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12.


《제시의 일기》

 양우조·최선화 글, 김현주 엮음, 우리나비, 2019.2.28.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서, 저잣마실을 다녀온다. 책더미를 치우면서 돌아본다.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책을 더미로 사는구나 싶고, 나중에 읽을 책을 미리 쟁이듯 들여왔구나 싶다. 그러면 집에 쟁이기보다는 책숲에 놓고서 그때그때 옮겨와야 알맞겠지. 헛간에 고이 두고서 조금씩 꺼내어 읽고서 옮겨야 나을 수 있다. 덜어내고 비워서 그득그득 물결을 낮추지만 썩 티가 나지 않는다. 《제시의 일기》를 덮었다. 서슬퍼런 지난 어느 날을 하루글로 남긴 대목은 돋보인다. 아이를 아끼는 마음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가시밭길을 걷던 마음도, 퍽 투박하게 담으려고 힘쓴 자취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크게 빠진 대목도 똑똑히 느낀다. 아무런 이름을 남기지 못 하거나 않은 채 땀방울로 이 터전을 일군 숱한 사람들 마음은 이 꾸러미에서 느끼기 어렵다. 남자현 님이 이녁 발자국을 글로 남겼다면 어떤 이야기였을는지 헤아려 본다. 시골에서 나고자라며 들을 짓고 보금자리를 짓고 아이한테 수수한 말씨를 물려준 여느 순이돌이가 이녁 말을 글로 옮길 수 있었다면 어떤 이야기였을는지 생각해 본다. 살림꾼은 살림을 적게 마련이고, 글바치는 글붓에서 맴돈다. 시골내기는 시골을 적을 테고, 서울내기는 서울을 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면, 들숲바다를 푸르게 품으며 어깨동무하는 사랑일 노릇이라고 본다. 예나 이제나 이 대목은 마찬가지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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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11.


《오르페우스의 창 3》

 이케다 리에코 글·그림/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2.4.15.



새는 내려앉아서 귤이랑 능금을 쪼면서 날갯짓소리를 남긴다. 참새떼는 푸릉푸릉 모여서 날아다닌다. 부엌닫이를 손본다. 작은아이가 거들고, 큰아이도 손을 보탠다. 오랜자취를 새롭게 손질하면서 이어갈 보금자리이다. 우리가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게 살아가려면, 누구나 ‘우리 집’을 누릴 수 있어야지 싶다. 《오르페우스의 창 3》을 지난해에 읽었다. 석걸음에서 멈추었다. 퍽 오래된 그림꽃이기는 하지만, 줄거리나 얼거리가 고지식하다. 뻔하고 따분하다. 어릴 적에 《올훼스의 창》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판을 읽은 적 있는데, 예전(1982년)에도 썩 심심했다. 돈·이름·힘이 있어도 스스로 굴레에 갇힌 채 헤매는 몸짓은 갑갑하다고 느꼈고, 이런 틀을 짜서 글이나 그림을 선보이는 보람이 무엇일는지 아리송했다. 눈망울을 틔우는 길동무가 아닌, 외려 눈망울을 가두거나 잠그는 차꼬 같더라. 어질게 하루를 그리면서 사랑으로 오늘을 살림하는 이야기를 글이며 그림으로 담는 사람이 늘어날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더러 먼저 눈망울을 틔우라고 외치기 앞서, 나부터 우리 둥지에서 두런두런 하루를 짓고 펴면서 아이들하고 새길을 일굴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읽고서 아쉬운 책은 아쉽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나누자. 읽는 동안 아름답다고 느낀 책은 아름답다고 기쁘게 노래하고 나누자. 여름이 깊을수록 겨울이 보이고, 겨울이 깊을수록 여름이 보인다.


ㅅㄴㄹ


#池田理代子 #オルフェウスの窓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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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10.


《지붕, 우주의 문턱》

 티에리 파코 글/전혜정 옮김, 눌와, 2014.10.20.



올겨울은 바람이 조용하다. 날이 아무리 똑 떨어져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리 춥지 않다. 저녁에는 이불을 덮고 긴옷으로 갈아입지만, 낮에는 위아래 모두 가볍게 깡똥옷을 입고서 해받이를 한다. 어제 하루 겨울비가 가볍게 지나가고서 먼지띠를 살짝 씻었지만 아직 뿌연띠가 짙다. 구름이 없어도 뿌연 시골하늘을 가르는 새를 보다가 생각한다. “갈수록 사람들은 안 걷는 탓에 하늘이 얼마나 뿌연지 모르겠구나! 안 걷기 때문에 자꾸 이 별을 더럽히겠구나!” 《지붕, 우주의 문턱》을 읽는 내내 몹시 아쉬웠다. 이런 책을 옮기는 일은 안 나쁘지만,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살림집 지붕을 살펴서 들려주는 책을 여미면 더없이 알차고 아름다웠으리라. 지붕은 왜 지붕일까? ‘지붕’이란 낱말을 제대로 읽는 이웃은 얼마나 될까? ‘지붕·집’은 여러모로 보면 같은 낱말이다. 지붕이 있으니 집이고, 집이면 지붕이 있다. 지붕이 없거나 집이 아니라면 ‘한데’라 하고, 한데란 ‘밖’이다. ‘지붕·집 = 안’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집사람 = 안사람’인 얼개인데, ‘안’은 ‘안다’로 잇는다. ‘아름드리·아름답다’는 바로 ‘안’에서 비롯하고, ‘알’로 이어서 ‘알다’로 만난다. 말을 알려면 삶을 알아야 하고, 삶을 알려면 사랑하면 된다.


#LeToit #ThierryPaquot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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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9.


《나랑 같이 놀자》

 리 홀 엣츠 글·그림/양은영 옮김, 시공주니어, 1994.6.3



아침부터 구름이 모인다. 낮으로 넘어갈 즈음 빗방울을 뿌린다. 가볍게 씻는구나. 한겨울비인데 살짝 찰 뿐, 얼어붙지 않는다. 작은아이하고 저잣마실을 간다. 오가는 버스에서 하루글을 쓰고 노래꽃을 두 꼭지 쓴다. 집으로 돌아와서 한참 꿈나라를 헤맨다. 번쩍 눈을 뜨고서 밤빛을 느끼는데, 비구름이 모조리 사라졌다. 어느새 갰구나. 반짝이는 별을 본다. 《나랑 같이 놀자》를 문득 다시 편다. 아름그림책은 언제 어디에서 새삼스레 펼쳐도 마음을 녹인다. 한두 벌 슥 읽고 덮는 그림책이라면, 처음부터 장만할 일이 없다. 적어도 즈믄벌을 되읽으면서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밝혀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돌아보는 동무인 그림책이다. 2000년 한여름 어느 날 “아주 좋아해서 즈믄벌 넘게 읽어 낡고 닳은 그림책”을 새로 사러 책마실을 나온 어린이는 숲노래 씨한테 첫 ‘그림책 길잡이’였다. 그무렵 ‘출판사 막내 영업자’일 뿐이었지만, 그림책돌이한테는 “사랑하는 그림책을 펴낸 곳에서 일하는 고마운 분”이었더라. 그날 그 아이한테 주머니를 털어서 여러 그림책을 사주었다. “즈믄벌 읽어 다 닳은 그림책”을 들고 찾아온 아이한테 어떻게 다시 책을 팔 수 있겠는가. 그 아이는 마음으로 같이 놀 어른동무를 만나고 싶었겠지.


#Play With Me #Marie Hall Ets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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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여름, 서울도서전에서 만난 어린이가 들고 온 그림책은

<팥죽 할멈과 호랑이>.

손때 짙게 밴 그림책을 보고서

새책과 다른 그림책, 또 이웃 출판사 다른 그림책을

잔뜩 챙겨 준 일은 앞으로도 마음에 되살아나서

책을 바라보는 눈결을 다독여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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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8.


《실록 친일파》

 임종국 글, 돌베개, 1991.2.27.



날은 차지만, 하늘은 파랗다. 바람은 그리 불지 않고, 아침이 더 일찍 온다. 느긋이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다. 오늘은 ‘달개비’라는 풀꽃이름을 톺는다. 밑동을 풀고 나면 싱겁지만, 이 싱겁고 수수한 말밑을 캐느라 땀을 뺀다. 엉터리 풀이름 ‘닭의장풀’이 판쳐도 바로잡지 않거나 못 하는 글바치가 넘친다. ‘달’이나 ‘개비’가 뭔지 살피지 않거나 못 읽으니 어쩔 길이 없을는지 모른다. 18시에 이르러도 밖이 환하다. 겨울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는구나. 19시를 넘으니 캄캄하고, 별이 와락 쏟아진다. 《실록 친일파》를 새로 읽었다. 서른 해 앞서는 우리나라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분이 있네 싶어 놀랐다면, 서른 해가 흐르는 사이에 이만 한 글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분이 뜻밖에 안 늘어서 놀란다. 이슬떨이가 애써 그러모은 꾸러미를 바탕으로 차곡차곡 살림을 보태고 가꾸면 될 텐데, 앞살림을 못 보거나 안 본다면, 뒷살림은 무엇이 될는지 아리송하다. 앞으로 2200년이나 2300년에는 2024년 오늘 발자취를 어떻게 읽으려나 헤아려 본다. 이쪽에 붙든 저쪽에 붙든 매한가지이다. 힘에 붙고 이름에 붙고 돈에 붙는 모든 이는 나란히 끄나풀이다. 숲은 들풀과 나무가 어우러진다. 들풀을 안 읽고 나무를 등지면 빛을 잃는다.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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