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 - 어떻게 위대한 정복자가 우리에게 종교적 자유를 주었는가
잭 웨더포드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칭기스 칸의 사상은 그가 살았던 13세기에도, 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그를 재발견한 18세기에도 여전히 혁명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저자 잭 웨더포드는 미국 매칼래스터 대학교의 인류학과 교수다. 그는 20년 전 칭기스 칸과 몽골 제국의 동서 문명 교류에 끼친 영향에 주목했다. 서구 학자로는 최초로 칭기스 칸의 고향 부르칸 칼둔 산을 방문했다. 이어 몽골 제국 연구에 전념했고, 매해 몽골에서 몽골 학자들과 칭기스칸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그 성과물로 2004년에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2010년에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를 펴냈다. 이번 책은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칭기스 칸의 사상과 몽골 제국의 똘레랑스를 다룬다. 이런 접근은 기존 칭기스 칸과 몽골 제국에 대한 연구서와는 차별적인 것이다.

 

저자는 연구 초기에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책에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칭기스 칸에 영향을 받아 미국 헌법과 여러 주의 법률에 그 정신을 반영했다는 구절을 발견했다. 과연 몽골 제국과 600년 뒤에 건국되는 미국 사이에 무슨 연관이 깃들어 있을까? 이 책은 저자가 지닌 이런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탐구한 지적 결과물이다.

 

저자에 따르면 칭기스 칸은 다양한 언어와 종교로 구성된 광대하고 복잡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종교적 관용이 급선무라고 보았다. 이는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주제, 어떻게 10만 여 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수천만 명에 이르는 지역을 정복하고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변 중 하나기도 하다.

 

칭기스 칸은 종교적 관용을 법률로 명시했다. 각 종교의 성직자들이 저마다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각 개인에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이러한 종교적 자유는 17세기에 이르러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중요한 철학적·정치적 함의를 갖게 됐다.

 

서양에서 칭기스 칸에 대한 관심은 17세기 프랑스 학자들이 주도했다. 이어 18세기 북아메리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영국 왕의 압제와 종교적 박해에 환멸을 느낀 미국 식민지 지도자들은 칭기스 칸의 법률에서 종교적 자유에 관한 구체적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의 페티 드라크루아가 쓴 칭기즈칸 전기(1710)가 몽골제국과 미국 사이의 연결고리를 제공했다. 이 책은 18세기 영국 식민지 시대 미국에 칭기즈칸 열풍을 몰고 온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애독자였다.

 

종교적 자유라는 개념은 칭기스 칸에서 주바이니, 라시드 알딘, 바르 헤브라이우스, 초서, 라 로슈-길렘, 페티스 드 라 크루아, 제퍼슨을 거쳐 세계 전역에 퍼질 때까지 국가의 기본 원칙으로서 계속 살아남았다. 종교의 자유가 포함된 미국 수정 헌법 제1조의 뿌리가 몽골제국이었다.

 

이렇듯 저자는 서양에서 발달한 종교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적 원조가 칭기스 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곧 칭기스 칸이 보여준 담대한 리더십을 뜻한다. 오늘날 종교적 갈등과 문명의 충돌을 해소하는 길도 칭기스 칸과 몽골제국이 추구했던 종교적 관용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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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7-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하네요.

몽골의 징기스칸의 종교적 관용에서 미국 수정헌법
1조에까지 도달하는 관점이 말이죠.

세계적 제국 건설을 위해서 무엇보다 종교적 관용
이 필요하구나 싶네요.

사랑지기 2017-07-25 07:38   좋아요 0 | URL
네 참 신선한 관점이었어요~ 저자의 내공이 만만치 않아서 많은 혜안을 얻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