'를 키우던 시인은 이사를 하면서 아예 '또또'를 데려갑니다. 주인 역시 시인에게 별말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1만 원짜리였으니까요.

또또는 사람이 의도를 갖고 자신을 때리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고통에 강했다. 녀석은 정말이지 죽을 정도로 아파도 조용했다. 내부의 고통을 수용하는 녀석의 태도는 인간인 나도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102쪽

하지만 시인과 '또또'는 무려 1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또또'가 아파도 더이상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습니다. 병보다는 그런 스트레스가 '또또'에게 더 해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예민하고 아팠지만, 신체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줄 알았던 '또또'. '또또'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날, 시인은 동물병원으로 '또또'를 마지막으로 데려가, 편안하게 보내주기로 결심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또또'에게 보내는 시인의 '애도'일지도 모릅니다.

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또또는 '저렇게 먹고 어떻게 생명이 유지될까?' 싶을 정도로 적게 먹었는데, 3년을 못 넘길 거라던 수의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17년을 살았다. 135쪽

개들은 정말이지 인간의 속된 감정을 정화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존재이다. 인간에게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순저오가 순수함이 주는 위로에 매혹되면, 개와 살면 일생이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자 사는 젊은이가 개와 너무 밀착되어 생활하는 것을 조금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을 알 만큼 아는 나이 든 독신들이 그렇게 지내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같이 살고 있는 개에게서 얻는 정서적 위안과 평화를 변덕스러운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어 그들에게 다시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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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5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희 이모님이 기르시던 댕댕이
이름을 제가 또또라고 지어 주었었는데...

지금 무지개 다리 건너갔구요.

뒷북소녀 2019-02-27 13:03   좋아요 0 | URL
아, 또또...
강아지들은 주로 부르기 쉬운 이름들로 명명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