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배롱꽃 책읽기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우리 마을 어귀 배롱나무에도 꽃이 천천히 핀다. 다른 데에서는 팔월에도 배롱꽃이 피었기에 올해 우리 마을 배롱나무는 꽃이 안 피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이제 피는구나. 참말 필 만한 때가 되니까 피겠지. 올해에는 여름 내내 비가 너무 잦았기에 배롱꽃이 좀 늦을 수 있다. 비가 잦고 구름도 많이 낀 여름이었기에, 비 없고 햇볕 쨍쨍 내리쬐는 가을에 비로소 꽃망울을 터뜨릴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새파란 하늘에 짙붉은 배롱꽃이 하늘하늘 춤추면서 곱다. 아이들과 배롱나무 밑에 서서 한참 하늘바라기를 한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헌책방은 ‘지저분하다’는 잘못된 생각



  헌책방은 책먼지 때문에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꽤 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도 모르고 둘도 모른다. 그러면, 도서관은 안 지저분할까?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도서관 책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 놓는가? 도서관은 책꽂이를 얼마나 자주 닦으면서 먼지를 털거나 없애는가? 한편, 새책방은 안 지저분할까? 새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치고 면장갑을 안 끼는 사람은 없다. 새책을 다루면서 면장갑을 안 끼면, 책을 나르다가 날카로운 책등이나 책종이에 긁혀서 피가 나기 일쑤이다.


  새로 나온 책에도 책먼지가 많다. 새책에서 나오는 먼지는 하얗다. 외려 헌책에는 새책보다 먼지가 적다. 왜 그런가 하면, 새책을 누군가 사서 읽으면, 이동안 책먼지가 천천히 날아간다. 한 번 읽은 책은 아예 안 읽은 책과 견주면 먼지가 적다. 두 번 읽은 책은 한 번 읽은 책보다 먼지가 적다. 세 번 읽은 책은 두 번 읽은 책보다 먼지가 적다.


  헌책방에 있는 책에 왜 먼지가 있다고 여길까?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에는 왜 먼지가 많이 묻는다고 여길까?


  책이 흐르는 모습을 살펴야 한다. 헌책방에서는 출판사한테 연락해서 책을 받지 않는다. 새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내놓을 때에 헌책이 되어 헌책방에 책이 들어간다. 그러니, 새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책을 지저분하게 팽개치듯이 두다가 내놓으면, 이런 책은 하나같이 지저분하다. 새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정갈하게 건사한 뒤 내놓으면, 이런 책은 아주 깨끗하면서 먼지를 찾아보기도 매우 어렵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한국에서 새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책을 제대로 건사하거나 다루지 않는 탓에, 헌책방에 들어오는 헌책이 지저분하기도 하다는 뜻이다. 헌책방을 탓할 일이 아니라,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 매무새’를 탓할 일이다. 잘 보라. 헌책방에 책을 내놓는 사람들은 으레 어떻게 하는가?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고 들추지 않은 책을 그냥 묶거나 상자에 담아서 헌책방에 가져간다. 헌책방에 책을 내놓으면서 ‘집에 고이 모시느라 그동안 쌓인 먼지’를 알뜰히 닦아서 가져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헌책방 일꾼은 모두 안다. 책먼지를 닦고 가져오는 책인지, 집에 팽개친 뒤 ‘처분’하려고 가져오는 책인지 척 보면 안다. 책먼지를 닦고 고이 가져오는 책은, 책손 스스로 정갈하게 묶거나 상자에 담는다. 책먼지를 안 닦고 팽개친 책을 헌책방에 팔려고 가져오는 이들은 아무렇게 묶거나 아무렇게나 담는다. 책을 팔려고 가져온 사람 스스로 보기에도 ‘책먼지가 지저분해 보이’니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다룬다.


  자, 그러면 헌책방 일꾼은 이 책을 어떻게 받을까? 책을 하나하나 알뜰히 닦고 곱게 건사해서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헌책방 일꾼은 ‘똑같은 책이라 해도 더 값을 치러서 사들여’ 준다. 책을 아무렇게나 더럽힌 채 마구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헌책방 일꾼은 ‘똑같은 책이라 해도 그냥 싸게 값을 매겨서 사들인’다.


  새책을 쌓아 놓는 창고에 가 본 사람이 드물리라. 출판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배본소나 도매상에 가 본 일이 드물겠지. 배본소나 도매상에 갈 수 있다면, 가 보기를 바란다. 배본소 일꾼이 날마다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새책 먼지’를 마시면서 기관지를 앓는지 들여다보라. 도매상에도 얼마나 책먼지가 많이 날리는지 살펴보라. 새책을 다루는 창고는 책먼지 때문에 모두 면장갑에 입가리개를 한다. 이렇게 안 하면 숨이 막히고 코가 막히며 눈이 냅다.


  헌책방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 잘못 보는 사람이다. 책을 알뜰히 다루는 사람은 언제나 정갈하고, 책을 마구 다루는 사람은 언제나 지저분할 뿐이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집 꽃순이는 꽃을 꺾이 앞서 늘 꽃한테 묻는다. “꽃아, 너 꺾어도 되니?” 그런데, 우리 집 꽃순이는 묻자마자 바로 꺾는다. 꽃이 미처 대꾸하기 앞서 꺾는다. 꽃이 대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줄 아직 모른다. 아직 묻고 기다릴 줄 아는 나이가 아니라 할 수 있을 텐데, 예부터 우리 겨레는 무엇을 하든 늘 먼저 묻고 조용히 기다렸다. 나무를 벨 적에 나무한테 물었다. 풀을 베면서 풀한테 이야기했다. 버섯을 따며 버섯한테 이야기했고, 고기를 낚으면서 고기와 바다한테 이야기했다. 눈에 보이는 이웃한테 이야기하고, 눈에 안 보이는 이웃한테 이야기한다. 우리 삶을 이루는 모두한테 즐거우면서 고맙고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밥 한 그릇을 먹을 적에도 매무새가 남다르다. 그런데 물질문명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에는 무엇 하나 묻는 사람이 드물다. 제대로 묻고 찬찬히 기다리면서 마음을 주고받으려 하는 사람이 몹시 드물다. 왜 못 물을까? 왜 못 기다릴까? 왜 마음을 못 나눌까? 그림책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는 늑대를 빌어 삶을 이야기한다. 늑대 자리에 내 모습을 넣어 보자. 우리는 저마다 얼마나 즐겁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게 내 삶을 누리는가?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마음 약한 늑대 이야기
조프루아 드 페나르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베틀북 / 2002년 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09월 17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빌려주지 않는다 (사진책도서관 2014.9.1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을 꾸리면서 세운 잣대 가운데 하나는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주지 않겠다’이다. 인천에서도 시골에서도 이 마음은 같다. 인천에서 처음 도서관을 열었을 무렵에는, 사람들이 인천 골목길을 천천히 거닐면서 도서관으로 찾아왔다가, 다시 골목길을 천천히 거닐며 이녁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시골에서 도서관을 꾸리는 요즈음은, 사람들이 시골길을 천천히 거닐듯이 찾아와서, 다시금 시골길을 천천히 거닐듯이 이녁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책은 종이에도 있지만, 숲에도 있다. 책은 종이에도 있으면서, 마을에도 있다. 호젓한 골목동네에도 책이 살아서 숨쉰다. 조용한 시골마을에도 책이 살아서 움직인다.


  멧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어떤 조류도감에서도 다루지 못하는 이야기’를 누린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 한 그루를 곁에서 쓰다듬으면서 ‘그 어떤 나무도감에서도 건드리지 못하는 이야기’를 맛본다.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나무도감을 읽어서 나무 한살이나 이름을 읽어야 나무를 잘 아는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교수한테서 강의를 들어야 나무를 잘 알 수 있는가? 스스로 나무씨를 받아서 흙에 심은 뒤 차근차근 돌보고 지켜볼 때에 나무를 잘 알 수 있는가?


  밀양 송전탑과 얽혀 밀양 시골마을 할매와 아지매 이야기를 ‘책으로 읽을’ 수도 있으나, 스스로 밀양에 찾아가서 할매와 아지매를 만나서 ‘몸으로 겪을’ 수 있다. 어느 쪽에 잘 아는 길인가?


  아름다운 바다를 노래하는 시를 읽어야 바다를 잘 아는가? 스스로 바다로 찾아가서 바닷바람을 쐬고 바닷내음을 마실 때에 바다를 잘 아는가? 푸른 숲이 우거진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아야 숲을 잘 아는가? 스스로 숲에 깃들어 하룻밤을 자든 며칠 동안 걸어다니든 할 때에 숲을 잘 아는가?


  종이에 앉힌 책은 지식이나 정보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책을 펼치면서 얻는 지식이나 정보는 저마다 가슴에 품은 꿈을 이루는 길에 설 때에 도움을 받는 길동무라고 할 수 있다. 종이꾸러미에서만 책을 읽지 않는다. 삶에서 책을 읽는다. 대담집이나 인터뷰집을 읽어야 책을 읽는가? 내 이웃이랑 동무하고 도란도란 주고받는 이야기도 책이다.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누리는 사랑이 바로 책이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집일이 바로 책이다.


  제발 책을 먼 데서 찾지 말라는 뜻도 있기에, 우리 도서관은 바깥으로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 종이에 깃든 슬기나 넋을 맛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오라. 이곳으로 오는 길에 둘레에 펼쳐진 시골마을과 숲을 보라. 책은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헌책방 문화는 있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헌책방 문화’가 있는가? ‘헌책방 문화’를 헤아리거나 살핀 사람이 있는가? 헌책방에서 책을 값싸게 사들이려고 하는 사람,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싼값에 캐내려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만 많지 않았을까?


  그러나, 헌책방이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동네 한켠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려 책살림을 꾸릴 수 있도록 밑힘이 된 따사로운 책손도 많다. 아니, 따사로운 책손이 많기에, 헌책방이 오늘날에도 전국 곳곳에 알뜰살뜰 있다고 할 만하다.


  문화란 무엇일까. 오늘 이곳에서 싱그럽게 살아서 숨을 쉴 적에 문화라고 느낀다. 죽어서 박물관에 가면 문화가 아니다. 박물관에 처박히고 만 짚신이나 삼태기나 멍석이나 볏섬을 문화라고 할 수 없다. 이것들은 이제 모두 죽은 유물이요 박제일 뿐이다.


  동네마다 있던 헌책방이 차츰 사라질 때까지 등돌리거나 내버린 행정관료와 지식인은 이제서야 ‘헌책방 문화’를 가끔 들먹인다. 그러나, 이제 와서 들먹이는 목소리는 문화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아니다. 유물이나 박제를 찾으려고 하는 지식질이다.


  예부터 모든 살림집에서 아침저녁으로 차려서 먹던 밥은 삶이면서 문화이다. 임금님 밥상은 문화가 아니다. 임금님 밥상은 유물이요 박제일 뿐이다. 문화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서 움직여야 한다. 집집마다 끓이는 된장국이 문화요, 집집마다 담가서 먹는 김치가 문화이다. 그러니까, 문화가 되자면 삶이어야 한다. ‘헌책방 문화’를 말하자면 ‘헌책방 삶’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멀거니 떨어진 자리에서 ‘헌책방 통계’를 따진다든지 ‘알라딘 중고샵이 어쩌고’ 하고 읊는대서 문화가 되지 않을 뿐더러 문화비평조차 되지 않는다. 스스로 즐겁게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니면 문화이다. 책 한 권을 사든 책 백만 권을 사든 대수롭지 않다. 책마실을 다니면서 책 한 권 안 사도 대수롭지 않다.


  두 다리로 책마실을 누리면 된다. 책마실을 누리는 책삶이라면 책문화이고, 이러한 책문화를 헌책방에서 맛보는 이들이 헌책방 문화를 가꾸거나 살찌운다.


  헌책방 문화는 있을까 없을까. 헌책방이 있고, 헌책방에 책이 있으며, 헌책방에서 아름다운 책 하나 만나서 즐겁게 읽으려고 하는 책손이 있으면, 헌책방 문화는 늘 이곳에 있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