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기 #일산마실

2024.2.5.


어제 큰아이하고 둘이서

일산 할머니 뵈러

길을 나섰다.


할머니가 마음에 응어리를

안 푼 채 너무

바쁘고 힘들게 일하느라

할아버지가 저승 한켠에서

그만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꿈에서 보았고,

바로 일산에 가 보았다.


이승 저승 모두

좋은 데나 나쁜 데는 없다.

좋고 나쁜 데를 따지면

바로 떠돌깨비로 갇힌다.


사위가 쓴 책을

느긋이 읽을 틈을 내고

시골 사는 손주한테

손글씨 글월을 띄울 짬을

낼 만큼

하루를 차분히 그리고 누리면

응어리도 앙금도

우리 누구나 곧장

사랑으로 녹이고 푼다.


#다산시선


고3이던 1993년에 읽은

정약용 책을

서른 해 만에 다시 편다.


지난날 고3 수험생은

시험공부를 하다가 머리 식히려고

날마다 '그냥 책'을 두세 자락씩

읽었다.


그러다 성적 떨어진다는 핀잔을

늘 들었는데

책조차 안 읽고 성적만 오르면

그런 사람이 언제나

이 나라를 망가뜨리고

거짓말과 눈속임과 뒷짓을 하니,

나는

착하고 참하고 곱게 살림하는

어른으로 서고자

고3수험생이어도

날마다 두세 자락 책으로

마음밭을 살찌우려 한다고

교사와 또래한테 얘기했다.


#우리말꽃 #말글마음

#숲노래 #최종규 #곳간


하루치기를 마치고

시외버스를 탄다.

눈내리는 서울을 벗어난다.


이제 다시

조용히 곰곰이

시골빛과 숲빛을 노래하러

집으로 간다.

#고흥살이 #시골살이 #밤빛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어울림길 (2023.5.19.)

― 부산 〈카프카의 밤〉



  수영나루부터 마을길을 걷습니다. 곳곳에 “칼 쥐고 돌을 내리찍으며 왜놈을 때려잡는 사람” 모습을 세웠군요. 놀랐습니다. 무슨 마음일는지, 아이들이 뭘 배우라는 셈인지, 도무지 어른스럽지 않은 짓을 목돈 들여 구경거리로 박은 셈입니다.

  봄볕을 누리면서 골목집 꽃찔레를 바라보다가, 제비가 휙 옆머리를 스치며 날아가는 꽁무니를 좇습니다. 부산에도 제비가 돌아오는군요. 이 고장 제비는 어디에 둥지를 틀었을는지 궁금합니다.


  마을길이 끝나면 큰길이고, 쇳덩이가 끝없이 부릉거립니다. 어느덧 다시 마을길로 접어들면 어린이랑 푸름이가 깔깔대며 수다를 떠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부릉부릉 치달리는 손에는 책이나 붓을 쥘 틈이 없고, 호미나 낫을 잡을 겨를이 없습니다. 발바닥으로 땅바닥을 디디며 걸을 적에 비로소 책도 호미도 손으로 쥐면서 살림을 가꾼다고 느껴요.


  이제 〈카프카의 밤〉 앞에 이릅니다. 연산책숲 맞은켠에 깃든 마을책집에는 봄볕도 봄빛도 봄햇살도 물씬 스밉니다. 비오는 날에는 빗소리에 비빛을 품는 책집이자 마을길니다. 눈오는 날에는 눈빛에 눈바람을 담는 책집이고 골목입니다.


  여태까지 살며 아무도 안 믿습니다. 따로 믿음을 안 세웁니다. ‘믿다 = 밀다’인 말밑입니다. 믿음을 품으면 덮어놓고 밀거나 밀어붙이게 마련입니다. 믿음에 스스로 가두면, 우리 쪽이 아니면 ‘밉다’라는 씨앗을 뿌리고 말아요.


  이와 달리 ‘밑’을 볼 수 있다면, 밑바닥으로 스스로 깃들어 천천히 다스리고 다집니다. 밑바탕을 닦기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말밑을 다독이기에 말빛을 펼 수 있어요. 말밑이 아닌 ‘믿음길’로 치달으면 아무 말이나 퍼뜨리면서 밉말에 싸움말로 쳇바퀴입니다.


  작은책집이란, 크지 않은 책집입니다. 크지 않은 책집이란, 느긋이 머무는 책뜰입니다. 느긋이 머물 적에는 눈길을 틔워 온갖 책을 고루 품을 만합니다. 온갖 책을 고루 품을 적에는, 이쪽이냐 저쪽이냐가 아닌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밑동을 가꾸어 줄기를 올리며 가지를 뻗는 나무로 서는 길을 연다고 느껴요.


  누구를 밀거나 뽑아야 하지 않아요. 서로 마음을 바라보고 밑싹을 돌볼 적에 아름답습니다. 누가 어느 자리를 맡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온누리를 푸른숲으로 바라보면서 스스로 살림길을 짓는 사랑꽃을 피울 줄 알아야지 싶어요. 우리는 서로 숨빛을 보고, ‘어린씨(어린이)’하고 ‘푸른씨(푸름이)’를 사랑하고 어깨동무하는 참한 어른으로 오늘 이곳에 설 줄 알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진실된 이야기》(소피 칼/심은진 옮김, 마음산책, 2007.1.25.)

《제주도는 가고 싶고 운전은 못 하고》(시와 글·그림, 시와, 2023.3.31.)

《말하기를 말하기》(김하나, 콜라주, 2020.6.30.)

《커피마시기》(홀프 디터 브링크만/이유선 옮김, 파란꽃, 2020.10.24.)

《독일문화의 이해》(이유선, 파란꽃, 2020.5.29.)

《뿌리주의자》(김수우, 창비, 2021.11.12.)

《동네 걷기 동네 계획》(박소현·최이명·서한림, 공간서가, 2015.12.28.첫/2020.8.25.3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마실꽃

#숲노래노래꽃

2023.12.18.


이틀에 걸친 부산일을 마친다.

순천 거쳐서 고흥으로 돌아간다.


부산지하철에서

#책숲노래 석 꼭지를

잇달아 썼다.


#혼길 그러니까

#일인출판 이라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쓰고

#뒤늦게 라는 길을 쓰고

#부산보수동 #책집골목 에 있는

#남해서적 #헌책집 이야기를 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사람이면

이름값이 아닌

아직 모르고 아직 안 배운 살림을

낯선 글지기 책으로 배우게 마련이다.


#책이웃 님들이

저마다 스스로 눈을 틔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버스를 탄다.

#숲노래 #최종규 #앨리너파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마실꽃 2024.1.2.


시골에서는 읍내만 오가도

하루가 간다.


올 1월 1일은

#고흥살이 열네 해 가운데

가장 조용했고

서울에서 온 아이들도 드물어

밤에 폭죽을 안 터뜨리더라.


시골에서는 별밤을 누려야지.


시골버스 일꾼한테

버스에서 한달음에 쓴

#노래꽃 #내가안쓰는말 #신

이야기를 써서 드렸다.


새로운 길이란

오늘이 늘 처음인 줄 느끼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마술사와소년 을 길에서 읽는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빛을

이웃님 모두 품는 한 해이기를.

#숲노래노래꽃 #숲노래


#고무신 도 새로 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보이지 않는 (2023.4.25.)

― 인천 〈나비날다〉



  긁히고 터지고 부러지더라도, 들뜨거나 서두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서, 가만히 생채기를 바라보면, 어느새 아물면서 한결 반짝이는 살이 새로 돋아나요. 일하고 움직이며 살아갈 적에 배가 고플 수 있는데, 배고파서 또 먹어야 하는구나 싶어 두렵다고 여긴다든지, 숨을 쉬면 뱉어야 하니 귀찮거나 두렵다고 여긴다면, 삶이란 없겠지요. 다친 모든 곳은 아물 수 있어요. 아물려면 스스로 마음을 사랑으로 다스리면 넉넉하지요. 남을 쳐다보지 말고 나를 늘 사랑으로 바라보면, 다쳐도 아물 뿐 아니라 다칠 일부터 사라진다고 느낍니다.


  보이는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한결같이 햇살도 별빛도 스며듭니다. 보이는 자리에서도, 안 보이는 자리에서도, 언제나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요.


  어느새 어둡습니다. 저녁 19시부터 이은 ‘우리말 밑뜻 읽기’ 이야기는 21시를 훌쩍 넘어서 마칩니다. 긴긴 하루를 보내었으니 일찍 쉬어야지요. 며칠 뒤 4월 29일에는 《하루거리》를 그린 김휘훈 님이 꽃잔치를 하기에 다시 부천 언저리로 마실을 합니다. 이달 4월은 길에서 신나게 보내는구나 하고 돌아보면서 〈나비날다〉에서 숨을 돌립니다. 시골은 22시가 가까우면 서늘하지만, 인천은 22시가 가까워도 살짝 덥습니다. 푸나무가 얼마나 있느냐로 다릅니다.


  요사이 어린이를 보면, 배움터에서 배움책만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적잖은 어른들이 어린배움터를 찾아가서 여러모로 이야기꽃을 들려줍니다. 다만, 배움틀(제도권 교육)에서는 이런 자리가 있으나, 집에서 스스로 익히는 어린이한테 널리 이야기꽃을 들려주는 어른은 드뭅니다.


  더 들여다보면, 어린배움터는 여러 이야기를 들을 틈이 있되, 푸른배움터는 싹 닫아걸어요. 어린이가 푸름이를 지나 스무 살에 이르면, 이제 일자리를 찾아나서느라 바쁘고, 일자리를 찾으면 돈벌이뿐 아니라 집찾기로 빠듯하니, 스스로 살림길을 새로 배울 겨를이 없기 일쑤입니다.


  앞으로는 서른 살이며 쉰 살 어른들이 배울 이야기꽃이 늘어야지 싶어요. 일흔 살에도 우리말과 풀꽃나무와 골목빛을 새롭게 배우는 자리를 열어야지 싶어요. 눈으로 보는 길만 조금 배우면 얕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숲을 차근차근 넓고 깊게 바라보고 품는 살림길로 나아갈 적에 비로소 어른답다고 느껴요.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어른이 함께 읽을 책입니다. 그림책은 아기부터 어버이 누구나 나란히 읽을 책입니다. 스무 살만 넘어도 어린이책을 등지는 분이 많은데, 오히려 스무 살부터 어린이책을 읽고, 서른 살부터 그림책을 읽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지구를 항해하는 초록배에 탑니다》(김연식, 문학수첩, 2021.7.16.첫/2021.12.31.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