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8

책이란 뭘까? 물어보기로 한다. 눈을 감고서 하나하나 찾아가서 물어본다. 바람은 “가볍게 가볍게”, 밤이 깊어 이 골 저 골에서 노래하는 소쩍새는 “나는 그냥 노래할래.”, 무화과나무는 “나야.”, 개구리는 “이 물 좀 마셔 봐.”,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 흐드러진 흰민들레꽃은 “따뜻해.”,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은 “하하하.”, 흙은 “풋, 몰라서 묻니?”, 담을 이루어 준 돌은 “돌고 돌아서 여기에 왔어.”, 내 곁에 가득 있는 책은 “반가워. 네 손길을 기다린다.”, 연필은 “늘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거미는 “모두를 잇고 모두 사로잡고 모두 품에 안을래.” 다들 제 목소리로 책이란 무엇인지 들려준다. 더없이 고맙다, 책은. 2019.4.2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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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1

다들 글을 써서 나누거나 올릴 적에 ‘-하다’ 꼴로 맺는다. 이런 글결이 내키지 않아 ‘-합니다’처럼 부드럽게, 말하듯이 글을 쓰니 나더러 “무슨 글이 그렇게 공손해? 여자 같잖아?” 한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공손하게 글을 쓰지 않아요. 말을 하듯이 썼을 뿐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적에 ‘-하다’로 끝을 맺나요? 아니지요?” 하고 묻는다. “아니, 그래, 말을 할 적에 ‘-하다’로는 안 하지. 그런데 글은 다르잖아. 글에서 왜 ‘-합니다’나 ‘-해요’ 하고 끝맺으면서 써?” “말을 할 적에 그렇게 하니까요. 글결이 말결하고 다르면 겉을 가리는, 참모습을 숨기는 이야기가 되리라 느껴요.” 1994.5.6. ㅅㄴㄹ


합니다 2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서 내가 ‘-하다’로 끝맺는 글을 안 쓰니 매우 거북해 한다. 다른 시민기자는 모두 ‘-하다’로 끝맺을 뿐 아니라, 다른 어느 신문이든 ‘-하다’로 끝맺을 뿐인데, 왜 나 혼자 ‘-하다’로 끝맺지 않고 ‘-합니다’나 ‘-해요’로 끝맺느냐고, 내가 쓰는 글결을 고쳐 달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다 다르고, 다 다른 사람은 말씨도 다를 테고, 말씨가 다른 만큼 글결이 다르지 않을까요? 다 다른 시민기자가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글로 실어서 새로운 이야기판을 열겠다는 곳이 오마이뉴스 아닌지요?” “그 말은 맞는데, 아무래도 최종규 기자님 글은 적응이 안 돼.” “적응하지 마셔요. 왜 적응을 해야 하나요? 제가 쓰는 글에서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읽으면 될 뿐입니다. 저는 ‘-하다’로 끝맺는 글을 도무지 못 쓰겠습니다.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일이 없는데, 입으로 안 하는 말을 어떻게 글로 쓰나요?” 2002.2.22. (덧말 : 내 글결을 도무지 봐주기 힘들다고 하는 편집기자가 많았지만, 시민기자 이웃님은 내 글결을 지켜보면서 한 분 두 분 ‘-하다’란 글결을 버리고‘-합니다’로 넘어왔다. 이제 무척 많은 분들이 신문글에서도 ‘-합니다’를 쓴다. 사건이나 사고를 다루건 정치나 경제를 다루건 구태여 ‘-하다’로 쓸 까닭이 없는 줄 느끼는 분이 꽤 늘었다고 느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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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 걷자

“너! 이리 와!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했는데 왜 뛰었어!” “네? 저요? 전 안 뛰었는데요?” “뭐야? 너 여기서 뛰었잖아!” “아니요. 뛴 아이는 저기 가는 애고요, 저는 서둘러야 할 일이 있어서 달렸어요.” “뭐, 뭐, 뭐라고? 야, 뛰거나 달리거나 똑같아!” 무슨 교사가 ‘뛰다’하고 ‘달리다’도 모를까? 게다가 내 앞에서 마구 뛰어논 저 아이는 붙잡지 않고, 발소리를 죽이며 살살 달린 나만 붙잡고서 꿀밤을 먹인다. 교사란 어른들은 바보투성이다. 골마루에서 달린대서 아슬하거나 다치지 않는다. 달리기에 시끄럽지 않다. 쿵쿵 뛰니까 시끄럽고 다칠 수 있겠지. 잰걸음으로 가야 할 때도 있고, 사뿐사뿐 달릴 수도 있다. 조용한 학교를 이루고 싶으면 “뛰지 말 것!” 같은 으름장은 내버리고 “살살 걷자”나 “살살 다니자”라고 부드럽게 말하면 확 달라지리라. 1985.5.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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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은 사전에서 ‘쏠’이란 낱말을 어떻게 찾았을까? 나는 사전을 첫 낱말부터 끝 낱말까지 모조리 두 벌 훑었는데 그 ‘쏠’이란 낱말을 읽었다는 생각은 나지 않았다. 아마 눈에 뜨이는 사람한테만 뜨인 이름이겠지. 사전은 “쏠 = 작은 폭포”로 풀이한다. 그러면 “큰 폭포”를 가리키는 한국말이 따로 있을까? 온갖 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큰 폭포”를 가리키는 한국말을 찾을 길이 없다. 어쩌면 그냥 ‘쏠 = 폭포’인 셈이 아닐까. 1995.11.3.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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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살기

하이텔이란 피시통신이 있다. 천리안도 있고. 하이텔은 형이 드나드는 이름으로 얼핏설핏 구경하는데, 인천에 인디텔이란 곳이 새로 연다. 나우누리란 곳도 문을 연다. 어느 곳은 알파벳으로만 이름을 붙여야 하고, 나우누리는 한글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나우누리에 어떤 이름을 쓰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지지난해에 이웃집 아저씨가 선물로 준 옷에 적힌 “함께 가는 길”이란 글월이 떠오른다. 다섯 글씨를 줄여 ‘함께가기’로 할까 하다가, 좀 안 어울리지 싶어 ‘함께살기’로 써 본다. 좋네, 좋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가는 길에서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자는 뜻을, 함께 사랑하고 살림하며 살자는 뜻을 ‘함께살기’란 이름에 실으려 한다. 1994.1.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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