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 보살피기



  마을이 있기 앞서 조그마한 집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집에는 조그마한 사람이 하나 있고 둘이 있습니다. 하나에서 둘이 된 집안은 셋 넷 다섯으로 차츰 늘어납니다. 한솥밥 먹는 사람이 늘어나지요. 조그마한 집은 보금자리입니다. 이러한 보금자리에 한솥지기가 늘고 또 늘면서 제금을 나는 새로운 집이 태어납니다. 새로운 집이 태어나고 또 태어나면서 어느새 마을을 이룹니다. 모든 마을은 처음에는 조그마한 집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조그마한 집 하나 있을 적에는 따로 길이 없습니다. 집 둘레가 온통 숲입니다. 냇물이 흐르고 나무가 우거지며 온갖 풀이랑 꽃이 짙푸릅니다. 집과 집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 숲 사이로 알맞게 길을 냅니다. 밭을 조금씩 일구어 들을 넓힙니다. 둠벙을 파기도 하고, 마을이 커지면 울력을 해서 못을 파기도 합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책이 아닌 입에서 입으로 말을 가르치고 이야기를 대물림했습니다. 모시와 삼에서 실을 얻으면서 노래를 불렀고,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불렀으며, 바느질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노래를 불렀고, 두레와 품앗이를 할 적에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먼먼 옛날부터 집집마다 이야기와 노래가 있었고, 마을마다 이야기와 노래가 넘쳤어요.


  오늘날 도시에는 아주 많은 집이 아주 다닥다닥 촘촘히 모입니다. 골목동네뿐 아니라 아파트에도 집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집은 아주 많으나, 집집마다 따로 이야기나 노래가 흐르지는 않습니다. 텔레비전이 흐를 뿐이고, 학교에서 교과서를 배울 뿐입니다. 오늘날에는 아파트 단지나 골목동네에서 따로 ‘공동체 문화’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러는 동안 작은 보금자리가 흔들립니다. 작은 보금자리에서 노래가 흐르지 않으니 사랑이 싹트기 어렵습니다.


  학교를 다니거나 인문책을 읽는다고 해서 두레살이나 보금자리를 살리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려는 생각을 지을 때에 비로소 두레살이와 보금자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작은 보금자리는 작은 땅뙈기를 일구면서 태어납니다. 넓디넓은 땅이 있어야 배불리 먹지 않습니다. 서로 알맞게 지을 수 있는 땅이 있으면 되고, 나머지 땅은 드넓은 숲이나 들로 곱게 두면 됩니다. 갯벌을 메워야 하지 않습니다. 숲을 밀거나 멧자락을 깎아야 하지 않습니다. 모두 그대로 둬요. 모두 그대로 살려요. 이럴 때에 작은 집과 마을과 고을과 나라가 모두 새롭게 살아납니다.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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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97. 2014.9.24. 밥상놀이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논다. 잠자리에서도 놀고, 시외버스나 기차에서도 놀며, 걷는 동안에도 논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놀고, 놀면서도 새로 논다. 그러니 이 아이들이 밥을 먹을 적에도 놀밖에 없다. 내 어릴 적을 돌아본다. 아버지하고 함께 밥상맡에 앉으면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꼼짝을 못 한다. 어른과 밥을 먹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딘가를 가면 괘씸한 짓으로 여긴다. 밥을 먹는 자리가 참으로 힘들었다. 중국에서 엉터리로 들여온 엉터리 권력문화 때문에라도 가시내와 아이는 밥자리가 느긋하지 못하다. 우리 집 아이들이라고 다를 일이 없다. 하루 내내 쉬잖고 뛰노는 놀이순이요 놀이돌이인 터라, 밥을 한 술 뜨고는 뭔가 새로운 놀이가 없을까 하면서 엉덩이를 들썩인다. 밥을 다 먹고 놀라 말해도 아이들은 안 듣는다. 들을 일이 없겠지. 참말 그렇다.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한들 달라질 수 없다. 아니, 굳이 달라지게 할 까닭이 없겠구나 싶다. 아이들과 함께 산 지 일곱 해 만에 깨닫는다고 할까. 놀고 싶으면 놀렴. 아주 배가 고플 때까지 밥을 안 차리다가, 그야말로 아이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무렵 밥을 차린다. 그래도 아이들은 몇 술을 떠서 배고픔을 가시면 슬슬 엉덩이를 들썩인다. 큰아이는 일곱 살이 무르익으니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스스로 ‘놀이를 참는’다. 아주 대견하다. 그러나, 동생이 마루를 가로지르며 뛰놀면 큰아이도 ‘더 참지 않’고 살그마니 엉덩이를 들썩인다. 둘 다 아이이니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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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57. 2014.9.24. 서숙돌이



  자전거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묵은 밭을 본다. 묵은 밭에 피고 지는 온갖 들꽃과 들풀을 바라본다. 시골에는 이런 땅에 좀 넓게 있어야 한다. 묵은 밭도 좋고, 그냥 사람 손길 안 탄 들판도 좋다. 그래야 이런 곳을 아이들이 놀이터로 삼아서 신나게 헤집고 다닐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묵은 밭에 서숙이 군데군데 있다. 이 밭이 묵기 앞서 서숙밭이었던 듯하다. 따로 심지 않았을 텐데, 서숙이 익으면서 몇 알 떨어졌나 보다. 서숙을 벨 적에 작은 알맹이가 떨어졌을 수 있다. 그래서, 작은 알맹이가 흙 품에 고이 안겨 겨울을 나고는 이듬해에 씩씩하게 자랐지 싶다. 한 포기를 꺾는다. 자전거수레에서 잠든 산들보라 머리맡에 놓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숙내음 맡으면서 즐겁게 꿈을 꾸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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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814) 보다 1


보다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현명하고 인도적인 경제 및 사회 정책에 의해 인구가 안정되는 것이다

《레스터 브라운/이상훈 옮김-맬서스를 넘어서》(따님,2000) 24쪽


 보다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 더 바람직한 그림은

→ 더욱 바람직한 그림은

→ 한결 바람직한 그림은

 …



  ‘보다’는 토씨입니다. “네가 나보다 빠르구나”라든지 “내가 너보다 크구나”라든지 “우리가 너희보다 세구나”처럼 쓰는 ‘보다’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보다’를 토씨가 아닌 어찌씨로 엉뚱하게 쓰는 일이 퍽 잦습니다. 왜 이런 엉터리 말투가 퍼지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국립국어원에서 엮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다’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게다가 북녘에서 펴내는 《조선말 대사전》에까지 ‘보다’를 어찌씨로 다루어 올림말로 싣습니다.


 [보다] 어떤 수준에 비하여 한층 더. 

  - 보다 높게 / 보다 빠르게 뛰다 / 그것은 서로 보다 나아지려는


  제가 떠올리기로는 1988년에 한국에서 올림픽을 치른다면서 한창 법석을 떨 무렵에 ‘보다’를 엉터리로 쓰는 말투가 확 퍼졌지 싶습니다. 1986년에 아시안대회를 열 때에도 이 ‘보다’라는 엉터리 말투가 엄청나게 쓰였어요. 그무렵 국민학교 어귀에 “보다 빠르게 보다 높이 보다 힘차게” 같은 글월을 나무판에 큼직하게 써서 붙이곤 했습니다. 과자 봉지에도 이런 글월이 찍혀서 나왔고, 방송 풀그림에도 이런 글월이 끝없이 되풀이되었어요.


 보다 높게 → 더 높게

 보다 빠르게 → 더 빠르게

 보다 나아지려는 → 더 나아지려는


  한국말 어찌씨는 ‘더’입니다. ‘보다’는 토씨입니다. ‘더’라는 낱말 말고도 ‘더욱’이 있으며, ‘더더욱’이나 ‘더욱더’ 같은 낱말도 있습니다. 군사독재를 내세운 정치권력이 엉터리 말투를 퍼뜨려서 우리 눈과 귀를 홀리려 했어도, 우리들은 언제나 슬기롭고 아름다운 넋을 튼튼하게 지키면서,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슬기롭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7.7.31.흙/4347.9.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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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바람직한 그림은, 슬기롭고 아름다운 경제·사회 정책으로 인구가 제자리를 잡는 길이다


‘시나리오(scenario)’는 ‘그림’으로 손질하고, ‘현명(賢明)하고’는 ‘슬기롭고’로 손질하며, ‘인도적(人道的)인’은 ‘아름다운’이나 ‘따스한’으로 손질합니다. “경제 및 사회 정책에 의(依)해”는 “경제와 사회 정책으로”나 “경제·사회 정책으로”로 손봅니다. “안정(安定)되는 것이다”는 “제자리를 찾는 길이다”나 “제자리를 잡는 길이다”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34) 보다 2


이러한 살인적인 저임금과 말할 수조차 없이 나쁜 근로조건을 개선해, 보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자 하는 몇몇 사람들의 움직임이

《편집부 엮음-뛰는 맥박도 뜨거운 피도》(미래사,1985) 17쪽


 보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자

→ 좀더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그나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얼마라도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사람답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일터에서 사람답게 대접을 받으려고 애쓴다면, “더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로 적어야 뜻이 또렷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나마’나 ‘얼마라도’를 넣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나 ‘이제라도’나 ‘앞으로’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터무니없는 일터에서 터무니없는 일삯으로 힘들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기글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보다’라는 말투를 썼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방송이나 라디오에서 흐르는 잘못된 말씨에 천천히 길들거나 물들면, 누구라도 ‘보다’ 같은 말투를 잘못 쓸 수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4339.4.1.흙/4347.9.2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렇게 끔찍히 낮은 일삯과 말할 수조차 없이 나쁜 일터를 고쳐서,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몇몇 사람들 움직임이


“살인적(殺人的)인 저임금(低賃金)”이라면, 사람을 죽일듯이 낮은 일삯이라는 뜻입니다. “끔찍히 낮은 일삯”이나 “터무니없이 낮은 일삯”이나 “너무 보잘것없는 일삯”으로 다듬습니다. ‘근로조건(勤勞條件)’ 같은 낱말은 그대로 두어야 할는지 모르나, ‘일터’로 손볼 수 있습니다. ‘개선(改善)해’는 ‘고쳐’나 ‘바로잡아’로 다듬고, ‘인간(人間)다운’은 ‘사람다운’이나 ‘사람답게’로 다듬으며, “몇몇 사람들의 움직임”은 “몇몇 사람들 움직임”으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97) 보다 3


생활교육은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해방의 교육인 것이다

《야나기 히사오/임상희 옮김-교육사상사》(백산서당,1985) 22쪽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해방의 교육

→ 한결 뿌리깊이 사람을 살리는 교육

→ 속속들이 사람을 살리는 교육

→ 무엇보다도 사람을 살리는 교육

→ 모름지기 사람을 살리는 교육

 …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먼저 생각해 봅니다. 삶을 가르치는 일이란 무엇이 될는지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어른이 되어 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는 일이 아닌,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배우고 가르치면서 꾸리는 삶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지식 물려주기가 아닙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삶이란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삶입니다. 그러니, ‘삶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어른과 아이가 즐겁게 어우러진다면, 이때에는 모름지기 사람이 스스로 살아나는 교육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찌씨로 잘못 쓰는 ‘보다’를 생각합니다. 군사독재 정치권력이 갑작스레 엉터리 말투를 널리 퍼뜨리기도 했지만, 일본책으로 학문을 익힌 지식인이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 ‘보다’를 아주 많이 끌어들였습니다. 지식 사회에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일본 한자말과 함께 일본 말투에 젖어들었고, 여느 자리에서 방송을 많이 본 사람들은 엉터리 정치권력이 퍼뜨리는 엉터리 말투에 스며들었어요. 정작 한국말은 제자리를 못 찾고 참으로 오랫동안 헤매거나 길을 잃습니다. 4340.2.9.쇠/4347.9.2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삶 교육은 모름지기 사람살리기 교육이다


‘생활(生活)교육’은 ‘삶 교육’으로 손보고, ‘근본적(根本的)으로’는 ‘뿌리깊은’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인간해방’에서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고쳐야 할 텐데, ‘해방(解放)’은 그대로 둘 수 있을 테지만, 생각을 찬찬히 넓혀 “사람살리기”처럼 새롭게 풀어내어 적을 수 있습니다. “교육인 것이다”는 “교육이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3) 보다 4


첫 장에서 나오는 인물은 명백하게 우리 아버지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한 남자의 인생을 넘어서는 보다 더 큰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폴 오스터/심혜경 옮김-글쓰기를 말하다》(인간사랑,2014) 66쪽


 보다 더 큰 것을 이야기하고

→ 더 큰 것을 이야기하고

→ 더 큰 이야기를 하고

→ 훨씬 더 큰 이야기를 하고

 …



  보기글을 잘 보면 알 수 있는데, “보다 더”처럼 쓰는 일은 그야말로 얄궂습니다. ‘보다’만 덜면 될 노릇입니다. 아니 ‘보다’를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큰 것”을 힘주어 말하려고 “더 큰 것”으로 적는데, 이 앞에 ‘보다’를 왜 붙여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더더기 겹말로 적어야 할 만한 까닭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알맞고 바르게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2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첫 장에서 나오는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한 사내 삶을 넘어서는 훨씬 더 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물(人物)’은 ‘사람’으로 다듬고, ‘명백(明白)하게’는 ‘틀림없이’나 ‘바로’로 다듬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結局)”이라 나오는데, ‘결국’은 ‘마무리’나 ‘마지막’을 뜻합니다. 겹말입니다. “한 남자(男子)의 인생(人生)”은 “한 사내 삶”으로 손보고, “큰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는 “큰 이야기를 합니다”나 “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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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2) 것 58


고려 때 미나리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미나리를 먹은 것은 꽤 오래전부터이다

《이주희-내 이름은 왜?》(자연과생태,2011) 35쪽


 미나리를 먹은 것은

→ 미나리를 먹은 지는

→ 미나리를 먹은 때는

 …



  ‘것’도 한국말이지만, 아무 자리에나 쓸 수 없는 낱말입니다. 이 보기글처럼 ‘지’라는 매인이름씨를 넣을 자리에 함부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요즈음 들어서 ‘지’를 넣을 자리에 ‘것’을 넣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구나 싶은데, 가만히 보면 어린이책이나 만화책에 이런 말투가 참 많이 나타납니다. 방송에서도 ‘것’을 아무 자리에 함부로 넣는 일이 흔하지 싶어요.


  이 보기글에서는 “기록이 있는 것”처럼 쓰기도 합니다. 글 한 줄에 ‘것’을 두 차례 썼어요. 이 대목은 “기록이 있듯이”나 “기록이 있으니”나 “-고 적혔으니”나 “-고 나오니”로 다듬어야겠습니다. 4347.9.2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고려 때 미나리밭이 있었다고 적힌 글이 있으니, 우리가 미나리를 처음 먹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있었다는 기록(記錄)이 있는 것을 보면”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니”나 “있었다고 적힌 글이 있으니”로 손봅니다. “미나리를 먹은 것은”은 “미나리를 먹은 지는”이나 “미나리를 처음 먹은 지는”으로 손질하고, “오래전(-前)부터이다”는 “오래되었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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