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02


《弁證法とはどういうものか》

 松村一人 글

 岩波書店

 1950.11.20.첫/1971.3.20.36벌



  헌책집에서 책을 살필 적에 으레 일본 손바닥책을 뒤적입니다. ‘암파서점(岩波書店)’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나온 작은책을 들추는데, 일본은 진작부터 우리나라 이야기를 꾸준히 자주 내놓았고,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책을 값싸고 단출하게 여밉니다. 더구나 조그마한 책 사이에 담은 책갈피조차 남달라요. 책을 읽다가 꽂는 구실뿐 아니라, 책밭을 새롭게 헤아리는 징검돌도 담으니 쏠쏠합니다. 《弁證法とはどういうものか》는 1950년에 처음 나오고서 1971년에 36벌을 찍은 꾸러미이고, 이 책을 장만해서 읽던 분은 ‘영진장서(永辰藏書)’라는 글씨를 새겨서 꾹 찍었을 뿐 아니라, 바지런히 배운 손자국이 곳곳에 있어요. “이웃나라 손바닥책을 두 손에 품고서 살뜰히 배운 자국”을 쓰다듬으면서 “오늘 나는 어떻게 익히며 가꾸려는가?”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더 빠르게 바뀌는 물결이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도 갖은 이야기가 휙휙 쏟아지지만, 오히려 띄엄띄엄 천천히 읽고 새깁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바쁠수록 한 손에는 종이책을 들고, 다른 손에는 붓을 쥡니다. 사각사각 손글씨를 적습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적바림합니다. 이제부터 일굴 살림길을 곰곰이 되새깁니다. 하루를 쪼개기보다는 하루를 통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책을 읽었으면, 그만큼 아이들하고 집안일을 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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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01


《괴테名言集, 인생·예술·행복》

 괴테 글

 이지상 옮김

 백조서점

 1959.8.10.



  일본에서 지은 말인 ‘문고본(文庫本)’입니다. ‘○○문고’는 모조리 일본 책살림을 흉내낸 판입니다. 이름도 엮음새도 줄거리도 일본책을 베꼈고, 때로는 알맹이까지 통째로 훔쳤더군요. 1959년에 나온 《괴테名言集, 인생·예술·행복》은 ‘白潮新書 11’라는데, ‘백조신서’는 아예 일본 손바닥책 이름마저 따왔더군요. 책끝에 붙인 “다른 손바닥책 이름과 줄거리”를 담은 칸짜임도 일본책을 따라했습니다. 그래도 지난날 이 작은 《괴테명언집》을 한글판으로 읽던 분은 고맙게 여겼겠지요. 주머니에 쏙 넣고서 언제 어디에서라도 가볍게 펼치면서 아름말(명언)을 곱씹을 만하거든요. 우리나라는 1945년부터 거의 2000년까지 손바닥책도, 살림꾸러미(백과사전)도, 낱말책(사전)도, 그림책에 동화책까지도, 일본책을 여러모로 훔쳤습니다. 헌책집을 다니다가 이런 흉허물을 마주할 적에 쓴웃음을 짓는데, 좀 더디고 품을 많이 들이더라도, 손수 영어나 독일말이나 스웨덴말을 제대로 익혀서 옮겨 보았다면, 스스로 속힘을 키울 수 있어요. ‘영일사전’을 ‘영한사전’으로 슬쩍한들 우리 영어 솜씨가 늘지 않습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우리 나름대로 ‘작은책’이나 ‘손바닥책’이라 할 만합니다. ‘주머니책’이라 할 수 있어요. ‘조약돌책’이나 ‘씨앗책’ 같은 이름도 어울려요.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을 이 바쁘고 북새통인 한복판에 가만히 심고서 느긋느긋 보듬고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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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2.14.

숨은책 565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향토교실》

 편집부 엮음

 인천향토교육연구회

 1993.3.26.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열여덟 살에 인천 배다리 헌책집에서 《제4차 향토기행, 개항장 일대》를 찾아내어 읽고서, 한국사·세계사 길잡이한테 우리도 이런 마을짚기(향토기행)를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여쭈었어요. 한 분은 “고3이 무슨 향토기행?”이라며 내쳤고, 다른 분은 《개항장 일대》를 저한테 빌려서 곰곰이 읽으시더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배움터 길잡이가 못 하겠다면 스스로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으리으리한 이름을 붙이진 않았어도, 어릴 적부터 동무네에 걸어서 놀러갔다가 걸어서 돌아오는 길은 모두 마을짚기였습니다. 때로는 중구 신흥동부터 북구 산곡동까지 걸었고, 수봉공원을 에돌아 용현동과 주안동을 지나고 구월동까지 걸었어요. 또래는 “입시를 앞두고 무슨 마을걷기냐?” 하며 시큰둥했고, 밑내기도 한나절 걷기를 손사래쳐서 혼자 걸었습니다. 만석동과 화수동에 사는 동무한테 이 골목으로 걸어갔다면, 우리 집까지 돌아갈 적엔 딴 골목을 걸었습니다. 고3이던 1993년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향토교실》을 헌책집에서 또 찾았습니다. ‘인천역사터잡이―어진내 3’으로 나온 꾸러미입니다. 용케 내놓아 준 분이 있고, 즐겁게 챙겨서, 나와 이웃이 맺은 마을길을 이어 보았어요. 누가 시켜야 배움길을 갈 수 있지 않아요. 혼자 걷고, 스스로 걷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걸을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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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569


《제4차 향토기행, 개항장 일대》

 편집부 엮음

 인천향토교육연구회

 1992.6.21.



  어려서 나고자란 마을이 어떤 이름이고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둘레에 물어봐도 모르기 일쑤요, 다들 “그딴 데엔 마음조차 없”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데 쓸데없는 일만 묻는다며 타박에 꾸중에 핀잔으로 꿀밤을 실컷 먹었습니다. 허울뿐인 ‘자율학습·보충수업’이란 이름으로 07∼23시를 배움터 잿칸에 갇힌 푸른날입니다. 이렇게 가둔들 셈겨룸을 잘 치를 수 없는데, 가두는 꼰대부터 스스로 바보로 뒹구는 셈인데, 낡은 굴레를 바꾸려는 몸짓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이레에 이틀씩 어떻게든 저녁에 담을 넘거나 ‘학원에 간다고 나서는 물결’에 숨어서 달아났고, 인천 배다리 책골목에 깃들었어요. 책집이 닫을 때까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는데, ‘1992.11.1.해날’에 〈아벨서점〉에서 《제4차 향토기행, 개항장 일대》를 만납니다. “아니, 같은 인천인데 어느 곳은 이런 향토기행도 다닌다고! 너무하잖아!” 꾸러미가 닳도록 자주 읽고 새겼습니다. 솔고개(송현동)·모래말(사동)·논골(답동)·솔울·꽃굴(신흥동)·터진개(신포동)·버들골(유동)·큰우물거리(용동)·밤나무골(율목동)·바닷가(해안동)·새마을(신생동)·싸리재(경동)·안굴(내동)·쇠뿔고개(창영동)·무네미·벌말 같은 이름이 곳곳에 있은 줄 처음으로 느끼면서 벅찼어요. 태어난 마을을 몰라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을 테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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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912


《增補 師任堂의 生涯와 藝術》

 이은상 글

 성문각

 1962.9.1.첫/1970.8.8.증보3판



  싸움터에서 작대기 넷을 달고서 막바지를 보내던 1997년 가을날, 행정보급관이 무슨 글뭉치를 건네었고, 바른글씨로 옮겨적고서 연대로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행정보급관 어머님이 퍽 늙으셨고, 나라에서 무슨 이바지돈을 받을 수 있다기에 내는 꾸러미 같았습니다. 글씨를 옮겨적다가 갸우뚱해서 “여기 이분 이름이 ‘망아지’ 맞습니까?” 하고 여쭈었어요. “야! 소리내지 마!” 하며 윽박지릅니다. 양구 도솔산 꼭대기에서 밑자락으로 걸어내려서 꾸러미를 내고는, 다시 낑낑대며 멧꼭대기로 걸어오는 긴긴 길에 곱씹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이한테 망아지란 이름을 붙였을까?’ 할머니 한 분은 늘그막까지 이름을 그대로 붙들며 살아갔습니다. 《增補 師任堂의 生涯와 藝術》은 언제나 우두머리한테 조아리던 이은상 씨가 씁니다. 이이는 이순신 이야기도 썼고, 일본·이승만·박정희·전두환한테 두루 굽신거리는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하고많은 글바치 가운데 신사임당 이야기를 여밀 일꾼 하나 없었을까요? ‘사임당 신씨’라고만 알려졌을 뿐, 막상 이름을 알 길이 없는데, 이 책 첫머리에는 ‘씨줄(가문의 종합 계보)’부터 싣습니다. 씨줄이 그토록 대단하다면서 어찌 신사임당 이름조차 알 턱이 없을까요? “보물 제 165호 오죽헌 기념, 강릉”이란 글씨를 눌러찍은 책을 쓸쓸히 쓰다듬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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