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55


 연성 기사


  우리가 쓰는 말을 살필 적에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말은 우리 삶에서 태어나거든요. 우리가 사는 모습 그대로 말을 합니다. 좋든 궂든 우리 모습을 고스란히 담는 말입니다.

  조선이라는 봉건 틀이 있던 무렵에는 99:1로 갈린 삶터였어요. 99에 이르는 사람들은 손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숲을 돌보면서 스스로 말을 지었습니다. 1에 이르는 사람들은 중국바라기나 임금바라기를 하는 자리에서 중국 한자말을 달달 외우며 따랐습니다.


  이러다가 개화기하고 일제강점기를 맞이했고, 이때부터 새로운 삶이나 살림을 나타낼 말을 거의 모두 일본 지식인이 지은 한자말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요. 지난날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 한자말이 들어왔다면, 오늘날에는 깊이 살피지 않으며 일본 한자말을 그냥 따라서 씁니다.


  신문·방송 쪽에서는 “시의성(時宜性)을 살펴 연성(軟性) 기사·경성(硬性) 기사”를 가른다고 말합니다. ‘시의성·연성·경성’은 모두 일본 한자말입니다. 다만 이 낱말이 일본 한자말이라서 안 써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낱말이 태어난 바탕을 헤아려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말뜻부터 살펴봅니다. ‘시의성’은 “때에 맞음”이요, ‘연성’은 “부드러움”이며, ‘경성’은 “단단함”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뜻에 맞게 이 낱말을 쓴다고 할 만할까요?


  더 헤아린다면 “때에 맞음”을 ‘때맞춤·때맞추다’처럼 새말을 지어서 쓸 만합니다. 부드럽거나 단단하다는 뜻을 살리려면 ‘부드럼글·단단글’이나 ‘말랑글·딱딱글’ 같은 새말을 지을 수 있어요. 또는 ‘삶글·삶터글’처럼 써 볼 만합니다. ‘삶글’은 말 그대로 삶에서 우러나오는 글이니 부드럽습니다. ‘삶터글’은 삶을 이루는 터전에서 태어나는 글이니 단단하지요. 때로는 삶을 살펴 부드러이 글을 나눕니다. 때로는 삶터를 짚으며 단단히 글을 여미어 나눕니다. 2018.4.2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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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54


 말글


  한국말에 높낮이가 있고 밀당이 있습니다. 한국말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말에는 높낮이랑 밀당이 있어요. 때로는 높고 때로는 낮기에 말이 흐릅니다. 때로는 밀고 때로는 당기기에 말이 살아서 숨을 쉬어요.


  한국사람은 학교에서 한국말을 어떻게 가르치거나 배울까요? 교과서를 읽을 적에 높낮이랑 밀당을 찬찬히 살펴서 짚을까요? 그리고 이 높낮이랑 밀당을 고장마다 다른 결로 편다는 대목을 얼마나 짚으려나요? 부산말하고 대구말이 다르듯, 광주말하고 순천말이 다릅니다. 진주말하고 마산말도 다르듯, 고흥말하고 보성말이 다릅니다.


  학교라면 고장 삶자리에 걸맞게 달리 이어온 말결을 잘 살펴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새롭게 배워 싱그러이 쓰도록 북돋아야지 싶어요. 마을이라면 마을 삶터에 걸맞게 잔잔히 흘러온 말씨를 잘 가누어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제 마을이며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따사로이 가르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언어와 문자’가 아닌 ‘말과 글’을 씁니다. 말하고 글이에요. 언어하고 문자가 아닙니다. 생각을 소리라는 그릇에 담아서 입으로 터뜨리기에 말입니다. 입으로 터뜨린 소리라는 생각을 글이라는 그릇으로 새롭게 담아서 눈으로 보여주기에 글입니다.


  말을 할 적에 말결을 헤아리듯, 글을 쓰거나 읽을 적에 글결을 헤아릴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누구나 생각을 거리끼지 않고 말해야 즐겁게 사귀듯, 누구나 생각을 마음껏 적을 수 있어야 우리 삶터가 발돋움하고, 우리 사이는 한결 깊으면서 넓어집니다.


  의사소통이 아닌 이야기를 합니다. 문자나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아닌, 생각을 말이나 글이라는 그릇으로 가만히 담아서 즐겁게 하루를 짓습니다. 생각이 흐르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기에 이야기예요. 이야기에는 속살이 있습니다. 줄거리가 있지요. 속살이나 줄거리란 바로 생각이고, 이 생각이란 우리 삶·살림·사랑입니다. 2018.6.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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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53


 빈수레


  저는 어릴 적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로 배웠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만 동무들도 ‘요란(搖亂)’이 뭔지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교사한테 여쭈었지요. “선생님, ‘요란’이 뭐예요?” 요즈음하고 달리 예전에는 아이가 어른한테 뭘 여쭈면 고이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먼저 꿀밤을 먹이고서 그것도 모르냐며 나무랐습니다. 아이는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일 텐데, 아이가 모른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하면서 가르친 배움터였다고 할 만하지요. 엉뚱하게 꿀밤을 먹어 눈물을 찔끔 흘리고 나서야 “그것도 모르냐? ‘요란하다’는 ‘시끄럽다’는 뜻이다!” 하고 윽박지릅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생각했어요. 아니 ‘요란하다’가 ‘시끄럽다’라는 뜻이면, 처음부터 ‘시끄럽다’라고 하는 말을 쓰면 되지, 왜 못 알아들을 ‘요란하다’를 써 놓고서 우리(어린이)가 못 알아들을 말을 왜 못 알아듣느냐고 따지고 때려야 하나 하고 말이지요.


  우리 삶터를 보면, 푸름이나 젊은이가 한자나 한자말을 모른다고 타박하는 지식인이 꽤 많습니다. 어느 지식인은 일본 한자말을 마구 쓰다가 영어를 잔뜩 섞습니다. 지식인이라면, 또 작가나 교수나 기자쯤 된다면, 여느 사람이 쉽게 알아듣지 못할 말을 써야 한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배움터를 생각하고 배움길을 생각하며 배움벗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배우고 누구하고 배우며 어디에서 배우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왜 배우는가를 생각해야지요.


  말은 나누려고 씁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려고 쓰는 말이 아닙니다. 곁에서 사이좋게 흐를 적에 말입니다. 위아래 아닌 나란한 어깨동무가 말입니다.


  아마 1982년부터였지 싶습니다. 저는 그무렵 담임 교사한테 눈물 찔끔 꿀밤을 먹고서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옛말을 “빈수레가 시끄럽다”로 고쳐서 쓰기로 했습니다. ‘빈수레’는 ‘빈터’처럼 붙이고, ‘시끄럽다’라는 쉬운 말을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누구하고나 즐거우면서 쉽고 살가이 말을 나누자고 생각했어요. 2018.4.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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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52


 뿌린 대로


  어느 때부터인가 “경제적인 언어 사용”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글잣수가 적어야 “경제적인 언어 사용”이라 하면서, 한자말이야말로 “경제적인 언어”라고 하는 얘기가 퍼졌습니다. 그런데 참말 한자말이 글잣수가 적을 뿐 아니라 “경제적인 언어”일까요?


  우리가 스스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모든 나라 어느 겨레가 쓰는 말이든 하나같이 ‘알뜰’합니다. 알뜰하지 않은 말이란 없습니다. 알래스카에서 나고 자란 사람한테는 그 고장에 맞는 말이 가장 알뜰합니다. 불가리아나 덴마크에서 나고 자란 사람한테는 그 고장에 맞는 말이 가장 살뜰하고, 베트남이나 라오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한테는 그 고장에 맞는 말이 가장 알차겠지요.


  영어를 놓고 영국이란 나라에서도 고장마다 다르게 씁니다. 미국하고 호주하고 캐나다도 다른 영어를 씁니다. 왜냐하면 큰 틀에서는 영어입니다만 고장마다 삶터가 다르거든요. 중국에서도 중국말은 고장마다 사뭇 달라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면 네 글씨라 한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 하면 일곱 글씨라 한답니다. 그러니 ‘인지상정’이 경제적인 언어 아니겠느냐고 묻는 이웃님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럴 테지만, ‘인지상정’은 ‘人之常情’까지 알아야 하기에 정작 여덟 글씨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언뜻 보면 일곱 글씨이지만 흔히 “뿌린 대로”처럼 쓰곤 합니다. 자, 곰곰이 따지면 어느 말이 단출할까요? 어떻게 말할 적에 바로 알아들으면서 알뜰살뜰할까요?


  ‘꼭’은 하나요, ‘반드시’는 셋이요, ‘필요(必要)’는 둘 또는 넷입니다. 우리는 글잣수 때문에 이 말을 쓰고 저 말을 안 써야 할까요? ‘어리석다·어리숙하다·바보스럽다·우둔(愚鈍)하다’가 있다면, 이때에도 글잣수만 보고 낱말을 골라야 할까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적에는 알뜰한가(경제적인가) 아닌가를 볼 노릇이 아니라, 결에 맞추어 생각을 제대로 밝히는지, 뜻에 맞추어 마음을 잘 드러내는지, 서로 기쁘게 이야기를 하는 발판이 될는지를 살필 노릇입니다. 2018.4.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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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51


 이야기꽃


  1998년부터 ‘강의’라는 일을 했습니다. 1998년 이해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째 다니고 그만둔 해이면서, 이런 배움끈으로도 얼마든지 이웃님 곁에 서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구나 하고 배운 해이기도 합니다. 그때부터 2017년 가을까지 ‘강의·강연’이라는 낱말을 그냥 쓰며 살았습니다. 이러다가 2017년 가을부터 제 나름대로 새롭게 생각하며 말을 써야겠구나 싶어 ‘이야기꽃’이란 낱말을 지었어요.


  강의나 강연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는 으레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리 같은 느낌이에요. 더 많이 배우거나 깊이 파고든 이가 뭔가 지식이나 정보를 쏟아내는 자리 같다고 할까요.


  저는 함께 배우고 느끼고 누리고 생각하면서 새롭게 하루를 되새기는 자리가 강의나 강연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펴는 강의나 강연은 이런 모습하고는 좀 벗어나지 싶었습니다. 외곬로 흐르는 말이 아닌 서로 하는 말이요, 가만히 주고받는 말이기에, ‘이야기’를 펴서 생각을 북돋우는 자리가 되어야 알맞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냥 ‘이야기’만 하는 자리가 아닌,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을 북돋우는 자리일 터이기에, 꽃길처럼 눈부시게 피어나는 자리로, 생각이 꽃처럼 피어나고 마음을 꽃처럼 가꾸는 자리라는 뜻으로 ‘이야기 + 꽃 = 이야기꽃’이라 이름을 지어 보았습니다.


  한 사람만 떠드는 자리일 수 없는 강의입니다. 그러니 이야기꽃입니다. 여러 사람이 조용히 듣기만 하는 자리일 수 없는 강연입니다.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을 불태우거나 북돋울 적에 아름다운 강의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즐기면서 마음을 키우고 거듭나도록 하면서 신나는 강연입니다.


  새롭게 길을 열기에 말을 새롭게 가꿉니다. 새말이란 새로운 꽃이라고 여깁니다. 새로운 말꽃이 바로 새말이지 싶고, 마음꽃을 피우려고 말을 짓고 돌보며 사랑합니다. 2018.4.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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