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틔우는 꽃빛과 꽃내음

 


  꽃빛이 가장 고울 때는 언제인가? 아침일까, 낮일까, 저녁일까. 우리 시골집에서는 날마다 하루 내내 꽃구경을 할 수 있으니, 아침과 낮과 저녁에 따라 꽃구경을 하기로 한다. 밤에도 뒤꼍 매화나무 곁에 서기로 한다. 새벽에도 만난다. 하루 내내 매화꽃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가장 고울 때는 따로 없다. 내가 매화나무 앞에 서서 매화꽃을 그윽하게 바라보면, 이렇게 바라볼 적마다 꽃빛이 곱다.


  꽃망울이 터질랑 말랑 할 적에도 곱다. 꽃망울이 처음 터질 적에도 곱다. 꽃망울이 흐드러지는 잔치날이 되어도 곱다. 꽃잎이 지면서 하나둘 시들 적에도 곱다. 꽃이 모두 지고 천천히 열매가 익으면서 푸른 잎사귀 돋을 적에도 곱다. 언제나 곱다. 언제나 고운 빛이 흐르니, 꽃을 바라보고 잎을 바라보며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고운 꽃내음을 먹는다. 4347.3.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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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33. 2014.3.22. 매화꽃순이

 


  뒤꼍 매화나무에 꽃잔치 벌어진다. 꽃내음이 물씬 퍼진다. 큰아이를 부른다. 작은아이는 낮잠을 잔다. 큰아이와 함께 매화나무 곁에 서서 큼큼 매화꽃내음을 맡는다. 벼리야 더 가까이 가서 꽃송이에 코를 대렴. 멀리에서도 꽃내음이 나지만, 우리 집 매화꽃이 더 가까이 코를 대고 꽃내음 맡으면 훨씬 좋아한단다. 손을 뻗어 가지를 쓰다듬고 손가락으로 살살 꽃잎을 어루만져 주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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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적지근한 다리

 


  닷새에 걸쳐 바깥마실을 하고 돌아온 첫날, 몸이 이럭저럭 괜찮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다리에 힘이 붙지 않는다. 무거운 책짐을 짊어지면서 꽤 오래 돌아다니거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깥마실을 할 적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시골집으로 돌아와서 모든 고단함이 확 밀려든 듯하다. 아침에 우리 집 풀을 뜯어서 아이들한테 차리기는 했지만, 저녁은 밥을 따로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하면서 씩씩하게 놀고 잘 지낸다. 작은아이는 낮잠 한 숨 잤으며, 큰아이는 저녁에 잠자리에 눕혀 자장노래를 부르니 이내 곯아떨어졌다. 오늘 하루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면 이튿날 아침부터 다리에 새롭게 힘이 붙을까.


  아이들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내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자란다. 나는 아이들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란다. 잠자리에서 큰아이가 “아버지 좋아요.” 하고 말한다. 작은아이는 누나 말을 받아서 “아버지 좋아요.” 하고 나란히 말한다. 나도 “사름벼리 좋아요. 산들보라 좋아요.” 하고 말한다. 꿈나라에서도 다 같이 신나게 놀자. 4347.3.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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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 - 시각 장애아 미유키의 자전 동화 삶과 사람이 아름다운 이야기 1
카리노 후키코 그림, 이노우에 미유키 글, 이정선 옮김 / 베틀북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3

 


아름답게 일어서요
― 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
 이노우에 미유키 글
 카리노 후키코 그림
 베틀북 펴냄, 2002.4.10.

 


  글을 찬찬히 익히면서 새롭게 눈을 뜨는 아이는 스스로 책을 읽고 싶습니다. 스스로 그림책 한 권 다 읽어내고서 아주 뿌듯해 합니다. 다만, 글을 좇아 하나하나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에 빠져, 이야기에는 깊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그래도, 아이는 한 번 읽은 책을 덮고 다시 안 읽지 않아요. 한 번 읽은 책을 꾸준하게 다시 읽습니다. 나중에는 외우다시피 책을 읽을 뿐 아니라, 책을 들추지 않고도 이야기를 줄줄 뀁니다.


  스스로 즐기고 누리면서 자랍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즐기고 누리는 동안 자랍니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차츰 익숙합니다. 처음에는 아이도 어른도 낯설고 어렵지만, 차츰 익숙하면서 잘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밥을 잘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옷을 잘 깁거나 집을 잘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차근차근 하면서 몸에 익힙니다. 찬찬히 즐기면서 삶으로 녹아듭니다.


..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살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아기의 아버지는 초여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  (2쪽)

 

 

 

 

 

 


  학교에서 시험을 치러 점수를 따야 공부를 잘하지 않습니다. 시험은 시험일 뿐이요, 공부는 공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삶은 삶이며 사랑은 사랑이에요. 꿈은 꿈이고 놀이는 놀이이며 일은 일이에요.


  학교에 보내는 일은 학교에 보내는 일입니다. 시험공부는 시험공부입니다. 영어를 일찍부터 가르치니 영어를 일찍부터 잘합니다. 아주 마땅해요. 한국말을 일찍부터 슬기롭게 가르치면 한국말을 일찍부터 슬기롭게 잘하기 마련입니다. 어버이가 아이 앞에서도 늘 거친 말을 일삼으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으레 거친 말을 쓰지요. 어버이가 언제나 웃고 노래하는 삶이라면 아이들은 언제나 웃고 노래하는 넋입니다.


  사회나 학교에서 흔히 ‘조기교육’을 말하지만, 무엇이든 일찍 가르치면 잘합니다. 일본문학 《오싱》이나 한국문학 《몽실 언니》에 잘 나옵니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일곱 살 어린이가 동생 기저귀를 빨래해요. 한겨울에도 냇물 얼음을 깨고 동생 오줌기저귀와 똥기저귀를 빨래합니다. 그런데, 기저귀 빨래를 해 본 적 없으면, 스무 살이건 서른 살이건 마흔 살이건 처음에는 서툴고 어설픕니다. 일곱 살 어린이라 하더라도 날마다 이 일을 해야 하면 아주 익숙하면서 솜씨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잘 알아두어야 해요. 한 손에는 하나씩 쥘 수 있습니다. 한 손에 우산을 쥐었으면 책을 쥘 수 없습니다. 한 손에 책을 쥐었으면 호미를 쥘 수 없습니다. 한 손에 호미를 쥐었으면 자동차 운전대를 쥘 수 없습니다. 한 손에 자동차 운전대를 쥐었으면 수세미를 쥘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아이들이 일찍부터 영어나 한자를 지식으로 외우듯이 익혀야 하면, 이 아이들은 일찍부터 ‘잃거나 잊어야’ 하는 대목이 있어요. 일찍부터 영어나 한자를 익혀야 하는 아이들은 일찍부터 한국말을 제대로 못 듣고 제대로 못 배웁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푸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면, 겉으로는 한국사람 얼굴로 한국말을 읊지만,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즐거운 한국말하고는 동떨어진 모습이 되고 말아요.


.. 엄마는 나를 공원에 데려가면 “여기는 모래밭.” 하며 손으로 만지게 해 놓고는 어딘가로 가 버립니다. 내가 넘어져서 울어도 오지 않아요 ..  (8쪽)

 

 

 

 

 

 


  내 어릴 적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국민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인지 3학년인지 어렴풋합니다. 아무튼, 학교에서 담임 교사가 받아쓰기를 시킵니다. 받아쓰기는 날마다 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두 차례를 했다고 떠오릅니다. 받아쓰기를 시키면 교실은 쥐죽은듯이 조용합니다. 받아쓰기를 해서 하나라도 틀리면 한 대씩 얻어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받침 하나라도 틀리면 그야말로 큰일이 터집니다. 다섯 문제를 내어 다섯 문제를 모두 맞혀야 하거나 열 문제를 내어 열 문제를 모두 맞혀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얻어터지지 않으’려고 용을 씁니다.


  그런데, 교사 가운데에는 시골에서 자란 분들이 있어 곧잘 사투리를 섞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분들 가운데에도 혀짤배기 소리라든지 새는 소리를 내는 분이 있습니다. 받아쓰기는 늘 표준말로 하는데, 동무들 가운데에는 담임 교사가 읊는 ‘표준 소리가 아닌 소리’를 그대로 받아서 적는 아이가 있어요. 참 안쓰럽지요. 동무는 담임 교사가 읊은 대로 제대로 받아서 적었으나 담임 교사한테 얻어터져야 해요. 담임 교사는 한 반 예순 아이를 신나게 두들겨팹니다. 지치지도 않고 몽둥이질을 아침저녁으로 합니다. 열 문제 가운데 하나만 틀린 아이는 살살 때리고, 둘을 틀린 아이는 조금 세게 때리며, 셋을 틀린 아이부터 무척 셉니다. 다섯을 틀린 아이는 머리통이 깨질듯이 맞거나 엉덩이가 터질듯이 맞습니다. 몽땅 틀린 아이는 밀걸레자루로 피멍이 들도록 맞아요.


  요즈음에는 초등학교(학교이름도 바뀌었으니)에서 받아쓰기 틀렸대서 두들겨팰 교사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받아쓰기를 시켰을까요. 왜 아이들은 받아쓰기를 해야 했고, 왜 교사는 받아쓰기 숙제를 내야 했을까요.


  한국하고는 좀 멀리 떨어졌다지만, 프랑스라는 나라는 프랑스사람이 프랑스말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제 나라 아름다운 시를 아이들 스스로 읽고 읊도록 이끈다고 해요. 받아쓰기나 외워읽기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이 피어날 만한 아름다운 시를 아이들이 스스로 골라서 즐겁게 머릿속에 담아 학예회 같은 자리에서 시를 노래한다고 해요. 나중에 더 살펴보니, 한국을 뺀 웬만한 나라에서는 아이들한테 ‘제 나라 아름다운 시’를 읽히고 손수 종이에 옮겨쓰며 언제나 되읽도록 북돋으면서 마음속에 담도록 가르칩니다.


.. 어느 날 라디오에서 멋진 시를 들었습니다. 자전거에 관한 시였어요.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 보고 싶다.” “그럼 운동장에 가자.” 엄마와 나는 보조 바퀴를 떼낸 자전거를 끌고 운동장으로 갔지요 ..  (18쪽)

 

 

 


  이노우에 미유키 님이 쓴 글에 카리노 후키코 님이 그림을 붙인 《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베틀북,2002)를 읽습니다. 아이한테 이 그림책을 내밀기 앞서 내가 먼저 즐겁게 읽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이 그림책을 받더니 스스로 읽습니다. 이제 일곱 살 아이는 읽어 달라는 말을 안 합니다. 가끔 말하기는 하되, 모든 글을 혼자서 먼저 읽고 싶습니다. 누가 알려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들여다보면서 묻습니다. “얘는 이렇게 작게 태어났어?” “얘는 커서 아이가 됐어?” “얘는 엄마하고 뭐 해?” “얘가 넘어져서 아야 해?” “얘는 왜 자전거를 못 타?” “얘는 이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나도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얘는 엄마하고 서로 안았어?” 그림에 뻔히 나오는 모습이지만, 하나하나 낱낱이 들여다보면서 묻습니다.


  책을 여러 차례 스스로 읽은 아이가 그림책을 들어 내 눈앞에 대더니 “여기 ‘미유키’라고 적혔어. 왜 미유키라고 해?” 하고 말합니다. “이 아이 이름이 미유키야. 미유키네 어머니는 미유키라는 이름이 예뻐서 이 아이한테 붙여 주었어.”


.. “미유키! 탔구나, 탔어!” 엄마 목소리가 가까이 들려 옵니다. “엄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자전거가 앞으로 쑥쑥 나갔어요.” “잘 했어.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거야.” “맞아요. 난 해냈어요!” “그래, 해냈구나, 미유키.” 엄마와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엄마의 볼이 젖어 있었어요 ..  (30쪽)

 

 

 

 

 

 


  그림책에 나오는 미유키는 고작 500그램 무게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모두 이 가녀린 아기가 죽는다고 말했지만, 미유키네 어머니만큼은 이 아기를 믿었고, 이 아기를 살아났으며, 씩씩하게 자랍니다. 미유키네 어머니는 여리고 작은 아이가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애씁니다. 일부러 안 도와주고 일부러 옆에서 조용히 지켜봅니다. 앞을 못 보는 몸으로 태어난 미유키는 늘 넘어지고 부딪힙니다. 그렇지만 미유키네 어머니는 언제나 안 도와줍니다. 넘어지고 부딪히더라도 스스로 일어나라고 말할 뿐입니다. 스스로 다시 일어서고 힘을 내라고 말할 뿐입니다. 앞을 못 보는 몸으로 자전거를 타려 할 적에도 그저 지켜보기만 합니다. 정 못 타겠으면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어린 미유키는 달래지도 도와주지도 않는 어머니 곁에서 씩씩거리며 다시 기운을 내어 보란듯이 자전거를 타겠다고 다짐합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자빠지고 다친 끝에 드디어 반듯하게 자전거를 가누어 운동장을 가릅니다. 혼자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달리면서, 바람을 가르는 맛이 얼마나 즐겁고 시원한가를 깨닫습니다. 이 아이 미유키는 앞으로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스스로 아름답게 일어섰으니까요. 미유키네 어머니도 미유키도 모두 아름답게 일어서는 삶과 사랑을 나누면서 웃겠지요.


  늘 마음속으로 시를 읽고 들으면서 자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나무가 속삭이는 꿈을 들으면서 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시험공부나 받아쓰기 아닌 삶노래를 즐길 적에 비로소 삶이 노래가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4347.3.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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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4-03-23 09:19   좋아요 0 | URL
받아쓰기가 아닌 시를 읽으면서 익히는 글! 참 아름다운 생각이에요.

숲노래 2014-03-23 10:33   좋아요 0 | URL
어릴 적에 이렇게 '받아쓰기' 아닌 '시읽기'를 배웠으면 참 많이 달라졌겠다 싶은데, 높은학년일 적에는 '시읽기'를 하기도 했지만, 한 마디라도 틀리면, 그때에도 담임 교사는 무시무시하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때렸답니다 ^^;;;

희망찬샘 님은 학교에서 아름답게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책으로 노래를 부르시겠지요? ^^

희망찬샘 2014-03-30 07:47   좋아요 0 | URL
아이들의 모습에 요즘 기운을 많이 잃고 지내고 있답니다. 능력 밖의 문제? 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느끼면서 저의 무기력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많이 들어서 있는데, 그들을 감동교화 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우울하네요.

숲노래 2014-03-30 09:27   좋아요 0 | URL
저런...
그렇지만 '잘못된 길'이라고는 섣불리 여기지 마시고요,
그 아이들이 '왜 그런 길을 걸어가면서 그런 길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우는가'를
차분하게 살펴보아 주셔요.

좋은 쪽으로든 궂은 쪽으로든
아이들은 어른이 힘으로 잡아당기면 안 좋아해요.
우리는 아이들을 '힘으로 잡아당기지' 않는다고 여겨도
아이들은 달리 여기기도 해요.

늘 부대끼시겠지만,
늘 즐겁게 바라보고 지켜보면서
희망찬샘 님 스스로 고운 넋으로 지내는 빛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찬찬히 따라오리라 믿어요.

오늘 따라오지 않는 아이들도 마음속에는 그 고운 빛을 담아서
나중에 그 빛으로 나아갈 테고요.

감동과 교화는 천천히 이루어지는 만큼
느긋하게 한 해 걸어가시기를 빕니다. ^^
디 잘 되리라 믿어요.
 

자전거순이 15. 사탕 먹는 자전거 (2014.3.11.)

 


  일곱 살 아이는 일곱 살답게 노는 자전거순이. 네 살 아이는 네 살답게 노는 자전거돌이.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고 노래하며 웃는다. 우리 어른들은 어떠할까. 우리 어른들도 스스로 자라는가. 우리 어른들도 스스로 일을 찾거나 놀이를 찾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웃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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