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빠지도록 글을 손질한 뒤



  지난 엿새 동안 그야말로 눈이 빠지도록 글을 손질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기’에 맞추어 쓴 1600꼭지쯤 되는 글을 샅샅이 살펴서 301꼭지를 추린다. 스무 해 동안 쓴 글을 엿새 만에 되읽자니 엄청나게 마음을 모아야 했다. 그만큼 집에서는 하루에 두 차례 가까스로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고 모든 하루를 이 일에 바쳤다.

  한국말사전 하나를 새로 빚는 길이다. 새로운 한국말사전에 깃들 올림말을 갈무리하는 일은 아직 아니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말사전이 어떤 모습인가를 곰곰이 돌아본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먼저 한국에서 태어난 온갖 한국말사전을 찬찬히 살핀 뒤, 이 사전마다 알차거나 아름다운 대목은 받아들이거나 받아먹되, 안타깝거나 슬픈 대목은 가다듬거나 손질하거나 북돋아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느낀다.

  개화기 무렵부터 태어난 한국말사전을 돌아보면 한국말사전이 아니라 ‘한자말’사전이라고 할 만하다. 그만큼 아직 학자들 생각이 얕다. 학자들 스스로 생각을 가꾸거나 북돋우지 못했다.

  한국말이 한국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일은 학자가 할 수 있을까? 학자도 해야지. 그러나, 학자에 앞서 여느 사람들, 바로 나와 내 이웃과 수수한 모든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본다. 지난 엿새 동안 눈은 아주 아팠고, 등허리뿐 아니라 팔다리까지 결렸다. 스무 해 남짓 글을 쓰며 사는 동안 이렇게 온몸이 아픈 적이 없다. 그러나 새벽마다 다시 몸을 털고 일어났으며, 오늘 비로소 모든 글을 갈무리해서 책 하나로 태어날 수 있는 꾸러미를 엮는다. 스무 해 앞서 ‘한자말 1000가지를 뽑아서 이 낱말이라도 하루 빨리 털어내자’고 다짐했는데, 1000가지를 못 하고 300꼭지를 하니 살짝 서운하다. 그러나, 300꼭지라도 즐거운 이야기로 내 이웃들이 맞아들여 주기를 꿈꾼다. 나중에, 어느 만큼 지나고 나서,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곱게 선보인 뒤에,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기 사전’을 내놓을 수 있겠지. 다시금 기지개를 켜자.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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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399) 조수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가서 선생님의 조수 역할을 했다

《박정희-나의 수채화 인생》(미다스북스,2005) 43쪽


 선생님의 조수 역할을 했다

→ 선생님 심부름꾼을 했다

→ 선생님 곁꾼 노릇을 했다

→ 선생님 일을 도왔다

→ 선생님을 도와주었다

→ 선생님 일손을 거들었다

 …



  일손을 거들거나 도왔다면 ‘거들다’나 ‘돕다’라는 낱말을 넣으면 됩니다. “일손을 덜어 주다”라 해도 되고 “심부름꾼처럼 일했다”고 해도 됩니다. 보기글에서는 “함께 일했다”나 “함께 가르쳤다”라고 적어도 어울립니다. ‘助手’ 같은 말은 안 써도 됩니다. 그러나 “돕는 사람”을 가리키는 ‘조수’라는 한자말은 어떤 직업을 가리키는 이름처럼 굳어집니다. 일을 도우면서 ‘돕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차츰 줄어듭니다.


  한국말로 ‘곁꾼’과 ‘손도울이’가 있습니다. 곁에서 일을 돕는 사람을 ‘곁꾼’이라 합니다. 공장에서 일을 거들든, 영화감독 곁에서 일을 돕든, 이렇게 일을 거들거나 도우면 ‘곁꾼’입니다.


  낱낱 수를 세면 수를 센다고 하면 됩니다. ‘條數’를 따져야 하지 않습니다. ‘노잡이’는 ‘漕手’가 아닌 ‘노잡이’입니다. 대추와 포는 ‘棗脩’가 아닌 ‘대추 포’입니다. 새와 짐승은 ‘鳥獸’가 아닌 ‘새와 짐승’이에요.


  밀물과 썰물을 아우르는 낱말 ‘미세기’가 있습니다. 한국은 동녘과 서녘과 남녘으로 바다입니다. 동녘에는 밀물썰물을 보기 어렵다지만, 서녘과 남녘에서는 언제나 밀물썰물을 만납니다. 그러니, 한국사람이라면 ‘밀물썰물’도 ‘미세기’도 살뜰히 익힐 노릇입니다. ‘潮水’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낚시질을 하는 늙은이를 따로 한자말을 빌어서 가리켜야 하지 않습니다.


  아홉 가지나 되는 한자말 ‘조수’를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 생각할 수 있는 한국사람이 되기를 빕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살찌우고 넋을 북돋울 이웃과 동무로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1.3.10.달/4347.8.15.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가서 선생님 심부름꾼을 했다


‘역할(役割)’은 ‘노릇’이나 ‘몫’이나 ‘구실’로 고쳐써야 알맞습니다.



 조수(助手) : 어떤 책임자 밑에서 지도를 받으면서 그 일을 도와주는 사람

   - 공장에서 조수로 일하다 / 영화감독 밑에서 조수 노릇을 하다

 조수(條數) : 낱낱의 조목의 수

 조수(釣?) : 낚시질하는 늙은이

 조수(鳥獸) : 새와 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

 조수(棗脩) : 대추와 포를 아울러 이르는 말

 조수(照數) : 수효를 맞추어 봄

 조수(漕手) : 조정 경기에서, 노를 젓는 선수

 조수(潮水)

  (1) = 미세기

   - 조수가 밀려들어오다

  (2) 아침에 밀려들었다가 나가는 바닷물

 조수(操守) : 지조나 정조 따위를 단단히 지킴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17) 국어


성경, 한문, 국어, 역사, 지리 …… 등 근대적 과목들을 가르쳤지요

《김삼웅-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철수와영희,2014) 65쪽


 국어

→ 조선말

→ 한국말

→ 우리말

 …



  보기글을 생각해 봅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이야기를 다루는 글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씩씩하게 ‘겨레학교’를 연 분은 일본 제국주의 군홧발에 억눌리면서도 ‘겨레말(나라말)’을 지키려고 ‘우리말’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이던 지난날 이 나라 이름은 ‘조선’입니다.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있을 적에 ‘조선어학회’가 있었고, 그무렵에는 ‘조선말’이나 ‘조선어’라 말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쓰던 ‘國語’는 ‘일본말’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천황을 섬기는 나라에서 쓰는 말이라는 뜻으로 ‘일본말 = 국어’라 했고, 일본에서도 식민지 나라에서도 ‘일본말(日本語)’라 쓰지 않고 ‘國語’라 썼어요. 중국사람은 ‘중국말(中國語)’라 씁니다. 참말 ‘국어’라는 한자말은 뜬금없는 말입니다.


 이 책은 이십여 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 이 책은 스무 나라 말로 옮겨졌다

→ 이 책은 스무 가지 말로 나왔다

 3개 국어에 능통한 개화 지식인

→ 세 나라 말을 잘하는 개화 지식인

→ 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개화 지식인


  얼마 앞서까지 이 나라에서는 ‘국민(國民)학교’였습니다. 이 이름을 ‘초등’으로 바꾸었습니다. 왜 바꾸었느냐 하면, ‘國民’이라는 한자말은 일본 제국주의가 천황을 섬기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뜻있는 분들이 한국 정부와 교육부하고 오랫동안 싸운 끝에 학교 이름을 겨우 바로잡았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한국 정부는 ‘국립국어원(국립국어연구원)’ 같은 이름을 씁니다. 정부에 있는 기관부터 ‘國語’라는 일본 제국주의 한자말을 그대로 씁니다. 사람들도 으레 ‘국어사전’이라 말할 뿐입니다.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한국(대한민국)’으로 바꾸었으니, 우리는 마땅히 ‘한국말사전(한국어사전)’으로 써야 올바릅니다. 정부 기관도 ‘국어원’이라는 이름을 바로잡아야 할 테지요.


  생각하는 사람일 때에 말을 살립니다. 생각하며 삶을 가꿀 때에 슬기롭습니다. 생각하는 하루를 누릴 때에 이웃을 사랑하고 동무를 아낍니다. 한국사람 누구나 한국말을 옳게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國語’와 같은 일제강점기 찌꺼기를 훌훌 털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8.15.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성경, 한문, 한국말, 역사, 지리 …… 같은 새로운 과목들을 가르쳤지요


‘등(等)’은 ‘들’로 다듬고, ‘근대적(近代的)’은 ‘새로운’으로 다듬습니다.



 국어(國語)

  (1) 한 나라의 국민이 쓰는 말

   - 이 책은 이십여 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 3개 국어에 능통한 개화 지식인

  (2) 우리나라의 언어. ‘한국어’를 우리나라 사람이 이르는 말이다

   - 국어 성적 / 국어를 가르치다

 국어(國語) : 중국 주나라의 좌구명이 지었다고 전하는 역사책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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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3) 요리


마치 아빠가 직접 와서 내게 엄마가 요리하는 데 쓸 물을 더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러드야드 키플링/정회성 옮김-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서강출판사,2008) 80쪽


 엄마가 요리하는

→ 엄마가 밥하는

→ 엄마가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



  다른 사람 집에 가서 밥하는 사람을 ‘밥어미’라고 했습니다. ‘식모(食母)’라고도 했지만. 밥 잘하는 사람을 두고 ‘밥꾼’이라 할 수 있을 터이나, 우리들이 쓰는 말은 오로지 ‘요리사(料理師)’입니다. 밥을 하는 사람이니 ‘밥꾼’이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니 ‘요리사’입니다.


 요리 솜씨 → 밥하는 솜씨

 오늘의 특별한 요리 → 오늘 하루 남다른 먹을거리

 즉석에서 요리한 매운탕 → 바로 끓인 매운찌개


  밥보다 빵을 많이 먹고, 밥도 곡식으로 이룬 먹을거리만을 즐기지 않으니, ‘밥’이라는 말로 가리키기에는 테두리가 좁다고 느낄는지 모릅니다. ‘밥집’이 아닌 ‘식당(食堂)’이고, ‘밥먹기’가 아닌 ‘식사(食事)’일 때에는, 우리 ‘밥삶’은 사라지고 ‘食文化’만 남을는지 모릅니다.


 남자를 제 마음대로 요리하다 → 남자를 제 마음대로 주무르다

 거친 일꾼을 잘 요리했다 → 거친 일꾼을 잘 다루었다


  ‘殖利’도 ‘要利’도 한국사람이 쓸 말이 아닙니다. 도무지 무슨 말일까 알쏭달쏭합니다. 중요한 이치나 교리라면 한국말로 ‘고갱이’이거나 ‘알짜’나 ‘알맹이’나 ‘줄거리’입니다. ‘要理’가 아니지요. “천주교 요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처럼 말하면, 이 ‘요리’를 얼마나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천주교 뜻”이나 “천주교 참뜻”이나 “천주교 깊은 뜻”이나 “천주교 참넋”처럼 적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낱말을 잃으면 열 가지 낱말을 잃습니다. 한 가지 말투를 잃으면 열 가지 말투를 잊습니다. 한 가지 낱말을 살리면 열 가지 낱말을 살립니다. 한 가지 말투를 가꾸면 열 가지 말투가 살아납니다. 4341.4.15.불/4347.8.15.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마치 아빠가 몸소 와서 내게 엄마가 밥하는 데 쓸 물을 더 가져오라고 말하는 듯하잖아


‘직접(直接)’은 털어내도 되고, ‘여기’나 ‘몸소’를 넣어도 됩니다. “말하는 것 같잖아”는 “말하는 듯하잖아”로 손봅니다.



 요리(要利) = 식리(殖利)

 요리(要理)

  (1) 긴요한 이치나 도리

  (2) [종교] 중요한 교리

   - 생계를 돕고 기도문과 천주교 요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요리(料理)

  (1) 음식을 일정한 방법으로 만듦

   - 요리 솜씨 / 오늘의 특별한 요리 / 즉석에서 요리한 매운탕

  (2) 어떤 대상을 능숙하게 처리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 남자를 제 마음대로 요리하다 / 거친 일꾼들을 아이 다루듯 잘 요리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5) 수분


이건 서리라는 거야. 공기 안에 있던 수분이 얼음덩어리가 되어 잎사귀에 붙어 있는 거지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은미경 옮김-숲에서 크는 아이들》(파란자전거,2007) 92쪽


 공기 안에 있던 수분

→ 공기에 있던 물기

→ 바람 사이에 있던 물방울

→ 바람 사이에 있던 물

 …



  한국말사전에는 모두 여섯 가지 ‘수분’이 실립니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어느 만큼 쓰는 ‘수분’은 ‘물기’를 빼고는 없습니다. 물을 담아 꽃을 꽂는 그릇을 ‘水盆’이라 할 일이란 없습니다. ‘앙금’이나 ‘화장품’을 ‘水粉’이라 할 일도 없고, 주제를 지키는 일을 ‘守分’이라 할 일도 없습니다. 꽃가루가 옮겨서 붙는 일은 ‘꽃가루받이’일 뿐, ‘受粉’이 아닙니다. ‘壽分’ 같은 한자말도 쓰임새나 쓸모가 없습니다.


 수분을 섭취하다 → 물을 마시다

 수분이 증발하다 → 물기가 마르다

 수분을 다량 함유하다 → 물기가 많다


  ‘물기’를 가리킨다는 한자말 ‘수분’이 어느 자리에 쓰이느냐를 살펴보면, “수분 섭취”와 “수분 증발”과 “수분 다량 함유”처럼 다른 한자말하고 붙습니다. 그러니까 ‘수분’이라는 한자말이 쓰이면서 ‘섭취(攝取)’며 ‘증발(蒸發)’이며 ‘다량(多量)’이며 ‘함유(含有)’며 쓰이는 셈입니다. 처음부터 한국말을 쓴다면 다른 한국말을 알맞게 쓰도록 길을 트는 셈이요, 처음부터 한자말을 쓴다면 자꾸자꾸 다른 한자말을 불러들여서 말삶을 어지럽히는 셈입니다. 4341.4.17.나무/4347.8.15.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건 서리야. 바람 사이에 있던 물방울이 얼음덩어리가 되어 잎사귀에 붙었지


“서리라는 거야”는 “서리야”나 “서리라고 해”로 손봅니다. “공기 안에 있던”은 “공기에 있던”이나 “바람 사이에 있던”으로 손보고요. “붙어 있는 거지”는 “붙었지”나 “붙었단다”로 손질합니다.



 수분(水分) = 물기(-氣)

   - 수분을 섭취하다 / 수분이 증발하다 / 수분을 다량 함유하다

 수분(水盆) : 물을 담아 꽃을 꽂거나 괴석(怪石) 따위를 넣어 두는 그릇

 수분(水粉) 

  (1) = 무리

  (2) = 물분(-粉)

 수분(守分) : 분수나 본분을 지킴

 수분(受粉) : 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花粉)이 암술머리에 옮겨 붙는 일

 수분(壽分) : 타고난 수명의 분수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0) 차도


구루는 내 방을 찾아와 오랫동안 기도를 해 주었지만, 병은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사티쉬 쿠마르/서계인 옮김-사티쉬 쿠마르》(한민사,1997) 56쪽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 나아지지 않았고

→ 나을 낌새가 없었고

→ 나을 듯하지 않았고

→ 나으려 하지 않았고

 …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면 ‘찻길’입니다. 차를 마시는 법이면 ‘차법’입니다. 그런데 남녘에서는 차 마시는 법을 ‘차 茶’라는 한자를 써서 ‘다도’라고 하는군요. 우리들은 “다를 마신다”고 하지 않고 “차를 마신다”고 하는데, 왜 차 마시는 법은 ‘다도’여야 할까요.


  ‘遮道’나 ‘遮路’나 어디에 쓰는 말인지 알 길이 없는 한편, 쓰일 곳조차 없습니다. 이와 같은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실리니 괜히 한국말사전 부피만 두껍습니다. 쓰이지 않는 낱말이 아니라, 쓰일 까닭이 없는 한편, 지난날 한문 권력자들이 아무렇게나 쓰던 말은 말끔히 털어내야 올바릅니다.


 그의 병세에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 그는 병이 조금씩 나아졌다

→ 그는 병을 차츰 씻어내었다

 차도가 좀 있으신지요?

→ 좀 나아지셨는지요?

→ 좀 괜찮아지셨는지요?

 …


  몸이 아플 때에는 ‘아프다’고 말합니다. 아팠던 곳이 조금씩 아물면 ‘나아진다’고 말합니다. 느끼는 대로 말하면 되고, 바라보는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4341.4.2.물/4347.8.15.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구루는 내 방을 찾아와 오랫동안 빌어 주었지만, 아픈 곳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기도(祈禱)를 해 주었지만”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빌어 주었지만”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병(病)은’도 그대로 둘 만한데, “아픈 곳은”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전(全)혀’는 ‘조금도’로 다듬어 줍니다.



 차도(車道) = 찻길

   - 차도로 뛰어들다 / 시위대는 차도로 나와서 시위를 계속했다

 차도(差度) : 병이 조금씩 나아가는 정도

   - 그의 병세에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 어르신네는 차도가 좀 있으신지요?

 차도(茶道) : ‘다도’의 북한어

 차도(遮道) = 차로(遮路)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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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32) 방치


그동안 내가 읽고 모아 온 책들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한 방에 그냥 마구잡이로 쌓아둔 채 몇 달 간을 방치해 두었었다

《장석주-가을》(백성,1991) 126쪽


 몇 달 간을 방치해 두었었다

→ 몇 달 동안을 내버려 두었다

→ 몇 달 동안을 그대로 두었다

 …



  한국말사전에 실린 한자말 ‘방치’는 두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한 나라 정치”를 가리킨다는 ‘邦治’는 쓰일 일이 없습니다. 쓴다고 한들 알아들을 사람도 없을 테고요.


  두 번째 ‘放置’ 뜻풀이를 보면 ‘내버려 둔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이하여 ‘내버려 둔다’는 말을 쓰지 않고, 이 말을 한자로 옮겨서 ‘방치’라고 쓰는가 하고. 한국말 ‘내버려 둔다’나 ‘내버린다’라고만 적으면 어딘가 모자라거나 아쉽거나 알맞지 않다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쓰레기의 방치로 → 쓰레기를 내버려 두어

 그대로 방치된 채 → 그대로 버려진 채


  한국말이 세계에 첫 손가락을 꼽을 만하다고 자랑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영어바람이 미치도록 분다고 해서 영어바람에 휩쓸릴 까닭 또한 없습니다. 이 나라 권력자와 지식인이 옛날부터 한문을 썼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들까지 한문을 익히거나 알아야 할 까닭마저 없습니다.


  다만, 영어를 배우고 싶으면 배워야지요. 한문을 배워야겠다면 배워야지요. 배우되, 지식자랑이 되지 않도록, 지식으로 남을 억누르거나 깔보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옳게 추스른 다음에 배워야지요. 배우되, 알뜰히 배워서 훌륭히 펼치도록 배워야지요. 말 사이사이 우쭐거리듯 끼워넣거나 섞는 못난 짓을 일삼지 않도록 매무새를 곱게 여미어야지요. 4341.5.25.해/4347.8.15.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동안 내가 읽고 모아 온 책들을 갈무리하지도 못하고 한 방에 그냥 마구잡이로 쌓아 둔 채 몇 달 동안 내버려 두었다


‘정리(整理)하지도’는 ‘갈무리하지도’나 ‘차곡차곡 간수하지도’로 다듬습니다. “몇 달 간(間)을”은 “몇 달 동안을”로 손보고, ‘두었었다’는 ‘두었다’로 손봅니다.



 방치(邦治) : 나라의 정치

 방치(放置) : 내버려 둠

   - 쓰레기의 방치로 온 동네가 지저분해졌다 /

     죽은 물고기가 저수지에 그대로 방치된 채 썩고 있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940) 의사


그러나 틀림없이 이때는 자기 안에 분명히 어떤 의사를 가지고 한 말이었다

《기류 유미코/송태욱 옮김-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샨티,2005) 179쪽


 어떤 의사를 가지고 한 말이었다

→ 어떤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 어떤 뜻을 품고 한 말이었다

 …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동이 트는 모습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달과 별을 바라보며 이제 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서 함께 어깨동무하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놀면서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나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운 말을 쓰면서 마음 깊이 고운 넋이 자라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생각입니다. 생각은 ‘意思’가 아닙니다.


 의사를 전달하다

→ 생각을 알리다

→ 뜻을 알려주다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다

→ 사람들 생각을 섬기다

→ 사람들 뜻을 귀여겨듣다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다

→ 혼인할 생각이 하나도 없다

→ 혼인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병을 다스리는 사람을 ‘醫師’라고 쓸 일이란 없습니다. 그냥 ‘의사’면 됩니다. 윤봉길 의사를 말할 때에도 한글로 ‘의사’라 하면 되지, ‘義士’로 안 써도 됩니다. 그나저나, ‘義死’나 ‘義師’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疑事’는 “의심스러운 일”이고 ‘疑辭’는 “의심스러운 말”이라는데, 이런 말을 왜 써야 할까요? ‘擬死’는 “외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자극을 받은 동물이 움직이지 않고 죽은 체하는 일”을 가리킨다는데, 한국말로 ‘죽은 척’이라 하면 됩니다. 쉽고 알맞게 쓰면 됩니다. “회의에서 어떤 일을 의논함”을 ‘議事’라고 하는데, ‘會議’라느니 ‘議論’이라느니 자꾸 한자말을 빌어서 쓰니 다른 한자말까지 잇달아 쓰고 맙니다. 모임(← 會議)을 열어 어떤 일을 이야기(← 議論)하면 됩니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임을 꾸리면(← 議事) 됩니다. 4338.6.8.물/4347.8.15.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나 틀림없이 이때는 아이 스스로 틀림없이 어떤 뜻을 품고 한 말이었다


보기글을 살피면, 앞에서는 ‘틀림없이’라 하면서도 곧바로 ‘분명(分明)히’라는 한자말을 쓰는군요. 뒤에 적은 ‘분명히’는 덜어야겠습니다. 아이가 마음속으로 어떤 뜻을 품고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기글이니, “자기(自己) 안에”는 “아이 스스로”로 손봅니다.



 의사(衣?) = 옷상자

 의사(意思) :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

  - 의사 전달 / 국민의 의사 /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다

 의사(義士) : 의로운 지사

 의사(義死) : 의를 위하여 죽음

 의사(義師) : 의로운 뜻을 품고 일어난 군사

 의사(疑事) : 의심스러운 일

 의사(疑辭) : 의심스러운 말

 의사(縊死) :‘액사’의 원말

 의사(擬死) : 외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자극을 받은 동물이 움직이지 않고 죽은 체하는 일

 의사(擬似) : 실제와 비슷함

 의사(醫事) : 의료에 관한 일

 의사(醫師) : 의술과 약으로 병을 치료, 진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

 의사(議事)

  (1) 회의에서 어떤 일을 의논함

  (2) 회의에서 의논할 사항

 의사(議史) : 신라 때에 둔 내사정전의 으뜸 벼슬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21) 운반


애들 두 명이 나를 따라와서 구입한 물건을 식당까지 운반한다

《오스카 루이스/박현수 옮김-산체스네 아이들 上》(청년사,1978) 48쪽

 

 물건을 식당까지 운반한다

→ 물건을 식당까지 나른다

→ 물건을 일터까지 옮긴다

 …


  보기글에서 말하는 ‘식당’은 ‘글에서 내가 일하는 곳’이니, ‘일터’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말사전에는 두 가지 ‘운반’이 나옵니다. 하나는 “구름 가운데”를 뜻한다는 ‘雲半’인데, 최남선이라는 사람이 쓴 글에서 보기글을 따서 싣습니다.


 운반에 고용(高聳)한 것은 곧 반야봉

→ 구름 가운데에 높이 솟은 곳은 곧 반야봉


  문학작품에 쓰인 낱말이라면서 ‘雲半’을 실었구나 싶습니다. ‘高聳’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운반’이나 ‘고용’처럼 한글로만 적으면 무엇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국말사전에 실린 낱말이지만 ‘한국말’이라 하기 어렵고, ‘한국말사전 올림말’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최남선이라고 하는 분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이와 같은 고리탑탑한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왜 실어야 하는가를 따져야지 싶습니다. 굳이 싣고 싶다면, ‘한국 한자말 사전’을 따로 엮어서 실어야지요.


  이삿짐 운반 → 이삿짐 나르기

  운반의 편의를 생각해서 → 나르는 편의를 생각해서 / 나르기 좋도록


  물건을 옮겨서 나른다는 ‘運搬’은 말 그대로 ‘옮기다·나르다·옮겨 나르다’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달리 더 할 말이 있을까요. 말뜻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고, 말느낌 그대로 적으면 됩니다. 4339.7.20.나무/4341.6.24.불/4347.8.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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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둘이 나를 따라와서, 내가 산 물건을 식당까지 나른다


“애들 두 명(名)이”는 “애들 둘이”로 다듬습니다. ‘구입(購入)한’은 ‘사들인’이나 ‘산’으로 다듬고요.



 운반(雲半)

  (1) 구름의 가운데

   - 남쪽 맨 뒤로 둥긋하게 운반에 고용(高聳)한 것은 곧 반야봉이요…

  (2) 음력 동짓달을 달리 이르는 말

 운반(運搬) : 물건 따위를 옮겨 나름

   - 이삿짐 운반 / 물건 운반의 편의를 생각해서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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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46) 거동


부실한 영양 공급에 질병이 겹치면서 거동조차 어려웠다

《마이클 예이츠/추선영 옮김-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이후,2008) 105쪽


 거동조차 어려웠다

→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 다니기조차 어려웠다

→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어려웠다

 …


  지난겨울은 ‘지난겨울’일 뿐, ‘去冬’이 아닙니다. ‘속수자’는 무엇이고, ‘拒冬’은 무엇일까요? 풀이름을 왜 이렇게 한자말로 붙여야 할까요?


  어른들을 가리키며 “거동이 불편하다”라는 말을 곧잘 씁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곁에 있었고 동네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았기에 이 낱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무슨 뜻인가는 제대로 몰랐으나,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모습’일 때에 이 말을 했기 때문에 어렴풋이 헤아려 보기는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다 → 움직이기 힘들다

 거동이 수상하다 → 움직임이 수상하다


  군대에서 지낼 때, ‘거수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초소에서 총을 들고 경계를 설 때 ‘거수자’가 있으면 어찌어찌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거수자’는 ‘거동수상자(擧動殊常者)’를 줄인 말이라 했는데, 한국말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작자의 거동만 지켜보고

→ 그치가 뭘 하는지만 지켜보고

→ 그치 움직임만 지켜보고

→ 그치 하는 일만 지켜보고

 …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움직임’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한국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움직임’이라는 낱말을 살려서, “할머니는 움직임조차 어려웠다”나 “할머니는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처럼 말하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모두들 ‘거동’이라는 낱말을 넣습니다. 군대에서도 ‘움직임’보다는 ‘거동’을 사랑합니다.


  생각해 보면, 군대에서 총을 닦을 때 ‘수입(手入)’이라고 말해서 어리벙벙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역하는 날까지 ‘수입’이라 안 하고 ‘손질’이라고 말했지만, 중대장이나 행정보급관이나 소대장은 하나같이 ‘총기수입’이라고만 말했고, 동무들도 ‘손질’보다는 ‘수입’이라고 말했어요. 4341.7.1.불/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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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못 먹은데다가 몸까지 아프면서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부실(不實)한 영양(營養) 공급(供給)에”는 “어설픈 밥에”나 “제대로 못 먹은데다가”로 다듬습니다. “질병(疾病)이 겹치면서”는 “몸까지 아프면서”나 “몸이 아프면서”로 손질합니다.



 거동(去冬) = 지난겨울

 거동(拒冬) = 속수자

 거동(擧動) : 몸을 움직임

   - 거동이 불편하다 / 거동이 수상하다 / 작자의 거동만 지켜보고 있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60) 설치


슈퍼마켓에서는 계란 상자들이 다시 사용될 수 있도록, 계란 상자 모으는 코너를 설치하면 좋다

《M.램/김경자,박희경,이추경 옮김-2분 간의 녹색운동》(성바오로출판사,1991) 141쪽


 모으는 코너를 설치하면 좋다

→ 모으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다

→ 모으는 데를 두면 좋다

→ 모으는 곳을 놓으면 좋다

 …


  한국말사전에 여러 가지 한자말 ‘설치’가 실립니다. 이처럼 여러모로 실린 ‘설치’가 얼마나 쓰이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줄다리기에서 설치를 바라며”라 했을 때에 ‘설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으리라 봅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줄다리기에서 갚아 주려고”로 적어 주어야 알맞습니다.


 안테나의 설치 위치를 바꿨더니 → 안테나 놓인 자리를 바꿨더니

 설치가 간편하다 → 손질이 쉽다

 쓰레기 소각장 설치에 → 쓰레기 태우는 곳 짓기에

 신호등이 횡단보도에 설치되다 → 신호등이 건널목에 놓이다

 조명탑을 설치하는 → 조명탑을 세우는

 지부를 설치하고 → 지부를 두고


  한국사람 누구나 한국말을 사랑하면서 곱게 쓰면 좋겠습니다. 꾸밈없이 쓸 줄 알고 수수하게 쓸 줄 알며 따사롭게 쓸 줄 알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부터 한국말을 알뜰살뜰 배우면서, 이 말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생각과 꿈을 널리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지식이 아닌 살가운 말씨와 넉넉한 몸씨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삶을 가꾸는 빛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우다, 놓다, 두다, 마련하다, 짓다, 손질하다, 꾸미다, …… 같은 낱말을 그때그때 알맞춤하게 쓰면 됩니다. 한자말 ‘설치’를 내려놓으면 됩니다. 쉬운 말은 쉽습니다. 아름다운 말은 아름답습니다. 한국사람이 먼먼 옛날부터 수수하게 주고받던 가장 쉽고 수수한 말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습니다. 4341.7.26.흙/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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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는 달걀 상자를 다시 쓸 수 있도록, 달걀 상자 모으는 자리를 두면 좋다


‘슈퍼마켓(supermarket)’은 ‘가게’나 ‘구멍가게’로 고쳐 줍니다. ‘계란(鷄卵)’은 ‘달걀’로 다듬고, ‘사용(使用)될’은 ‘쓰일’로 다듬으며, ‘코너(corner)’는 ‘자리’나 ‘칸’이나 ‘곳’으로 다듬습니다.



 설치(設置) : 베풀어서 둠

   - 안테나의 설치 위치를 바꿨더니 / 조립식 제품은 설치가 간편하다 /

     쓰레기 소각장 설치에 반대하여 / 신호등이 횡단보도에 설치되다 /

     조명탑을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 / 각 시도(市道)에 지부(支部)를 설치하고

 설치(雪恥) = 설욕(雪辱)

   - 우리 동네 사람들은 줄다리기에서 설치를 바라며 긴장하고 있었다

 설치(楔齒) : [민속] 염습하기 전에, 입에 낟알을 물리려고 시신(屍身)의 이를 벌리는 일

 설치(齧齒) : [한방] 잠을 자면서 이를 가는 증상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33) 여전


‘서울 방면’이 아닌, ‘인천 방면’의 경인선을 타며, 어린 마음에 꽤 오랫동안 서글퍼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욱·김혜영) 《작가들》 22호(2007년 가을) 297쪽


 여전히 남아 있다

→ 고스란히 남는다

→ 그대로 남는다

→ 아직까지 남는다

→ 여태 남는다

 …



  ‘잔돈’을 가리킨다고 하는 ‘餘錢’은 쓸 일이 없습니다. 아니, 이러한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담지 말아야 합니다. 괜히 이런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담으니, 쓸데없이 부피만 두꺼운 한편, ‘한국말 숫자가 한자말보다 적다’는 엉터리 얘기가 나돕니다. ‘잔금’이라는 말도 ‘잔돈’이나 ‘남은돈’으로 고쳐 줍니다.


 그의 말버릇은 여전했다 → 그 사람 말버릇은 그대로였다

 여전하게 소란하고 → 예전처럼 시끄럽고

 큰 키도 여전하고 → 큰 키도 똑같고


  ‘예전과 같’기에 ‘그대로’라고 느낍니다. 예나 이제나 그대로라고 느끼는 마음은, ‘아직’도 예전하고 같은 마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여태’ 예전 생각이 남았을 테지요. 예전에 품던 생각과 느낌이 오늘날 품는 생각과 느낌하고 그대로라면, ‘똑같’거나 ‘마찬가지’이기도 합니다. 그예 ‘고스란히’ 남습니다. 4341.5.26.달/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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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쪽’이 아닌, ‘인천 쪽’으로 가는 경인선을 타며, 어린 마음에 꽤 오랫동안 서글퍼 했던 일이 아직까지 남는다


“서울 방면(方面)”이나 “인천 방면”은 “서울 쪽”이나 “인천 쪽”으로 다듬습니다. “인천 방면의 경인선”은 “인천으로 가는 경인선”으로 다듬어 줍니다. “서글퍼했던 기억(記憶)이”는 “서글퍼 했던 일이”나 “서글퍼 했던 생각이”로 손봅니다.



 여전(女專) : [교육] ‘여자 전문학교’를 줄여 이르는 말

 여전(如前) : 전과 같다

   - 그의 말버릇은 여전했다 / 상점과 행인들이 여전하게 소란하고 번잡했다 /

     큰 키도 여전하고 힘도 여전한 만큼  

 여전(餘錢) = 잔금(殘金)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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