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

어느 글님은 글 한 줄을 쓰려면 책을 다섯 자락은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놓고 좀 지나치지 않느냐고 묻는 이웃이 꽤 많다. 어떻게 책 다섯 자락을 읽고서 글 한 줄을 쓰느냔다. 이 말씀을 곰곰이 듣다가 이웃님한테 불쑥 한 마디를 여쭌다. “저는 글 한 줄을 쓰려면 책 다섯 자락이 아닌 백 자락은 읽어야 한다고 여깁니다만.” 이웃님이 눈이며 코이며 입을 멍멍 벌린다. 한 마디를 보탠다. “모름지기 우리 이름을 걸고서 책을 하나 새로 쓰자면, 다른 사람이 지은 삶이야기를 천 자락쯤 읽고서야 ‘내 하나’를 조그맣게 여밀 만하리라 여깁니다.” 종이책만 천 자락이 아니다. 삶책 사랑책 사람책 숲책 씨앗책 살림책 빨래책 아이책 …… 온갖 책을 두루 천 자락씩 읽고 꿸 적에 바야흐로 책 한 자락을 새로 써낼 만하다고 느낀다. 2002.2.3.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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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경찰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뭔데요?” “옆구리에 낀 책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왜 보여줘야 하는데요?” “검문 좀 받으셔야겠습니다. 그냥 못 지나갑니다.” “멀쩡히 길을 가는 사람을 왜 세워서 못 가게 합니까? 비키세요.” “안 됩니다. 이 앞에는 못 지나갑니다. 책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왜 못 가요? 길을 왜 못 가게 막습니까?” “이 앞에 집회를 하는데, 거기 가는 거 아닙니까?” “무슨 집회를 한다고 그래요. 나는 서울역 옆에 있는 헌책집에 책 보러 가는 길인데.” “안 됩니다. 책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뭐야 이거?” “야, 이 새끼 잡아. 저 책 빼앗아. 찢어버리고 (닭장차에) 집어넣어.” …… 한창 신문배달을 하던 1998년 어느 날 봄, 배달자전거로는 좀 멀지 싶어서 전철을 타고 서울역 앞에서 내려 서울역 언저리에 있는 헌책집에 가는 길에 전투경찰이 앞을 막아섰다. 그러더니 내가 걸어가며 읽던 책을 빼앗아서 찢어버렸고, 닭장차에 두 시간 즈음 갇혔다. 서울역 건너쪽에 있는 경찰서에까지 끌려갔고, 경찰은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한 마디만 하고 풀어줬다. 옆구리에 하나, 손에 하나, 이렇게 책 두 자락을 들고서 헌책집에 찾아가던 젊은이는 얼결에 닭장차에 경찰서에 한나절을 갇히며 갖은 막말을 들어야 했다. 1998.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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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1

남이 보라고, 예쁘게 보이려고, 멋지거나 그럴듯하게 쳐다보라고, 겉모습을 꾸미거나 치레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즐거우려고, 삶을 노래하려고, 사랑스레 하루를 지으려고, 마음을 가꾸는 사람이 있다. 1994.12.2.


사람 2

꿈을 그리는 사람은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더라. 꿈을 그리지 않는 사람은 죽어도 어디로도 갈 수 없고. 1995.9.1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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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 보렴

어른들은 말을 참 함부로 한다. 저 아는 대로만 말을 한다. 어른으로서 저 아는 대로 말하면, 이 말을 아이들이 얼마나 알아들을 만할까? 새말을 짓든 오래된 말을 살펴서 쓰든, 어른만 알아들을 말이 아니라, 어린이가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바로 즐겁게 알아들을 만한 말을 찾아서 쓸 노릇이라고 느낀다. 어린이뿐 아니다. 어른 가운데에도 적게 배운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 뭇어른 누구하고라도 어깨동무할 수 있는 결을 헤아리면서 말을 할 노릇이지 싶다. 배운 사람끼리 주고받을 만한 말이 아닌, 이 별에서 삶을 짓는 사랑스러운 사람들 누구나 기쁘게 맞아들일 만한 말을 살피고 살려서 새로 지을 노릇이지 싶다. 인문책에 적힌 글이나, 교과서에 적힌 글을 보면 그저 한숨이 나온다. 도무지 이웃을 헤아리지 않는 이런 말씨로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를 어떻게 가르치거나 배울 만한지 아리송하다. 2019.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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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발라내어

“얼마나 애썼는데!” 하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넌지시 묻는다. “참으로 애쓰셨어요. 그런데 살은 얼마나 발라내셨나요?” 하고. 내 말이 매우 뾰족할 수 있다만 굳이 묻는다. 이 물음은 그분한테 하는 말이라기보다 바로 나한테 하는 말이다. 남을 말하기 앞서 나는 우리 보금자리를, 살림을, 책숲을, 글이며 책을, 얼마나 살을 발라내면서 가꾸는가를 되새긴다. 애쓰기만으로는 턱도 없다. 살을 발라내어도 모자라도. 뼈를 깎아도 아직 멀다.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 온사랑을 다할 노릇이지. 온힘으로는 이루지 못한다. 언제나 온마음을 다하는 온사랑일 적에 비로소 조금 볼 만하다. 2019.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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