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경찰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뭔데요?” “옆구리에 낀 책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왜 보여줘야 하는데요?” “검문 좀 받으셔야겠습니다. 그냥 못 지나갑니다.” “멀쩡히 길을 가는 사람을 왜 세워서 못 가게 합니까? 비키세요.” “안 됩니다. 이 앞에는 못 지나갑니다. 책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왜 못 가요? 길을 왜 못 가게 막습니까?” “이 앞에 집회를 하는데, 거기 가는 거 아닙니까?” “무슨 집회를 한다고 그래요. 나는 서울역 옆에 있는 헌책집에 책 보러 가는 길인데.” “안 됩니다. 책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뭐야 이거?” “야, 이 새끼 잡아. 저 책 빼앗아. 찢어버리고 (닭장차에) 집어넣어.” …… 한창 신문배달을 하던 1998년 어느 날 봄, 배달자전거로는 좀 멀지 싶어서 전철을 타고 서울역 앞에서 내려 서울역 언저리에 있는 헌책집에 가는 길에 전투경찰이 앞을 막아섰다. 그러더니 내가 걸어가며 읽던 책을 빼앗아서 찢어버렸고, 닭장차에 두 시간 즈음 갇혔다. 서울역 건너쪽에 있는 경찰서에까지 끌려갔고, 경찰은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한 마디만 하고 풀어줬다. 옆구리에 하나, 손에 하나, 이렇게 책 두 자락을 들고서 헌책집에 찾아가던 젊은이는 얼결에 닭장차에 경찰서에 한나절을 갇히며 갖은 막말을 들어야 했다. 1998.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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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봐

서두르지 않아도 돼. 떠오르는 글은 언제나 다 즐겁게 쓸 수 있어.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다 즐겁게 읽을 수 있어. 해봐. 다 되더라. 1998.6.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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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는 나무

배우려는 사람한테는 하나만 가르쳐 줄 수 없다. 둘도 셋도 넷도 열도 자꾸자꾸 가르쳐 주며 서로 신난다.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백도 쉰도 스물도 열도 아닌, 다섯도 셋도 둘도 아닌, 고작 하나조차도 가르쳐 줄 수 없다. 서로 고달프니 그저 짜증만 피어난다. 크는 나무는 해랑 비랑 바람이랑 흙을 기쁘게 맞아들인다. 크지 못하는 나무는 해도 비도 바람도 흙도 모두 손사래치겠지. 1999.10.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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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쓰기

고흥에서 인천으로 가는 일곱 시간 걸린 길에 동시 석 자락을 썼고, 인천에서 경기 양주 덕계도서관으로 가는 두 시간 전철길에 동시 석 자락을 또 썼다. 이 동시는 인천하고 양주에서 만난 이웃님한테 모두 드렸다. 양주 이웃님 한 분이 묻는 묻는다. “어떻게 동시를 그렇게 뚝딱 하고 써낼 수 있어요?” 나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대꾸한다. “잘 썼거나 못 썼거나를 따지지 않고서 써요. 저는 제가 만날 이웃님을 헤아리면서 써요. 쓰려고 생각하니 쓸 수 있어요. 이웃님이 동시를 쓰고 싶은데 뚝딱 나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너무 멋지거나 빈틈없는 동시를 써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탓이지 싶어요. 멋지거나 빈틈없는 동시를 뚝딱 써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니 못 쓰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어떻게 무엇을 써야 좋은가를 갈피 잡지 못한 탓이기도 해요. 그냥 뚝딱 쓰시면 되어요. 뚝딱 쓴 동시가 좋으냐 나쁘냐를 안 따지면 되어요. 이른바 ‘가치판단·평가’는 하지 말아 주시고요, 그냥 쓰셔요. 잘 썼든 못 썼든 좋으니 그냥 쓰시면 되어요. 쓰고 나서 손질하거나 고치면 되어요. 쪽종이 한 칸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야기를 신나게 쓰셔요. 저는 열한 해쯤 늘 뚝딱뚝딱 그 자리에서 동시를 썼고, 이렇게 쓰는 사이에 뚝딱뚝딱 그 자리에서 쓰더라도 늘 제 마음을 오롯이 담는 열여섯 줄 동시를 늘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는 길을 찾았어요. 이웃님도 스스로 길을 찾는 뚝딱쓰기를 오늘부터 하시면 좋겠어요.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즐겁게 하노라면.” 2019.4.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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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꽃

시를 쓰는 사람은 낱말풀이를 하는 사람. 낱말풀이를 하는 사람은 새 숨결을 불어넣는 사람. 새 숨결을 불어넣는 사람은 말에 깃든 삶·살림·사랑을 새로 바라보고 느껴서 노래하듯 이야기하는 사람. 이리하여 시를 쓰는 사람은 노래하는 벗님, 노래님이고, 노래님 손끝에서 태어나는 글은 노래꽃이 된다. 2019.4.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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