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66 : 책을 읽는 소리


 두 아이는 집에서 옆지기가 돌보기로 하고, 아버지 혼자 자전거를 몰고 집을 나섭니다. 옆지기는 둘째를 낳고서 두 달 넘게 아무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나빴습니다. 둘째가 백 날째가 가까운 얼마 앞서부터 옆지기가 집일을 차츰차츰 맡아서 할 수 있습니다. 멧골자락 조용한 집에서 싱그러운 풀과 나무를 맞아들이면서 맑은 바람과 고운 소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일까요. 빨래기계를 안 쓰고 자가용을 몰지 않으며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우리 집에서는 모든 일을 손으로 합니다. 손으로 비질을 하고 손으로 걸레를 빨아 손으로 방을 훔칩니다. 손으로 둘째 기저귀를 빨고 손으로 기저귀를 널어 손으로 기저귀를 갭니다.

 아버지는 시골집에서 자전거를 몰며 이웃 면내로 갑니다. 이십 분 남짓 달립니다. 시골버스는 한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데,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면내로 가자면 자전거를 몰거나 한참 시골버스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불러야 합니다. 혼자 바깥마실을 하는 날이라 자전거를 몹니다. 자전거는 시외버스 짐칸에 싣습니다. 오늘은 시외버스 기사님이 차에서 내려 “자전거 안 다쳐요?” 하고 물으며 걱정해 줍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시외버스 기사님 가운데 1/5쯤은 자전거를 짐칸에 싣는 일을 못마땅해 합니다. 3/5은 무덤덤하고 1/5은 이렇게 따사로이 말마디를 건넵니다. “네, 튼튼하지 않으면 이 자전거를 탈 수 없잖아요.” 빙그레 웃습니다.

 시외버스에 올라탑니다. 빈자리에 앉습니다. 아버지가 찾아간 면내에서 탄 시외버스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는데, 다음 면내에서는 푸름이들이 아주 많이 올라탑니다. 널널하게 앉아 책을 읽다가 가방을 모두 무릎에 올려놓고 몸을 웅크립니다. 푸름이들 얼굴이 앳됩니다. 아이들 몇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세 잠이 듭니다. 아이들은 다 함께 서울로 놀러 가는 듯합니다. 내 옆에 앉은 푸름이는 한손에 천 원짜리 여러 장을 꼬깃꼬깃 접어서 꼭 쥔 채 잡니다.

 시골집에서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벌레가 풀숲에서 풀잎을 건드리는 소리하고 벌레가 스르스르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끔찍하거나 모질다 할 만한 막비가 그치지 않기에 빗소리를 참말 지겹다 싶도록 듣습니다. 그렇지만 빗소리는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사대강사업을 한대서 망가지는 자연 터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 여느 사람들 스스로 자가용을 장만하여 자주자주 타면서 온갖 전자제품을 쓰고 쓰레기를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버리니까 자연 터전이 무너지면서 이 여름에 막비가 퍼붓습니다. 막비가 퍼붓는 소리를 들으며 햇살이 언제쯤 비칠는지 꿈을 꿉니다.

 면내로 나와 시외버스를 탈 때부터 오로지 자동차 소리입니다. 서울에 닿은 뒤에도 자동차 소리입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치고 여관에서 묵을 때에는 냉장고와 정수기가 전기를 먹으며 끙끙대는 소리에다가 술이 얹힌 사람들 떠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루를 지새운 이듬날 새벽에 비로소 참새 몇 우짖으며 날아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 이 나라 사람들 1/4이 서울에 몰려서 살아간다는데 서울사람은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벌레소리도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못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소다 오사무라는 일본사람이 쓴 청소년소설 《우리들의 7일 전쟁》(양철북,2011)을 여관 침대에 누워서 읽습니다. “모두 하늘 좀 봐. 별이 참 예쁘다(49쪽).” 아이들은 중학교부터 이루어지는 입시지옥에서 스스로 떨쳐나옵니다. 버려진 건물 옥상에서 한뎃잠을 자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서울에서는 밤하늘 별을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보드라운 살내음 소리가 죽고, 책을 읽는 소리도 죽습니다. (4344.8.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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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헌책방


 착한 헌책방 아저씨가 짜장면을 시킨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짜장면을 한 다섯 달 만에 먹는다고 이야기한다. 짜장면 한 그릇에 4500원이다. 얼마 안 된다. 몇 젓가락 휘저으니 금세 바닥이 보인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하고 처음 짜장면을 먹던 날을 돌이킨다. 벌써 열일곱 해나 지난 옛일이다. 열일곱 해 동안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헌책을 팔아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 곧 일흔 나이가 될 헌책방 아저씨 두 다리는 얼마나 오래오래 이곳에서 튼튼히 버틸 수 있을까.

 나라 곳곳에서 하루도 끊이지 않고 재개발 바람이 분다. 재개발 바람이 그치면 개발 바람이 불고, 개발 바람이 멎을라치면 재개발 바람이 분다. 살가운 바람은 불지 않는다. 책을 읽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려는 알뜰한 사람들 휘파람 소리가 실리는 바람은 불지 않는다.

착한 헌책방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시끄럽다. 빗소리를 시끄럽다고 느낀다. 벌써 두 달째 햇살을 가로막기 때문에 빗소리가 시끄럽다고 느낀다. 비야, 네가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자꾸 너를 탓하고 마는구나. 비야, 비야, 네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자꾸 너를 탓해야 할까.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올해에 양수기가 잘 돌아서 헌책방 바닥이 물바다가 되지 않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착한 헌책방 바닥을 내려다본다. 바닥이 물자국으로 가득하다. 참말 물바다는 아니지만 물자국이 많다. 비가 퍼부을 때마다 착한 헌책방이 걱정스러웠고, 수십만 권에 이르는 이 책들이 새로운 임자를 못 만난 채 물을 먹고 말까 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둘째를 낳아 함께 살아가며 올해 들어 이 착한 헌책방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한테 둘째 이야기를 들려준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아주 잘 되었다며 고마운 인사말을 아낌없이 베푼다.

 착한 헌책방을 즐겨찾는 나는 얼마나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까. 나는 얼마나 착한 아버지일까. 나는 얼마나 착한 옆지기일까. 나는 얼마나 착한 동무이거나 일꾼이거나 사내일까. 착한 헌책방에서 장만한 착한 책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4344.8.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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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관 텔레비전


 여관에서 잠을 깬다. 새벽 다섯 시를 조금 넘는다. 여관에서 묵어도 새벽에 잠이 깨기는 똑같다. 침대에서 뒹굴다가 텔레비전을 켜 본다. 운동경기를 보여주는 방송이 참 많다. 드문드문 영화가 나오고, 어떤 영화는 아래쪽에 ‘아이들이 보기에 알맞지 않은 시간대이니 아이들이 보지 않도록 잘 살펴 주십시오’ 비슷한 글월을 내보낸다. 열아홉 살 밑으로는 보지 말라는 빨갛다는 영화도 흐른다. 그렇지만 이런 영화 오른쪽 윗자리에 ‘19’이라는 동그란 딱지가 안 붙는다. 그저 서슴없이 흐른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얼굴은 하나같이 죽은 얼굴이다. 이 죽은 얼굴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지능이 있는 벌레가 며칠 만에 군인 10만을 죽였다. 이 벌레들 때문에 지구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줄거리를 보여주는 미국 영화가 흐른다. 어쩌면 이렇게 터무니없다 싶은 영화를 다 만들고 다 보여주는가 싶어 놀랍다. 게다가 이 ‘외계별 벌레 죽이기 영화’는 ‘벌레는 징그럽게 생겼으니 다 죽여야 해’ 같은 말을 거리끼지 않고 내뱉을 뿐 아니라, 벌레를 아주 모질게 고문을 하고 생체실험까지 한다. 게다가 벌레를 죽이거나 괴롭히면서 군인들이 낄낄대며 소리 높여 웃는다. 더욱이, ‘벌레를 잡는 거룩한 일’을 하도록 온 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군인이 됩시다’ 하고 외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패러디라는 영화인가? 아니면 참말 바보스러운 영화인가? 미국은 전쟁무기를 만들어 힘여린 나라를 짓밟아 지하자원을 빼앗을 뿐 아니라, 이렇게 전쟁영화를 끝없이 만들면서 사람들 마음에 ‘전쟁영웅’과 ‘전쟁놀이’ 마음을 심는 슬픈 짓을 언제까지 벌이려나.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람들 착하면서 따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송을 하나라도 찾아볼 수 있기를 빌지만, 단추를 꾹꾹 눌러 한 바퀴를 돌아도 모조리 ‘물건 사고팔기’와 ‘주식’과 ‘하느님 사랑’과 ‘대입시험 문제풀이’와 ‘연예인 뒷얘기 호박씨 까기’와 ‘운동경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러한 방송을 즐기니까 이러한 방송만 있는 셈인가. 사람들한테 이러한 방송을 보여주며 길들이려고 이러한 방송만 넘치는 노릇인가. 골이 아프다. 여관 침대에 조금 더 누워서 머리를 식혀야겠다. 가게에 들러 김밥을 산 다음, 전철을 타고 얼른 춘천으로 가서 우리 네 식구 조용히 살아갈 멧기슭 옆에 낀 조그마한 살림집을 찾아보아야겠다. (4344.8.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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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어느 출판사에 들를 때


 서울로 와서 어느 출판사를 들른다. 출판사 사장님이 일하는 방에 앉는다. 열린 창문으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낮에 서울에 닿아 여러 시간을 보내며 처음으로 듣는 풀벌레 소리이다. 강변역에서 버스를 내릴 때에도 듣지 못한 소리요, 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면서도 듣지 못한 소리이다. 출판사 사장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 귀에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 안긴다. 아, 좋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이곳에서 나오는 책에도 풀벌레 기운이 조용히 깃들겠지. 이곳 일꾼들이 풀벌레 우는 소리를 깨닫든 못 깨닫든 풀벌레 기운은 살그머니 책마다 감돌겠지.

 풀벌레 한 마리 깃들 조그마한 수풀조차 없이 온통 시멘트와 철근으로 지은 우람한 건물만 덩그러니 잔뜩 선 책마을에서는 어떤 책이 태어날까. 줄거리가 알차고 짜임새가 훌륭하며 이야기가 멋들어진 책은 날마다 참 많이 태어난다. 그런데, 이 알차고 훌륭하며 멋들어지다는 책에 풀벌레 조그마한 울음소리가 스미지 못한다면? 값지고 뜻있으며 예쁘장한 책이라 하더라도 풀벌레 한 마리 조용히 울먹이는 소리가 깃들지 못한다면, 난 이 책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집어들어 읽어내지 못한다. 풀벌레 소리 흐르지 않는 책을 손에 쥐면 자꾸 눈물이 나며 슬프다. (4344.8.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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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8-19 22:19   좋아요 0 | URL
어느 동넨가요? 요즘 서울에 풀벌레 소릴 들을만한 곳이 거의 없는듯 싶은데 말이죠.

숲노래 2011-08-22 13:18   좋아요 0 | URL
서교동 안쪽에 개인주택으로 있는 집에서요~
 



 머리띠


 옆지기가 손뜨개로 만들어 준 머리띠를 한다. 이 머리띠를 만든 첫날부터 내내 이 머리띠를 한다. 아침에 머리를 뒷꽁지 하나로 묶은 다음 머리띠에 머리카락을 여민다. 내 머리에 꼭 맞게 손수 뜬 머리띠는 하루 내내 하고 돌아다녀도 머리가 눌리거나 아프지 않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고 땀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지도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아이랑 읍내에 다녀올 때에, 숯고개 오르막을 낑낑대며 다 오른 다음 시원하게 내리막을 달릴 때에도 머리띠는 흘러내리거나 바람에 날려가지 않는다. 머리카락도 흩날리지 않는다.

 옆지기한테 고맙다는 말을 딱 한 번밖에 안 한 듯한데, 머리띠를 할 때마다 언제나 고맙다고 느낀다. 이런 머리띠를 두 차례 잃을 뻔했다. 처음에는 어디 멀리에서 떨어뜨렸나 했더니, 바로 집 앞에 떨어졌더라. 비옷을 벗으면서 비옷 깃에 걸려 나도 모르게 뒤로 떨어졌더군. 두 번째는 엊저녁. 서울로 홀로 자전거를 끌고 마실을 나와 여관에서 묵는데, 자리에 드러누우면서 머리를 만지는데 머리띠가 잡히지 않았다. 힘겨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머리띠를 찾아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내 머리띠가 서울 어디 길바닥에 떨어진 채 울까 싶어 걱정스러웠지만, 도무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알 노릇이 없으니 마음이 참으로 무거웠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 씻으려고 하는데, 발밑에서 낯익은 머리띠가 보였다. 어, 어, 왜 여기에 있지? 곰곰이 생각한다. 아하, 웃도리를 벗을 때에 살짝 걸려서 그때 벗겨졌나 보구나. 어젯밤 머리띠 찾자며 다시 골목으로 나와 돌아다녔으면 찾지 못하며 한참 헤매기만 했겠지. 참 잘 되었구나. 참 기쁜 일이구나. 이제 끈으로 머리를 하나로 묶고 머리띠를 한다. 좋다. 이 따사로운 느낌이 좋다. 오늘 하루도 좋게 잘 살아내자. (4344.8.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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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8-19 22:18   좋아요 0 | URL
ㅎㅎ 된장님은 요즘도 머릴 길게 기르시남봐요.긴 머리엔 머리띠가 확실히 필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