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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2. 들꽃아이



  스물하고도 여러 날 만에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마실을 다녀온다. 군내버스를 타고 두 아이 옆에 함께 앉는데, 문득 우리 아이들은 ‘들꽃아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들녘에서 씩씩하게 피어나서 뿌리를 내리고 퍼지는 들꽃 같은 아이라고 할까. 큰아이는 들꽃순이요 작은아이는 들꽃돌이가 될 테지. 나는 어버이로서 이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삶을 지으면서 보금자리를 가꾸려 한다. 그러면 어버이인 나는 어떤 길로 나아갈까. 나는 이제껏 여느 어버이였다면 슬기로운 어른이 되는 길을 걸어갈 노릇이고, 제대로 철이 들어서 ‘숲사람’으로 거듭나야지 싶다. 숲어른이자 숲아비(숲어버이)가 되는 길을 간다고 할까. 이동안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삶을 배우고 사랑을 물려받을 테니, ‘들꽃아이’에서 ‘숲아이’로 거듭난다. 큰아이는 숲순이가 되고 작은아이는 숲돌이가 된다. 나는 숲집에서 숲밥을 짓고 숲말로 숲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숲아이와 숲어른은 모두 숲바람을 마시고, 숲넋을 다스리면서 숲결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맞아들이기에 아이들은 처음에는 누구나 들꽃아이요, 이 아이들한테 어떤 숨결로 어떤 바람을 마시도록 이끄는가에 따라 숲아이도 될 테고 ‘다른 아이’로도 되리라 느낀다. 아무튼, 우리 아이들이 나아갈 길은 ‘숲아이’이다. 4348.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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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1. 사름벼리 산들보라 이름



  어제 면소재지 놀이터에서 두 아이를 놀도록 하려는데, 이곳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놀겠다고 하면서 우리 아이들 이름을 묻는다. 그러면서 저희 이름은 말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 이름이 ‘넉 자’이고 ‘성이 없다’고 하는 대목을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내면서 말한다. 여덟 살 큰아이는 이곳 학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아무 말을 못 하고 놀지도 못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타이를 수 없는 노릇이기에, 우리 아이들을 불러서 그만 가자고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집이나 학교에서 이름이나 삶이나 동무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으니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자전거를 달려서 면소재지를 벗어나 들길이 나올 무렵 큰아이한테 얘기한다. “벼리야?” “응?”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어.”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묻는다고 벼리 이름을 알려주지 마.” “응.”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어. 모르겠어.”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묻는다고 벼리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어.” “알았어.”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물으면,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인지 먼저 말하라고 해. 자,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모르겠어. 다시 한 번 얘기해 줘.”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물으면,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인지 먼저 말하라고 해. 자,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누가 벼리한테 벼리 이름을 물으면 말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음, 못 들었어.” “그 사람한테 그 사람 이름을 먼저 말하라고 해.” “그 사람한테 그 사람 이름을 먼저 말하라고 했어요.” “벼리야, 이름이 뭔지 알아?” “음, 몰라.” “벼리하고 보라한테 붙인 이름은, 벼리와 보라가 이곳에 태어난 까닭이야. 그리고, 벼리와 보라가 앞으로 살아갈 사랑이야. 그래서, 벼리하고 보라 이름을 아무한테나 함부로 알려주지 않아. 마음으로 사귈 사람이 아니라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 어른도 우리 아이들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들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도 못 알아듣기 일쑤이다. 왜 그러한가 하면, 아이들 목소리와 눈높이에 제 마음을 맞추어서 귀여겨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읊는 말을 한 번에 다 알아들을 뿐 아니라 늘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웃은 그야말로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똑같은 한 사람 숨결’로 아이들하고 마주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웃은 우리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나 누구하고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맺는 멋진 숨결이다. 자전거를 들녘 한복판에 세운 뒤 큰아이하고 찬찬히 이야기를 더 나눈다. “벼리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무한테나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을 말하지 않지?” “응.” “왜 그럴까?” “모르겠어.” “벼리야, 어머니 이름은 뭐지?” “응, 뭐더라.” “아버지 이름은?” “숲노래.” “그래, 어머니 이름은 라온눈이야.” “아, 그렇지.”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스스로 붙인 이 이름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땅에 태어난 뜻이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랑이야.” “응. 알았어.”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 이름을 스스로 아끼면서 써. 벼리 이름도 보라 이름도 모두 뜻이 있고 사랑이야. 자,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벼리 이름에도 뜻이 있고 사랑이라고 했어요.” “우리 이 이름을 잘 생각하자.” 4348.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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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0. 함께 달리는 자전거



  어제 낮에 열엿새 만에 자전거를 다시 달렸다. 아직 오른무릎이 다 낫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걷기라든지 뭔가 몸을 움직이기는 해야겠다고 여기면서 자전거를 달려 보았다. 내가 달리는 자전거는 으레 두 아이를 태우고 수레까지 끄는 자전거인 만큼, 앞에서 끌어야 하는 힘이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여덟 살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언제나 발판을 씩씩하게 굴러 주니, 이 아이를 믿으면서 오른무릎은 살살 쓰면서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 큰아이는 혼자서 자전거를 버티어 주기도 한다. 얼마나 대견하면서 멋진가. 아이들은 어버이를 기다려 주고, 어버이는 아이를 기다려 준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사랑으로 지켜보고,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으로 지켜본다. 다친 오른무릎이 천천히 아물면서 낫듯이, 내 가슴속으로도 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이 새롭게 자라는구나 하고 느낀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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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59. 일을 맡길 적에



  자전거 사고가 난 지 꽤 지났어도 오른무릎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조금만 움직이거나 일을 해도 온몸이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이러다 보니 두 아이한테 말로만 시켜야 하는 일이 부쩍 는다. 손으로 빨래를 못 하고 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는데, 다 마친 빨래를 널 적에 아이들을 부른다. 여느 때에도 빨래를 널 적에 아이들을 부르기는 했으나 이제는 아이들이 더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에 나는 아이들한테 어떤 목소리로 심부름을 시키거나 일을 맡기는가? 문득 가만히 돌아본다. 아픈 오른무릎을 어루만지면서 대청마루에 앉아서 여덟 살 어린이한테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내 말이 여덟 살 어린이가 잘 알아들을 만한가를 돌아본다. 여덟 살 어린이한테 내 말이 따스하거나 너그러운가 하는 대목을 되새긴다. 어버이로서 아픈 몸이 아니었으면 그냥 혼자서 집일을 하거나 툭툭 내뱉는 말로 일을 맡기기도 했을 텐데, 아픈 몸으로 보름 남짓 지내고 보니,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한테나 하는 짧은 말마디일지라도 사랑을 어떻게 담아서 들려주어야 하는가를 새롭게 배운다. 4348.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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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58. 아기 몸이 되어서



  자전거 사고가 난 지 나흘째가 된다. 지난 사흘은 누워도 잠을 잘 수 없도록 몸살이 돌면서 괴로울 뿐 아니라, 크게 깨진 오른무릎을 어찌할 길이 없던 나날이었다. 나흘째로 접어들면서 살갗에 난 생채기는 더는 다스리지 않기로 했고, 오른다리를 제대로 쓰도록 몸을 천천히 움직이기로 한다. 밤새 오른다리를 폈다가 접으면서 용을 썼다. 걷거나 서지 못하는 ‘아기 몸’이 되어 사흘 동안 가만히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아기에서 갓 벗어나 무럭무럭 자라는 숨결이다. 잘 뛰거나 달린대서 아직 어른이 아니다. 심부름을 곧잘 하지만,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기는 어렵다. 몸을 건사하고 아끼면서 돌보는 길이란 무엇일까. 몸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보살피는 삶을 아이들한테 얼마나 보여주었을까. 눈을 가리거나 귀를 막으면서 우리 이웃이 어떻게 사는가를 헤아리듯이, 어버이 몸을 입었어도 ‘아기 몸’이 되어 지내면서 아이들하고 나누면서 가꿀 삶을 새삼스레 되새긴다. 4348.9.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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