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능금꽃 우람한 나무 사잇길


 옆지기 어머님하고 읍내 장마당에 가는 길입니다. 아이는 한손에 할머니 손을 잡고, 한손에 아버지 손을 잡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큰길부터는 자동차가 싱싱 달립니다. 넓은벌 마을에서 음성 읍내로 가는 조그마한 두찻길에는 자동차가 그리 많이는 안 다니지만, 모두들 무시무시하게 내달립니다. 시골길 가장자리는 시골사람이 걷는 자리이지만, 사람이 걱정없이 걷도록 자동차 다니는 자리하고 금을 긋지 않았을 뿐더러, 사람들이 다니기 좋도록 돌을 깔거나 반반하게 닦지 않습니다. 새로운 찻길을 닦을 때에는 늘 자동차가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데에만 마음을 쓸 뿐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어디에서든 마음이 넉넉해지거나 느긋해지지만, 읍내로 볼일을 보러 다녀오려고 이 찻길 녘에 나올 때면 마음이 바빠지거나 힘들어집니다. 어느 자동차이건 길을 걷는 사람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걷는 사람들한테 바람이 날리지 않도록 한다든지, 나를 칠까 두려워 하지 않게끔 한다든지, 빠르기를 줄여 조용히 지나간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고작 몇 초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 내달리는 두찻길을 지나 시골버스 타는 자리에 닿습니다. 시골버스 타는 자리 곁에는 우람한 느티나무가 섭니다. 어른 둘이 두 팔을 벌려 안을 만큼 굵은 느티나무입니다. 이 느티나무 굵은 둥치 둘레로는 시멘트로 빼곡하게 발라서 사람들이 걸어서 돌아다닐 때에 비오는 날에 발이 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느티나무가 사월 끝무렵에 꽃을 피우고 오월 첫무렵에 씨를 맺을 때에, 이 느티씨가 떨어져 뿌리를 내릴 만한 흙땅 또한 없습니다.

 궁금하다 여기며 느티나무 앞에 가만히 쪼그려앉습니다. 어쩌면 한두 느티씨가 이 아무 빈틈 없는 시멘트땅 한구석 어딘가에 뿌리를 내렸을는지 모르니까요. 수많은 다른 풀은 시멘트땅 어딘가 빈구석을 찾아내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워 꽃까지 피우니까요.

 참말 느티씨 몇이 용케 흙에 뿌리를 내려 살아남습니다. 굵은 둥치 가까이 아주 조금 있는 빈틈에 가느다란 뿌리를 내리고, 이 가느다란 뿌리 굵기하고 똑같이 가느다란 줄기를 올린 어린 느티나무가 몇 보입니다.

 어린 느티나무 키는 어린이 손으로 한 뼘 길이쯤 될까 말까 합니다. 어린 느티나무에 달린 잎은 우람한 느티나무에 달린 잎하고 크기를 견주면 참으로 작아, 꼭 어른이 갓난쟁이를 품에 안을 때하고 같구나 싶어요. 그래도 십 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어리디어린 느티나무 가느다란 줄기를 살며시 쓰다듬으면 ‘아, 여느 풀이 아닌 참말 나무로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문득,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 첫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빨간머리 앤〉 첫 이야기에서 앤이 고아원에서 매튜 아저씨 아주머니네로 가는 길에 ‘하이얀 능금꽃 사잇길’을 지나가는 대목이 나와요. 이 대목에서 앤은 말을 잊은 채 깊이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사랑을 느낍니다. 자연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느끼는 사랑이에요.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숱하게 보았으니 첫 이야기 이 대목 또한 숱하게 보았는데, 오늘 아이하고 만화영화를 다시금 보면서 새삼스레 능금꽃 고운 사잇길을 되뇝니다. ‘그래, 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능금나무는 능금알을 따기 좋게 가지를 구부려 난쟁이 나무가 되도록 한 나무가 아니구나. 그러니까 이 능금나무는 무척 키가 높이 자라면서 마차가 지나가도 고개를 들려 한참 올려다보아야 볼 수 있고, 나무 숲길이 되면서, 앤이 새로운 이름을 예쁘게 붙여서 일컫고 싶어 할밖에 없구나. 그나저나, 오늘날 이 나라에는 능금나무가 저 목숨대로 싱그럽고 씩씩하게 가지를 뻗어 우람하게 자라나도록 하지 않아. 기껏 열 해를 온힘을 쥐어짜내어 열매를 맺고는 기운을 다해 죽는다고 하잖나. 어여쁜 능금나무가 예쁜 길을 이루는 데가 있을까. 충주시는 시내로 들어서는 길목에 능금나무를 심기는 했지만, 능금꽃 흐드러지는 어여쁜 꽃길이지는 않아. 사람들 누구나 능금알을 맛나게 먹는다지만, 정작 능금꽃이며 능금나무이며 고운 능금꽃 우람한 나무 사잇길이란 한 군데도 없어.’ (4344.5.27.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으로 보는 삶
― 첫째 아이 사진과 둘째 아이 사진



 2008년 8월 16일에 첫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2011년 5월 21일에 둘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던 날부터 둘째 아이를 낳던 날까지 집에서 살붙이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가를 돌아봅니다. 날마다 서른 장쯤 줄기차게 찍었습니다. 한 달이면 구백 장쯤 되는 셈이고, 열두 달 한 해가 되면 만 장을 웃돕니다. 두 돌이면 이만 장이 되며, 석 돌이면 삼만 장을 웃돌아요.

 둘째를 낳고도 사진찍기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조금 다릅니다. 둘째 아이 사진은 첫째 아이 때만큼 바지런히 찍지 못합니다.

 둘째한테는 사랑이 시들거나 줄었기에 사진을 덜 찍지 않습니다. 첫째를 훨씬 귀엽게 바라보고 싶기에 둘째 사진을 덜 찍지 않아요.

 몸이 받치지 못하니 둘째 아이 사진을 덜 찍고 맙니다. 첫째 아이한테 마음을 쓰고 둘째 아이한테 몸을 쓰니 사진기를 쥘 겨를이 아주 줄어듭니다. 빨래거리만 하더라도 곱배기로 늘고, 밥을 하거나 집일을 하거나 집살림 돌보는 데에도 곱배기로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이동안 사진기를 쥐기란 몹시 벅찹니다.

 더 곱씹어 봅니다. 우리 집에 아이가 오기 앞서는 옆지기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이러다가 첫째 아이한테 천천히 넓어지고, 이제 둘째 아이한테까지 찬찬히 이어집니다. 옆지기하고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도시에서 사진감을 얻어 헌책방과 골목길과 자전거를 즐겨찍었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고 두 돌이 될 무렵 시골로 살림을 옮기며 ‘도시에서 얻어 즐기던 사진감’을 더는 즐기지 못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도시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시골에서는 ‘시골에서 얻어 즐길 사진감’이 있어요. 숲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풀이 있습니다. 시골살림이 있고 텃밭이 있으며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가 있어요. 도시에서 지내며 ‘헌책방 살림살이 자취를 아침 낮 저녁 밤, 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살폈다면, 시골에서는 ‘푸나무 한살이 자취를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또는 달과 날’에 따라 살핍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아이가 집에서 노는 사진을 비롯해서 함께 골목마실이나 헌책방마실을 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밖에 달리 도드라지거나 눈여겨볼 만큼 새삼스러운 사진을 빚지 못합니다. 멧골자락으로 살림을 옮긴 뒤로는,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노는 사진을 비롯해서 가끔가끔 도시로 골목마실이나 헌책방마실을 다닐 때에 몇 가지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는데, 여기에 ‘마실을 다니며 오가는 길에 느끼는 모습’을 함께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리고, 시골집에서는 숲길을 거닌다든지 논두렁에서 쑥을 뜯는다든지 텃밭에서 호미를 들고 일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차곡차곡 담습니다.

 더 나은 사진이나 덜 떨어지는 사진은 없습니다. 두 어버이가 낳아 두 어버이가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담는 사진이란, 두 어버이가 아이와 마주하는 사랑이 빚는 열매입니다. 더 예뻐 보이도록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더 잘나 보이도록 찍는다든지, 가장 빛나 보이도록 찍지 않아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양새 그대로 찍습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찍으면서 마주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두 돌 아이한테는 두 돌 아이 사진을 찍습니다. 서른 달 아이한테는 서른 달 아이 사진을 찍고, 서른두 달 열흘 아이한테는 서른두 달 열흘 아이 사진을 찍어요.

 갓 태어난 둘째를 바라보는 자리에서도 똑같습니다. 이제 막 갓 태어났으니, 갓 태어난 살결을 고스란히 옮기는 사진입니다. 온누리에서 가장 빛나는 아이가 아니라, 우리 집에서 우리 살붙이로 사랑스러운 아이로 마주하면서 담는 사진이에요.

 다만, 참 바쁩니다. 눈코 뜰 사이가 없을 뿐더러, 밤이라 해서 느긋하게 발 뻗고 잘 수 없습니다. 밤새 아기 칭얼거림을 맞아들여야 하고, 아기 기저귀를 갈며, 첫째 밤오줌 가리기를 하자며 덥석 안아서 오줌그릇에 앉혔다가 다시 잠자리에 눕히기를 해야 합니다. 등허리를 반듯하게 펼 날이란 없으며, 손에서 물기 마를 겨를이란 없습니다. 그래도, 첫째를 낳아 살아가던 때처럼 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르지는 않아요. 밥은 어김없이 입으로 먹고, 숨은 코로 쉽니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지 못하는 나날이지만, 이렇게 헐떡이는 대로 때때로 사진기를 손에 쥐어 첫째랑 둘째가 저마다 이 작은 시골집에서 어우러지는 나날을 한 장 두 장 갈무리합니다.

 너무 바빠서 잊어버리는 하루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지쳐서 잃어버리는 오늘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고단해서 눈을 질끈 감는 삶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무거워 억눌리는 꿈이 되고 싶지 않아요. 사랑하는 옆지기와 아이하고 오순도순 지내는 웃음과 눈물을 하나하나 사진이라는 틀에 담고 싶습니다. (4344.5.27.쇠.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드팀전 2011-05-2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가 태어났었군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2011-05-27 19:2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둘 모두 사랑스레 잘 살아가는 좋은 길동무가 되리라 믿어요~
 
아기가 온다
실러 키칭거 / 하늘출판사 / 1995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한테 물려줄 ‘성교육 책’
 [푸른책과 함께 살기 78] 실러 키칭거, 《아기가 온다》(하늘출판사,1995)



- 책이름 : 아기가 온다
- 글 : 실러 키칭거
- 옮긴이 : 강영숙
- 펴낸곳 : 하늘출판사 (1995.6.26.)



 (1) 어떻게 살아가면서


 둘째를 낳아 면사무소에 들러 출생신고를 합니다. 첫째를 집에서 낳으려다가 뜻을 못 이루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번 둘째 때에도 집에서 낳으려다가 뜻을 못 이루며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습니다. 옆지기 몸이 여느 사람들만큼 못 될 뿐더러 몹시 아프고 힘든 나머지 병·의학 손길을 타고 맙니다.

 흔히 생각하기에 몸이 여리거나 아프거나 힘들면 병원이나 의학 손길을 타야 하지 않느냐 할 테지만, 몸이 여리거나 아프거나 힘들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는 안 되고 집에서 다스려야 합니다. 몸이 받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러운 시골살이에 몸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궁금해 하지 않고 그냥 맞히는 예방주사인데, 이 예방주사는 몸이 아프거나 여린 사람한테 맞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방주사란 병원균을 화학조합으로 만들어서 몸에 주사바늘을 꽂아 집어넣거든요. 몸이 아프거나 여린 사람은 예방주사를 맞으면 곧바로 이 병원균 때문에 몸이 무너집니다.

 아기나 어린이한테 예방주사를 맞히는 일이란 대단히 아슬아슬합니다. 왜냐하면 아기나 어린이는 어떠한 몸인지 아직 제대로 알 수 없거든요. 어떠한 밥이 몸에 받고 어떠한 밥이 몸에 안 받는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무엇에 두드러기가 난다든지, 어떠한 몸인가를 또렷하게 알 수 없어요. 웬만큼 자라고 난 뒤라면 제법 알 테지만, 아기와 퍽 어린 아이는 알기 어려울 뿐더러 잘못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병·의학에서는 이렇게 아기와 어린이를 살피지 않습니다. 병·의학은 숫자와 통계와 보고서에 따라 모든 사람을 똑같이 다룹니다. 얼핏 보면 평등한 듯하지만 하나도 평등한 일이 아니에요. 어린이와 어른은 건널목을 건너는 품이 다르고, 바퀴걸상에 앉은 사람과 두 다리로 튼튼히 선 사람이 걷는 빠르기가 달라요. 참평등이란 사람들마다 다 다른 삶과 몸을 헤아리면서 다 다르게 돌보거나 어깨동무하는 길입니다.


.. 태아가 아직 콩알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임신 초기 6∼7주째에도, 이미 태아 신체의 주요 기관과 뇌는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 당신의 몸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그 기적을 정말로 이해하고 실감하는 사람은 당신 이외에는 없습니다 … 임신은 단순히 출산만을 기다리는 기간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가치관을 키우며, 그것으로 자기들의 아기에게 어떤 세계를 만들어 줄 것인가, 하고 계획하는 기간입니다 … 여성은 아기가 정말로 자기 아기라는 것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 출산 준비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익히는 것만이 아니고, 두 사람이 협력해서 하나의 공동작업을 시작함을 의미합니다 … 예정일 당일에 태어나는 아기는 전체의 5퍼센트에 불과한 정도입니다 ..  (30, 39, 40, 175, 176, 244쪽)


 데즈카 오사무 님이 그린 만화책 《블랙잭》이 있습니다. 꽤 긴 작품인 《블랙잭》인데, 외과의사 블랙잭은 외과수술로 아픈 자리를 고치는 일을 하지만, 약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다만, 항생제나 약을 꽤 많이 쓰기는 하는데, 항생제를 쓰든 약을 쓰든 이러한 항생제와 약이 어떠한 성분이며 어떻게 부작용이 있으리라고 훤히 알면서 알맞게 다룹니다.

 만화책 이야기와 우리 삶 이야기는 다르다 하겠지요. 그러나, 한국땅 의사 가운데 항생제를 쓰거나 다루면서 이 항생제가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으며 누구한테 얼마만큼 어떻게 써야 하는가까지 낱낱이 살피는 분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 항생제를 놓거나 예방주사를 놓는다면서, 이 항생제와 예방주사가 아기 몸에 어떻게 될는지를 살피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알쏭달쏭합니다.

 아기 낳는 어머니한테 항생제를 놓거나 무슨무슨 약을 쓰면 고스란히 엄마젖까지 이러한 약 기운이 스며듭니다. 아기 밴 어머니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술 기운과 담배 기운이 아기한테 스며든다고 하는데, 항생제와 약 기운이 아기한테 스며들지 않을 까닭이 없어요. 엄마젖을 먹고 자랄 아기를 헤아린다면, 병원에서 애 어머니한테 함부로 약을 써서는 안 되며, 쓸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몹시 살피며 조금만 써야 합니다. 아기를 배었을 때에 감기약을 먹어도 안 되고, 진통제를 먹어도 안 된다 하잖아요. 아기를 낳고 나서도 다를 수 없어요.

 내 삶자리에서 돌아볼 때에도 똑같습니다. 약을 친 포도와 능금과 딸기하고, 약을 안 친 포도와 능금과 딸기가 있을 때에, 어느 포도와 능금과 딸기에 손이 갈는지요. 논둑과 밭고랑에 풀약을 치면 어떻게 될까요. 왜 무농약과 저농약과 유기농을 이야기할까요. 왜 오늘날 과자와 라면마다 엠에스지를 안 넣는다 밝히고 화학조미료를 덜 쓴다고 떠벌일까요. 과자와 라면을 비롯해 소시지나 가루젖에 화학성분이 깃들면 나쁘다고 하는 만큼, 사료와 항생제로 자란 소나 닭이나 돼지한테서 얻는 우유나 달걀이나 세겹살이라 한다면 사람들 몸에 그리 도움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까닭이란 무엇일까요.


.. 아기는 호흡을 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당신의 태내에서 실제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혈액으로부터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것입니다 … 대부분의 아기가 7개월쯤에 들어서면은 몸을 상하 180도로 회전시킴으로서 자신이 보다 안전한 상태에 놓이도록 합니다 … 임신 후기에 들어서면 아기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대가 더 분명해집니다 … 그때까지 성장이 좋지 않았던 아기도 임신 후기에 어머니가 누워 있는 시간을 늘여 휴식을 통한 안정을 되찾으면(오후에 세 시간씩 컴컴한 방에 누워 있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반드시 성장이 좋아집니다 … 건강관리는 계속 성장하는 아기에게 가능한 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가장 건강하고 에너지가 충만된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 케이크나 과자류 등은 뱃속의 아기 건강을 위해서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홍차나 커피도 설탕 없이 즐기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십시오 … 임신중, 당신의 몸은 최소한의 지방만을 필요로 합니다. 가능한 한 지방분을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 우유는 임신한 여성에게 권할 만한 식품이지만, 특별히 단백질이 부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하루에 0.5리터 이상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량의 우유를 마시는 것은 자칫 비만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포만감 때문에 당신과 아기에게 필요한 다른 식품을 섭취할 수 없게 합니다 … 필요한 비타민은 주로 음식물에서 섭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75, 88, 93, 97, 100쪽)


 첫째를 낳아 함께 살아오면서, 이제 둘째를 낳고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로서 내 삶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살펴야 아름다우면서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네 식구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맞이하거나 받아들일 때에 기쁘면서 착할까 하고 헤아립니다.

 구급차로 찾아가 둘째를 낳은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는 우리한테 종이기저귀를 사 오라고 처방전을 씁니다. 갓난아기방에 아기를 가두면서 종이기저귀를 채우고 물티슈로 밑을 닦는답니다.

 병원 의사나 간호사부터 종이기저귀 성분이 어떠하고, 종이기저귀를 어떻게 만들었으며, 이 종이기저귀가 쓰레기가 되어 버려질 때에 이 땅이 어떻게 되는데다가, 나중에 아이를 비롯해 어른들한테까지 어떻게 돌아오는가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 알지 못하며, 느끼지 못합니다. 물티슈는 무슨 성분일까요. 물티슈는 사람들 몸에 어떻게 스며들까요. ‘물에 적신 수건’이 아닌 물티슈는 어떠한 물을 어떠한 약품으로 다룬 화학종이일까요.

 손빨래를 못하겠으면 기계빨래를 하면 되는데, 왜 병원 간호사부터 어떤 기저귀를 쓰고 어떤 수건을 써야 하는조차 헤아리지 못할까요. 병원 간호사는 “집에 가셔서 천기저귀를 쓰시면 돼요.” 하고 말합니다. 집에 가서 천기저귀를 쓰면 된다는 이야기라면, 병원부터 천기저귀를 써야 하는 셈입니다. ‘병원은 아기를 돌보는 곳’이 아니니까 굳이 천기저귀를 안 쓰겠다 할는지 모르지만, ‘병원이 아기 몸을 걱정하는 곳’이라 한다면 종이기저귀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뿐더러, 천기저귀를 쓸 때에도 형광물질이 없는 천을 미리 삶아서 써야 하는 줄까지 알아야 합니다. 시골에서 살며 흙에서 거둔 먹을거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갓 태어난 아기한테 함부로 가루젖을 먹일 수 없습니다.

 곰곰이 돌아볼 하루입니다. 바삐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더욱 곰곰이 되새길 하루입니다. 왜 바쁘고 무엇 때문에 바쁘며 어떻게 바쁜 하루인가를 곱씹을 노릇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사랑하고픈 하루인가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자가용을 타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서 얼마나 더 빨리 더 느긋하게 길을 가는가 모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 얼마나 더 즐겁거나 더 아름다이 삶을 일구는가 모르겠습니다.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는 사람은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어 얼마나 더 착하거나 더 참다이 사랑을 꽃피우는가 모르겠습니다.


.. 두 아기가 좁은 뱃속에서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확실히 아기들끼리 조금은 맞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각기 양수가 담긴 양막 속에 격리되어, 마치 컵의 물에 떠 있는 코르크 마개처럼 둥둥 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이 아기를 충격에서 지켜주는 것은 물론, 출산 직전까지 그들의 자유로운 운동을 보장해 줍니다. 임신 후기에 이르면 골반이 요람처럼 아기를 감싸 주므로 아기의 움직임이 한결 둔해진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 건강한 아기는 산소가 부족하면 그때까지 축적되었던 다른 대사기구로 대체하여, 적어도 산소 때문에 악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 나갑니다 ..  (95, 345쪽)


 동생을 집으로 맞아들여 첫날을 보내는 첫째가 잘 자다가 새벽나절 잠꼬대를 합니다. 잠꼬대하는 첫째 옆에 누워 가슴을 살살 토닥이면서 소곤소곤 말을 겁니다. “착한 벼리 사름벼리, 예쁜 벼리 사름벼리 …….” 착한 마음으로 예쁜 삶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면서,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참말 개구지며 신나게 뛰놀아 곯아떨어진 날에는, 아직 석 돌을 꽉 채우지 못해 밤오줌을 알뜰히 못 가리는 아이인 만큼, 갓난쟁이 오줌기저귀를 때마다 가는 밤나절에 두 차례쯤 첫째를 살며시 안아다가 오줌그릇에 앉혀 쉬를 누이며 밤오줌떼기를 천천히 시켜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누나는 어린 누나대로 착하고 예쁘게 살아가고, 어린 동생은 어린 동생대로 착하고 예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어버이 된 사람부터 착하고 예쁘게 일굴 삶을 헤아리면서 더욱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는 내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삶이라면, 나는 내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삶입니다. 내 아이는 천천히 자라 이윽고 저희 아이를 새롭게 맞아들여 저희 아이 손을 굳게 잡고는 저희 삶을 씩씩하게 걸어가겠지요.

 저마다 고운 길을 찾습니다. 사람마다 고운 사랑을 찾습니다. 목숨마다 고운 넋을 어루만집니다. 이야기가 있는 내 삶과 우리 식구 삶을 따사롭게 어루만집니다.


.. 아기는 살덩어리도, 실물 크기의 인형도 아닙니다.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인간으로서 탄생을 눈앞에 둔 개성 있는 ‘인물’인 것입니다 … 아기는 출산을 위해서 당신과 함께 움직이는 당신의 동지로서, 단순한 승객이 아닌 것입니다 … 머리가 미끄러져 나오면 갑자기 아기는 공간과 공기에 노출됩니다. 어깨와 가슴이 전진하면서 몸 전체가 빠져나오게 되고 폐에 공기가 흘러들어가서 처음으로 폐포가 부풀어오릅니다. 그때까지는 젖은 비닐봉지같이 달라붙어 있던 축축한 폐의 표면이 열리며 아기는 제일성과 함께 이 세상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 질의 산도를 빠져나오는 23센티미터의 여행 도중, 아기는 입과 코를 통해서 폐나 기관지에서 나오는 점액을 흘리면서 나아갑니다.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아기보다 숨을 쉰다는 새로운 작업의 준비를 잘 갖추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 태어난 것은 아기뿐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가족이 태어난 것입니다 … 아기는 담요에 감싸서 선물처럼 어머니에게 건네야 할 물건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아 주기는 해도 마음 내키는 대로 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355∼357, 360, 370쪽)


 두 밤을 꼬박 보내야 하던 병원에 갇혀 지내던 동안 나와 옆지기와 첫째와 갓난쟁이가 들어야 하는 소리는 기계 움직이는 소리, 사람들 떠들거나 뛰는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새 건물 지으며 내는 소리, 텔레비전 소리 들이었습니다. 드디어 멧골집으로 돌아온 오늘 낮부터 듣는 소리는 뻐꾸기 우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 떨리는 소리, 구름이 흐르는 소리, 첫째 아이 손을 잡고 흙을 밟을 때에 풀잎이 서걱대는 소리입니다. 귀가 트이고 눈이 열리며 가슴이 뻥 뚫립니다. 반가이 찾아오신 외할머니하고 둘러앉아 도란도란 밥을 먹습니다.


 (2) 어떻게 사랑하면서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다만, 썩 좋아하지 않는다든지 그리 내키지 않지만 이끌리거나 휩쓸리기도 하곤 합니다. 때로는, 무섭거나 두려워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기도 합니다. 돈이 없다든지 적게 배운 나머지 내 꿈이나 뜻을 못 이루기도 한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다만, 맨 처음부터 맨 나중까지 내가 사랑하는 대로 살아가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처음에는 어수룩하게 휩쓸리거나 뒹굴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슬프거나 안타까이 휘둘리거나 나뒹굴 수 있어요.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바라봅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대로 느끼고 사랑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아는 만큼 볼 수 없습니다. 살아가는 만큼 보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만큼 볼 뿐입니다. 문화재를 볼 때이든 아기를 볼 때이든 짝꿍을 볼 때이든, 또 책을 읽거나 영화를 즐기거나 매한가지입니다.


.. 당신이 아기를 집에서 낳고 싶어 한다고 합시다. 그 생각을 주치의에게 전달하면 그의 반응이나 사고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자택에서도 분만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주치의가 특별히 의학적인 이유를 들어서 거부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임신하기 전에 주치의를 바꾸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 출산할 장소를 선택할 때는, 우선 출산이나 출산 직후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합니다 … 출산 시설을 선택할 시에는 건물이나 설비, 방의 분위기, 식사 메뉴 같은 것보다 의료진과의 진료상담이 가장 중요합니다. 친절한 대응으로 안락한 분위기를 느꼈다거나 혹은 의료진이 늘 바삐 쫓기느라 무뚝뚝했다는 것 등은 병의원을 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유가 될 것입니다 … 현재 대개의 병원에서는 출산 후 아기를 어머니, 아버지와 격리시킵니다. 출산 직후 아기를 안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든가, 혹은 안아 보지도 못하고 곧 데려가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병원의 의료진이 갓 태어난 아기와의 시간을 소중히 하는 가족에 대한 배려보다는, 그날에 끝내지 않으면 안 될 그들의 일과를 우선시키기 때문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혼잡한 산부인과 진료실에 들어서면 자기가 마치 아기를 제조하는 오토메이션 공장의 부품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여성도 적지 않습니다. 단 2분의 진찰 시간을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리는 혼잡한 외래에서는 치료법에 대한 질문이나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기분도 사그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  (46, 51, 52, 170쪽)


 사람은 목숨을 먹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짐승도 목숨을 먹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풀과 나무 또한 목숨을 먹으면서 목숨을 이어요. 숨이 붙을 때에는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다른 목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목숨은 오직 다른 목숨을 받아들일 때에만 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은 살덩이일 때가 있고 푸성귀일 때가 있습니다. 목숨은 물일 때가 있으며 바람일 때가 있습니다. 목숨은 흙이 되었다가 햇볕이 됩니다.

 사람은 목숨을 선물받으면서 목숨을 선물합니다. 어버이는 나한테 목숨을 선물로 주었고, 어버이로서는 내가 선물과 같은 목숨입니다. 나는 아이한테 목숨을 선물로 주었으며, 아이로서는 내가 선물과 같은 목숨입니다.


.. 골반을 흔드는 운동을 할 때는 등뼈를 단단히 유지하는 자세를 취하여야 합니다. 등뼈가 잘 유지되지 못하면 심하게 휘어져서 임신 후기가 가까워질수록 위험해집니다 … 임신 중 가장 기분 좋은 운동은 등뼈로부터 체중의 부담을 완전히 없애는 포즈입니다. ‘화가 난 고양이의 자세’라 일컫는 이 운동은 두 팔과 두 무릎으로 바닥에 엎드려서 골반을 흔드는 운동입니다 … 임신 중에는 특수한 호르몬의 분비로 장이 이완되어 활동기능이 저하하기 때문에 변비에 걸리기 쉽습니다 … 약에 의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신체에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알려오는 사인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합니다 … 임신 시간 중 처음과 끝의 3개월씩이 가장 지치기가 쉬운 때이므로, 이 시기는 무리하지 말고 가능한 한 휴식을 취하도록 합니다 ..  (128, 134, 138, 141쪽)


 목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요, 푸나무이며, 짐승입니다. 목숨에 따라 맑거나 싱그럽거나 넉넉할 햇볕이며 흙이고 물이자 바람입니다. 목숨이 목숨을 살립니다. 목숨으로 목숨을 잇습니다. 달리기를 잘해도 목숨이고, 두 다리가 잘리거나 처음부터 없어서 그저 누워만 지내더라도 목숨입니다. 갓난아기도 목숨이면서, 할아버지도 목숨입니다. 젊은 아가씨도 목숨인 한편, 젊은 사내도 목숨입니다.

 종이뭉치라 할 만한 책은 목숨이 아니라 여길 수 있습니다만, 종이가 되기까지 나무를 자르고 물을 쓰며 바람과 햇볕과 흙 기운이 깃들기 때문에 종이뭉치라 할 책 또한 얼마든지 목숨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더욱이, 종이뭉치라 하더라도 이 종이뭉치에 사랑과 믿음을 실었으면 얼마든지 목숨값을 하겠지요.


.. (출산은) 단순히 생리학적으로 어떠어떠한 일이 일어나며, 병원에서 어떻게 취급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묻는 것이라고 해야겠지요 … 분만은 매우 강렬한 체험으로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흐름에 맡겨 두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감동하여 열중할 수 있는 체험, 그것이 분만입니다. 분만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습니다 … 임신 중에 느끼는 대개의 불안은 자기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나 사무적인 대응에 대한 방어 반응에서 일어납니다. 불안에는 어엿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 여성은 원래 수동적인 환자로서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낳는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  (152, 157, 159, 196쪽)


 아이를 낳는 일이란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면서 살아가려 하느냐는 다짐과 같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낳으려 한다면 내 짝꿍을 어떻게 사귀며 서로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려 하느냐는 다짐하고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아이를 낳을 어버이로 살아가려 한다면 아이 앞에서 어떤 어버이로 지내며 ‘어버이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삶을 배울 아이’ 눈높이에서 내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느껴요.

 스무 살이 넘었대서 어른이 아니고, 혼인을 했대서 어른이 아니며, 아이를 낳았대서 어른이 아니에요. 아이를 둘 낳았거나 셋 낳았으니 더 큰 어른이 아니요, 나이를 더 먹었으니 더 나은 어른이 아니에요. 사람다이 살 때에 어른이고, 사람다이 살지 않으면 어른이 아닙니다. 착하게 살아야 어른이고, 착하게 살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에요. 참다운 삶을 사랑하고, 고운 삶을 아낄 때에 어른입니다. 참답지 않을 뿐더러 곱지 않게 살아간다면 어른이라 할 수 없어요.


.. 문제는 (병원에서 아기를 낳을 때에 회음부를 자른 다음) 봉합한 뒤의 통증이 아닙니다. 모두가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성기를 자르는 행위 그 자체인 것입니다 … 남성 중에는 자기 아내를 남에게 보여주기 아까운 물건으로서, 원하는 대로 섹스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혹은 사회적인 조력자로서 보이지 않게 손에 쥐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남성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나 아기를 갖게 된 것은 매우 기쁘지만, 배우자인 여성의 관심이 뱃속의 아기에게 향하면서 그로부터 떠나는 것은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 장시간에 걸쳐 어른에게 고주파를 들려주면 청각 장애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것처럼, 비록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초음파가 태아의 청각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  (160, 166, 232쪽)


 둘째를 낳은 병원에서는 아기를 숫자로 따지기만 했습니다. 무슨무슨 검사를 하고 무슨무슨 수치를 잽니다. 무슨무슨 항생제를 놓아야 한다 말하고, 무슨무슨 처치를 며칠에 걸쳐 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어머니 품을 가장 좋아할 뿐 아니라, 어머니 품에 안겨 가장 느긋한 줄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때맞추어 아기를 씻기면 될 일이 아니라, 가장 포근하면서 따사롭고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아기를 예쁘게 씻겨야 하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병원 의사나 간호사는 ‘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다 다른 고운 목숨’인 아기가 아니라, 날마다 똑같이 맞아들이는 ‘환자’로 아기를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고운 목숨으로 아기를 바라본다면, 아기 스스로 기운을 내어 바깥누리로 나오라고 북돋우겠지요. 아기 스스로 기운을 내어 작은 입을 쪼물거리며 어머니 젖꼭지를 빨라며 북돋울 테지요. 아기 스스로 기운차게 똥을 누고 오줌을 누라며 북돋웁니다.

 병원에서 패혈증을 들면서 한 주 더 입원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옆지기와 나는 아이한테는 항생제와 병원 시설이 아닌 따스한 어버이 사랑과 포근한 보금자리가 가장 좋은 손길이라고 이야기하며 뿌리쳤습니다.


 (3) 어떻게 생각하면서


 나중에 아이한테 물려주어야 할 책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아기가 온다》(하늘출판사,1995)를 읽습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 한 권 더 장만합니다. 안타깝게 판이 끊기고 말아 헌책방에서만 찾아보지만, 헌책방이라 하더라도 이 책을 찾아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기가 온다》는 책이름 그대로 “아기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한테 찾아오는 아기가 어떤 목숨인가를 올바로 헤아리면서 알아차리자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여성들이 자기 몸에 관한 정보를 얻거나 자기들에게 행해지는 의료의 처치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6쪽).”는 말마따나, 귓결에 듣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내 몸을 생각하거나 사랑하면서 받아들일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 수태한 난자가 분할하여 난관을 통한 긴 여행 끝에 자궁에 도착하여 착상해서 아기로 성장해 가는 것을 생각하면 그 진행과정이 얼마나 섬세하고 복잡한 것인지, 또 어머니의 혈액 속에 감돌고 있는 화학물질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는 흔히 복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 당신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 않고 연기만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니코틴은 당신의 혈액 속에 녹아들어 아기의 몸으로 흘러듭니다 … 아기는 끽연을 한다 하지 않는다를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기를 위해서 선택을 대신한다는 사실도 마음속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것입니다 … 예방접종은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임신 4개월까지는 절대 받아서는 안 됩니다 … 복잡한 도시 내에서 드라이브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른 차의 배기가스를 마시게 됩니다 ..  (105∼108, 116, 150쪽)


 초등학교에서도 성교육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교육을 한다지만, 성교육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하는지는 더욱 모르겠습니다. 성교육을 다루는 이야기책도 매한가지입니다. 성교육은 왜 하고, 성교육 값어치는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사람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짐승도 두 갈래로 나뉩니다. 푸나무도 두 갈래로 나뉩니다. 때로는 한몸에 암컷 노릇과 수컷 노릇이 모두어지곤 하지만, 거의 모든 짐승과 푸나무는 암수가 다릅니다. 암컷 짐승과 수컷 짐승이 있으며, 암꽃과 수꽃이 있어요. 암술과 수술이 나뉩니다.

 사람은 남성과 여성, 또는 여성과 남성으로 나눕니다. 이밖에, 날씨와 자연에 따라 살결과 몸크기와 머리카락 빛깔 들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모양새가 다르더라도 똑같은 사람이지만, 다 똑같은 사람이면서 남성과 여성이 또렷하게 갈려요. 남성은 씨를 내는 사람이고 여성은 씨를 받는 사람입니다. 남성한테서 나온 씨를 받는 여성은 열 달에 걸쳐 고이 품으며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도록 몸속에서 돌봅니다. 《아기가 온다》라고 하는 이야기책은 ‘아기를 낳을 어머니가 될 사람들이 알거나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새길’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기를 낳을 때 몸을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 아기를 낳기까지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기가 몸속에서 자라는 동안 뼈나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기를 안은 어머니는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병·의학 처방이란 어떠한 일인지, 아기를 낳는 어머니하고 마주할 아버지는 어떠한 마음이어야 하는지 들을 골고루 차분히 들려줍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아기가 온다》는 아기를 처음 맞이하는 사람한테든 아기를 여럿 맞이한 사람한테든, 또 이제는 아기를 더 맞이하지 못하지만 딸아이나 아들아이를 둔 나이든 사람한테든 고마운 이야기동무라 할 만합니다. 아기는 나(어머니)도 낳을 테지만 내 아이(딸)도 낳거든요. 내 아이가 낳은 아이(딸)도 무럭무럭 자라서 아기를 낳겠지요. 꾸준히 대물림하면서 이어갈 ‘아기낳이 이야기’를 담는 《아기가 온다》예요.

 그러니까, 이 책은 아기 낳을 어머니가 배가 불룩해져서 읽기도 할 책이지만, 달거리를 하는 여성이나 사춘기를 거치며 ‘어른’이라는 자리에 들어설 남성 또한 함께 읽으면서 ‘참다운 성교육’을 받도록 돕는 이야기책이기도 해요.

 글로만 읽는대서 아기 낳는 일과 흐름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모든 성교육이란 사람교육이 되고 사랑교육이 되어, 아기를 아끼며 보살피는 나날을 붙안게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진통을 느꼈으면 몸을 피할 것이 아니라 진통과 함께 몸을 열어 갑니다 … 고양이의 분만을 관찰하면 숨을 크게 들이쉰 채 한참 동안 배에 힘을 주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배에 힘이 주어지는 감각이 오면 숨을 멈추고, 다시 조금 숨을 들이쉰 다음에 배에 힘을 주십시오 … 분만의 본질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 무릎을 잘 벌리고, 자궁이 등뼈에서 배 쪽으로 기울어지면 골반 내의 태아에게 공간적 여유가 생깁니다 … 기는 듯한 자세로 배가 앞으로 늘어진 자세를 취하면, 태아도 제대로 등뼈에서 떨어지므로 압박당하는 일이 적어집니다 … 자궁구가 8센티미터 크기로 열린 시점의 이행기라고 생각하십시오. 덥다 싶으면 추워지고, 그런가 하면 또 더워지고 뺨은 홍조를 띠고 눈은 빛납니다. 또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 쉬지 않고 트림이 나오거나 기분이 나쁘고 토합니다. 발이 얼음처럼 차갑거나 떨림이 심해서 멎지 않습니다 … 갑자기 이제는 글렀다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정이 싹터서, 어린애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자궁구가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배에 힘주기를 계속하면 자궁구가 열리기는커녕 오히려 붓게 되어서 아기가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배에 힘주기를 억제하는 것이 보다 현명합니다 … 제1기 끝무렵 10센티미터 크기로 열리면 자궁과 질이 하나가 되어 산도를 형성합니다. 드디어 배에 힘을 줄 멋진 순간이 온 것입니다. 흔히 제2기는 험난하고 살과 뼈를 깎아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시기라고 말합니다만, 당신은 그 폭풍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통 때마다 3∼5회씩 배에 힘을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함부로 힘을 주면 쉽게 탈진이 되는데다 초조해지고, 속히 아기를 낳으려는 생각에서 무리를 하게 됩니다 … 회음절개를 피하고 싶다면 발로 일보 직전 단계에서 숨을 멈추고, 힘을 주는 대신에 촛불을 불어서 끌 때와 같은 호흡을 하면 아기가 무리 없이 빠져나옵니다 … 힘주어 밀어내지 않고 호흡으로 조직이 늘어나게끔 조절한다면 회음절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 바야흐로 자궁구가 완전히 열렸을 무렵에 20분이나 혹은 그 이상 쉴 시간을 갖게 될 경우가 있습니다 … ‘고맙게도 쉴 수 있는’ 이러한 시간은 태아가 골반에 깊이 들어와 있지 않을 때에 나타납니다. 태아의 머리가 좀더 아래로 내려오기까지 임산부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말고 기다리면 좋을 것입니다. 임산부가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하고 있는 동안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기는 자연히 내려옵니다 … 아기든 탯줄이든 잡아당겨서는 안 됩니다. 아기의 생명줄 역할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궁벽에서 태반이 떨어져 나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 아기를 나오게 하는 것은 당신도 임산부도 아닙니다 … (아기가 태어난 뒤) 20분이 지났는데도 태반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나서 천천히 크게 숨을 내쉬게 합니다. 몇 차례 하다 보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 탯줄을 빨리 묶어 버리면 그곳에 남아 있던 혈액이 흘러나올 수가 없으므로 여전히 태반이 크고 단단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되어서 역할을 끝내고서도 자궁벽에서 떨어져 나오기가 어렵겠지요 ..  (201, 219∼220, 274∼277, 294, 307∼312, 334쪽)


 산부인과는 아기를 받는 곳이 아닙니다. 조산소 또한 아기를 맡는 곳이 아닙니다. 아기를 받거나 맡는 곳은 집입니다. 내 보금자리가 아기를 받는 곳이며, 내 삶터가 아기를 맡는 곳이에요.

 사람들은 걱정스럽다면서 집이 아닌 산부인과나 조산소를 찾아갑니다. 아기를 받거나 맡기에 마땅하거나 알맞다고 느껴 집이 아닌 산부인과나 조산소를 찾아갑니다. 그러면,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집이 아기를 맞아들이기에 걱정스럽지 않도록 집을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다스려야 해요.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받더라도 며칠 지나지 않아 집으로 와야 하고, 조산소에서 아기를 다루거나 보살피더라도 이내 집으로 돌아와야 해요. 아기가 훨씬 기나긴 나날을 보내야 할 뿐 아니라, 온갖 기쁨과 슬픔을 제 어버이와 함께 누리는 곳이 집입니다. 어버이 될 사람은 집을 마련할 때에 ‘내 일터하고 가까운 곳’이라든지 ‘문화와 여가를 누리기에 좋은 곳’이라든지 ‘집값이 싼 곳’이라든지 ‘부동산이 될 만한 아파트’가 아니라, 갓 태어나 함께 살아갈 아이하고 함께 보낼 나날을 웃고 울며 떠들기에 마땅하거나 알맞은 터전으로 살펴서 마련해야 합니다.

 이야기책 《아기가 온다》는 한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할 만한데, 이 가운데 새로운 목숨을 새로운 마음이 되어 새로운 사랑으로 보듬자고 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아기를 걱정없이 낳기만 하’면 끝이 될 아이낳기가 아니요, 아기를 배기 앞서 내 짝꿍하고 어떻게 지내는가를 돌아보아야 하는 줄을 이야기하고, 아기를 배기 앞서를 넘어 여느 때에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기를 맞이할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 자라야 합니다. 아기를 받아들일 아버지는 어린 날부터 아버지로 커야 합니다. 성교육이란 ‘어머니 되기 배움’이자 ‘아버지 되기 배움’입니다. 남자답게와 여자답게가 아니라 아버지답게와 어머니답게입니다. 남자다운 길을 걸을 사람이나 여자다운 길을 거닐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어린 날’부터라 해서 아이들이 어린 날부터 애늙은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제가 ‘사내’요 ‘계집’인 줄을 느끼면서 제 몸을 알뜰히 여기며 곱게 사랑하는 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서로를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푸대접해서는 안 되고, 서로를 보듬거나 어루만지거나 어깨동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 임산부의 출산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중한 체험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산부인과에서) 임산부 자신이 출산하는 동안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 아무리 우수한 기계가 있다 하더라도 아기를 낳는 것은 임산부입니다 … 모니터 같은 기계가 망가진다 해도 아기를 낳는 일에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 임산부에게 스스로 약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만큼 출산에 있어서 나쁜 영향도 없습니다 … 누구를 위한 출산인지를 염두에 두십시오. 병원의 스태프나 기계들은 바로 임산부와 아기를 돕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 아기를 어디에서 낳을지, 어떻게 낳을지는 당신 이외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결단입니다 … 기술이 출산의 체험을 망쳐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 기계가 따뜻한 애정이 담긴 인간관계의 대행을 맡아 버리면 인간관계는 파괴되고, 대신 그 자리는 기계가 차지하게 됩니다 … 30년 전이라면 자연에 맡겼을 출산의 흐름이 오늘날은 산부인과에 의해 관리되고, 그것을 위한 방책이 줄기차게 모색되고 있습니다 … 임산부 전원에게 의례적으로 점적을 하는 병원의 대부분이, 임산부는 가만히 침대에 묶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 회음절개로 인해서 생기는 통증은 제2도 열상일 때의 통증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 모성은 학습을 통해 익히는 것이 아니라, 산후 감정의 고양과 함께 당신 자신의 일부로서 정착시켜야 할 것인데, 이것을 고려해 주는 병원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 아직도 많은 병원에서는 출산 후의 몇 시간은 임산부와 신생아를 의학적으로 처치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 검사를 행하여, ‘정상’으로 판정될 때만이 사회생활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는 구조라고나 할까요? ..  (300∼306, 326∼327, 332∼333, 368, 370쪽)


 한국에도 산부인과는 많고 의사는 많으며 전문가 또한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한테 찾아오는 아기를 믿고 사랑하면서 이야기 한 자락 따사로이 풀어내는 사람은 퍽 드물다고 느낍니다. 병·의학 지식만 늘어놓는 이야기가 아니라, 병·의학 지식을 삶으로 옳게 엮어 살가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또한, 의학 교재나 전공 과목 수험서 지식이나 정보에 얽매이는 ‘아이낳기’가 아닌, 아이와 어머니를 아름다이 사랑할 줄 알며, 아이 몸과 어머니 몸을 착하게 돌볼 줄 아는 슬기로운 빛깔과 무늬를 아로새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옆지기와 나는 《아기가 온다》를 차근차근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한 권을 더 장만했습니다. 한 권은 우리 집에 남겨 아이가 무럭무럭 큰 뒤에도 돌아보도록 하고, 다른 한 권은 아이가 무럭무럭 큰 다음에 ‘첫째가 자라고 살아온 나날을 밝혀 적은 육아일기’에 얹어서 선물로 줄 생각입니다. 여기에 《자연출산법》(고오다 미쓰오 씀)을 하나 더 얹어서 선물로 주면, 어버이로서 조금이나마 할 몫을 한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둘째가 태어났으니 둘째 몫으로 한 권을 더 사 놓아야겠군요. 딸아이인 첫째뿐 아니라 아들아이인 둘째도 아이를 어떻게 낳고 아이를 낳기까지 어머니 될 사람을 어떻게 아끼며 사랑해야 하는가를 담은 책을 알뜰히 읽어 새겨야 아름다우니까요.


.. 산실의 조명을 낮추어서 침착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 온화한 출산은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화한 출산은 진통기를 지날 무렵이나 산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용하고 침착한 환경으로 바꾸어 주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 아기를 위한 배려 깊은 환경이란, 즉 당신에게 포근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 빛이 너무 강렬하면 당신도 불안해질 뿐만 아니라, 아기도 눈부신 전등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온화한 출산이 되기 위해서는 불빛을 필요 최저한으로 억제해야 합니다 … 이제껏 아기는 비인간적인 병원의 눈부신 광선에 노출되어서 마치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듯이 취급되어 왔습니다 … 인생은 기쁨으로 충만해 있고, 태어나는 것 또한 환희입니다. 출산은 그러한 환희에 찬 체험인 것이지요 …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서 아기를 안아올리는 것은 가장 멋진 출산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 온화한 출산을 하는 곳에서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어루만져 줍니다. 굳이 마사지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손이 움직여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아기가 수유하는 동안 줄곧 젖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세 좋게 먹고 나서 잠시 쉬고, 또 마시기 시작하는 것은 아기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지요 … 아기가 6개월경까지 필요로 하는 것은 모유인데, 음식물로 대신 공급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이 못 됩니다 … 분유는 그 어떤 제품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모유를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358∼360, 402∼403, 405쪽)


 《아기가 온다》를 읽다 보면, 왼쪽과 오른쪽 빈자리에 깨알같은 글씨로 ‘아기를 낳은 여느 어머니’ 생각을 짤막하게 붙입니다. 여느 어머니들 목소리를 생생하게 귀담아 들으며, 나 또한 여느 어버이로서 내 아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줄 수 있을까 어림해 봅니다.


-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인류 역사 이래 내가 아기를 낳는 최초의 인간인 양 자랑스럽습니다. (38쪽)
- 자연스럽게 출산할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한 준비도 돼 있습니다. 내가 희망하는 대로의 출산은 병원을 통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1쪽)
- 의사를 만나기까지 대기실에서 세 시간이나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데리고 온 임산부는 정말로 딱해 보였습니다. 그곳에는 망가진 목마 이외에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거든요. (61쪽)
- 아기는 몇 천 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탄생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임신한 사실로 이렇게 일대 사건처럼 소동을 피우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165쪽)



 둘레에서는 아이를 낳았으니 돈을 더 벌어야 하지 않느냐 하고 말하지만, 아버지인 나는 달리 생각해요. 아이를 낳았으니 돈보다 사랑을 아이하고 나눌 수 있도록 아이랑 더 오래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한결 따스한 목소리로 고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하루하루를 빛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은 앞으로 언제든지 벌 수 있어요. 돈이야 무슨 일이든 해서 언제라도 벌 수 있어요. 그러나, 아이가 한 살일 때는 꼭 한 해뿐이에요. 아이가 두 살일 때도 꼭 한 해뿐이에요. 아이가 세 살일 때나 네 살일 때도 한 해뿐입니다. 나는 아이 온 하루를 온통 아이하고 보낼 수 없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아이와 더 오래 더 깊이 사랑을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아이가 먹을 밥을 손수 마련하고, 아이가 입는 옷을 손수 빨래하며, 아이 가슴을 토닥이며 새근새근 재우고 싶어요. 같이 뛰고 같이 놀며 같이 일하고 같이 밥먹으며 같이 잠들고 싶어요.

 첫째가 태어났을 때에도, 둘째가 태어났을 때에도,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꼭 한 가지만 바랐습니다. 부디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 다오. 씩씩하고 튼튼하며 바르게 자라 다오. 첫째 네 이름은 ‘사름벼리’란다. 둘째 너는 ‘산들보라’란다. (4344.5.26.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걸레질 천재 어린이


 걸레질을 잘 하는 어린이를 가리켜 ‘걸레질 천재 어린이’라 일컫는 어른은 없다. 심부름을 잘 하는 어린이한테도 마찬가지이다. 동생을 잘 보살피면서 사랑하는 어린이를 두고도 매한가지이다.

 무척 일찍 책을 읽는다든지, 꽤 어린 나이에 영어를 읊는다든지, 한자 지식이 있거나 자동차 이름을 줄줄 꿴다 할 때에는 으레 ‘천재’이니 ‘영재’이니 하는 이름을 붙인다. 한글을 일찍 떼었다면 ‘신동’이라고도 이를 만하겠지.

 아이는 즐겁게 여겨 할 수 있고, 아이는 어른이 시키니 할 수 있다. 아이는 퍽 어린 나이일 때부터 책을 읽고 싶었을까. 아이는 꽤 이른 나이일 때부터 한국말 아닌 영어를 배우거나 한글 아닌 한자 모양을 바라보고 싶었을까.

 우리 집 아이가 세 살 적부터 호미를 손에 쥔 일을 떠올린다. 우리 집 아이가 세 살일 때에 시골로 살림을 옮겼기 때문에, 우리 집 아이는 세 살 적부터 호미를 손에 쥔다.

 우리 집 아이는 돌이 되기 앞서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다룰 줄 알았다. 우리 집 아이는 돌박이가 되기 앞서 제 첫 사진‘작품’을 찍었다. 아이 어버이가 사진을 찍으며 일하기에 사진기가 늘 방에서 굴러다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거나 책상이나 물건을 닦을라치면, 저도 걸레질을 하겠다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아이 걸레질은 아주 서툴 뿐 아니라, 아이는 조금 문지르다가 그만두곤 한다. 그렇지만 아이가 손에 쥘 만한 작은 걸레 하나를 빨아 슬며시 내민다. 아이는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하다. 무척 차분한 얼굴로 걸레질에 깊이 빠져든다. 아이는 아이 힘닿는 만큼 걸레질을 한다.

 생각해 본다. 어른은 혼자서 대여섯 시간 쉬지 않고 걸어서 제법 높은 멧봉우리 하나를 오를 수 있다. 어린이는 이렇게 할 수 없다.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라면 꿈조차 꿀 수 없다. 네 살 어린이가 조금만 걸레질을 한다면, 네 살 어린이 힘과 몸에는 이만큼이 딱 알맞기 때문이다.

 젓가락을 쥐고 숟가락을 든 어버이 앞에서 젓가락을 쥐려 애쓰고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으려 하는 아이를 헤아린다. 아이는 사랑을 배울 수 있고, 지식을 섬길 수 있으며, 삶을 사랑하거나 돈을 꿈꿀 수 있다. 어버이 하기에 따라 아이 삶은 크게 달라지거나 거듭나거나 흔들린다.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못한다. 집에서 어린 날 어버이하고 뒹굴던 나날 그대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며 제 길을 찾는다. (4344.5.26.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딸기꽃 지다


 퍽 일찍부터 피어난 딸기꽃이 하나둘 진다. 딸기꽃은 이제 한창 지니까, 딸기열매는 이제부터 무르익으려 하며, 딸기씨가 송송 박힌 딸기열매를 맛보려면 유월이 지나야 한다. 햇볕을 쬐며 비바람을 맞고 흙에 뿌리를 내리는 딸기는 첫여름 맛난 먹을거리요, 하얀 딸기꽃은 봄을 부르는 숱한 예쁜 길동무 가운데 하나이다.

 봄을 부르던 숱한 꽃은 일찌감치 피었다가 일찌감치 진다. 그러나 딸기는 무척 일찍부터 꽃을 피우면서 꽤 늦게까지 꽃잎을 닫지 않는다. 어쩌면 무리지어 흐드러지게 피니까 몹시 오래도록 꽃을 피운다 여길 만하다. 딸기넝쿨을 보면 일찍 꽃을 피우는 데가 있으면서 느즈막하게 꽃을 피우는 데가 있으니까. 한꺼번에 몰아치듯이 피어나지 않는 딸기꽃이요, 그러니까 한꺼번에 몰아붙이듯이 맺히지 않는 딸기열매가 된다.

 딸기꽃은 작고 하얗다. 딸기씨는 더 작으며 까맣다. 딸기열매는 푸른빛에서 빨간빛으로 바뀐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은 뒤에는 딸기넝쿨만 덩그러니 남아 흙을 단단히 붙잡는다. 열매를 얻은 다음에는 넝쿨을 걷어낼 수 있을 테지만, 굳이 넝쿨을 걷어내지 않으면 겨우내 들자락 흙이 고스란히 살아남아 추운 겨울을 난 이듬해에는 말라죽은 넝쿨이 거름이 되어 새 딸기풀이 돋고 딸기꽃이 피며 딸기열매가 맺을 수 있다. (4344.5.26.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