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일기를 안 쓰셨어요? 지금 당장 쓰세요!

 

장인 A : 밥 먹으러 가죠.

직장인 B : 먼저 가세요. 전 일기 써야 해요.

직장인 A : 아니 어쩌다가 일기를 안 쓰셨어요. 그렇게 안 봤는데……. 「들어가며」 8쪽

 

서민 교수님 책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서문부터 아주 재밌습니다. 이게 다 서른살 때부터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을 읽은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요? 이게 다 망작 『마테우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은 책, 너무 못 써서 작가 스스로 절판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던 책. 그 책 때문에 그는 평생(!)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 부끄러움의 끝에서 그는 이런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려면 매일 조금씩 써야 한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매일 조금씩 쓸 수 있는 글의 형태는 뭘까요? 그가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일기'였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 조금씩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지금의 글솜씨, 어디 내놔도 남부끄럽지 않은 글솜씨, 심지어 재밌기까지한 글솜씨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글은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써야 늡니다. 수많은 글쓰기 책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글쓰기를 위해 하루 30분씩 쓰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고요. 근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루에 30분씩 도대체 무슨 글을 써야 할까요?

까먹어서 그렇지,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매일 조금씩' 글을 쓰라는 강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뭔지 다 아시겠지요? 소제목에 적혀 있듯이 답은 '일기'입니다. 29쪽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매일 30분씩 일기를 쓸까요?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되는데 또 어떻게 일기를 쓸까요?

술 마신 날은 더더욱 쓰기 힘들텐데요?

 

그는 이 모든 것이 핑계일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핑계를 대다보면 죽을 때까지 글을 잘 쓰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따끔한 충고도 덧붙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들만 반복돼서 일기 쓸게 없다면 그날 실검을 장식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기 의견을 쓰라고 합니다. 술을 마셨으면 또 그것을 소재로 쓰라고 합니다. 술자리에서는 늘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법이니까요. 한때 그는 술일기를 쓴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술 때문에 일기를 거르지 말고, 소재를 생각했다가 그 다음 날이라도 꼭 쓰시기 바랍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건너 뛰기 시작하면 글 잘 쓰는 '그 날'은 결국 오지 않습니다. 236쪽

 

그는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매일 일기 쓰기를 통해 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지 두루뭉술한 비법 대신 실생활용 팁을 알려줍니다. 당장이라도 일기를 쓰고 싶게 말이죠. 그가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당장, 하루 30분!

 

사실 글쓰기 관련 책들은 재미없기 마련인데, 이 책은 너무 재밌어서 술술 읽힙니다. 이게 다 일기를 쓴 덕분이라니 솔깃해집니다. 심지어 그가 그토록 절판되기를 원했던 망작 『마테우스』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동안 그의 글솜씨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할 수 있을테니까요. 원래 처음부터 잘한 사람보다는 노력으로 잘하게 된 사람의 비법이 더 궁금한 법이니까요.

 


■ 밑줄긋기

20세기 말부터는 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납니다. 원래 책을 내는 사람은 작가의 대부분이었고 일반인들은 작가가 쓴 책을 읽는 데 그쳤지만, 어느 순간부터 꼭 작가가 아니라도 책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 하루 수백 종의 책이 나오는 요즘, 그 책의 대부분은 전업 작가와 무관한 사람에 의해 쓰입니다. 작가라서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책을 쓰면 작가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책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책을 쓴 저자에게 부와 명예도 가져다줍니다. 24쪽

 

글에는 '객관화의 힘'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글로 써놓으면 남의 일처럼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37쪽

일기를 매일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날 저질렀던 실수에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으로 이끌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해줍니다. 글을 쓰려면 해당 사건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야 하니 사고가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고요. 38쪽

글쓰기 소재는 원래 갑자기 떠오릅니다. 작가들은 그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의 신인 '뮤즈'에 비유합니다. 이 뮤즈라는 분은 워낙 빠른 속도로 왔다가 그냥 가버리는 게 특징입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빈대떡을 보는 순간에는 '아, 빈대떡에 대해 쓰자'고 생각을 하겠지만 1분만 지나면 그 생각은 없어지고 '내가 뭘 쓰겠다고 했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게다가 하루에 워낙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버스에 교복을 차려입은 예쁘장한 여학생이 탄다면 그 순간 '빈대떡'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집에 가서 일기를 쓰려면 짜증만 납니다. 79쪽

사진으로 일상을 표현하는 사람은 그 장면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짜낸 사람보다 글을 잘 쓰기 힘들지요. 90쪽

좋은 글을 일기장에 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좋은 글을 자꾸 보고 또 보고 꿈에서도 봐야겠지요. 이렇게 한다면 백일장과는 담을 쌓은,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그 글을 어설프게나마 따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글쓰기와 책읽기를 모두 서른에 시작한 제가 글을 잘 쓰기 위해 했던 것은 매일 일기를 쓰는 거소가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체를 모방하는 건 안 좋은 일 아니냐고요? 내용만 다르다면 문체 좀 따라하는 거야 뭐 그리 문제겠습니까? 저도 그랬답니다. 처음에 제가 따라했던 분은 전북대 강준만 교수님이었어요. 그분이 어이없는 경우에 즐겨 있던 '소가 웃을 일이다'라는 구절이나 '~란 말인가?' 같은 어미는 제 초창기 글에도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한 사람의 책만 계속 읽게 되진 않습니다. 다른 책을 읽다 보면 마음에 드는 문장이 생기고 그 문체를 따라하게 되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저만의 문체가 만들어지더군요. 163~164쪽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노트에 적어놓고 나중에 컴퓨터 파일로 저장해 놓으세요. 그래야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습니다. 책에다 표시만 해놓아서는 "그게 뭐였더라?"라며 발만 동동 구르게 되거든요. 201쪽


 

■ 책 속의 책

일본 작가 사노 요코가 쓴 수필집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집 근처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이 와서 집집마다 탐문수사를 벌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인 밤 8시부터 10시 사이에 혹시 뭐 본 것 없느냐는, 목격자에 관한 수사였습니다. 그런데 사노 여사는 나이가 든 탓인지 전날 뭘 했는지 통 기억이 안 납니다. 소심한 사노 여사는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알리바이를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요. 그래서 사노 여사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요. 쓰다가 따분해져서 그만뒀고 그 뒤 일기에 대해선 잊어버렸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를 갔는데 그때 쓴 일기장이 나왔습니다.

전날 뭘 했는지도 모르는 사노 여사가 그날 불었던 바람과 하늘, 그리고 친구의 털까지 떠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일기였습니다. 38~39쪽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알씁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건축가 유현준 씨가 우리나라 도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책입니다. 건축가가 쓴 책이어서 딱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찌만 이 책은 술술 읽힙니다. 도시 건축물에 대한 책이 잘 읽힌다니 비결이 뭘까요? 책에 나오는 저자의 비유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아파타의 획일성에 대한 비판을 보죠. 저자는 난데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건축물은 소주가 아니라 포도주와 같다." 165~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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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8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서구 사시는군요 저도 한때 달서구민이었던 적은 없었네요 직장이 달서구인 적은 좀 됩니다ㅋㅋ서구민 수성구민 중구민 중에 수성구민으로 오랫동안 살았네요 ㅎㅎ

뒷북소녀 2019-02-08 13:02   좋아요 1 | URL
예리하시네요. 저는 수성구민에서 달서구민으로 넘어온지 좀 오래되었다죠.
달서구의 가장 큰 장점은... 도서관...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카알벨루치님도 대구 사신다니, 반가워요.^^

카알벨루치 2019-02-08 13:13   좋아요 1 | URL
지금은 대구 근처에 있습니다 달서구 도서관 진짜 가보고 싶네요 ~

레삭매냐 2019-02-08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

서민 교수님의 해학이 돋보이는 글쓰기
와 일기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끔은 너무 복잡하지 않고 요러코롬
스트레이트 포워드하게 나가는 책도
갠춘한 것 같습니다.

뒷북소녀 2019-02-08 13:02   좋아요 0 | URL
아하! 해학! 정말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말씀처럼 해학 넘치는 글쓰기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레삭매냐님은... 일기는...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