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 / 시학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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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오이디푸스 왕』을 극찬하게 되었을까!
   이데아를 중시한 플라톤(BC427~BC347)은 형이하학적인 모든 것을 부정했습니다. 문학과 예술은 이데아의 하급 위치에 있는 것이며, 작가와 예술가 역시 국가 건설에는 불필요한 존재라며 비판했습니다. 반면 그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는 '예술은 인간 삶에 대한 모방'이라며 스승과 다른 견해를 펼쳤습니다.
   『시학』은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학론(인간의 삶을 모방한 예술 중 하나인 문학)을 담은 책으로, 오늘날까지도 문예 창작 이론서로 읽혀지고 있는 책입니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모방을 하며,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도 인간이 가장 모방을 잘하며, 처음에는 모방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모방된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사실은 경험이 입증한다. 아주 혐오스러운 동물이나 시신의 형상처럼 실물을 보면 불쾌감만 주는 대상도 더없이 정확히 그려놓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보고 즐거워한다. 350쪽

   희극, 서사시 등 인간의 삶을 모방한 문학 장르는 다양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문학 옹호론을 펼칩니다. '희극은 우리만 못한 인간을 모방'해 우리에게 웃음을 주지만, '우리보다 더 나은 인간을 모방'하는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으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실현'해 준다고 합니다. 지금도 고대 그리스의 희극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도 희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희극은 사람들에게 덜 중시되었던 탓이겠죠.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갖는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듣기 좋게 맛을 낸 언어를 사용하되 이를 작품의 각 부분에 종류별로 따로 삽입한다. 비극은 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서술 형식을 취하지 않는데,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으로 바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실현한다. 361쪽
 
   비극을 구성하는 요소는 볼거리, 성격, 플롯, 조사, 노래, 사상 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짜임새, 즉 플롯이라고 합니다. 그는 "사건과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목적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363쪽)고 강조합니다. 특히, 플롯에 속하는 부분들 중에서도 '급반전과 발견'이 우리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소포클레스(BC496~BC406)의 『오이디푸스 왕』이라며 극찬합니다.

   급반전이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변화 역시 앞서 말했듯이 개연적 또는 필연적 인과 관계에 따라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 왕에서 사자(使者)는 오이디푸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그를 모친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오지만, 그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정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 발견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무지의 상태에서 앎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등장인물이 행운을 타고났느냐 불행을 타고났느냐에 따라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발견은 『오이디푸스 왕에서처럼 급반전을 수반할 때 가장 훌륭하다. 377~378쪽

  
모든 발견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나 에우리피데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처럼 사건 자체에서 비롯되는 발견. 403쪽

   공포와 연민의 감정은 볼거리에 의해서도 환기될 수 있고 사건의 짜임새 자체에서도 환기될 수 있는데, 후자가 더 훌륭한 방법이며 더 훌륭한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플롯은 눈으로 보지 않고 사건 경과를 듣기만 해도 전율과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느끼는 감정이다. 389쪽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자식들을 얻은 오이디푸스 왕은, 일련의 사건들이 평면적으로 나열되지 않고 '급반전'과 '발견'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납니다. 게다가 오이디푸스 왕은 사악한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맞춰 테바이의 왕으로 추대된 인물로, 우리보다 훨씬 나은 인간인데 그의 운명은 보통의 우리보다 불행하게 끝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비극의 적당한 분량까지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우가 사람들 앞에서 모방(연기)을 해야하는 비극은 당연히 시간적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여러 번으로 끊어서 볼 수도 있겠지만, 극의 재미를 위해서 "가능한 한 태양이 1회전하는 동안, 또는 이를 과히 초과하지 않는 시간 안에 사건의 결말"(359~360쪽)을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왕 또한 그동안의 이야기들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려질 뿐이며, 무대 위에서 본격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급반전'과 '발견'이 있는 부분입니다.

   한마디로, 『시학』은 비극 창작 이론서이며 『오이디푸스 왕은 그 이론을 가장 완벽하게 따르고 있는 교본인 셈입니다.
   사실 『시학』을 읽게 된 계기는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은 「오이디푸스 왕」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전 「오이디푸스 왕」을 포함한 소포클레스의 여러 비극들이 실려있는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을 읽고나니 소포클레스를 극찬한 『시학』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2천년 전에도 극찬한 사람이 있다니, 그 사람은 어떻게 극찬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나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다는 '문학적 허세'도 살짝 작용하긴 했고, 적어도 소포클레스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나의 안목이 비슷하다는 자부심도 느낄 겸해서요.
   고대 그리스 사상가라고 하면 현학적인 글들로 정신을 빼놓는 경우다 많은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매우 쉽고 실용적입니다. 그러니까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는 것일테지만요.

   비극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의 모방이다. 이런 사건들을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상호 간의 인과 관계에서 일어날 때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 사건이 그처럼 일어날 때 저절로 또는 우연히 일어날 때보다 더 놀라운 법이다. 우연한 사건이라도 어떤 의도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보일 때 가장 놀랍기 때문이다. 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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