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67] 찾아오시는길, BUS

 회사나 가게나 책방으로 찾아오는 길을 알려주는 누리집 자리는 거의 모두 ‘오시는 길’이나 ‘찾아오시는 길’이나 ‘찾아오는 길’이나 ‘오는 길’과 같은 이름을 붙입니다. 때로는 ‘MAP’처럼 영어를 알파벳으로 적바림하는 곳이 있기도 하지만, 이 자리만큼은 한결같이 쉽고 바르게 적바림하곤 합니다. 그런데, 길그림을 그려 넣는 자리에서는 ‘버스’를 ‘BUS’로 적는군요. 살뜰히 기울인 마음을 마무리까지 알뜰히 기울였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4344.5.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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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신랑 온 겨레 어린이가 함께 보는 옛이야기 6
홍영우 지음 / 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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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옛이야기를 요즈음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 홍영우, 《생쥐 신랑》(보리,2011)



 대안학교가 아닌 자유학교인 이오덕학교에서 아이들하고 하루에 한 시간씩 책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제는 그림책 《생쥐 신랑》을 함께 읽었습니다. 아이들한테 그림을 보여주고 글을 읽습니다. “삼 년”은 “세 해”로 고쳐서 읽고, “만나기로 한 날이 온 거야”는 “만나기로 한 날이 왔어”로 고쳐서 읽으며, “제일”은 “가장”으로 고쳐서 읽습니다.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은 《생쥐 신랑》인 만큼, 오늘날 아이들한테 읽힐 때에는 오늘날 아이들이 이야기와 말과 줄거리와 넋을 골고루 알뜰히 받아먹을 수 있게끔 한껏 추슬러야 한다고 느낍니다. 글줄이 아주 매끄럽지 않다면 이모저모 손질해서 읽습니다.

 그림책을 다 읽어 주고 나서 아이들 느낌을 듣습니다. 아이들은 ‘셋째 딸’이 ‘착한 일’을 무얼 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셋째 딸이 한 착한 일이란, 생쥐 임금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할 때에 눈물을 흘린 일만 나오는데, 고작 이렇게 눈물을 흘렸다고 ‘사람으로 되살리는’ 일이 옳은가 하고 궁금해 합니다. 아이들은 ‘셋째 딸’이 ‘생쥐인 신랑을 부끄러이 여겨서 어머니 아버지한테뿐 아니라 언니한테도 말하지 못하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처음부터 생쥐인 신랑을 드러내지 않은 셋째 딸이 왜 착한지를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생쥐 신랑한테 ‘쥐수염이 없다’고 짚습니다. 그림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참말 아이들 말대로 생쥐 임금한테 쥐수염이 없습니다. 다른 쥐한테도 수염을 안 그렸나 싶어 책을 펼칩니다. ‘신하 생쥐’와 ‘남자 생쥐’한테는 쥐수염을 그리고, ‘임금 생쥐’와 ‘여자 생쥐’와 ‘아이 생쥐’한테는 쥐수염을 안 그렸습니다.

 아이들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수탉과 암탉’ 그림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벼슬과 깃이 너무 작다고 말합니다. 이오덕학교 짐승우리에는 들판에 풀어놓고 키우는 닭이 있고, 아이들은 날마다 이 닭한테 먹이를 손수 줍니다. 날마다 닭을 보고 살아가니까, 그림책에 나오는 닭이 제대로 그린 닭인지 ‘예쁘장하게만 그린 닭’인지 금세 알아챕니다. 암탉은 수탉보다 몸이 작아야 하지만, 그림책에는 암탉과 수탉 크기가 엇비슷합니다. 게다가 암탉을 ‘하얀 닭’으로 그렸어요. 엉터리라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맨 처음 그림에서는 암탉을 ‘누런 닭’으로 그렸거든요. 가난한 시골집을 그린 첫 쪽 그림에서는 ‘누런 암탉’이었으나 맨 마지막에는 ‘하얀 암탉’이 되었으니 엉터리입니다.


.. 옛날 옛적 어느 가난한 집에 딸 셋이 있었어. 얼마나 가난했던지 나이가 차도록 시집을 못 갔더래. 하루는 부모가 딸들을 모아 놓고 말했어. “얘들아, 이제 집 걱정일랑 말고 넓은 세상에 나가 재주껏 신랑을 얻어서 살아라.” … 첫째와 둘째는 넓은 들을 지나 큰 마을로 갔어. 첫째는 잘생긴 신랑을 만나고 둘째는 돈 많은 신랑을 만나 연지 곤지 찍고 혼례를 올리고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대 ..  (2, 7쪽)


 아이들이 그림책을 본 느낌을 이야기하고 나서, 저마다 느낌글을 짤막하게 쓰기로 합니다. 아이들마다 느낌글을 읽고, 저도 느낌글을 적어서 읽습니다. 제 느낌글은 이렇습니다.

 ‘언니들이 저희 신랑을 자랑하건 말건, 스스로 좋아하며 함께 살아가는 신랑을 아버지 어머니한테 기쁘게 인사시켰으면, 언니들도 다른 생쥐들도 한결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생긴 짝꿍이나 돈 많은 신랑보다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짝꿍이 더 좋다고 한다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생쥐 신랑이 임금님 생쥐가 아니라 농사꾼 생쥐로 그려 보였을 때에 한결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생쥐 신랑》 그림결이 퍽 귀엽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귀엽다고 느끼기만 할 뿐 딱히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귀여운 그림결을 들여다보지만, 막상 줄거리를 살피며 느낌을 받아들이려 할 때에는 재미없다고 말합니다.

 책이야기 나누는 교사로 말하기 앞서, 집에서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히는 어버이로서 생각해 봅니다. 나 또한 《생쥐 신랑》을 마주했을 때에, 예쁘장하기만 한 그림이 그닥 내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예쁘장하게만 그리면서, 정작 제대로 담아야 할 그림을 제대로 못 담습니다. 셋째 딸이 깊고 거친 멧자락을 헤매다가 쓰러졌다고 하는데, 길바닥에 쓰러진 셋째 딸은 옷이며 신이며 얼굴이며 하나도 ‘흙먼지로 지저분해지거나 땀이 흐르거나’ 하지 않습니다. 가난해대서 짚신을 신는 세 자매인데, 깊고 거친 멧자락을, 오늘날처럼 잘 닦인 길이 아닌 바위와 자갈이 가득했을 멧길을 걸었다면 몽땅 해지거나 닳았겠지요. 아마 하루만에 다 해졌으리라 봅니다. 예쁜 그림도 좋지만, 옳게 담을 그림이 아이들한테 훨씬 좋으리라 봅니다. 아이들은 쥐수염 하나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보는데,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힐 어른들은 너무 성기게 그림을 그리고 맙니다.

 더욱이, 가난한 집 딸들이라면서, 이 가난한 집 딸들이 입은 옷은 파랗고 노랗고 푸르고 빠알간 빛깔이 들어간 옷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딸한테는 예쁘장한 옷을 입힐 수 있을 테지만, 어딘가 께름합니다.

 생쥐이든 멧쥐이든 시궁쥐이든, 암컷이건 수컷이건 새끼이건 수염이 있습니다. 수염이 없으면 쥐가 아닙니다. 수염 없는 고양이나 여우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수염 없는 쥐를 그리면서 ‘임금님 생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셋째는 자기를 살려 준 생쥐 나라 왕을 신랑으로 맞아 오순도순 잘 살았어. 그러다 보니 삼 년이 후딱 지났지. 언니들이랑 다시 만나기로 한 날이 온 거야. 셋째는 생쥐 신랑한테 말하고 친정으로 갔어. 먼저 온 언니들이 서로 다투어 신랑 자랑을 하는데 셋째는 아무 말도 못했지. 신랑이 생쥐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거야 … 언니들이 서로 자기 신랑이 더 잘났다고 우겨대니 어머니가 나서서 말했어. “누가 제일 신랑을 잘 만났는지 궁금하구나. 집으로 돌아가서 신랑 솜씨로 떡을 해 오너라.” ..  (12, 14, 16쪽)


 그림을 더 들여다보면, ‘임금님 생쥐’는 떡을 하지도 베를 짜지도 않습니다. 모든 일을 아랫사람한테 시킵니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신랑 생쥐이지, 일을 잘하거나 듬직한 신랑 생쥐는 아니에요. 옛이야기를 오늘 아이들한테 들려준다 할 때에, 이 그림책 《생쥐 신랑》은 ‘돈 많고 잘생긴 짝꿍’을 만나면 그저 좋기만 하다는 줄거리를 들려주겠구나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가난한 어버이는 ‘잘생긴 신랑’이랑 ‘돈 많은 신랑’을 자랑하는 첫째 딸하고 둘째 딸을 일깨우고자 여러 가지 심부름을 시킨다지만, 셋째 딸 또한 돈과 권력으로 심부름을 치를 뿐이요, 맨 마지막에는 ‘잘생기고 돈 많으며 권력까지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헤벌레 하고 웃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렇게 하면, 첫째 딸이랑 둘째 딸 어설픈 겉치레를 일깨우는 뜻조차 흐리멍덩해지고 맙니다.

 생쥐 신랑은 다른 생쥐하고 서로 힘을 모아 떡을 찧고 베를 짜야 옳습니다. 서로 도와 일을 하는 생쥐 신랑은 바지런한 농사꾼이어야 옳습니다. 바지런하면서 착하고 참다운 생쥐 신랑이기 때문에, 이러한 생쥐 신랑을 믿음직하게 사랑하는 셋째 딸이어야 옳습니다. 겉모습이나 겉치레에 휘둘리는 셋째 딸이 아니라, 돈이 없든 이름이 없든 힘이 없든 수수하면서 아리땁게 살림을 꾸리는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옳습니다.


.. 마음씨 착한 셋째는 생쥐 신랑을 친정에 데리고 가기로 했어. 수많은 생쥐들이 생쥐 신랑을 가마에 태우고 길을 떠났지. 친정으로 가는 길에 큰 냇물이 흐르고 있거든. 그런데 가마를 멘 생쥐 하나가 냇물을 건너다 그만 퐁당 빠졌어. 그 뒤를 따라 다른 생쥐들도 퐁당, 퐁당……. 생쥐 신랑이 탄 가마도 눈 깜빡할 새 물에 떠내려가 버렸지. 셋째는 신랑이 물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슬피 울었어 ..  (25, 27쪽)


 옛이야기는 옛날 옛적부터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틀 그대로 읽힐 때에도 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이야기란 하루 지나고 한 해 흐르면서 조금씩 살을 붙이거나 갈고닦으면서 가다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아이들한테 옛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는 오늘날 아이들이 씩씩하며 착하고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보여줄 만하게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이 생쥐 신랑 이야기를 ‘다부진 농사꾼 생쥐’ 모습으로 그려서 아예 새로 짜야 한껏 빛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다부진 농사꾼 생쥐는 가마에 타고 길을 걷는 생쥐가 아니라, 이웃 농사꾼 생쥐하고 즐거이 어깨동무하면서 길을 걷는 생쥐가 되겠지요. 이들 농사꾼 생쥐는 저희 앞길을 가로막는 무시무시한 냇물 앞에서 서로 슬기와 힘을 모아 울력으로 다리를 놓겠지요. 서로서로 땀흘려 다리를 놓고, 이 다리는 생쥐들뿐 아니라 셋째 딸도 함께 건넙니다. 이렇게 서로 오붓하게 가난한 집으로 찾아가고, 셋째 딸이 생쥐들을 어깨에 올리고 등에 업으며 머리에 올리면서 집으로 들어설 때에 ‘하늘에서 갑작스레 따스한 손길을 베풀어 사람으로 바꾸어 줍’니다. 셋째 딸이 사립문을 들어설 때에는 이들 생쥐가 모조리 사람으로 바뀝니다. 셋째 딸은 ‘사람이 아닌 생쥐를 신랑으로 맞이해서 오순도순 살았다’고 떳떳하게 밝히려 하지만, ‘하늘나라 님은 굳이 이렇게 안 해도 된단다’ 하고 귓속말을 들려주고, 셋째 딸은 이 말을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아버이와 어머니 앞에서는 ‘우리 신랑은 생쥐예요. 생쥐이건 들쥐이건 씩씩하며 믿음직한 신랑이에요.’ 하고 말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허허, 신랑이 쥐띠인가 보구나!’ 하고 말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 셋째는 신랑과 함께 황금 가마를 타고 친정으로 갔어. 부모는 듬직한 사위를 보고 얼씨구나 좋아했지. 둘은 부모를 모시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대. 신랑이 본디 생쥐였다는 건 쉿! 비밀이야 ..  (33쪽)


 참다우며 착하고 어여쁜 사랑을 꽃피우는 셋째 딸이요, 언니들하고 다투지 않으며 자랑 또한 하지 않는 셋째 딸로 그려야 비로소 ‘마음 착한 뜻을 하늘이 알아보고 고마운 선물을 내려주’는 흐름이 옳게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가난한 멧골집에서 딸아이를 알뜰히 돌보며 살아온 어버이라면, 당신 아이들이 돈이나 얼굴이나 이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사랑스러우며 어여삐 살아갈 길을 찾기를 바라 마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한국 옛이야기이든 일본 옛이야기이든 중국 옛이야기이든 새롭게 꾸며서 새 나라를 살아가는 새 아이들한테 들려줄 때에는, 아이들이 착한 사랑과 맑은 믿음과 고운 나눔을 받아먹도록 이끌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4344.5.4.물.ㅎㄲㅅㄱ)


― 생쥐 신랑 (홍영우 글·그림,보리 펴냄,2001.4.20./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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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5.3. 

이제 저만치 혼자서 씩씩하게 뛰어가서 기다려 주는구나. 

 

네 두 다리로 마음껏 달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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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 하진이 보리피리 이야기 8
박형진 지음 / 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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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어른이 되어 삶얘기를 들려줄 때에
 [책읽기 삶읽기 56] 박형진·박지훈, 《갯마을 하진이》(보리,2011)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며 어른이 됩니다. 아이일 때에는 동무들끼리 왁자지껄 떠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홀로 가슴에 묻으며 지내는 이야기가 있곤 합니다. 어른이 되어 글을 쓰는 일을 하다 보면, 어린 날 겪거나 살아낸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 따로 글을 쓰지 않더라도 내가 낳아 키우는 아이한테 내 어린 나날을 말로 들려주곤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로 살아가면서 저 살아가는 나날을 어른한테든 동무한테든 이야기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로 살아온 저 예전 나날을 아이한테든 어른 동무한테든 이야기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아이들은 ‘아이로서 저희 어린 나날’을 이야기하는 일이 드뭅니다. 아이들은 ‘아이로서 저마다 보내는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어른들은 ‘어른으로서 저희 어른 나날’을 이야기하는 일이 드뭅니다. 어른들은 ‘어른이 되기 앞서 어리던 지난 나날’을 이야기합니다.

 왜 어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한테 ‘어제를 살았던 이야기’만 들려주는가 아리송합니다. 왜 어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하고 나누려 하지 못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어른 누구나 어린이 나날을 보냈’으니까, ‘오늘 어린이로 살아가는 이들 앞’에서 ‘너희보다 먼저 그때를 겪은 만큼 어른 얘기를 귀담아들으’라는 뜻으로 당신들 옛이야기를 들려줄는지요. ‘난 이런 사람이야’ 하고 무언가를 뽐내려는 뜻이 될는지요. ‘너희는 이런 일 겪지 못했지? 너희는 이런 일 겪을 수도 없지?’ 하는 마음이 될는지요. ‘예전에는 이렇게 가난하며 힘들게 살았단다. 그러니 너희는 요즈음 얼마나 걱정없고 좋게 살아가는지 아니?’ 하는 넋이 될는지요.


.. 나는 이리저리 굽기만 하던 제비 다리를 영숙이한테 내밀었다. “싫어, 너 먹어. 나는 참새 고기도 먹기 싫은디…….” “야, 이리 줘! 내가 먹으께. 느들은 둘이 맨날 바지락만 캐다 처먹어라, 흐흐흐.” 용제가 짓궂게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  (59쪽)


 바닷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박형진 님이 쓴 《갯마을 하진이》를 읽습니다. 박형진 님이 당신 고향에서 보낸 어린 나날을 글 몇 자락으로 만납니다. 버스를 탈 때에 어떤 느낌이었는가를 헤아리고, 처음 새끼를 꼬던 느낌을 곱씹으며, 하나둘 사라지듯이 바닷마을을 떠나는 동무들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던 느낌을 생각합니다.

 새조개를 캐던 모습을 떠올리고, 고구마밥 말고는 없는 낮밥에 배를 곯다가는 웃 형님들한테 시달리는 동무를 걱정하는 마음을 살피며, 땔나무를 하다가 낫에 손가락이 베면 얼마나 아팠을까 하고 가눕니다.

 온통 쓸쓸하거나 허전하기만 하던 어린 나날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랑 너랑 하나도 다르지 않은 어린 나날을 함께 보내던 동무들이 복닥복닥하면서 쓸쓸함이나 허전함을 달랬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난한 어버이들만큼 가난한 아이들이고, 힘겨운 어버이들만큼 힘겨이 부대껴야 하는 아이들입니다.

 너른 바다와 함께 살아가지만 너른 바다 품을 고이 껴안기 힘든 살림입니다. 넉넉한 갯벌과 함께 살아숨쉬지만 넉넉한 갯벌 가슴을 살뜰히 부둥켜안기 벅찬 살림입니다.

 집집마다 아버지와 어머니 되는 분들은 바지런히 바닷일을 하고 갯일을 하며 밭일을 했을 텐데, 왜들 이렇게 고달프거나 고단해야 했을까요. 바다에서 애써 잡은 고기들을 내다 팔면서 왜 살림이 넉넉해지지 못하고, 갯벌에서 갯것을 캐서 내다 팔 때에 왜 살림이 펴지 못했을까요.

 글을 쓴 박형진 님 또한 ‘하얀 쌀밥이 맛나’고 ‘누런 보리밥은 맛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난날을 살던 어른들은 으레 이런 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은 ‘보리밥을 파는 밥집’에 따로 찾아가 퍽 비싼값을 치르면서 보리밥을 맛나게 사다 먹습니다. 돌이켜보면, 쌀밥을 먹든 보리밥을 먹든, 어린 나날 끼니를 안 굶거나 조금만 굶거나 때때로 굶는다 하더라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면 몹시 고마운 살림이라 할 만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밥을 먹으니 고마우면서 좋은 나날이지, 보리밥을 먹는대서 슬프거나 아쉬운 나날이지 않습니다. 쌀밥을 먹는대서 기쁘거나 좋은 나날이지 않습니다.

 글쓴이 어머님은 당신 언니가 조카들하고 혼자 사는 모습이 안쓰러워 “여그넌 없는 것잉께(18쪽)” 하고 말하면서 “마른오징어 스무 마리, 국물 새지 말라고 비료 포대에 싸서 고무줄로 묶은 황석어와 중하젓 한 자루, 참기름 한 병, 고사리와 취나물 뜯어 말린 것, 더덕 캔 것(16쪽)”을 풀어놓는다고 합니다. 가끔가끔 언니네에 찾아가서 이런 보퉁이를 풀어놓는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며 쌀밥을 먹기를 바라는 일은 엉터리입니다. 바보라 할 테지요. 바닷마을에서는 바닷마을에 흔하거나 너른 먹을거리를 먹어야지요. 둘레가 온통 논뿐인 마을에서야 쌀밥을 먹는다 하지만, 쌀밥 말고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을 얻어서 먹을까요. 부자가 고깃국을 날마다 먹을까 모르겠습니다만, 고깃국을 날마다 먹든 자주 먹든 더 좋은 밥살림이 아니에요. 하얀 쌀밥을 마음껏 먹는대서 더 좋은 나날이나 살림이 되지 않아요. 밥 한 그릇을 받아들며 얼마나 고마우며 즐거운가를 느끼거나 나눌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저는 어린 나날 쌀밥을 먹었는지 보리밥을 먹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만(아마 쌀밥을 먹었겠지요), 집에서 차려 주는 쌀밥은 언제나 ‘정부미 쌀밥’이었습니다. ‘일반미 쌀밥’은 명절 때에, 때로는 생일 때에 구경해 보았다고 떠오릅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버이 두 분 다 살아서 밥을 얻어먹는다는 나날이 좋을 뿐입니다.

 그러나, 어버이 한 분이 안 계신다든지, 정부미 쌀밥도 버거워 잡곡밥만 먹는다든지 대수롭지 않습니다. 집에 어떤 슬픔이 있든, 저마다 어떤 아픔이 있든,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개구지게 얼크러지며 놀면서 하루하루 살아내며 무럭무럭 컸으니까요.


.. “불깡통 헐라고 내가 숨겨 논 깡통이 하나 있음게 너는 호멩이(호미)나 하나 갖고 와라, 너는 여잔게 니 호멩이 있잖여?” 용제가 말하며 영숙이를 보았다. “호멩이는 뭣 헐라고?” “호멩이가 있어야 바지락을 캐잖여?” ..  (51쪽)


 요즈음 아이들은 너나없이 자전거를 타며 놉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인라인이든 무어든 어렵잖이 얻어서 즐깁니다. 놀잇감이나 먹을거리로 근심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기도 할 테지만, 이와 맞물려 놀잇감이든 먹을거리이든 근심하는 아이들 또한 많겠지요. 도시이든 시골이든, 어느 한쪽에서는 자전거이든 스케이트이든 무어든 마음껏 누리면서 논다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어두운 땅밑 단칸방에서 쪼그리며 울는지 모릅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영어 그림책이니 영어 과외이니 한다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퍽 어린 나이부터 바깥일을 하면서 돈을 벌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더 어린 동생을 돌볼는지 모릅니다.

 이야기책 《갯마을 하진이》라 한다면, 참말 ‘갯마을’에서 살아가는 하진이다운 어린 나날 이야기를 듬뿍 실어서 들려줄 때에 훨씬 나았겠다고 느낍니다. 또는, 굳이 어린 나날 이야기를 들추지 않아도 되니까, ‘어른 하진이’로 살아가는 기쁨과 보람을 조곤조곤 들려주어도 좋겠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또 ‘어제를 살아온 어린이’로서, 어른 삶과 어린이 삶을 차근차근 오가면서 두 나날이 당신한테 얼마나 아름답거나 기쁜 삶이며 보람인가를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어린 나날 자취를 너무 성기게 담은 《갯마을 하진이》라고 느낍니다. 이것저것 온갖 이야기를 주워담는다 해서 좋은 이야기책이 되지 않아요. 다문 한 가지, 새조개를 잡는 이야기라든지, 미영을 감는 이야기라든지, 꼭 한 가지 이야기만을 훨씬 깊이 잡아채면서 옛날은 옛날대로 즐겁고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즐거울 이야기로 엮는다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책을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갈 아이들한테 들려줄 생각’이라면,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며 이 이야기책을 읽을 아이들 또한 스스럼없이 바닷마을로 찾아와 미영을 감거나 갯벌에서 뒹굴며 살아갈 기운을 낼 수 있게끔, 또는 도시에서만 복닥이더라도 도시라는 또다른 삶터를 사랑하고 아끼는 넋을 북돋울 수 있게끔, ‘어른 하진이’로서 남달리 보여주거나 들려줄 사랑과 믿음을 이 작은 책에 깃들일 노릇 아닌가 싶습니다.

 한 가지 덧붙여, 《갯마을 하진이》에 그림을 많이 넣었는데, 그림이 하나같이 그닥 사랑스럽거나 따스하거나 재미나거나 포근하지 못하구나 싶습니다. 아이들 얼굴이 모두 똑같습니다. 사내아이라 하든 계집아이라 하든 똑같아요. 게다가 ‘굶기를 밥먹듯이 했다’는 아이들 얼굴이며 몸이며 너무 포동포동합니다. 그림 빛깔 느낌은 퍽 보드라우면서 예쁘다 할 수 있습니다만, 싱그럽거나 시원스럽다고 느끼기 힘듭니다.

 아이들이 읽을 책에 그림을 많이 넣어도 좋습니다만, 제대로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면 굳이 많이 안 넣어도 됩니다. 아이들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날개를 펴도록 도울 만큼만 그림을 넣으면 됩니다. 더 많이 실을 그림보다는 이야기 한 꼭지에 그림 하나만 넣어도 되니까, 이야기 꼭지마다 ‘가장 깊이 살피며 가장 사랑스레 보여줄 모습’ 하나를 가장 살가우면서 맑고 싱그러이 담는다면 좋겠습니다. 1968년을 살던 ‘갯마을 하진이’ 그림이어야 할 텐데, 그림을 보아서는 1968년일는지 2008년일는지 2028년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그림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느끼도록 이끌려는지 잘 읽히지 않습니다. 눈길이 머무는 그림이 아니라 마음길이 사랑스러워지는 그림을 담아야 비로소 ‘어린이책에 싣는 그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4344.5.3.불.ㅎㄲㅅㄱ)


― 갯마을 하진이 (박형진 글,박지훈 그림,보리 펴냄,2011.4.2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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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89] BUS 타는곳

 버스는 ‘BUS’로 적고, 타는 곳은 ‘타는 곳’이라 적는다. 모두 한글로 적으면 될 텐데, 왜 버스를 ‘BUS’로 적어야 할까 궁금하다. 그나마, 시골자락에서 ‘BUS STOP’이라고까지 안 적었으니 고맙다고 여겨야 할까. (4344.5.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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