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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소원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6년 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3



착한 마음으로 비는 꿈 하나

― 까마귀의 소원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마루벌 펴냄, 1996.2.25.



  나는 내 동무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모릅니다. 내 동무는 그저 동무입니다. 나를 동무로 여기는 이웃은 내가 잘생겼다고 여길까요, 아니면 못생겼다고 여길까요? 모릅니다.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생각할 수 있어요. 겉모습을 보거나 따지려 한다면, 나와 너는 서로 동무가 못 됩니다.


  겉모습뿐 아니라 돈(재산)을 놓고 따져도 서로 동무가 못 됩니다. 이름값이 높거나 낮은가를 놓고 따져도 서로 동무가 못 됩니다. 힘이 센가 여린가를 놓고 따져도 서로 동무가 못 되어요.


  동무라고 한다면 마음으로 사귀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동무가 되려면 마음으로 만나서 아낄 수 있는 숨결이어야 합니다. 동무로 지내는 사람은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 까마귀는 한숨을 쉬었어요. “아니야, 난 그런 멋진 곳에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낡아빠진 이 깃털 좀 보렴. 게다가 선물 살 돈도 없고. 같이 갈 친구조차 없거든.” “저와 제 친구들과 함께 가요.” “고맙다, 밍크야.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정말 갈 수가 없구나.” ..  (5쪽)




  마음은 착하지만 겉모습을 따진다면 어떤 삶이 될까 궁금합니다. 마음은 안 착하지만 겉모습을 안 따진다면 어떤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마음이 착하면서 겉모습을 안 따진다면 참으로 아름답겠지요. 마음이 안 착하면서 겉모습만 따진마녕 여러모로 그악스럽겠지요.


  우리는 누구하고 동무로 지낼까요? 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어서 이웃하고 동무로 지내는가요?



.. “생쥐야, 왜 그러니?” “내일이 주머니쥐 생일인데, 전 갈 수가 없어요. 모두들 짧은 제 꼬리를 보고 놀릴 거예요.” “저런! 그만 울고 이걸 받으렴.” 까마귀는 별가루 상자를 열었어요 ..  (14쪽)





  하이디 홀더 님이 빚은 그림책 《까마귀의 소원》(마루벌,1996)을 읽습니다. 한국말로 나온 지 제법 된 그림책입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그림책 가운데 하나요,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손꼽힙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까마귀’는 여리거나 가여운 동무를 아낍니다. 어려워 하는 동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늙은 까마귀로서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습니다. 제 밥그릇이나 보람을 살피지 않으면서 도와요. 기꺼이 돕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도우며, 기쁘게 돕습니다.


  다만, 까마귀는 동무와 이웃을 도우면서 마음이 늘 허전해요. 틀림없이 기쁜 일이요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삶이지만, 늙은 까마귀 마음을 짓누르는 아픔이 한 가지 있습니다.



.. 마지막 남은 별가루를 받아 쥔 토끼 아가씨는 행복하게 집으로 뛰어갔어요. 까마귀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까마귀는 이제 텅 빈 상자를 선반에 올려놓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  (20쪽)




  늙은 까마귀는 ‘늙음’ 때문에 스스로 괴롭습니다. 늙은 까마귀는 이제 짝꿍도 없이 홀로 지내는 터라, 아무도 저랑 동무가 되어 주지 못 하리라 지레 생각합니다. 여러 동무와 이웃이 까마귀와 함께 놀자고 부르지만, 늙은 까마귀는 자꾸 스스로 깎아내립니다. 스스로 늙고 못생겼다고 말하면서 뒤로 빼거나 손사래칩니다.


  늙은 까마귀는 왜 동무와 이웃이 저를 바라보는 마음을 안 읽으려고 할까요? 다른 동무와 이웃은 늙은 까마귀를 바라보면서 ‘늙었다’거나 ‘못생겼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살가운 동무와 이웃으로 여깁니다. 함께 놀기를 바라고, 함께 웃기를 바라며, 함께 노래하기를 바라요.


  이와 달리 늙은 까마귀는 제 ‘겉모습’에 끄달립니다. ‘늙고 꾀죄죄해 보인다’는 생각에 스스로 사로잡힙니다. 스스로 씌운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스스로 가둔 쇠창살에서 허덕입니다.



.. 숨을 죽이고 까마귀는 그 별가루 한 알을 집어 베개 밑에 넣었습니다. “이것으로 될까? 아! 별가루야, 내 소원을 이루어 주렴. 나를 다시 젊고 활기찬 새로 만들어 주렴.” ..  (27쪽)



  늙은 까마귀는 아주 착합니다. 다만, 스스로 제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할 뿐 아니라, 동무와 이웃이 서로 아끼려는 마음조차 못 읽지만, 늙은 까마귀는 아주 착해요. 그래서, 이 착한 마음에 선물이 찾아들고, 이 선물은 늙은 까마귀가 스스로 얽매이면서 붙잡으려고 하는 실타래를 풀어 줍니다. 늙은 까마귀는 젊음을 한 번 되찾아요.


  자, 이제 젊은 까마귀가 되었으니까 동무나 이웃 앞에서도 떳떳할까요? 젊은 까마귀는 아무 거리낌이 없이 신나게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날아다닐 만할까요? 그러면, ‘젊어진 까마귀’는 ‘늙은 이웃 까마귀’를 만나면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늙은 이웃 까마귀더러 그대도 젊어지라고 말할까요? 늙은 모습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늙고 지치거나 못생긴 이웃이나 동무한테 ‘겉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어깨를 겯고 기쁘게 노래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림책 《까마귀의 소원》은 ‘마음 착한 숨결’이 받는 선물을 사랑스레 보여줍니다. 다만, 마음 착한 숨결은 보여주되 ‘속마음을 읽는 따사로운 사랑’까지 차근차근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이 대목까지 건드리면서 환하게 밝혔다면 훨씬 아름다운 그림책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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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07] 시골과 도시



  아이답기에 아이답고

  바람 같기에 바람 같으며

  사랑스럽기에 사랑스럽다



  도시에서 살 적에는 ‘시골스럽다’라는 말을 들으면 시골사람을 깎아내리려는 뜻을 풍기는구나 하고 느꼈고, 시골에서 사는 요즈음은 ‘시골스럽다’라는 말을 들으면 시골에서 사니 시골스럽다고 말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랑스럽다나 믿음직스럽다는 말처럼, 시골내음을 이야기하는 ‘시골스럽다’이지 싶습니다. ‘도시스럽다’도 도시내음을 이야기하는 말이 될 테고요.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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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22) 별도의 1


이럴 때일수록 동요하지 말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방에서 대기하도록 하세요

《류춘도-벙어리새》(당대,2005) 66쪽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 다른 말이 있을 때까지

→ 더 말이 있을 때까지

→ 따로 얘기가 있을 때까지

 …



  한자말 ‘별도’는 “원래의 것에 덧붙여서 추가한 것”이나 “딴 방면”을 뜻한다고 하는데, ‘추가(追加)’는 “나중에 더 보탬”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사전 말풀이는 겹말입니다. “더 붙이거나 넣을” 적에 ‘별도’를 쓰는 셈입니다. 이러한 뜻을 헤아리면 ‘별도’는 ‘더’나 ‘딴’이나 ‘다른’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더 보태는’이나 ‘덧붙이는’을 가리킨다고도 할 만합니다.


 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 방이 따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별도의 기구에서 다룰 예정

→ 이 일은 다른 곳에서 다루려 함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별도의 적금을 들어 두었다

→ 입학금을 마련하려고 따로 적금을 들어 둘었다

 별도의 잣대

→ 새로운 잣대 / 다른 잣대

 별도로 생각해 볼 문제

→ 새롭게 생각해 볼 일 / 따로 생각해 볼 일


  곰곰이 따지면, ‘별도’는 ‘다를 別 + 길 途’입니다. “다른 길”을 한자로 옮겼을 뿐입니다. 한국말로는 처음부터 ‘다른(다르다)’인 셈이고, 이 같은 얼거리를 찬찬히 읽는다면 ‘별도 + 의’처럼 쓸 일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4338.12.19.달/4348.4.10.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럴 때일수록 흔들리지 말고 따로 말이 있을 때까지 방에서 기다리도록 하세요


‘동요(動搖)하지’는 ‘흔들리지’나 ‘움직이지’나 ‘술렁이자’나 ‘웅성거리지’로 다듬고, ‘대기(待機)하도록’은 ‘기다리도록’으로 다듬습니다. ‘지시(指示)’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이 자리에서는 ‘말’로 손볼 만합니다.



별도(別途)

1. 원래의 것에 덧붙여서 추가한 것

   - 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 이 문제는 별도의 기구에서 다룰 예정 /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별도의 적금을 들어 두었다

2. 딴 방면

   - 별도의 잣대를 대어 보는 방법 / 이전 계획과는 별도로 생각해 볼 문제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341) 별도의 2


고양이 꼬리는 40% 정도는 고양이에 속해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40%의 별도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권윤주-to Cats》(바다출판사,2005) 41쪽


 40%의 별도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 40%는 다른 넋이다

→ 40%만큼 다른 숨결이 있다

→ 40%는 따로 움직인다

→ 40%는 딴 몸이다

 …



  ‘자아’라는 한자말을 그대로 두려면 “40%는 다른 자아이다”처럼 쓰면 됩니다. ‘자아’를 한국말로 손질하려면 ‘넋’이나 ‘숨결’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고양이 꼬리를 이야기하니까, “따로 움직인다”라든지 “딴 몸이다”처럼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4341.4.30.물/4348.4.10.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고양이 꼬리는 40%쯤 고양이한테 얽매이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40%쯤 따로 제 숨결이 있다


“40% 정도(程度)”는 “40%쯤”으로 손보고, “고양이에 속(屬)해 있지 않다”는 “고양이한테 얽매이지 않는다”나 “고양이와 얽히지 않는다”나 “고양이 몸에 들어가지 않는다”나 “고양이한테 딸리지 않는다”로 손봅니다. ‘자아(自我)’는 ‘넋’이나 ‘숨결’로 손질할 수 있고, “가지고 있다”는 “있다”로 손질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1) 별도의 3


이 주제들로 별도의 책을 만들지 못했다

《레몽 드파르동/정진국 옮김-방랑》(포토넷,2015) 116쪽


 별도의 책을 만들지

→ 책을 따로 만들지

→ 책을 새롭게 만들지

→ 책을 더 만들지

 …



  어떤 이야기로든 책을 묶습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을 보니, ‘이 주제’로는 책을 묶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주제)로는 책을 묶었을 테지요. ‘이’ 이야기로는 책을 묶었고, ‘다른’ 이야기로는 책을 못 묶었다는 소리입니다. 어떤 이야기로는 책을 묶었으나, 이 이야기로는 책을 ‘더’ 못 묶었거나 ‘새롭게’ 묶지 못했다는 소리도 됩니다. 4348.4.10.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얘기들로 책을 더 묶지 못했다


‘주제(主題)’는 ‘이야기’로 손볼 수 있습니다. “책을 만들지”는 “책을 묶지”나 “책을 엮지”나 “책을 내지”나 “책을 쓰지”로 손질합니다. ‘만들다’는 공장에서 물건을 찍는 모습을 가리키면서 써야 어울립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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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물이 뒤늦게



  마당 한쪽 꽃밭에 돌나물이 일찌감치 올라와야 했으나 별꽃이 먼저 싹이 터서 무럭무럭 올라오는 바람에 돌나물은 옆으로 밀리고 밀린 끝에 이제서야 겨우 고개를 내민다. 올 삼월에는 돌나물을 아직 맛보지 못한다. 이만큼 돋아서야 돌나물을 훑어서 먹을 수 있을까. 꽃이 피어서 씨앗을 퍼뜨리도록 그냥 두어야 하지 않을까. 별꽃나물이 스러진 뒤에 돌나물이 비로소 기지개를 켤는지 모른다. 슬슬 별꽃나물이 씨앗을 내놓으면서 흙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올 테지. 토실토실 싱그러운 풀줄기가 차츰 흙빛을 덮는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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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씨앗주머니는 벌써



  사월로 접어들면 제비꽃은 꽃송이는 진작 져서 없고, 씨주머니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씨주머니에도 깨알보다 작은 제비꽃씨가 톡톡 터져서 퍼지거나 개미가 바지런히 주워서 가져가서 텅 비기 마련이다. 아직 몇 톨 남은 제비꽃씨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제비꽃 잎사귀를 살짝 들추면 어김없이 개미가 오글오글 부산하다. 이제 사월에는 제비꽃이 거의 다 졌으니 앞으로 얼마쯤 뒤면 다시 제비꽃이 필까. 늦여름에 필까, 이른가을에 필까, 아니면 한겨울에 다시 필까. 풀숲에서도 피지만, 돌틈에서 많이 돋는 제비꽃을 바라본다. 쪼그려앉아서 꽃대와 잎사귀와 씨주머니한테 인사를 한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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