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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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과는 싸우지 말자! 다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 뿐!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는 『시학』에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비극'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세 명의 그리스 비극 작가를 소개합니다. 아이스퀼로스(BC525~BC456), 에우리피데스(BC484~BC406), 소포클레스(BC496~BC406)가 바로 그들인데, 그 중에서도 소포클레스의 작품들을 가장 완벽한 비극이라고 극찬합니다.
   소포클레스는 123편의 작품을 썼고, 비극 경연대회에서 무려 18회나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25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작품은 겨우 7편 밖에 남지 않게 됐습니다.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는 현존하는 그의 모든 비극(다른 세계문학전집에는 실리지 않았던)이 실려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천병희 선생님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의 비극과 그 이후 그의 자식들에게 벌어진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행 중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바이의 왕으로 추대된 「오이디푸스 왕」은 선왕을 죽인 살해범을 찾기 위해 부른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로부터 자신에게 내려진 신탁을 다시 전해 듣습니다. 원래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 왕의 아들로 자랐지만, 포이보스(아폰론)로부터 '어머니와 살을 섞을 운명이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자식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며,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죽이게 되리라는'(60쪽) 신탁을 듣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오이디푸스는 사악한 신탁이 이뤄지지 않도록 집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자가 또다시 자신에게 내려진 신탁을 언급하였고, 심지어 선왕을 죽인 것은 오이디푸스 자신이라고 합니다.
   선왕의 왕비이자 현재 오이디푸스의 왕비이기도 한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를 위로하기 위해 그 옛날 자신들에게 내려진 신탁을 피하기 위해 선왕인 라이오스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고백합니다. 그들에게 내려진 신탁은 아들이 라이오스를 죽이게 될거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갓 태어난 아들을 버려 신탁을 피합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서 운명은 빗겨나가지 않았습니다. 선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가 버린 아들이 바로 오이디푸스였고, 선왕을 죽인 살해범도 오이디푸스였으며, 선왕의 왕비이자 자신의 어머니를 취해 자식들을 낳은 사람도 오이디푸스였습니다. 이에 좌절한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찔러 스스로 눈을 멀게 만듭니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오라비 크레온에게 자신의 불쌍하고 가여운 두 딸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부탁합니다. 아들도 둘이나 있었지만 아들들은 어디로 가든 제 힘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거라며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착한 안티고네는 눈먼 아버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와 함께 합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낯선 곳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아버지의 눈과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때 이스메네가 찾아와 오이디푸스에게 두 아들의 소식을 전합니다. 에우리피데스와 폴뤼네이케스는 서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는데, 그들을 말리고 테바이를 이 재앙에서 구해낼 수 있는 건 아버지 오이디푸스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그리워하기 보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고 있는 두 아들을 원망합니다.
   마침 오이디푸스의 처남 크레온도 오이디푸스를 테바이로 데려가기 위해 나타납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의 속셈을 꿰뚫고 있습니다. "자네가 나를 데리러 온 것은, 나를 집에 데려가려는 것이 아니라, 국경 가까운 곳에 데려다놓음으로써 자네 도시가 이 나라로부터 재앙을 피하려는 것이네."(187쪽) 이렇게 말하며 돌아가길 거부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납니다.
   오라버니들의 임박한 살육을 막기 위해 테바이로 돌아간 안티고네와 이스메네. 그러나 두 오라비들은 서로의 칼에 찔려 죽습니다. 그들을 대신해 테바이의 왕이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죽음은 애도하되, 다른 나라 군대를 이끌고 조국을 공격한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하지 못하게 합니다. 만약 이 명령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죽음으로 다스리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굴하지 않고 크레온 몰래 오라비의 시신을 매장하려고 합니다. 어찌됐든 폴뤼네이케스도 안티고네의 소중한 오라비니까요. 화가 난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죽이려 하고, 안티고네를 사랑한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안티고네와 함께 죽으려 합니다.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크레온의 아내 에우뤼디케 또한 죽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으로부터 시작된 비극은, 이렇게 비극에 비극을 또 낳습니다.

  
필연(必然)과는 싸우지 말자꾸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163쪽

  
「아이아스」는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중 맨 처음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죽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둘러싼 아이아스와 오뒷세우스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킬레우스가 죽자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에 대해 그리스 장군들 사이에서 투표가 벌어지는데, 투표 결과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한 아이아스가 아닌 오뒷세우스에게 아킬레우스의 무구가 주어졌습니다. 이에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아이아스가 늦은 밤 그리스 장군들을 습격해 그들을 죽이려 하지만, 아테나 여신의 힘으로 막히게 됩니다. 아테나 여신은 아이아스가 미쳐 장군들 대신 가축들을 도륙하게 만드는데, 정신이 돌아온 아이아스는 부끄러움을 느껴 헥토르에게 선물로 받은 헥토르의 칼로 자살합니다. 지략이 뛰어난 아니 얄미운 오뒷세우스는 지금껏 가만히 있다가 아이아스가 죽고나자 그를 매장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가멤논에게 청합니다.
   사실 아이아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오뒷세우스는 지략은 뛰어나지만 결투에서는 약했으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머리로 싸움을 하는 오뒷세우스보다는 무공이 뛰어난 아이아스에게 아킬레우스의 무구가 더 잘 어울리고 필요했을텐데 말입니다. 게다가 오뒷세우스는 그리스 장군들 뿐아니라 아테나 여신의 보살핌까지 한 몸에 받고 있어서, 독자인 저도 얄미운 건 사실입니다.


   「아이아스」와 마찬가지로
「엘렉트라」 역시 『일리아스』와 연관된 이야기입니다. 트로이로 전쟁을 떠났던 아가멤논은 돌아와서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살해됩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몰래 고향으로 돌아온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일부러 자신이 죽었다는 전갈을 집으로 보냅니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원망하고 있던 엘렉트라는 마지막 남은 희망인 오레스테스 마저 죽었다고 하자 혼자서 그 두 사람을 죽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때 오레스테스가 나타나 복수를 시작합니다.
   사실 정부와 함께 남편을 죽인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도 약간의 사정이 있었는데, 그 사정을 상세하게 볼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리스 명궁
「필록테테스」는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로 향하던 중 독사에 물려 무인도인 렘노스 섬에버려져, 헤라클레스에게 물려받은 활로 사냥을 하며 비참한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의 활이 없으면 트로이아가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는 예언을 듣고, 오뒷세우스는 네옵톨레모스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필록테테스의 환심을 산 후 필록테테스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네옵톨레모스는 오뒷세우스만큼 간악하지 못해서 사실을 고백하고, 필록테테스는 헤라클레스의 혼백에게 계시를 받고 트로이아로 향합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오뒷세우스는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결국 최후까지 남는 사람은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명장은 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행운과 불행은 돌고 돈다는 점을 생각하시고.
   고통의 바깥에 있는 자는 위험을 보아야 하며,
   잘나가는 자일수록 인생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오.
   방심하는 사이에 느닷없이 파멸이 닥치지 않도록.

  
「필록테테스」 439쪽

  
「트라키스 여인들」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여성들을 짓밟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가 죽자 그의 부인도 노예가 되었듯이, 전쟁이 터지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는 힘이 없습니다.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긴 자의 뜻대로 이리저리로 끌려다녀야 합니다.
   아버지 에우뤼토스가 헤라클레스와의 싸움에서 지자 그의 딸 이올레도 포로가 되어 헤라클레스의 집으로 끌려옵니다. 다른 포로들과 겉모습이 남달랐던 이올레를 본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이아네이라는 처음에는 연민을 느꼈지만, 남편 헤라클레스가 이올레를 얻기 위해 일부러 싸움을 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합니다. 그녀는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 켄타우로스가 알려준 방법대로 켄타우로스의 피가 묻은 옷을 남편에게 입히는데, 그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는 옷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극심한 고통을 느낍니다. 이를 알게 된 데이아네이라는 자살하고, 고통을 참을 수 없었던 헤라클레스는 아들에게 자신을 산 채로 화장시켜 달라고 합니다. 이 와중에도 헤라클레스는 이올레를 걱정하며 아들에게 부탁하니, 남자는 정말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소포클레스의 7편의 비극에는 모두 신탁이 등장합니다. 오이디푸스처럼 그 신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 신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신탁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예정되어 있는 삶을 따릅니다.
   그렇다면
소포클레스는 운명론자였을까요? 만약 운명을 믿는다면, 이것이 모두 신의 뜻이라고 믿는다면 삶은 참 편할겁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혹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그렇게 생각하면 될테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 운명이 정해져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그 운명을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으니, 그 운명을 따를수도, 맞서 싸울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쩌다가 알게 된 운명 따위에 집착하며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할 뿐입니다. 이것이 소포클레스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요?

   사람들은 일단 보고 나면 많은 것을
   헤아릴 수 있으나, 보기 전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예언할 수 없지요.

   「아이아스」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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