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꽃

네걸음 ― 숲하고 서울이 어깨동무하는 꿈



  이오덕 어른은 어느 때부터인가 《쉬운 말 사전》이란 책을 늘 곁에 두고서 글을 쓰셨다고 합니다. 《쉬운 말 사전》을 곁에 두기 앞서까지는 이녁 스스로 어떤 말을 입으로 쓰고 글로 적는가를 제대로 못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전을 곁에 두고서 이녁 글을 손질하거나 가다듬으면서 몇 가지를 느끼거나 생각하셨다지요. 첫째로는 ‘내(이오덕)가 이렇게 쉬운 말조차 모르고서 살았구나’요, 둘째로는 ‘이렇게 고치기보다는 다르게 고치면 한결 쉬운 말이 되겠구나’요, 셋째로는 ‘이 말씨가 쉬운 말이 아니라지만 나(이오덕)한테는 매우 익숙하고 부드러운 말씨인데, 이 어렵다는 내 말씨를 고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고 합니다.


  몇 가지 마음이 뒤엉키면서도 더 쉽게 쓰려는 생각을 키우셨고, 1970년대가 저물 즈음에는 ‘쉬운 말 쓰기’보다는 ‘시골말 쓰기’가 어울리겠다고 깨달으십니다. ‘쉬운 말’은 지식인이 머리로 짜맞춘 말씨가 많다고 여기셨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살림을 짓고 아이를 돌보는 나날을 보내는 시골지기 입에서 저절로 샘솟는 말씨야말로 참답게 쉬운 말이라고 느끼셨다지요.


  이런 마음으로 엮은 책이 《일하는 아이들》입니다. 이다음으로 엮은 《우리도 크면 농사꾼이 되겠지》는 언제나 서울바라기가 되어 시골을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업신여기는 시골 어린이가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기를 바라는 뜻을 함께 담았다고 합니다. 시골 어린이가 어려서부터 늘 듣고 쓰면서 자라는 시골말이 바로 ‘쉬운 말’이니 교과서나 책이나 신문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시골말을 건사하기를 바라셨어요. 이러면서 바로 시골 어린이 말씨를 서울 어른이 함께 듣고 읽고 배운다면, 머리로 짜맞추는 억지말이 아닌, 누구한테나 삶에서 묻어나는 사랑스러운 말이 새롭게 깨어나리라 하고도 여기셨습니다.


말이란 참 재미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새 말이 태어나거든요. 예쁜 벗님들이 고운 생각으로 떠올리는 낱말은 모두 우리 앞에서 이루어져요. 사랑을 생각하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웃음을 생각하면 웃음이 이루어져요. 옛날 옛적 우리 옛사람, 그러니까 ‘한아비’라고 하는 분들은, 숲을 생각하고 푸른 빛깔을 생각하며, 보금자리를 생각했어요. 온누리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생각하며, 사람과 이웃할 작은 새들 둥지를 생각했어요. 자, 모두 눈을 살며시 감고 생각을 기울여요. 내 생각에 따라 새롭게 태어날 어여쁘며 밝고 싱그러운 말을 가만히 생각해 봐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96쪽


  2011년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란 책을 써내고 나서 늘 아쉽다고 여긴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말을 바르게 쓰든 살려서 쓰든, 이러한 이야기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만 배울 일이 아니지 싶었습니다. 어른하고 어버이가 함께 배울 적에 제대로 어우러지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앞으로 어른이나 어버이가 될 적에도 배움길을 즐겁게 꾸준히 이을 수 있는 틀이 서야 아름답겠다고 느꼈어요.


  저는 ‘푸름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름 그대로 푸른 나이라서 푸름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린이’는 익히 알려졌듯이 일제강점기에 방정환 님이 지었습니다. ‘푸름이’는 1980년대에 참교육을 바라거나 꾀하는 젊은 교사들 손에서 조용히 태어난 이름입니다. ‘청소년’이란 이름이 있기는 했으나 막상 나라에서 청소년을 제대로 헤아리는 길을 가지 않을 뿐더러, 청소년 나이에 있는 열넷∼열아홉 푸른 넋이, 이름에서 곧바로 ‘우리는 오늘 푸르게 살고 배우고 자란다’는 꿈이나 사랑을 스스림없이, 또 쉽게, 또 부드럽게, 또 누구나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새로 지은 이름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굳이 ‘푸름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야 하느냐고 물을 만합니다. 이오덕 어른을 비롯한 분들은 ‘국민학교’란 이름에서 ‘국민’이 바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란 뜻으로 군홧발로 억지로 지어 퍼뜨린 낱말이니, 이 찌꺼기를 털어야 한다고, ‘어린이학교’나 ‘어린이배움터’ 같은 이름으로 고쳐야 알맞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이름이란, 그냥 붙이는 말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이름이란, 늘 말하고 들으면서 그 말씨에 깃든 숨결을 마음으로 헤아리니 그렇습니다. 1980년대에 ‘푸름이’란 이름을 조용히 지어서 잔물결처럼 퍼뜨린 분들도 그런 뜻이었다고 느껴요. 다만 이 말씨는 ‘어린이’만큼 퍼지지 못했어도 ‘푸른문학’이나 ‘푸른책’ 같은 말을 쓰는 곳이 꾸준히 늘어납니다.


  이 대목에서 말이란 참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삶을 바꾸려는 첫길에서 말부터 바꾸거든요. 말을 바꾸지 않고서는 삶을 좀처럼 못 바꾸는 셈이라고 할 만해요.


이 나라에 컴퓨터라는 물건이 처음 들어오던 무렵, 이 컴퓨터를 다루던 젊은 일꾼은 ‘셈틀’이라는 낱말을 새로 지었어요. ‘틀’은 기계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뜀틀이나 재봉틀이나 베틀 같은 자리에 쓰지요. 빨래하는 기계는 ‘빨래틀’이 되고요. ‘셈+틀’이라는 얼거리로 컴퓨터에 새 이름을 붙인 까닭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숫자 세기(이진법)’ 때문이에요. 컴퓨터는 이진법 숫자로 모든 것을 읽거든요. 그래서 셈틀이에요. 둘째는 ‘셈(세다)’이라는 낱말은 ‘생각(생각하다·헤아리다)’에서 비롯했기 때문이에요. “숫자 셈”으로 움직이는 컴퓨터이지만, 마치 사람 머리처럼 “생각하는 몸짓”이 되어서 새로운 누리로 우리를 이어 준다는 뜻에서 ‘셈틀(생각틀·슬기틀)’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79∼80쪽


  저는 1994년부터 2019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글을 쓸 적에 ‘새롬데이타맨 프로’라는 풀그림을 씁니다. 1994년 무렵 이른바 피시통신을 하도록 잇는 풀그림이 있는데, 그 풀그림에 곁딸린 문서편집기를 써요. 오늘날 눈으로 보자면 퍽 낡은 풀그림이고, 문서편집기 말고는 어디에도 써먹지 못한다고 할 텐데, 스물 몇 해를 묵은 이 오래된 풀그림에 곁딸린 문서편집기를 다루다 보면, ‘컴퓨터-피시통신-인터넷 살림’이 이 땅에 갓 퍼지거나 뿌리내릴 무렵 어떤 낱말을 써야 사람들이 더 쉽고 즐겁게 다가설 수 있을까 하고 마음을 기울이던 젊은 일꾼 땀방울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셈틀’이란 이름은 1990년대 첫무렵 젊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가 머리를 맞대어 지었다지요. 짧고 굵고 쉬우면서 깊은 뜻을 담은 이름을 지으려고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 여럿이 우리말을 엄청나게 새로 배웠다고 합니다. 사전도 샅샅이 읽고 이곳저곳에 끊임없이 묻고 되물었대요. ‘셈틀 = 세다 + 생각 + 슬기’를 담은 이름이라지요. ‘풀그림’은 ‘프로그램’을 걸러낸(또는 풀어낸) 낱말인데, “풀어서 그려낸 것, 또는 풀어 쓰면서 새로운 것을 그리도록 돕는 연장”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요새 우리는 ‘즐겨찾기, 갈무리, 붙여넣기, 불러오기, 끼워넣기, 잘라내기’ 같은 낱말을 대수롭지 않게 씁니다만, 처음에는 모두 영어였어요. 이 영어를 국립국어원 공무원도 국어학자도 아닌 프로그램 개발자가 서로 모여 하나하나 새로 엮고 지어서 선보였으며, 피시통신에서 제안을 꾸준히 받기도 하면서 가다듬었어요.


  ‘약손’이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이가 있어서 이 어린이한테 ‘약손’이 무엇인가 하고 풀이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요새는 어디가 아프거나 힘들면 쉽게 병원에 가지요. 예전처럼 할머니나 어머니가 포근하게 사랑으로 쓰다듬는 손길보다는 병원 치료가 먼저이다 보니 ‘약손’이란 이름을 모를 수 있겠구나 싶어요. ‘약손’이란 이름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만, 이 말이 낯선 어린이가 말뜻뿐 아니라 말에 얽힌 삶을 따스히 헤아려 주기를 바라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사랑손’하고 ‘포근손’이란 말을 지어서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네 어머니가 우리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얼른 나으렴 하고 바라는 ‘사랑손’이랍니다. 우리 몸에서 아픈 데를 사랑이 어린 손으로 살살 쓰다듬으면 어느새 그 아픈 데가 따뜻해져요.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도록 하는 손이기에 ‘포근손’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하고.


  2014년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란 책을 썼습니다. 저는 2011년부터 전남 고흥이란 시골로 옮겨서 사는데, 시골에서 만나는 어린이마다 ‘빨리 이 시골을 떠나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 놀랐습니다. 마음도 아팠어요. 푸름이도 매한가지였어요. 시골 어린이가 시골이란 터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포근한 사랑으로 스스로 읽고 새롭게 배우며 가슴으로 고이 품어 주기를 바라는 뜻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이러고서 생각을 찬찬히 가다듬어 2017년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란 책을 썼지요. 오늘날은 시골보다 도시 인구가 훨씬 많고, 도시 독자가 훨씬 많아요. 도시에 사는 이웃님이 ‘도시가 아름다운 숲이 있는 마을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자주 물으셨어요. 그 실마리를 말 한 마디에서 풀도록 이끌고 싶어서 쓴 책입니다. 삶터는 시골하고 도시로 다르겠지만, 마음은 언제 어디에서나 숲일 수 있고, 우리가 마음을 먹는 대로 생각이 자라서 말이 될 테니,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말길을 트고 만나면 아름답겠다고 여겼습니다.


  주고받는 말이기에 ‘이야기’입니다. 한켠으로 쏠리는 말이 아닌, 주고받는 말이 되기를 바라면서 ‘강의’보다는 ‘이야기꽃’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서 써 봅니다. ‘글쓰기’란 수수한 이름도 좋으나 ‘글꽃’을 피워 보자는 얘기를 곧잘 합니다. 모두 꽃길을 걸으면 즐거울 테니 ‘꽃살림’을 가꾸어 보자는 얘기를, ‘꽃어른’이 되고 ‘꽃아이’가 되어 보자는 말을, 이러면서 ‘꽃책(꽃다운 책)’을 읽고, ‘책꽃잔치(북페스티벌)’를 열어 보자는 말을 넌지시 해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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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읽는어른' 2019년 6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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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세걸음 ― 하얀 딸기꽃 곁에 “비슷한말 사전”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사전을 써냈습니다. 글종이로 5000쪽(원고지 5000장) 남짓인 꾸러미를 글꼴을 줄이고 엮어 500쪽이 채 안 되게 내놓았습니다. 고작 글종이 5000쪽만큼 사전으로 꾸렸기에 1000낱말 남짓 다루었는데, 사전 짓는 길을 스물 몇 해를 산 끝에 처음 선보인 사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비슷한말 2》을 선보이고 싶었으나 목돈을 들여야 하는 일감인 터라 아직 엄두를 못 냅니다.


‘비슷한말’이란 비슷해 보이지만 막상 다른 말입니다. 다른 말은 다르기에 ‘닮다’랑 ‘비슷하다’를 섣불리 섞어 쓸 수 없고 ‘힘’하고 ‘기운’을 함부로 뒤섞을 수 없어요. ‘자라다’하고 ‘크다’도 비슷하지만 다른 말이에요. ‘즐겁다·신나다·기쁘다·신바람나다·흐뭇하다’는 비슷해 보여도 결이나 쓰임이 다른 낱말이니,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를 찬찬히 밝히는 몫을 사전이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2016) 464∼465쪽

휘다·굽다·꺾다·부러뜨리다

→ ‘굽다’는 몸이나 어느 한쪽을 ‘접은 뒤에 다시 펼 수 있을’ 때에 쓰는구나 싶고, ‘휘다’는 몸이나 어느 한쪽이 ‘접힌 뒤에 다시 펴지 못할’ 때에 쓰는구나 싶습니다.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가게 하기에 ‘접다’라 합니다. 몸이나 어느 한쪽이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갔다가도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에 ‘굽다’요,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기에 ‘휘다’라 할 만합니다. ‘팔굽혀펴기’라고 하듯이 “팔을 굽혔다 폈다”처럼 씁니다. “팔이 휘었다”고 하면 팔이 한쪽으로 접혀서 다친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리하여 “나뭇가지가 휘었다”처럼 쓸 뿐, “나뭇가지가 굽었다”처럼 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허리가 휘게 일을 하다”라고는 말을 하지만 “허리가 굽게 일을 하다”라고는 안 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는 옛말이 있으나 “팔은 안으로 휜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를 미루어 살피면, ‘굽다’는 ‘굽고 펴다’와 맞물리면서 쓰는 낱말이고, ‘휘다’는 안쪽으로 접지 않고 바깥쪽으로 접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이라 할 만합니다 …….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서 ‘휘다·굽다·꺾다·부러뜨리다’를 꾸러미로 다룬 모둠풀이 첫자락을 옮겨 보았는데요, 여느 사전은 이 낱말을 돌림풀이·겹말풀이로 다룹니다. 《보리 국어사전》 한 가지만 들어 보겠습니다.


* 《보리 국어사전》 뜻풀이

[휘다] 곧은 것이 힘을 받아 구부러지다

[구부러지다] 한쪽으로 굽거나 휘어지다

[굽다] 1. 한쪽으로 휘거나 꺾이다 2. 한쪽으로 휘어 있거나 꺾여 있다

[꺾다] 1. 어떤 것을 구부려서 부러지게 하다 2. 허리, 팔, 다리 들을 구부리거나 접다


사전은 말을 읽고 제대로 배워서 삶을 새롭게 돌아보도록 이끄는 디딤돌 같은 책이라고 여깁니다. 드문 말이나 어려운 말보다는, 쉽고 흔하다 싶은 낱말부터 제대로 옳게 알맞게 즐거이 풀이하고 다룰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낱말을 더 많이 실을 사전이 아닌, 사전에 실은 낱말부터 꼼꼼히 알뜰히 여미어야지 싶어요.


사람들은 흔히 ‘어려운’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봅니다만, 어려운 말이 아닌 ‘쉬운’ 말이나 ‘흔한’ 말을 신나게 찾아봐야지 싶습니다. 사전까지 찾아봐야 하는 ‘어려운’ 말이라면 처음부터 안 써도 될 말은 아닐까요? 늘 쓰고 자주 쓰며 으레 쓰는 ‘쉽고 흔한’ 말일수록 참뜻·제뜻·속뜻을 찬찬히 짚으면서 알맞고 즐겁게 쓸 노릇 아닐까요?


외국말을 어떻게 배워서 쓰는가를 생각해 보면, 어려운 외국말부터 배우지 않아요. 가장 쉽고 흔한 외국말부터 온갖 결이나 쓰임을 헤아려서 낱낱이 따지고 깊이 익히려 하지요. 어린이가 말을 어떻게 배워서 쓰는가 하면, 어려운 말부터 듣거나 익히지 않아요. 어린이는 가장 흔하고 쉬운 말부터 즐겨듣고 즐겨말하면서 신나게 살려서 씁니다.


어린이가 제 나라 말을 익힐 적에도, 어른이 외국말을 익힐 적에도, 언제나 살림말이나 삶말, 그러니까 가장 쉽고 흔하게 주고받으면서 생각을 펴고 마음을 여는 이야기에서 바탕이 될 말을 진득하게 꾸준하게 오래오래 차근차근 바라보고 되새기면서 온몸으로 받아들여요. 쉬운 말을 제대로 알아야 말도 글도 제대로 일어서는 셈입니다.


*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뜻풀이

[휘다] 1. 한쪽으로 기울거나 쓰러지다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는 느낌으로 쓴다) 2. 뜻·마음·생각을 다른 쪽으로 바꾸거나 내려놓다

[굽다] 1. 한쪽으로 기울다 (곧지 않다,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할 적에도 쓴다) 2. 뜻·마음·생각을 다른 쪽으로 바꾸거나 내려놓다

[꺾다] 1. 길고 단단한 것을 동강이 나게 하다 (다시 펴지지 않거나 아주 끊어지게 하다) 2. 가는 길을 다른 곳으로 바꾸거나 돌리다 3. 몸통이나 몸 한쪽을 어느 한 곳으로 기울도록 하다 (‘굽히다’처럼 마주 붙거나 닿는 쪽으로 가도록 한 뒤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느낌으로 쓴다) 4. 한쪽으로 기울게 해서 겹치다 (접다, 한쪽으로 가서 마주 붙거나 닿도록 하다) 5  …….


돌림풀이·겹말풀이 없이 새로 뜻풀이를 붙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차근차근 해보면 되지요.


우리는 세 살 어린이한테 어떤 말을 어떤 마음으로 들려줄까요? 어린이한테 무엇을 가르치기 앞서,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린이에 앞서 어른부터 스스로 말 한 마디를 제대로 삭이고 익히고 가다듬어서 살림꽃으로 펼 적에 즐겁지 않을까요? 가게에 삼백예순닷새 내내 놓인 빨간 딸기가 아닌, 오월이 무르익어야 비로소 열매를 누리는 딸기알인 줄, 우리 어른부터 스스로 느끼고 누리면서 어린이하고 딸기 열매를 맛볼 적에 훨씬 신나리라 느껴요.


서로돕기, 같이돕기, 함께돕기 ― 상부상조, 상호원조

서로좋아, 같이좋아, 함께좋아, 좋아좋아 ― 윈윈, 상승효과


사전에 없는 말이어도 ‘서로돕기’랑 ‘같이돕기’ 같은 말을 혀에 얹습니다. ‘서로좋아’하고 ‘함께좋아’ 같은 말도 슬그머니 종이에 적어 봅니다. 어깨동무하듯이 서로 즐거울 말을 머리에 담고 눈에 얹고 가슴에 싣고 두 손에 놓고 곁에 모시고 싶습니다.


이러면서 슬쩍 새말을 지어요. 어떤 말인가 하면, ‘딸기알빛’하고 ‘딸기꽃빛’입니다. 딸기알은 새빨가니까 ‘딸기알빛 = 새빨강’이요, 딸기꽃은 새하야니까 ‘딸기꽃빛 = 새하양’이에요. 유월로 접어들 즈음 찔레꽃이며 감꽃이 피어나요. 감알은 바알갛거나 새빨갛습니다. ‘감알빛’이라 하면 어떤 빛깔이 될까요? ‘말랑감알빛’하고 ‘단감빛·단단감알빛’처럼, 우리 몸에 기쁜 숨결이 되는 감알을 더 찬찬히 바라보면서 새 빛깔말을 쓰면 어떨까요.


붉게 열매를 맺는 감이지만, 꽃은 마알갛습니다. ‘말갛다’하고는 다른, 마알가면서 하이얗고, 살풋 노르스름한 감꽃이에요. 고욤꽃도 살짝 비슷하지요. 소한테서 얻는 젖인 소젖, 한자말로 하자면 ‘우윳빛’이란 ‘감꽃빛’이나 ‘고욤꽃빛’이지 싶습니다.


‘화이트’나 ‘백색’을 쓰지 말자고 하기보다는, ‘딸기꽃빛·감꽃빛·찔레꽃빛·앵두꽃빛’처럼 우리 곁에서 상냥하며 곱다시 피어나는 숨결을 헤아리는 빛깔말을, 새빛을, 숨빛이며 꽃빛을 조용히 눈을 감고서 품어 봅니다. 이 빛깔말을 품는 마음으로 도요새이며 저어새이며, 온갖 철새가 이 나라 새파란 바다로 찾아와서 마음껏 날갯짓하면 좋겠어요. 


* ‘어린이’ 뜻풀이

[보리 국어사전] 나이 어린 사람. 흔히 네다섯 살 먹은 아이부터 초등학교에 다닐 만한 아이까지를 이른다. (같은말 : 아동)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어린아이’를 한결 곱게 바라보거나 아끼려고 가리키는 말. 놀며 배우고 사랑하는 살림을 짓는 하루가 되려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 (나이로만 치자면, 갓 태어난 때부터 열 살을 지나 열두어 살 즈음까지 ‘아이’라고 일컫습니다. 너덧 살 즈음부터 열두어 살 즈음까지는 따로 ‘어린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나 “우리 아이”처럼, 어버이가 이녁 딸아들을 가리킬 적에 ‘아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어린이’는 어버이가 낳은 딸아들을 가리킬 적에는 못 씁니다)


사전은 ‘단어장’ 아닌 ‘풀이하는 이야기책’이지 싶습니다.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보려는 뜻으로 ‘어린이’를 새롭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최종규(숲노래) : 한국말사전 짓는 사람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리고,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길을 걷는다.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내가 사랑한 사진책》,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기》, 《책빛숲》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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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펴내는 "동화읽는어른"이란 모임책에 싣는 글입니다.

모임책에는 몇 대목을 줄여서 싣고, 누리집에는 통으로 올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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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두걸음 ― 치마 두른 사내


  저는 하루에 글종이로 500쪽쯤 글을 씁니다만 글종이 500쪽이 무엇인지 어림을 못 하는 분이 있어요.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으니 고분고분 이렇게 얘기합니다만, 쓰는 글이 이쯤이라면 읽는 글은 훨씬 많습니다. 스무 살부터 서른 살 무렵까지는 ‘한 줄을 쓰려면 백 줄을 읽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참말로 그 나이에는 그렇게 읽고 썼어요.

  요새도 이 다짐은 그대로인데, 종이책으로 치자면 ‘한 줄을 쓰는 사이 스무 줄을 읽는다’고 할 만해요. 그리고 종이책을 적게 읽기로 하면서 다른 읽기를 합니다. 이를테면 열 줄은 바람읽기로, 열 줄은 풀읽기로, 열 줄은 나무읽기로, 열 줄은 벌레읽기로, 열 줄은 별읽기로 갑니다.

  아이읽기로도 가고, 살림읽기랑 사랑읽기로도 가고요. 예전에는 종이책을 읽는 데에 온마음을 썼다면, 이제는 종이책은 매우 조금 읽고, 삶책하고 숲책하고 넋책을 읽는 길에 한마음을 쓰는 길입니다. 종이책을 거의 못 읽을 수밖에 없이 바깥일을 하는 날이면 ‘다른 숱한 책’을 신나게 읽어요.

치마 (숲노래, 2019.1.29.)

정강이까지 드리워 긴치마
허벅지 훤히 깡동치마
무릎 언저리 무릎치마
속에 따로 속치마

바람에 나비처럼 팔랑치마
한 땀씩 곱게 넣은 꽃치마
가지런히 줄 잡아 주름치마
머리 덮는 쓰개치마

치마를 둘러 시원하면
너도 나도 입어 보자
옛날 옛적엔
누구나 치마차림이었다지

속에 덧입는 치마바지
얌전히 치마저고리
어머니 누나는 치마순이
아버지 나는 치마돌이

  2017년 늦가을부터 치마를 두릅니다. 저는 사내라는 몸으로 태어났으니 겉보기로는 “치마 두른 아저씨”입니다. 이런 차림을 보고는 거북하다고 여기는 분이 있고, 재미있다고 여기는 분이 있으며, 아랑곳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둘레에서 어떻게 보든 저는 스스로 살아가려는 결을 생각합니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옷을 걸칠 뿐이니 대수롭지 않습니다.

  언젠가 바깥마실을 하는 길에 서울에서 전철을 타는데, 어느 할머니가 저를 보며 “무슨 남자가 치마를 입어?” 하시기에, “어머나, 할머니! 바지 입었네. 왜 여자가 바지를 입어?” 하고 대꾸했어요. 할머니는 낯빛이 싹 바뀌면서 허둥지둥 다른 칸으로 건너갑니다.

  생각해 봐요. 바지를 꿰고 싶으면 바지를 꿰면 되어요. 치마를 두르고 싶으면 치마를 두르면 되지요. 가시내이든 사내이든 마음껏 즐거이 신나게 홀가분히 재미나게 웃음으로 사랑스레 꽃답게 별처럼 노래하면서 옷을 갖추면 아름답습니다. 이런 뜻으로 ‘치마’라는 동시를 썼어요. 앞쪽에는 여러 가지 치마 이야기를 다루고, 이 치마란 옷을 예전에는 모든 사람이 입었다는 대목을 밝힌 다음, ‘치마돌이’란 말을 살그마니 넣었습니다.

  자, 더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이제 뭇 가시내는 즐겁게 머리카락을 짧게 칩니다. 머리카락을 박박 밀기도 합니다. 적잖은 사내는 즐겁게 머리카락을 기릅니다. 노래하는 몇몇 사람이 아니어도 치렁치렁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멋사내가 많아요. 바야흐로 멋이든 아니든 마음 가는 결로 삶길을 짓습니다.

늑대 (사름벼리, 2019.1.10.)

왜 옛날이야기 그림책에선
늑대가 나빠?
‘빨간 모자’ 그림책에서도
늑대가 나쁘게 나와!

언제나 미움 받다가
책끝에서는 물에 빠져죽거나 그래.
‘아기 돼지 삼형제’라는 책에서도
늑대가 나쁘게 나오잖아.

이렇게 저렇게 되다가
마지막엔 불에 타죽어.

난 늑대 이야기가 그런 건
아주 반대야!!!!

  늑대가 얼마나 똑똑하면서 착한 짐승인가를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이제는 늑대가 얼마나 대단하면서 사랑스러운 짐승인가를 또렷이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 어느 사람은 늑대를 외눈으로 바라보고, 어느 사람은 늑대를 마음눈으로 바라볼까요?

  2011년에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우리 곁님은 아이를 아이답게 돌보는 어른다운 어른으로 함께 살아가려면 숲에서 살림자리를 가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숲집을 가꾸는 길을 이루리라 여기며, 이때부터 시골에서 사는데요, 인천을 떠나던 이해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란 책을 썼습니다. 누구보다 우리 집 아이들이 열 살 즈음 되면, 우리가 쓰는 말이랑 글을 찬찬히 짚고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뜻으로 썼어요. 2015년에는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을 썼는데요, 네 해 사이에 ‘바로쓰기’란 이름에서 ‘새롭게 살려낸’이란 이름으로 거듭났습니다.

  첫째, ‘바로쓰기’란 우리가(또는 나부터)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굳거나 길든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슬기롭게 가다듬자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살려쓰기’란 우리가(또는 나부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즐겁게 꿈꾸면서 사랑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두 가지 이야기는 바탕은 같되, 풀어내는 결이 살짝 달라요.

  ‘바로쓰기 = 옛버릇을 털고 새몸짓으로 거듭나기’인 셈이요, ‘살려쓰기 = 새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노래하기’인 셈입니다.

  2003∼2007년에 이오덕 어른 책하고 글을 갈무리하면서 어른이 남긴 글을 모조리 읽어 보니, 이오덕 어른은 ‘우리글 바로쓰기’란 이름으로 쓴 책을 몽땅 ‘우리말 살려쓰기’로 고쳐쓰고 싶어하셨더군요. 그런데 ‘우리글 바로쓰기’를 낸 출판사는 옛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니 새 이름으로 고치면 책장사를 하기 어렵겠다고 밝혔대요.

  바르게 가다듬는 틀을 세워도 훌륭하지만, 고장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새 말씨를 즐겁게 가꾸면 한결 아름답게 자라지 싶어요. 고장말·마을말·집말, 이 갖가지 사투리가 눈부시게 피어나는 말꽃이라면, 손수 짓는 말길을 노래한다면, 참 곱겠지요.

 고르다. 가지런하다. 판판하다. 반반하다 ― 편평하다. 평평하다
 배우다. 익히다 ― 공부하다. 학습하다

  ‘편평하다’로 적어야 맞는지, ‘평평하다’로 적어야 맞는지 헷갈리는 분이 꽤 있는 줄 압니다. 이때에는 둘 다 안 쓰면 됩니다. 한국말 ‘판판하다·반반하다’를 쓰면 되어요. 때로는 ‘고르다·가지런하다’를 쓰면 되고요.

  아이들은 ‘공부·학습’이 지겨울 만합니다. 어른도 그래요. 그런데 ‘배우다·익히다’는 달라요. 아직 몰라서 새롭게 찾거나 살펴서 받아들이려고 하기에 ‘배우다’입니다. 새롭게 찾거나 살펴서 받아들인 살림을 몸에 잘 붙도록 애쓰면서 살기에 ‘익히다’입니다.

  한자말을 굳이 한국말로 걸러야 하지는 않아요. 이 대목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어느 말을 누가 어떤 뜻으로 썼는지 곰곰이 헤아리면 좋겠어요. ‘배우다’하고 ‘익히다’라는 수수한 낱말 하나에 깃든 너른 숨결을 냠냠짭짭 받아먹으면서 새롭게 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배우는 사람, 곧 ‘배움이’입니다. 서로 배우니 ‘배움동무’입니다. 오래도록 같이 배우니 ‘배움벗’으로 거듭나요. 사랑스러운 배움벗이기에 따로 ‘배움님’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배우는 길에 든든한 이웃이니 ‘배움지기’이기도 합니다. 한국말이란 끝없이 가지를 치면서 생각을 새로 뻗도록 북돋웁니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터에서 태어나서 자란 말이 한국말이거든요. 다른 나라 말도 그 나라 그 터에서 죽죽 뻗고 자라요.

  아이는 ‘배움아이’요, 어른은 ‘배움어른’입니다. 배우는 모든 곳이 ‘배움터’입니다. 학교에서만 배우지 않기에, 우리 집은 언제나 ‘배움집’입니다. 마을도 학교라는 뜻으로 ‘배움마을’이 되고, 온나라가 배우는 터이기에 ‘배움나라’예요. 슬기롭게 배워서 환하게 빛나는 사람한테는 ‘배움빛’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어쩌면, 우리를 가르치는 슬기로운 사람은 ‘스승’이자 ‘배움빛’이기도 하겠지요. 스승이란, 가르지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배울 수 있도록 하면서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사람을 가리킬 테니까요.

  치마를 놓고서 동시를 한 자락 썼습니다만, 치마를 입으면서 여러모로 배웁니다. 치마란 아주 홀가분하면서 즐거운 옷이더군요. 다리에 햇볕하고 바람을 쪼이려고 할 적에 참으로 좋은 옷이고요.

  울타리란 남이 쌓지 않고 우리 스스로 쌓는구나 싶어요. 남녀나 여남이라는 울타리를 걷어내는 길에 치마 한 벌은 매우 재미난 징검돌이 될 만하다고 봅니다. 가시내가 바지를 꿰면서 어깨동무란 길에 씩씩하게 징검돌을 놓았다면, 이제 사내는 치마를 두르면서 어깨동무란 오솔길에 살뜰히 징검돌 하나를 더 놓을 수 있구나 싶어요.

  전철에 ‘쩍벌사내’가 제법 있지요? 모든 쩍벌사내한테 깡동치마를 입히면 좋겠어요. 애써 다그치지 않아도 저절로 달라지지 않을까요? 대통령 시장 군수도 한겨울에 깡동치마를 입도록 하면 좋겠어요. 이래야 이 나라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스스로 겪을 적에 비로소 생각합니다. 스스로 할 적에 바야흐로 배웁니다. 스스로 생각할 적에 비로소 살림을 짓는 길로 가고, 스스로 배울 적에 바야흐로 사랑을 가꾸는 몸짓으로 달라져요.


최종규(숲노래) : 한국말사전 짓는 사람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리고,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길을 걷는다.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내가 사랑한 사진책》,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기》, 《책빛숲》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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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펴내는 "동화읽는어른"이란 모임책에 싣는 글입니다.

모임책에는 몇 대목을 줄여서 싣고, 누리집에는 통으로 올립니다. ㅅㄴㄹ


+ + +


우리말 이야기꽃

첫걸음 ― 스스로 배우는 씨앗



  저는 2001년 1월부터 2003년 8월까지 《보리 국어사전》을 엮는 편집장이자 자료조사부장 일을 맡았습니다. 2003년 9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이오덕 어른이 남긴 책하고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뒤로 전국 지자체와 공공기관 누리집 2000 군데 말씨를 손질해 주는 일도 하고, 서울시나 경기도 공문서를 쉽게 가다듬는 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만 마쳤습니다. 배움줄(학연), 이름줄(인맥), 돈줄(재산)이 하나도 없이 어떻게 이런저런 일을 맡아서 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때까지 어느 일을 맡아서 하든 저 스스로 배우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그 일을 맡기 앞서도 늘 스스로 배우는 몸짓으로 살았습니다. 이를테면 다음처럼 배웠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 사람이 살아오며 겪은 대로 들려주는 이야기라 여기면서, 그 이야기에서 적어도 한 가지를 배울 수 있다고 삼았습니다. 1999년 여름까지 신문 돌리는 일을 하며 달삯을 32만 원 받았는데 이 가운데 10만 원은 적금을 붓고 나머지로 헌책집을 돌며 책을 장만해서 읽었습니다. 헌책집에서 책 한 권을 장만한다면 열 권은 서서 읽었습니다. 이무렵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헌책집 두어 곳을 돌았고, 날마다 헌책으로 스물∼서른 권쯤 장만했으니, 사지는 못해도 책집에 가서 날마다 서서 읽은 책은 이백∼삼백 권이었습니다.


  아는 어른이나 배움길이나 일자리가 딱히 없었기에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나서 이웃 신문지국하고 신문을 바꾸며 열 몇 가지 신문을 꼬박꼬박 읽었고, 대학교 도서관하고 구내서점에서 곁일도 하면서 빈틈이 나면 그곳에 있는 책을 조용히 읽었습니다. 이러다가 1999년에 처음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갔고, 그해에 달삯 62만 원을 받으며 ‘이렇게 돈을 많이 받다니, 책을 실컷 살 수 있겠네’ 하고 여기면서 더욱 신나게 책으로 배움길을 걸었습니다.


철 (숲노래, 2019.2.16.)


숨을 죽이는 삼월

반짝 눈뜨는 사월

다 같이 피어나는 오월


푸르게 짙은 유월

하늘이며 바람인 칠월

싱싱히 영그는 팔월

여름


제비가 떠난 구월

무화과 맛있는 시월

무지개빛 감잎 십일월

가을


서리 고드름 눈 십이월

온누리 새하얗게 일월

깊은 잠 깨어날 이월

겨울


  두 아이하고 함께 삽니다. 2019년에 열두 살, 아홉 살인데요, 두 아이는 만화 그리기에 흠뻑 빠져 삽니다. 몇 해 앞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창작법》을 사 주면서 읽으라 했으나 너무 어려워서 못 읽더니 이제는 조금 알아듣겠다면서 읽지만, 책에 적힌 말씨가 어렵기는 아직도 그대로인 듯합니다. ‘기승전결’이 뭔지 한참 아리송해 하기에, ‘봄여름가을겨울’하고 같다고, 이 네 철이 피고 지고 흐르는 결처럼 줄거리를 짜서 이야기를 엮으라는 뜻이라고 풀이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알아들을까요?


  아마 이 풀이도 못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여겨 동시를 쓰기로 했어요. ‘철’이란 이름으로 열여섯 줄을 씁니다. 우리 아이들이 머리로 ‘줄거리 짜기’를 익히기보다는, 네 철이 흐르는 결이 어떠한가를 가만히 몸으로 헤아리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으리라 여깁니다. ‘철’이란 동시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2019년 1월에 《우리말 동시 사전》이란 동시집이자 사전을 써냈습니다. 이 동시 사전을 써내기까지 열한 해 걸렸습니다. 큰아이가 두 살 무렵 한글을 가르치려고 처음 동시를 썼어요. 두 살에 벌써 한글을 가르쳤다는 뜻은 아니고요, 아버지가 한국말사전을 쓰는 일을 하며 온 집안이 늘 책투성이에 글투성이로 북새통이다 보니, 큰아이가 갓난쟁이일 적부터 글씨를 따라쓰고 읽으려 했어요. 그래서 이 아이가 즐겁게 삶과 숲을 나란히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저 스스로 동시를 써서 이 동시로 아이하고 글놀이를 했습니다. 그런 글놀이 동시를 열한 해 동안 쓰고 고치고 가다듬고 하면서 《우리말 동시 사전》을 썼어요.


국화꽃 (사름벼리, 2018.11.13.)


꽃이 피었다. 

도서관 가는 길에 피었다.

꽃은 노랬다.

꽃이름은 국화였다.


도서관에 가다가 

국화 한 송이 가져갔다.

도서관에 걸어놓은,

내가 코바늘로 뜬 줄에 끼웠다.


이튿날 또 도서관에 갔다.

국화는 말랐다.

그래도 꽃냄새가 났다.

국화꽃이 말라도 예뻤다.


국화꽃 끼울 때

코스모스도 끼웠다.

말라도 예뻤다.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우리 큰아이 이름은 ‘사름벼리’입니다. 우리 집 아이한테는 아버지 성이나 어머니 성을 붙이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는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란 책에 밝혔으니 이만 줄이겠고요, 사름벼리 어린이가 열한 살 무렵에 ‘국화꽃’이란 동시를 썼어요. 이 동시 끝줄에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란 글을 적기에 좀 못마땅했습니다. 큰아이가 어디에서 이 말을 듣고서 따라적었나 싶었거든요.


  큰아이한테 물었지요. 큰아이는 어디에서 본 적이 없고, 스스로 떠올라서 썼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싶어요.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같은 말은 참으로 누구나 할 만하지요. 이곳저곳에서 갖은 들꽃이 피어나듯이, 이러한 말씨도 이곳저곳 숱한 아이들 입에서 마음껏 터져나올 만하겠지요. 새삼스레 아이한테서 배웠습니다.


  저는 2003∼2007년 사이에 이오덕 어른 책하고 글을 갈무리하면서 어른 책하고 글을 몽땅 서른 벌 넘게 읽었습니다. 적어도 이만큼씩 읽었는데요, 이렇게 읽으면서 느끼거나 배운 한 가지라면, ‘이오덕 어른은 남을 가르치려고 글을 쓰지 않았다. 이오덕 어른은 스스로 배우려고 글을 썼다’라 할 수 있습니다. 이오덕 어른이 편 ‘우리글 바로쓰기’는 사람들이 이 나라 말글을 바르게 쓰기를 바란 뜻으로 한 일이 아닙니다. 바로 이오덕 어른 스스로 이녁 말씨이며 말넋을 송두리째 갈아엎으면서 새로 배우려고 한 일입니다.


  이오덕 어른 가르침을 따갑거나 어렵다고 여기는 분이 많아요. 왜 그럴까요? 바로 남을 가르치려는 글이나 책이 아닌, 이오덕 어른 스스로 담금질하며 갈고닦으려고 쓴 글이나 책이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거듭나려고 하니 더욱 꼼꼼하게 글을 쓰려 했고, 토씨 하나라도 어긋나지 않도록 빈틈없이 가다듬으셨습니다. 스스로 다시 배우고 더 배우려 하셨어요. 눈을 감는 마지막 그때까지도 배움길이던 이오덕 어른입니다.


  삶을 배우면서 살림을 사랑으로 짓는 길이란 으레 이렇겠지 하고 여깁니다. 우리는 남을 가르칠 수 없어요. 스스로 배울 뿐입니다. 밥을 지어 아이한테 차려 줄 적에도 어버이 스스로 맛있다 싶도록 차려야 비로소 아이도 맛있게 먹을 만합니다. 옷을 지어 아이한테 입혀 줄 적에도 어버이 스스로 곱구나 싶도록 지어야 비로소 아이도 즐겁게 입을 만합니다.


  남이 보기에 좋도록 가르치거나 짓거나 차릴 수 없습니다. 스스로 흐뭇하게 받아들일 만큼 가다듬거나 갈고닦는 배움길이요 지음길이라고 느낍니다.


 글벗. 네글벗 ― 문방사우

 칼수다. 수다잔치 ― 쾌도난담


  요새도 ‘문방사우’란 한자말을 쓰는 분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글벗’이란 말을 씁니다. ‘문방사우’를 ‘글벗’으로 고쳐쓰지 않아요. 글을 쓰며 곁에 두는 여러 가지를 바라보며 저절로 ‘글벗’이란 낱말이 튀어나와요. 문득 떠오르면서 쓰는 말씨인 ‘글벗’입니다. 때로는 ‘글님’이나 ‘네글벗’이나 ‘네글님’이라고 해요.


  예전에 어떤 분이 ‘쾌도난담’이란 이야기판을 벌인 적 있는데, 저는 이런 말치레를 반기지 않습니다. 제가 이야기판을 벌인다면 눈치를 안 보고서 꾸밈없이 모두 밝힌다는 뜻으로 ‘칼수다’라 이름을 붙이든지 ‘수다잔치’ 같은 이름을 지으리라 느껴요. 이렇게 고친다는 소리가 아닌, 저라면 처음부터 이런 말을 생각해서 쓴다는 소리입니다. ‘수다판·수다마당·수다잔치·수다꽃·수다숲’도 재미나요.


  말이나 글을 놓고, 또 동시나 살림을 놓고, 우리는 ‘바르게’ 할 까닭은 딱히 없다고 느껴요. 아이들하고 열 몇 해를 살림하며 사는 동안 시나브로 배웠어요. ‘바르게’ 아닌 ‘즐겁게’일 뿐이에요. 즐겁게 살림하며 사랑하고 살아가노라면, 모든 길은 저절로 ‘바르게’ 될밖에 없어요. 즐겁게 사는 사람이 굳이 ‘안 바르게’ 할 까닭이 없으니까요. 즐겁게 노래하노라면 모든 걸음걸이는 ‘바른’ 숨결이 되더군요. 처음부터 바르려고 하는 숨결이 아니라, 즐겁게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어깨동무하다 보면, 그야말로 신명나는 바른 몸짓으로 거듭나요.


  저는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이웃님한테 늘 이 말을 꼭 하고 다시 하고 거듭합니다. ‘신나게 하루를 맞이하고, 신나게 하루를 누리며, 신나게 밤꿈을 그려 봐요.’ 하고. 신나게 놀면서 자란 아이가 자라 신나게 일하는 어른이 되어요. 신나게 꿈꾸며 큰 아이가 앞으로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일하는 어른으로 우뚝 서요. 어른이 되는 길이란 배우는 길인데, 어른이 되는 길이란, 어린이일 적부터 신바람을 몸에 익히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배우는 씨앗이, 서로서로 삶을 밝히는 기쁨열매가 됩니다. 그래서 “싸우지 말자”라 않고 “서로 사랑하자” 하고 말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한국말사전 짓는 사람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리고,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길을 걷는다.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내가 사랑한 사진책》,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기》, 《책빛숲》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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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



  ‘인문책’을 읽는 어른들 책모임에서 으레 ‘중·고등학교 추천도서 목록’ 같은 책을 뽑아서 읽기 마련입니다. 이 같은 책들이 나쁜 책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 추천도서라든지 수많은 인문책은 틀림없이 좋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책과 인문으로 사회를 읽거나 사람을 읽거나 삶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또 사랑을 읽고 숲을 읽으며 슬기를 읽는다고 할 적에는, 좀 달리 생각해 보아야지 싶어요. 우리는 《하이디》라는 고전으로 사회와 사람과 삶과 숲과 살림을 모두 슬기롭게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플란다스의 개》라는 고전으로 사람과 삶과 그림과 꿈과 사랑을 슬기롭게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삐삐》 꾸러미로 기쁨과 놀이와 꿈과 이야기와 동무를 사랑스레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꼬마 옥이》라는 고전으로 역사와 문화와 노래와 가난과 시골과 사랑을 고이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닐스의 신기한 모험》이라든지 《마녀 배달부 키키》라든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든지 《우주 소년 아톰》이라든지 《피노키오》라든지 《메리포핀스》 꾸러미 같은 고전도 있어요. 바바라 쿠니라든지 윌리엄 스타이그라든지 닥터 수스 같은 고전도 있지요. 가만히 보면 권정생도 고전이 될 수 있어요. 김유정이나 현덕이나 현진건도 고전이 될 테지요. ‘고전’이란 서양 문학책이나 서양 인문책이 아닙니다. 오래오래 읽고 사랑하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기에 고전이에요. 아이들을 곁에 앉히고 두고두고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고전입니다. 2017.3.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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