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7
오카 마리 지음, 이재봉.사이키 가쓰히로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저자 오카 마리는 1986년 홀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당시 그녀는 작은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안내받은 방에는 팔레스타인 여성이 혼자 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여성은 오카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피곤했던 오카는 그녀의 호위를 거절했다.

십 수 년이 지나 오카는 그녀의 호위를 거절한 것을 후회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미쳤고, 만나지 못해 자신이 놓쳐 버린 것이 무엇인지 반추한다.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경험이라고 고백한다.

이후 저자는 제3세계 페미니즘의 문제를 탐색하면서 아랍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들이나 한국의 위안부 여성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그녀가 다루는 '제3세계'의 범주는 백인이 아닌 유색인, 피식민자, 소수자, 프롤레타리아 등을 가리키는 말이며 따라서 '제3세계'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수 있다.

저자는 '페미니즘 대 이슬람', '보편적 인권주의 대 문화상대주의'라는 이분법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중립성, 객관성을 가장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물음에 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문제는 이항대립적인 논의를 생겨나게 하는 담론의 토포스(타자를 표상함으로써 그것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는 토포스)야말로 우리가 문제 삼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3세계'를 희생자로 간주하는 시선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 '제3세계'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3세계 여성들의 말과 온갖 표상을 알아듣는 진정한 귀다. 그녀들의 진정한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그녀들의 말을 알아듣고 그녀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는(분유) 것이고, 그녀들의 요청이나 부름에 언제나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대리 표상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그녀들의 상황과 표상을 수동적인 주체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목격-증인) 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그녀들과 진정으로 함께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것(공진)이 우리게 부여된 의무이다." - 옮긴이 후기 중에서 (331쪽)

 

오랜 기간 이 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의 세련된 서술은 중립적인 시각에서 '그녀의 진정한 이름'을 알아야겠다는 자각을 일깨운다. 이 책은 서양의 시각에서 강요된 제3세계의 페미니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 책을 읽는 것은 기존의 사고를 되집어 보고 새로이 다듬는 성찰의 길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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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16-08-3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셔츠에서 촉발된 메갈리아 논쟁 한 가운데서 계속 하고 싶을 말들을 정리하지 못해서 어지러운 중이었어요. 아무도 내게 묻지 않으니,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게 있거든요. 그게 뭔지 알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마!!!질문이 잘못된 거야,였나봐요.

사랑지기 2016-09-01 08:38   좋아요 0 | URL
네 님의 답변도 좋은 착상이에요~ 잘못된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가 없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