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미루려다가



  읍내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운이 쪽 빠진다. 그렇다고 바로 드러누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두 아이는 마을을 여러 바퀴를 돌면 땀을 쪼옥 빼면서 노느라 흙투성이가 된다. 이 모습을 보니 이 아이들을 얼른 씻겨야겠구나 싶어서 불끈 힘을 내어 씩씩하게 두 아이를 씻긴다.


  아이들을 씻긴 뒤에 샛밥을 챙겨서 주는데, 아 이제는 누워서 허리를 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아이들을 씻기면서 바닥에 튀기는 물에 옷을 적셔 놓았다는 생각에, 따순 물로 옷이 젖었으면 빨래하기가 무척 수월할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룻밤 자고 아침에 이불 한 채를 더 빨면서 빨래기계한테 일감을 맡길까 하고 생각하다가 손으로 다시금 기운을 내어 빨아 보자고 생각한다.


  샛밥을 먹은 아이들은 아버지 뒤에 서서 빨래를 지켜본다. “나도 이제 빨래하고 싶어. 빨래 배울래.” 하고 말하면서, 비누질 비빔질 헹굼질 물짜기를 찬찬히 지켜본다. 물짜기를 마친 옷가지가 하나 나오니, 큰아이가 마당으로 가지고 나가서 널어 준다. 이윽고 오늘 빨래를 다 마치고 마당에 나가서 함께 옷가지를 널고 마당을 조금 치워 본다. 작은아이는 이동안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포근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이월 하루가 지나간다. 2016.2.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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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6-02-12 22:00   좋아요 0 | URL
샛밥이란 새참과 한가지로 쓰이나요?
마당에 빨랫줄,
마당이 없는 저로선 무척 낭만적인 전경입니다!^^

숲노래 2016-02-13 06:55   좋아요 0 | URL
사이에 먹는 밥인 `샛밥`이나 `새참`하고 같은 말이에요.
저희는 마당을 누리려는 뜻도 있어서 시골에서 살아요.
Grace 님이 오늘은 아직 마당을 못 누리셔도
곧 마당을 넉넉히 누리실 수 있기를 빌어요.
틀림없이 마당 누리는 살림이 되시리라 생각해요 ^^
 

드디어 이불빨래를 하다



  지난해 겨울에는 이렇게 추위가 한 달 내리 이어지는 일이 없었기에 틈틈이 이불을 빨았다. 올해 겨울에는 추위가 한 달 내리 이어지면서 이불빨래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날이 꽁꽁 얼어붙으면 이불을 빨아도 말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제 낮에 빨아서 넌 이불은 해거름에 걷을 무렵 다 마른다. 겨울 막바지 이월에 이렇게 이불도 잘 마르니, 설날 언저리에 모든 두꺼운 이불을 다 빨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이불을 빨아서 말릴 수 있는 날씨란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겨울이 차츰 저무는구나. 고마웠어, 다음에 다시 만나자, 겨울아. 4349.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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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기계한테 빨래 맡기기



  요 두 달 사이는 빨래를 거의 빨래기계한테 맡겼다. 거의 날마다 손빨래를 하며 살다가 요 두 달 즈음부터는 사흘에 한 차례쯤 빨래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면서, ‘손빨래를 할 겨를’을 아이들하고 지내는 데에 더 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혼자서 살고, 혼자서 사느라 빨랫감이 거의 없다면 구태여 빨래기계를 쓸 일도 없을 테지만, 두 아이가 무럭무럭 크면서 이제 두 아이 옷가지가 꽤 많이 나오는 터라, 학교를 안 보내고 집에서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살림을 꾸리자면 빨래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는 쪽이 슬기롭겠다고 느낀다.


  빨래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니 전기삯이 다른 달보다 더 나오기는 하는데 얼추 2000원이나 3000원쯤 더 나오지 싶다. 그러니까 2000∼3000원쯤을 쓰면서 빨래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면 아이들하고 보내는 겨를이 훨씬 늘어나는 셈이다.


  앞으로 이 겨울이 끝나고 새봄이 찾아오고 다시 여름을 맞이하면, 그때에는 빨래기계한테 다시 안 맡기고 마을 어귀 빨래터로 자주 오갈 생각이다. 큰아이가 아홉 살이 된 만큼, 큰아이가 스스로 비빔질하고 헹굼질을 해 보도록 이끌 수 있고, 여름에는 옷을 다 적시면서 물놀이를 할 수 있으니까. 4349.1.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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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01-18 08:04   좋아요 0 | URL
슬기로운 방법이라고 생각을 바꾸시니 조금 놀라웠으나 그래도 보기좋네요!
집안일 하나 하나 끝없이 이어지는 일에 매달리면 확실히 아이들 들여다보는 시간이 줄어들고 막상 그시간이 돌아와도 쉬이 지치곤하니 이게 뭔가?싶더라구요
암튼 집안일도 쉬엄쉬엄 하시고 아이들 어릴적엔 눈 마주치는 시간이 더 긴 것이 좋을 듯 해요^^

숲노래 2016-01-18 08:32   좋아요 0 | URL
생각을 바꾸는 일은
그냥 바꾸면 되기에
그리 힘들지 않아요.

손빨래야 앞으로 얼마든지 할 만하지만
아이들하고 더 즐거이 배우며 가르치는 겨를은
바로 오늘 아니면 못 하는 일이 많으니
올 한 해 살림과 `집놀이터(집학교)`는
이렇게 새 길로 나아가려고 해요.

모두 다 즐겁게 찬찬히 쉬엄쉬엄!
이렇게 해야지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제가 좀 뒷북처럼 많이 늦게 배우는 셈일 수 있어요.
^^;;;;;
 

아이를 씻기는 어버이는



  아이를 씻기는 어버이는, 아이를 다 씻긴 뒤에 빨래를 한다. 아이들이 벗은 옷가지가 한꺼번에 잔뜩 나오고, 어버이도 이때에 ‘씻기고 남은 물’로 씻으니까 여러모로 빨랫감이 많다. 여름이라면 그럭저럭 시원하게 찬물로 빨래를 하고, 겨울에는 따순물을 써서 손이 안 얼도록 한다.


  두 아이하고 살아온 여덟 해를 돌아보면, 이 아이들하고 살기 앞서는 ‘아이를 씻긴 뒤’에 무엇을 하는지, 또는 아이를 어떻게 씻기는가 같은 대목을 하나도 몰랐다. 아이하고 살며 아주 부드럽게 씻기고 빨래하고 밥하고 하는 흐름이 생긴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하니, 얼마 앞서까지 해도 아이들을 씻기고 빨래하고 밥하는 동안 등허리가 몹시 결리면서 고단하네 했는데, 이제는 그냥저냥 신나게 한다. 얼마 앞서까지는 아무래도 좀 ‘바쁘게’ 씻기고 빨래를 했다면, 이제는 한결 차분하고 느긋하게 씻기고 빨래를 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을 해도 새로운 마음이 된다고 할까. 4348.12.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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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불러서 맡기기



  아침에 아이들을 씻긴 뒤 빨래를 한다. 해는 나지 않으나 비도 오지 않는다. 겨울에는 해가 안 날 적에 빨래 말리기가 쉽지 않지만 바람이 가볍게 흐르니 바람이 잘 말려 주리라 생각한다.


  빨래를 마치면서 밥을 끓여야 하기에 두 아이를 부른다. 큰아이가 옷가지를 안아서 마당으로 옮기고, 작은아이는 옷걸이를 챙겨 준다. 나는 이동안 부엌에서 냄비에 불을 넣는다.


  이제 두 아이는 작은 심부름을 할 만큼 잘 자랐고, 곧 이보다 조금 큰 심부름도 해 줄 수 있을 테지. 마당으로 나가서 빨래를 널고 들어온다. 밥냄비가 살살 끓는다. 달걀을 삶는 냄비는 불을 끈다. 이제 국만 끓이면 되네. 찬찬히 느긋하게 밥을 지어서 함께 먹자. 4348.12.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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