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사진말

15. 나로서는 아픈 사진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모두 ‘사진 찍는 사람’이다. 너와 나는 모두 ‘작가’라 할 만하다. 사진을 찍어서 돈을 벌어야 ‘작가’가 아니라, 사진을 즐겁게 찍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든 작가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작가’라고 하는 이름은 “짓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어서 이야기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너도 나도 다 함께 작가이다. 스튜디오를 꾸린다든지, 신문이나 잡지에 사진을 싣는다든지, 전시회를 열거나 사진책을 선보여야 작가이지 않다. 사진기를 손에 쥐고 기쁘게 한 장 두 장 찍을 수 있으면 참말 우리 모두 아름다운 ‘사진작가’라고 할 만하다.


  그러면, 모두 작가라고 할 우리는 사진을 왜 찍는가? 새롭게 누리거나 즐길 만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 스스로 새롭다고 느끼지 않으면 사진기를 손에 쥐지 못한다.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이 아니라면 사진기를 손에 들지 못한다. 스스로 새롭게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빚으려는 마음이 아닐 적에는 사진을 한 장조차 못 찍는다.


  직업으로서 사진가이기 때문에 찍는 사진이 아니다. 직업이 사진가이건 아니건 대수롭지 않다. 마음에 고이 흐르는 이야기가 있기에 사진을 찍을 뿐이다. 직업이 사진가인 사람은 이런저런 매체에 사진을 실을 뿐, 달리 대수롭거나 대단하지 않다.


  이리하여, 나는 어제 하루 찍은 사진을 돌아보면서 가슴이 몹시 아프다. 왜 그러한가 하면, 지난 이태 동안 쓴 작은 디지털사진기가 목숨이 거의 다한 탓에, 어제 찍은 사진 가운데 스무 장 남짓 ‘메모리카드에 안 남고 사라졌’다. 어처구니가 없네 하고 느끼면서도 어찌할 길이 없다. 살림돈이 모자라서 새 사진기를 장만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목숨이 다 된 사진기’를 부여잡고서 ‘조금 더 버티어 주렴. 조금 더 기운을 내 주렴’ 하고 외치기도 했지만, 사진기가 끙끙 앓으면서 ‘이제 더 못 찍겠어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탓에, 애써 찍은 사진을 또 날렸다. 꼭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야 하지 않으나, 즐겁게 찍은 사진이 가뭇없이 사라지니 참말 아프다. 하루 빨리 새 사진기를 장만해야 할 테지? 어서 돈을 모으자.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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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14. 좋아해야 찍을 수 있다



  좋아해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사진을 못 찍는다. 좋아해야 글을 쓰고, 좋아해야 노래를 하고, 좋아해야 밥을 짓고, 좋아해야 잠을 자고, 좋아해야 별을 보고, 좋아해야 자전거를 탄다. 어느 자리에서 어떤 일이나 놀이를 하든 스스로 좋아할 때에 비로소 웃으면서 한다.


  그러니까, 남이 웃길 때에는 잘 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내가 스스로 웃을 수 있는 일이나 놀이일 때에 잘 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사진을 왜 잘 못 찍는다고 여기거나 느끼는가? 아직 사진을 좋아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사진을 아직 좋아하지 못하거나 않는가? 사진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찍기를 배워야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사진을 좋아해야 잘 찍는다. 사진읽기를 배워야 사진을 잘 읽어서 사진비평도 잘 하지 않는다. 사진을 좋아해야 사진을 잘 읽으면서 즐겁게 사진노래를 부르듯이 사진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사람을 찍든 고양이를 찍든 하늘을 찍든 꽃을 찍든 언제나 매한가지이다. 사진기에 눈을 박고서 들여다보는 모든 숨결을 나 스스로 좋아하든 사랑하든 아끼든 보살피든 어루만지든, 따사로운 마음이 흘러야 비로소 즐겁게 찍는다. 즐겁게 찍는 사진일 때에 즐거움이 흘러서, 이 사진은 나와 이웃 누구한테나 그야말로 즐거움을 베푼다.


  즐겁게 찍는 사진이기에 즐거움이 흐른다. ‘잘 찍자’는 생각으로 찍는 사진이라면 ‘잘 찍을’는지는 모르나 마음을 건드리거나 움직이지 못한다. 처음부터 생각과 마음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내가 찍고 싶은 숨결’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제대로 바라보는 눈길일 때에 제대로 알려 할 수 있으니, 이러한 마음결과 몸짓일 때에 ‘사진을 찍는’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에 사진이 있고, 좋아하는 마음이 없기에 사진이 없다. 4348.1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읽기/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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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13. 졸업장으로 사진을 찍나



  졸업장으로는 무엇을 할까? 어느 학교를 마쳤다는 발자국을 보여준다. 그러면 졸업장은 어디에 쓸까? 동문끼리 모이는 자리에서 쓴다. 이밖에 졸업장을 쓸 일은 없다. 졸업장은 ‘사람’도 ‘삶’도 ‘사랑’도 보여주지 못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서울대를 나왔기에 훌륭한 사람이지 않고, 멋진 삶이지 않으며, 고운 사랑이지 않다. 서울대 졸업장은 그저 ‘서울대를 나왔다는 발자국’일 뿐이다.


  문예창작학과라는 대학교를 다녔기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좌를 들었기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러면, 누가 글을 잘 쓰는가? 글을 잘 쓰려고 늘 생각하면서 스스로 글을 갈고닦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


  사진은 누가 잘 찍을까? 손꼽히는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오면 사진을 잘 찍을까? 이웃나라로 사진을 배우러 다녀온 사람이 사진을 잘 찍을까? 아니다. 스스로 사진을 늘 생각하면서 스스로 제 사진을 갈고닦는 사람이 사진을 잘 찍는다.


  사진길을 걷고 싶으면 사진길을 걸어야 한다. 대학교를 다닌다거나 스튜디오를 거쳐야 하지 않는다. 사진가로 살고 싶으면 사진가로 살아야 한다. 대학교에서 어떤 스승을 만나거나 어떤 동료나 선후배를 사귀어야 하지 않는다. 사진을 알거나 배우고 싶으면 사진을 알거나 배우도록 땀흘리면 된다. 책을 들추거나 기록을 살피거나 학교나 강좌에 얽매인들 사진을 알거나 배우지 못한다.


  졸업장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졸업장으로 춤을 추지 않는다. 졸업장으로 됨됨이나 사랑이나 꿈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온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됨됨이랑 사랑이랑 꿈을 드러낸다. 내 삶으로 내 글을 쓰고, 내 사랑으로 내 사진을 찍으며, 내 꿈으로 내 그림을 그린다.


  ‘사람을 옷으로 보고 싶다’면 사람을 옷으로 보면 된다. 사람을 졸업장이나 자격증으로 만나고 싶다면 졸업장이나 자격증으로 만나면 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보고 싶은 대로 보라. 네 삶은 네 손으로 빚으니까. 네 사진은 네 삶으로 찍으니까. 4348.10.1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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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12. 쉬운 말이 없는 사진비평



  대학교에서 대학생한테 가르치기하고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한테 가르치기는 다르지 않다. 대학생이기에 더 어려운 것을 더 쉽게 알지 않으며, 초등학생이기에 더 쉬운 것만 가르쳐야 하지 않다. 저마다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저마다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친다. 다만, 대학생하고 초등학생은 ‘스스로 아는 말’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말’로 가르칠 수 없다. 초등학생을 가르치려면 ‘초등학생이 아는 말’ 테두리에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훨씬 적은 말마디’를 써서 ‘똑같은 지식’을 다루어야 초등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비평을 보면 쉬운 글이 거의 없다. 그림비평도 엇비슷하고 예술비평은 그야말로 어려운 글로 가득하다. 왜 비평은 어려운 글뿐일까? 시나 소설을 비평한다는 글도 아주 어렵기 짝이 없다. 동시집에 붙는 동시비평조차 어린이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글이 넘친다.


  비평하는 사람은 왜 어렵게 글을 쓸까? 첫째, 비평하는 사람은 ‘비평글을 읽을 사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이 글을 읽는지 모르니 ‘아무 말마디나 함부로 섞어서’ 글을 쓰고 만다. 둘째, 비평하는 사람 스스로 사진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글을 어렵게 쓴다. 스스로 사진을 기쁘게 알면 ‘기쁨이 흐르는 말’로 글을 쓴다. 스스로 사진을 사랑스레 알면 ‘사랑이 흐르는 말’로 글을 쓰지.


  ‘사진을 잘 몰라’서 ‘사진이 어렵다고 느끼’기에 사진비평을 하는 이들은 그만 ‘어려운 말’만 골라서 딱딱하고 메마른 글을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쏟아낸다.


  사진을 모르기 때문에 사진비평이 어렵기도 하지만, 사진읽기와 사진찍기도 모르기 때문에 사진비평이 어렵다. 이웃하고 사진을 넉넉히 나눌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사진읽기와 사진찍기를 모든 사람하고 오순도순 주고받을 뜻이 없기 때문에 사진비평이 어렵고 만다.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고 사랑으로 보살피는 어버이가 어떤 말을 쓰는지 생각해야 한다. 아직 사진을 잘 모르는 수많은 이웃이 사진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즐기도록 북돋우자면 어떤 말을 가리고 고르고 추려서 기쁘게 써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4348.10.1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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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11. 이웃사랑, 이웃돕기



  사진찍기는 이웃돕기가 아닌 이웃사랑이다. 이 말을 곰곰이 돌아보고 생각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사진찍기’란, ‘이웃돕기’가 아니다. ‘사진찍기’란 바로 ‘이웃사랑’이다.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아니고,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이라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이웃을 사랑할 적에 비로소 사진을 찍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서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려 한다면, 이때에는 ‘사진’이라는 이름조차 쓸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불우 이웃 돕기’라는 말이 있다. 이 말마따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웃이 불우하면 돕는다’는 생각이 짙다. 학교와 사회에서 이러한 생각을 아이들한테 집어넣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이웃을 왜 돕는가? 이웃을 돕는다고 한다면 이웃이 어려울 때에만 돕는가?


  어렵든 어렵지 않든 도와야 할 때에 도울 노릇이다. 이웃을 돕는다면 어려운 이웃뿐 아니라 안 어려운 이웃도 도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이웃돕기’가 된다. 여기에서 더 생각한다면, ‘돕는다’고 할 적에는 내가 너보다 ‘위’에 있으니 돕지 않는다. 내가 너보다 힘이 세니까 돕지 않는다. 내가 너보다 아래에 있든 힘이 여리든 돈이 없든, 마음이 사랑일 때에 비로소 돕는다.


  이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웃돕기’를 할 수 없다. 이웃돕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모두 제 이름값을 드날리려고 시늉을 하거나 겉치레를 하는 꼴이다.


  우리는 ‘이웃사랑’만 할 수 있다. 우리는 그야말로 이웃을 사랑하기만 할 수 있다. 이웃을 돕지 않고 사랑하기만 한다고 해야 옳다. 가난한 이웃이든 가난하지 않은 이웃이든, 우리는 언제나 이웃을 사랑할 뿐이다.


  나한테 돈이 좀 있으니 ‘이웃돕기’를 하겠다는 바보스러운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돈을 쥐어 준다고 해서 이웃을 돕지 못한다. 이웃을 참다이 도우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되고 숨결이 되며 몸짓이 될 때, 시나브로 이웃돕기도 함께 이룬다. 제발 이웃돕기 다큐사진을 찍지 말자. 오직 이웃사랑이 되는 사진을 찍고 읽자. 이웃은 바로 나이다. 내가 네 이웃이고, 네가 내 이웃이다. 4348.10.1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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