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책읽기


 서울에서 살아가려면 아주 바빠야 하고, 몹시 바빠야 하며, 언제나 바빠야 하니까, 책을 읽을 수 없는지 몰라요. 책을 읽을 수 없으니, 사람을 읽을 수 없고, 사랑을 읽을 수 없으며, 삶 또한 읽을 수 없을 테지요. 사람과 사랑과 삶을 읽으려 하지 않으니까, 바쁜 나머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랑과 삶을 읽으려 한다면, 바쁜 틈을 쪼개어 책을 읽거나 바쁜 일을 젖혀 놓고 책을 읽겠지요. 아니, 사람과 사랑과 삶을 아끼려 할 때에는, 바쁜 나날이 아닌 넉넉하면서 따사로운 나날이 되도록 온힘을 기울이겠지요. (4344.8.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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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랑 글쓰기


 생각을 곰곰이 가다듬으면서 작은 수첩을 꺼내어 글을 몇 줄 적는다. 첫째 아이가 아버지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제 공책을 찾아오더니 저도 끄적일 볼펜을 달라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잘 찾지 못하기에 아이가 쓸 볼펜을 한 자루 찾아서 건넨다. 아이는 빨간 머리핀 하나를 앞머리 몇 가닥에 꽂고는 볼펜을 단단히 쥐어 공책에 그림을 그린다. 아이는 무엇을 그릴까. 아이는 무엇을 그리고 싶을까. 볼펜을 단단히 쥔 손으로 그리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는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깜빡 잊는다. 아이는 아버지를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글쓰기를 하고, 아버지는 아이를 살며시 들여다보다가 글쓰기를 잊는다. (4344.8.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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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6 23:26   좋아요 0 | URL
볼펜도 바르게 잡고, 그림도 잘 그리네요.
빨간 핀을 꽂고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이뻐요.

숲노래 2011-08-07 04:20   좋아요 0 | URL
요사이는 주렁주렁 핀꽂기를 좋아하더군요... 에고...
 
어시장 삼대째 29 - 그곳에만 있는 진미
하시모토 미츠오 지음 / 대명종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사람은 왜 일하며 살아가는가
 [만화책 즐겨읽기 52] 하시모토 미츠오·쿠와 카즈토, 《어시장 삼대째 (29)》



 아이와 함께 바깥마실을 하면서 사흘을 바깥잠을 자고 나흘에 걸쳐 바깥밥을 먹었습니다. 집잠이 아닌 바깥잠은 그닥 개운하지 않습니다. 창문이 활짝 트인 곳은 없고, 창문을 열어도 시골집처럼 나무나 멧자락이나 숲이나 논밭이 보이지 않습니다. 창문을 연들 바람소리나 새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한여름에 접어들며 새롭게 들리는 온갖 풀벌레 소리와 매미 소리 또한 들리지 않아요.

 바깥에서 먹는 밥은 맛집에서 차리는 밥이든 여느 밥집에서 차리는 밥이든 배고픔을 달랠 뿐, 내 마음을 달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고단하고 품을 많이 들인다 하더라도 내 손으로 차려서 내 살붙이하고 함께 즐기는 밥처럼 내 삶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바깥밥은 없다고 느낍니다. 장사하는 가게 밥도 똑같이 밥이라 할 테지만, 어느 밥집에서도 아이가 먹을 밥과 반찬인 줄을 헤아리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어요. 어른이 먹는 밥과 반찬에서도 어른마다 어떠한 몸이요 어떠한 밥거리가 알맞는가를 헤아리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습니다.

 바깥마실 나흘째에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시외버스에서 에어컨 바람에 모질게 시달려 속이 메스껍고 더부룩한 채 곱씹습니다. 사람들은 맛집을 즐겨찾으며, 맛집에서 맛난 밥을 먹는다고들 하는데, 참말 맛집 밥이 맛밥인지 궁금합니다. 비싸든 싸든, 값지든 값없든, 내 몸으로 집어넣어 내 삶에 기운을 불어넣는 밥을 나 스스로 내 몸을 살피며 차리지 않을 때에 어떤 보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 “마사, 식사는 했나?” “삼대째.” “예, 그런데 저 손님은?” “고교 선생님이야. 오토메의 담임이라더군.” “학교 선생님!(제자가 일할 직장을 보러 온 건가.)” “생물 선생이래.” …… “전갱이에 대해서 말했나?” “그건 제가 알려줬슴다.” “저 양반은 어시장의 시스템에 관심이 있더군. 생선 내부 구조나 생태에 대해선 잘 아는 사람이, 우습게도 그 많은 종류가 있는 볼락을 단 두 종류로 분류를 해 버리더군. 마사, 왜라고 생각하지?”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 ‘치아키’에서 말씀드릴 건데요.” “말해 봐! 왜라고 생각하지?” “아니, 저, 그, 그거야 우리 중간도매상은 맛있는 생선을 파는 것이잖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에 아버지한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네요.” (아버지, 왜 같은 전갱인데 저렇게 분류를 하는 거야?) (그건 말이다. 같은 전갱이라도 맛이 다르기 때문이지! 학자들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지. 전갱이라고 하면 전갱이지, 애매하게 하면 폼이 안 나거든. 그런데 우리가 보는 건 맛있나 없나를 보는 거란다. 중간도매상이 회유하는 전갱이, 근해 전갱이도 구별하지 못하고 그저 전갱이라고 하는 건 의미가 없지. 즉, 내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중요해.) ..  (204∼205쪽)


 몸이 아플 때에는 남이 차리는 밥을 받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손수 밥을 차리기는 어렵습니다. 몸이 아플 때에는 내 옷을 내가 빨래하거나 내 살림집이나 살림밥을 내가 치우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곁에서 나를 보살피는 살붙이가 내 옷을 빨고 내 방을 치웁니다. 내 살붙이가 아프거나 힘들면 내가 밥하기이며 빨래이며 쓸고닦기이며 도맡아서 합니다. 고맙게 맞아들이고, 즐거이 받아들입니다. 스스럼없이 누리고, 기꺼이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네 살 아이한테 밥을 차리라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고 여섯 살이 되며 일곱 살과 여덟 살로 자라는 동안에도 아이한테 밥차림을 시킬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곁에서 제 어버이가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며 집안을 쓸거나 닦거나 치우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배울 테며, 손수 이모저모 해 보면서 차근차근 익히리라 생각합니다. 마늘을 빻고 푸성귀를 다듬으며 두부 썰기쯤은 얼마든지 할 만하다고 느껴요. 손아귀에 힘이 제법 붙으면 불판을 만진다든지, 아이가 손수 반죽해서 부침개를 부쳐 볼 수 있겠지요. 능금알이나 복숭아알을 아이가 물에 헹군다든지, 푸성귀를 물에 씻는 일을 할 수 있을 테고, 배춧잎을 한 장씩 뜯어서 씻는 일도 할 수 있겠지요.

 쌀을 씻을 때에 얼마만한 힘으로 씻고, 밥물은 어느 만큼으로 맞추며, 쌀은 얼마나 넣어 밥을 짓는데 불은 어떻게 넣어야 하는가를 오래도록 지켜보며 배울 수 있습니다. 키가 조금씩 크면서 스스로 제 밥그릇을 설거지할 뿐 아니라, 어머니나 아버지 밥그릇을 설거지할 수 있어요. 이무렵에는 아이가 제 옷가지를 제 손으로 빨래를 해 볼는지 모르고, 아버지와 함께 이불빨래를 할는지 모릅니다.

 이제까지는 어버이가 차리거나 마련하거나 베푸는 대로 목숨을 이으며 삶을 꾸렸다면, 앞으로는 아이 스스로 하나하나 차리거나 마련하거나 베푸는 길을 몸소 깨달으면서 찾아나섭니다. 아이는 오롯한 목숨 하나요, 씩씩하고 싱그러운 몸뚱이를 지키는 한 사람이니까요.


- “마사, 그 맛을 잊으면 안 된다!! 삼대째가 진짜 아와지산 전갱이를 먹고 싶었다면 너한테 말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 삼대째는 여러 생각을 하면서 이 전갱이를 스스로 골라 너에게 보여준 거다!!” (215쪽)


 아이가 아이 스스로 밥을 마련하는 힘겨움과 고단함과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골고루 맛보면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꿈꿉니다. 어버이로서 어버이부터 내 살붙이들과 밥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힘겨움과 기쁨과 아름다움을 찬찬히 살피면서 예쁘게 맞아들이자고 다짐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예쁘게 살아갈 때에 아이 또한 예쁘게 살아가겠지요. 어버이부터 착하게 살림을 일구려 힘쓴다면, 아이 또한 착하게 살림을 일구는 길을 살며시 열겠지요.

 그저 배를 채우라고 차리는 밥상이 아닙니다. 그저 배고픔을 가시도록 내주는 밥이 아닙니다. 살아가라고 차리는 밥상이고, 목숨을 사랑하라며 내주는 밥입니다.

 삶을 아끼면서 죽음을 고마이 여기도록 하는 밥먹기입니다. 삶과 죽음을 고루 돌아보면서 내 하루를 누리는 밑힘이 되는 밥차림입니다.

 바깥마실을 하며 바깥잠을 자고 바깥밥을 먹는 동안, 이러한 얼거리에서 밥먹기와 밥차림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니, 느낄 겨를이 없어요. 바삐 움직이고 부산히 복닥이는 길거리에서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품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을 마주하지 못하거든요. 살림에 앞서 돈벌이를 높이 우러르는 자리에서는 밥이 밥다이 놓이지 못하고, 사람이 사람다이 살지 못하며, 꿈이 꿈다이 피어나지 못합니다.


- “그건 안 되유! 말했잖아유.” “고향의 기대가 생각나서 부담이 됐다고 했지.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건 고향의 생선이 그만큼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33쪽)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대명종,2010) 스물아홉째 권을 읽습니다. 《어시장 삼대째》 스물아홉째 권에서는 중간도매상을 따로 차리려는 꿈을 꾸는 ‘마사’ 이야기가 돋보입니다. ‘가게를 새로 차려 홀로 우뚝 서는 일’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을 밝힙니다. 가게를 새로 차리든 다른 사람 가게에서 일을 하든, ‘한 사람으로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나날’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살아가는가’를 모르고서는 ‘왜 일하는가’를 알 길이 없고, ‘왜 일하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내 이웃이나 벗이나 살붙이하고 ‘어떻게 왜 무엇을 사랑하는가’를 알 턱이 없습니다.

 그예 더 싱그러운 물고기를 찾아내어 가게에 댈 수 있으면 끝인 중간도매상이지 않습니다. 더 맛나게 먹거나 더 값지게 팔 만한 물고기를 알아볼 수 있으면 그만인 중간도매상이지 않아요.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길에서 붙잡는 일거리 가운데 하나인 중간도매상입니다. 사람다움을 잃는다든지 사랑스러움을 멀리한다든지 삶다움을 놓는다든지 할 때에는 홀로 가게를 차리든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든 ‘이곳에 내가 왜 있는가’를 느끼지 못해요.

 경력이 오래되었다든지 솜씨가 빼어나다든지 하대서 함께 일할 만한 벗이 되지 않습니다. 기운이 좋다든지 재주가 뛰어나다든지 하기에 일을 선뜻 맡길 만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는 까닭이 있습니다. (4344.8.5.쇠.ㅎㄲㅅㄱ)


― 어시장 삼대째 29 (하시모토 미츠오 그림,쿠와 카즈토 글,편집부 옮김,대명종 펴냄,2010.4.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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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8-0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만화책 재미있게 읽었는데 된장님도 읽으셨나 봐요^^

숲노래 2011-08-07 04:19   좋아요 0 | URL
십 몇 권째부터는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은데, 사 둘 만한 값어치는 있어서 그저 새로 나오는 대로 모으기는 해요 ^^;;;;;

마녀고양이 2011-08-0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은 괜찮으세요?

중간도매상... 네, 그렇네요. 우리는 홀로 설 수도 없고
홀로 모든 것을 해낼 수도 없으며 홀로 사랑할 수도 없죠. 항상 누군가를
통해서, 누군가와 어떤 것을 함께 해내야 하는데...
가끔 홀로 다 해낸듯 잘난체를 하게 되네요.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

숲노래 2011-08-07 04:20   좋아요 0 | URL
몸은 아주 힘들어서 어질어질하답니다 ^^;;;
 


 이 도시에서


 아이는 새벽 여섯 시 오십 분에 일어난다. 여관방에는 큼지막한 텔레비전이 있다. 아이는 여관방에서 일어나자 마자 텔레비전을 켜서 만화영화를 보자고 한다. 어찌할 수 없다. 텔레비전을 켜서 만화영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창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창밖을 내다 본다. 바로 코앞에서 무언가 우람한 건물을 한창 짓는다. 이 도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옆지기랑 둘째하고 함께 살아간다면 풀을 뜯을 데가 없으니 가게에서 푸성귀를 사야 한다. 옆지기랑 둘째하고 함께 새 보금자리를 찾으러 마실을 했다면, 옆지기가 먹을 풀을 마련하거나 얻을 데가 없을 뿐 아니라, 풀을 뜯으며 들이마실 풀내음이나 바람내음 또한 없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내뿜는 뜨거운 기운으로 머리가 아프다. 창문을 열어도 바람이 들지 않으니 에어컨을 켜야 한다. 아이도 아버지도 버스를 타고 움직일 때에 에어컨 바람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버티자면 이렇게 해야 한다.

 나무를 찾을 수 없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지 못한다. 구름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다. 조그마한 길에서도 싱싱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아이를 부르고 아이 손을 잡으며 앞뒤를 살핀다. 아침 시외버스를 타고 청주를 거쳐 얼른 음성 시골집으로 가고 싶다. (4344.8.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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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안 받는 사람


 아이하고 마실을 다니면서 곧잘 책을 선물한다. 여느 때에 책을 즐겨읽는 이라면, 내가 선물하는 책을 몹시 고맙게 여긴다. 따지고 보면 책 하나는 만 원이 안 되거나 만 원을 살짝 넘는다. 요즈음 물건값이나 돈값으로 친다면 책 선물이란 참 하잘것없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며 즐겨읽는 사람한테는 ‘그닥 안 좋아하는 갈래’인 책이 아니고서는 몹시 반가이 맞아들인다.

 여느 때에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책을 선물할 때에 얼마나 시큰둥하면서 떨떠름한데다가 ‘뭥미?’라 하는 낯빛인지 모른다. 마치 못 볼 것을 보았다거나 만지지 말아야 하는 쥐똥이나 개똥이나 닭똥을 건드리기라도 했다는 듯한 손짓이다. 여느 때에 책을 읽지 않으니 책을 손가락으로 잡는 모양새부터 얼마나 싫어하는가를 아주 잘 느끼도록 한다.

 선물하는 책을 받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한테 책을 선물하는 일이라든지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한테 책을 선물하는 일 또한 없거나 드물리라 본다.

 책은 지식도 학력도 자랑도 훈장도 뭣도 아니다. 책은 오직 내 마음밭을 살찌우는 좋은 거름이다. 책은 밑거름이다. 책은 웃거름이 아니다. 책은 화학비료나 풀약이 아니다. 책은 트랙터나 경운기가 아니다. 책은 오직 마음밭 살찌우는 잘 삭은 밑거름이다.

 책을 읽으려면 스스로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나 스스로 바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내 삶을 날마다 조금씩 바꾸어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더 따스히 사랑하고 더 넓게 믿어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한손에 걸레나 부엌칼을 쥐어야 한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살림을 하려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삶이 아니요, 꿈을 꾸는 넋이 아닐 때에는 책을 읽지 못하고, 애써 책 몇 가지를 읽었더라도 옳게 삭이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마음으로 밭을 일구지 않고 몸으로도 텃밭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한테 책을 선물하는 일이 잘못이 아닌가 싶다. 아니, 틀림없이 잘못이리라. 밭갈이하는 땀방울을 아끼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으면서 쉽게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 멍청이요 얼간이라 할 만하다. (4344.8.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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