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그에게 덧씌어진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 이미지, 이것이야말로 진짜 비극이 아닌가!

   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김영하, 『읽다』 16쪽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9쪽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12쪽


   그러니까 이탈로 칼비노의 화법을 빌려 말해보자면, 최근에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이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더 유명한 오이디푸스 왕. '다시' 읽어보니, 비록 그 덕분에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자신을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버린 프로이트가 꽤 원망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억울함 때문에 없던 콤플렉스가 오이디푸스 왕에게 생기지는 않았을까요?

   「오이디푸스 왕」은 프로이트가 정의하는 그런 콤플렉스를 가진 아들이 아닙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키운 코린토스 왕 폴뤼보스가 친부가 아니라는 술 취한 사내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을 알기 위해 아버지 몰래 포이보스(아폴론)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포이보스는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이디푸스가 '어머니와 살을 섞을 운명이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자식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며,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죽이게 되리라는'(60쪽) 이야기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오이디푸스는 사악한 신탁이 이뤄지지 않도록 집을 떠납니다.
   테바이를 지나던 중, 사악한 문제를 내 그곳 사람들을 괴롭혔던 스핑크스의 문제를 맞춰 그곳의 왕이 됩니다. 마침 그곳의 왕도 살해되어 자리가 빈 상태였고, 혼자 남은 왕비 이오카스테까지 취해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그런데 사악한 역병이 온 나라에 퍼져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왕비의 오라비 크레온은 라이오스 왕이 살해되었는데, 살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오이디푸스는 살해자들을 찾아내 처벌하라고 명하는데, 이때 테바이의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나타납니다.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를 향해 '그대가 찾고 있는 범인이 바로 그대'(43쪽)라고 말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고, 눈먼 것까지 조롱하자 테이레시아스는 들려주기를 주저했던 말들까지 쏟아 냅니다.

   "눈먼 것까지 그대가 조롱하니 하는 말이지만, 그대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오. 그대가 어떤 불행에 빠졌는지, 어디서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말이오. 그대가 누구 자손인지 알고나 있소? 그대는 모르겠지만, 그대는 지하와 지상에 있는 그대의 혈족에게는 원수외다. 그러니 언젠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저주라는 이중의 채찍이 무서운 발걸음으로 그대를 뒤쫓아 이 나라 밖으로 몰아낼것이오." 45쪽

   "단언하건대, 그대가 아까부터 위협적인 말로 라이오스의 피살 사건을 규명하겠다고 공언하며 찾던 그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소이다. 그는 이곳으로 이주해온 외지인으로 여겨지지만 머지않아 테바이 토박이임이 밝혀질 것이오. 하지만 그는 그런 행운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오. 앞 못 보는 장님이 되고 부자에서 거지가 되어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이국땅으로 길을 떠날 운명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함께 살고 있는 그의 자식들의 형이자 아버지이며, 자신을 낳아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며, 아버지의 침대를 이어받은 자이자 자기 아버지의 살해자임이 밝혀질 것이오. 안으로 들어 그 일을 곰곰히 생각해보시오. 그러고도 내 말이 틀렸거든 그때부터는 예언에 관해 내가 무식하다고 말하시오." 47쪽

   눈먼 예언자의 예언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오이디푸스에게 왕비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그를 위로해 줍니다.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미래사를 예언할 수 없어요. 이에 대해 내가 간단한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전에 라이오스에게 신탁이 내린 적이 있었어요. 아폰론 자신이 아니라 그분의 사제로부터 말예요. 그 신탁이란 운명이 그를 따라잡아 그이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손에 그이가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소문대로라면, 라이오스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어느 날 다른 나라 도적들 손에 살해당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들은 태어난 지 사흘도 안 돼 라이오스가 두 발을 함께 묶은 뒤 하인을 시켜 인적 없는 산에다 내다 버렸어요. 그리하여 아폴론께서는 아이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라이오스는 아들의 손에 죽는다는, 그이가 두려워한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셨답니다." 57쪽

   이 이야기를 들은 오이디푸스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을 지나던 중 다른 무리와 부딪혔고, 그 중 한 노인이 나뭇가지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쳐 그를 죽였던 것입니다.
   이때 오이디푸스의 고향에서 사자가 찾아옵니다. 그의 부친 폴뤼보스가 죽었으니, 고향으로 돌아와서 코린토스의 왕이 되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친부살해'라는 신탁은 벗어났지만 아직 어머니가 살아있으니 돌아갈 수 없다고 하자 사자는 오이디푸스가 코린토스 왕과 왕비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연하게도 사자가 버려진 오이디푸스를 주워 왕에게 선물로 전했다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신탁이 적중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오이디푸스는 좌절하고 그의 왕비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자살을 합니다. 이것을 본 오이디푸스 또한 왕비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자신의 두 눈앞을 여러 번 찔러 스스로 눈을 멀게 만듭니다.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가련한 내 신세.
불쌍한 나는 대지 위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목소리는 어디로 흩날려 가는가?
내 운명이여, 너는 얼마나 멀리 뛰었는가!" 81쪽

   "모든 재앙을 능가하는 재앙이 있다면,
그것은 오이디푸스의 몫이로구나." 83쪽

   이제 오이디푸스의 억울함을 아시겠죠?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신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모와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최악의 치욕과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런 오이디푸스에게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 콤플렉스를 덮어 씌우다니, 아마도 오이디푸스는 지하에서도 영원히 고통받고 있겠죠. 이것이야 말로 오이디푸스의 진짜 '비극'이 아닐까요?

   소포클레스(BC496~BC406)보다 백 년 정도 늦게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는 『시학』에서 "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가장 짜임새 있는 드라마"라고  「오이디푸스 왕」을 극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건과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목적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수사학/시학』 363쪽)하며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급반전과 발견'(『수사학/시학』 364쪽)인데 「오이디푸스 왕」은 이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뻔하디 뻔한 출생의 비밀과 반전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막장'이라 부르며, 이 '막장 드라마'들의 인기비결이 궁금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제야 그 대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비극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혹은 가장 완벽하다는 「오이디푸스 왕」을 닮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항상 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기를 지켜보며 기다리되,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마시오. 그가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되어 삶의 종말에 이르기 전에는.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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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08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서 읽은 오이디푸스 비극과 나이 들어 읽게
된 오이디푸스 비극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는 참 별 일도 다 있구나 싶었는데 말이죠.

고전이 그냥 허명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뒷북소녀 2018-11-09 13:05   좋아요 0 | URL
저두요. 고전은 읽을 때마다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탈로 칼비노는 정말... 관찰력이 대단한듯 합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