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인포그래픽
Dominic Roskrow 지음, 한혜연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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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과 위스키다. 특히 위스키 애호가인 그는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위스키를 소개한다. MBC 보도국 조승원 팀장이 쓴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에 의하면 하루키 소설에는 특정 위스키 브랜드가 18종 나온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보면 스카치 위스키 ‘주라(Jura)’가 등장한다. ‘주라’는 스코틀랜드의 서해에 위치한 아일레이 섬과 마주보고 있는 주라 섬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다. 조지 오웰이 주라에서 『1984』를 썼다고 하니, 술을 좋아하는 그가 응당 주라를 즐기지 않았을까 싶다.

“아일레이 섬 근처에 주라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아십니까?” 멘시키가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인구도 적고, 거의 아무것도 없는 섬입니다. 사람보다 사슴이 훨씬 많은 곳이지요. 토끼나 꿩, 바다표범도 많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증류소가 하나 있습니다. 근처에 아주 맑은 샘이 있는데 그 물이 위스키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더군요. 주라의 싱글 몰트를 그 샘에서 막 길어온 차가운 물에 섞어 마시면 매우 훌륭한 맛이 납니다. 그야말로 그 섬에서밖에 맛볼 수 없는 맛이죠.”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기타무라 가오루 역시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에서 아일레이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몰트 위스키의 원료는 보리다. 죽탄을 피워 보리 싹을 건조시킨다. 이 죽탄 때문에 독특한 냄새가 스민다. 아이라 섬의 죽탄에는 해초가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위스키에서 요오드 향까지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죽탄’은 피트(peat), 즉 이탄을 말하고, ‘아이라’는 아일레이의 영국식 발음이다. 아일레이의 증류소는 거의 대부분 바다에 면해 있다. 아일레이는 독특한 피트 층 덕분에 피트 향이 강렬한 몰트 위스키로 유명하다.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로우랜드 경계
(지도에서 아일레이ISALY 옆에 빨간 원으로 표시된 곳이 주라 섬) 

 

위스키 증류소는 전 세계에 1천여 개소, 스코틀랜드에 100여 개소가 있다. 스코틀랜드는 서쪽 던눈(Dunoon)에서 동쪽 던디(Dundee)까지 선을 그어 하이랜드와 로우랜드로 나눈다. 증류소의 대부분은 하이랜드(특히 스페이사이드에 반 정도)에 있으며 로우랜드에는 5개 남짓 있다. (스코틀랜드 증류소와 위스키에 관한 정보는 몰트 매드니스를 참조할 것)

위스키는 처음에 아일랜드에서 발달했다. 5세기 경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아라비아로부터 전해져 온 증류기술을 보급했던 덕분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문헌상 15세기말 공식적으로 처음 위스키가 언급됐다.

스카치 위스키의 철자는 Scotch Whisky, 아일랜드 위스키의 경우 Irish Whiskey다. 여기서 위스키의 철자에 e가 있고 없는 것에 주목하자. 영국에서 아일랜드 위스키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 e를 뺐다. 그만큼 스카치 위스키는 후발 주자였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해서 역전되었을까?

1820년대까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증류업자들은 단식 증류기를 주로 사용했다. 1826년 로버트 스테인이 최초로 연속식 증류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제어가 어렵고 불안정해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1828년 그레인 위스키 제조법이 처음 개발됐다. 1846년 위스키를 만들 때 옥수수만 사용해야 한다는 법령이 철회되면서 몰트, 그레인 위스키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위스키 제조 과정

 

한편 1830년 아일랜드 아네스 코피가 훨씬 다루기 쉬운 연속식 증류기를 내놓았다. 당시 아일랜드 증류업자들은 전통을 중시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적극 수용했다. 연속식 증류기, 아일랜드의 기근과 미국의 금주법으로 두 나라의 위스키 산업은 역전되고 만다.

1875년까지만 해도 아이리시 위스키가 3병 중 2병을 차지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서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하고, 피트를 사용해 풍미를 다양하게 하는 한편, 블렌디드 위스키를 개발하는 등 일련의 혁신 속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때 존 워커, 시바스 형제, 아서 벨, 토미 듀어, 조지 발렌타인 등 개척자들이 뛰어난 위스키를 개발, 세계 시장을 널리 석권해 나갔다. 한편 아이리시 위스키는 큰 타격을 받아 한때 수백 개에 달했던 증류소가 오늘날 단 몇 곳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피트는 위스키에 빼놓을 수 없는 풍미를 더해준다.

 

스카치 위스키에 빼놓을 수 없는 풍미를 더해주는 것은 피트(peat)다. 18세기 중반 잉글랜드 왕은 스코틀랜드를 정복한 뒤 왕은 귀족들에게 하일랜드의 영지를 나눠주었다. 이때 위스키를 만들던 증류업자들이 쫓겨나 깊은 계곡이나 산골짜기로 숨어들어 밀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스카치 위스키에 널리 사용되는 ‘글렌(Glen)’은 ‘계곡, 골짜기’를 뜻한다.

한편 산골짜기에 숨어든 증류업자들은 뜻하지 않게 위스키의 색과 풍미를 개선하는 노하우를 얻었다. 당시 위스키는 '밀주'였던 탓에 판로가 여의치 않아 몇 년 동안 와인을 담는 오크통에 재워놓기도 했다. 이때 위스키는 황금빛으로 변하는가 하면 거친 맛이 부드러워지면서 과일 향과 절묘하게 조화돼 그 맛이 더욱 풍부해졌다.

다른 하나는 맥아를 건조시킬 때 땔감으로 석탄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피트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피트는 물이끼, 히스, 사초 같은 습지식물들이 퇴비화된 것이다. 즉 습지식물들이 침적되면서 차곡차곡 쌓여 퇴적층을 이루고 이 과정에서 피트가 만들어진다. 피트는 각 지역마다 독특한 특성을 갖는데 이러한 특징을 잘 파악한 증류업자들이 자신만의 풍미를 지닌 위스키를 생산할 수 있었다. 맥아에 피트를 태우면서 나오는 연기를 쐬는 방식으로 농도를 맞추는데, 위스키의 가벼운 스타일부터 묵직한 스타일까지 피트 함유량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저자 도미닉 로스크로(Dominica Roskrow)

 

도미닉 로스크로는 영국의 위스키 전문가다. 그는 『위스키 인포그래픽(원제 Whisky: How to Drink Next)』을 비롯해서 『월드 베스트 럼주 100+』, 『월드베스트 생맥주 100+』,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위스키 1001』 등 여러 편의 주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기존 위스키에 관한 책과 다른 체계를 보여준다. 가령 데이비드 위셔트가 쓴 『위스키 대백과』는 증류소 중심으로 기술한 데 비해, 저자는 위스키의 생산 방식과 풍미를 중심으로 다양한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제목 ‘인포그래픽’ 그대로다.

 

 

① 왼쪽 페이지 상단에서는 각 위스키 스타일의 생산국과 미니멈부터 맥시멈까지 알콜 함량의 정도(ABV, Alcohol By Volume), 생산과정에서 사용된 곡물의 종류를 알려주는 가이드가 있다.
② 서로 다르게 사용된 색상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원자 구조 도표를 통해 어렵지 않게 위스키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③ 가운데 원: 이 원은 각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증류소와 위스키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④ 해당 위스키 카테고리의 배경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되어 있는 본문 부분이다. 그 위스키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위스키의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일화를 통해 설명한다.
⑤ 특정 장르의 위스키 중 우리가 시음해 보기를 추천하는 위스키가 있는 곳. 대부분의 경우 다양한 가격대와 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⑥ 안쪽 원: 여기에는 보통 그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위스키의 특이하거나 놀랄만한 사실들이 적혀 있다.
⑦ 바깥쪽 원: 각 위스키에서 맛볼 수 있는 풍미들이 이 원에 설명되어 있다.

 

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하나는 위스키의 본 고향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북구 등 유럽 대륙, 호주·뉴질랜드 등 신세계, 캐나다·미국 등 북미 그리고 일본·인도·대만 등 아시아 위스키 등 다양한 지역에 걸쳐 위스키를 소개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위스키 테이스팅 노트처럼 다양한 풍미를 소개하고 그에 따른 대표적인 위스키를 3종씩 추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 모두 155종의 위스키가 나오는데, 색인으로 정리돼 있어 찾아보기 편리하다.

한편 지역별로 다른 위스키 제조법이 눈에 띈다. 가령 스코틀랜드에서는 3년 이상 숙성해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단기간 숙성시킨 뒤 출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의 경우 대부분 곡물 대신 사탕수수 당즙을 첨가해서 만든다. 버번의 경우 켄터키 주와 테네시 주의 자존심 대결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전문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다.

옮긴이 한혜연 씨는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아티스트다. 그녀는 뉴욕 첼시의 바에서 수년간 바텐더로 일하면서 한 잔의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고 깨달은 바가 컸다. 한국에 돌아온 뒤 심리학을 다시 공부, 현재 심리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 스카치 위스키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싱글 몰트 위스키 : 하나의 증류소에서 물과 맥아로만 만든다. 증류기는 반드시 단식 증류기를 사용해야 한다. 증류기는 대부분 구리제이고, 맥아는 싹을 틔운 보리를 건조한 것으로 영어로 '몰트(malt)'라고 한다. 맥아를 사용하는 이유는 보리의 당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싱글 그레인 위스키 : 하나의 증류소에서 물과 맥아 또는 보리가 아닌 다른 곡류와 혼합하여 만든다. 이때 호밀, 밀, 귀리, 옥수수 등이 사용된다. 옥수수가 51퍼센트 이상이면 버번, 호밀(Rye) 위주면 라이 위스키가 된다. 증류기는 보통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한다. 참고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원제는 『The Catcher in the Rye』 .

3. 블렌디드 위스키 :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싱글 몰트 위스키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그레인 위스키를 블렌딩해서 제조한다.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가장 인기가 높다.

4.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 : 최소 2개 이상의 싱글 몰트 위스키를 블렌딩해야 한다. 3번과 다른 점은 싱글 몰트 위스키만을 가지고 블렌딩해야 한다는 것이다.

5. 블렌디드 그레인 위스키 : 최소 2개 이상의 싱글 그레인 위스키를 블렌딩해야 한다. 대부분의 싱글 그레인 위스키는 단독 판매되는 것 보다 블렌디드 위스키(3번과 5번)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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