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샘님’하고 ‘선생님’ 사이



[물어봅니다]

  저기, 이런 걸 물어봐도 될는지 모르겠는데요, 저희는 ‘선생님’들을 ‘샘님’이라고 부르거든요. 어떻게 보면 학교에서 쓰는 은어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저희가 선생님들을 ‘샘’이나 ‘쌤’이나 ‘샘님’이나 ‘쌤님’이라 부르는 말씨는 나쁜 말이 아닌가요? 이런 말은 안 써야겠지요? 그렇지만 또 묻고 싶은데요, 이런 말은 나쁜 은어이니 안 쓰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이 말이 저희 입에서는 떨어지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해결책 좀 알려주셔요.


[이야기합니다]

  음, 무슨 말부터 하면 좋을까 생각해 봐야겠네요.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82∼1993년 사이를 떠올리면, 그때에는 ‘샘·샘님·쌤·쌤님’이란 말을 못 들었어요. 다만 저는 인천이란 고장에서 나고 자랐기에 못 들었을 수 있어요.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도 살아 보고, 또 여러 고장을 두루 다니다가 경상도 쪽에서 “샘이요”나 “샘님이요” 하는 말씨를 처음 들었어요. 전라도 쪽에서는 “슨상님”이라 하는 말씨를 들었지요.


  제가 나고 자라던 고장에서 듣거나 쓰는 말을 넘어, 여러 고장에서 저마다 다르게 쓰는 말씨를 들으며 무척 재미나고 새로웠어요. 인천이든 서울이든, 어느 고장 어느 학교에서든 고장말(사투리)도 같이 가르치면 참으로 재미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왜 그렇잖아요, 우리는 영어라는 외국말을 학교에서 배우고, 일본말이나 독일말이나 중국말이나 프랑스말이나 러시아말 같은 다른 외국말을 ‘제2외국어’란 이름으로 학교에서 배우기도 해요. 이렇게 배우는 여러 말 가운데 ‘서울 말씨가 아닌 전국 여러 말씨’도 ‘한국말 수업(국어 수업)’으로 배우면서, 여러 고장 다 다른 살림결을 헤아리는 길을 열면 좋겠구나 싶어요.


  자, 이 고장 저 고장 다 다르네 싶은 말씨 이야기를 들어 보았어요. 제가 왜 고장말 이야기를 들었느냐 하면, 경상도 이웃님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상냥상냥한 숨결을 담아서 “샘이요, 내 말 좀 들어 보이소” 하고 묻는 말씨가 대단히 보드라우면서 참하네 싶더군요. 이 말씨를 듣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샘’이든 ‘쌤’이든, ‘선생·선생님’을 줄여서 부르는 말씨로 볼 수도 있지만, ‘골짜기에서 비롯하는 맑은 샘물’을 가리키는 ‘샘’으로 생각해 보아도 즐겁고 재미나며 아름다운 우리말이 될 만하다고 볼 수도 있어요.


[숲노래 사전]

샘·샘님 : 숲이나 멧골에서 비롯하여 온누리를 시원하고 포근하게 적시는 물줄기처럼, 사람들을 슬기롭고 상냥하게 가르치면서 스스로 새롭게 배울 줄 아는 몸짓으로, 언제나 부드럽고 너그러운 품이 되어 즐거이 앞장서고 먼저 살림을 지어서 익힌 하루를, 차근차근 이야기로 들려주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


  한 해 내내 맑고 시원하면서 포근하게 솟아나는 물이 샘물입니다. 바다에서 아지랑이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는 구름으로 바뀐 뒤 비로 거듭나서 온누리를 촉촉히 적셔 푸나무에 스며들었다가 새롭게 흙 품에 안겨 고이 잠든 뒤에 서로 모여 땅밑을 흐르는 길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샘을 이루어 퐁퐁 솟아나요. 이러한 흐름으로 우리 터전을 감싸는 샘물이요, 냇물이며, 바닷물입니다. 모든 물줄기에서 첫자리가 되는 곳인 샘물이요, 모든 숨결이 자라나고 싹트고 퍼지는 첫길이 되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우리답게 비롯하는 빛이 ‘샘(샘물)’인 만큼, ‘샘’이라는 낱말 하나를 혀에 얹으면. ‘샘 + 님’ 곧 ‘샘님’이라 부르면, 서로 아낄 줄 알고, 서로 배울 줄 알며, 서로 앞장서서 새로운 기쁨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슬떨이가 된다는 뜻이니, 더없이 아름답고 빛나는 이름이로구나 싶습니다.


  ‘교사’나 ‘선생님’을 가리킬 새로운 이름으로 ‘샘님’을 쓸 만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새말을 지어도 새삼스러우면서 멋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어떤 나쁜 변말(은어)을 쓴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느 결에 새로우면서 고운 말씨를 문득 하나 지어서 쓴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단출히 ‘샘’이라 해도 좋아요. “박 샘”이나 “김 샘”이라 해도, “아름 샘님”이나 “보람 샘님”이라 해도 좋지요. 어린이나 푸름이인 학생이 어른인 선생님(교사)한테 수수하게 ‘샘’이라고만 불러도 좋다고 여겨요. ‘샘·샘님’은 모두 슬기롭고 상냥히 가르치는 어느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삼을 수 있거든요.


  생각을 새롭게 하면 좋겠어요. 말을 새롭게 사랑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우리는 나쁜 말도 좋은 말도 쓰지 않아요. 언제나 우리 고운 꿈과 슬기로운 사랑을 담아서 쓰는구나 싶어요. 그러니까요, 우리 모두 샘이 되면 어떨까요? 학생인 어린이하고 푸름이도, 선생님인 어른들도, 서로서로 가르치면서 배울 줄 아는 샘님이 되기로 하면 어떨까요? 아이들 곁에서 샘 같은 어른으로, 어른들 사이에서도 샘물 같은 지기로, 다같이 맑고 사랑스러운 샘이자 샘님으로 어우러지면 어떨까요? 이런 뜻으로 여러 고장말을 살몃살몃 섞어 노래꽃을 한 자락 지어 봅니다. 이 노래꽃을 즐기면서 새말 한 마디를 우리 눈빛으로 곱게 바라보아 준다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숲에서 4 샘님


저그짝에선 슨상님 슨상님 하는디

영 맴에 안 들어

조고짝초롬 샘님 샘님 하믄

참 착착 감겨들어


거 보이소

마을마다 어귀에

샘이 떠억하니 흐르잖소

골짝서 조르조르 맑게 솟잖소


앞에서 이끄니께

이슬을 걷어 주는 길잽이니께

뒤에서 받치니께

바위 되어 든든 버텨주니께


샘 같은 님이지예

샘물마냥 맑지예

샘빛으로 곱지예

샘님 샘님 참 좋잖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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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뜻풀이를 어떻게 손질하나요?



[물어봅니다]

  최종규 샘님이 쓴 몇 가지 사전을 읽었어요. 그런데 ‘샘님’이라 해도 되지요? 저희는 이런 말을 흔히 쓰거든요. 암튼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이라는, 이름이 좀 긴 사전 첫째 권을 읽는데, 우리 사전들이 참 형편없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런데 형편없거나 알맞지 않은 뜻풀이를 어떻게 그렇게 손질해 낼 수 있나요? 궁금해요.


[얘기합니다]

  제가 쓴 사전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사전은 아직 조그맣습니다. 올림말이나 알맹이를 더 담아도 좋지만, 자칫 책상맡에 모시기만 하고 안 읽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조그마한 사전으로 엮었어요. 그야말로 “읽는 사전”이 되도록 말이지요. 그리고 ‘샘님’이란 이름 좋습니다. 이 말 ‘샘님’을 놓고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쓸게요.


  자, 그러면 뜻풀이를 어떻게 손질하는지 몇 가지 낱말을 보기로 삼아서 이야기해 볼게요.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지만, 쉽고 부드러이 생각하면 쉽고 부드럽답니다. 손석춘 샘님이 쓴 책에 나오는 낱말 가운데 몇 가지 뜻풀이를 새로 붙여 본 적이 있어요. 어느 낱말을 어떻게 새 뜻풀이로 붙여 보았는지 옮길게요.


㉠ 바투

[숲노래 사전] 1. 둘·서로가 붙다시피 2. 때·날·길이가 아주 붙다시피

[국립국어원 사전] 1. 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 2. 시간이나 길이가 아주 짧게


  가깝거나 짧다고 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바투’예요. 그런데 국립국어원 사전 뜻풀이로는 “썩 가깝게”나 “아주 짧게”라고만 적어서 어떤 결인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바투’는 “바투 다가앉다”처럼 씁니다. 마치 서로 붙는구나 싶은 모습을 나타내요. 그러니 뜻풀이에 ‘서로 붙는다’는 느낌을 알 수 있도록 보태야 알맞습니다. 여러 사람이 붙듯이 있기도 할 테니 “둘·서로가 붙다시피”처럼 뜻풀이를 보태기도 합니다.


㉡ 슴벅이다

[숲노래 사전] 1. 눈을 감다가 뜨다가 하다 (‘깜빡이다’하고 비슷한데, ‘슴벅이다’는 눈꺼풀 움직임을 느낄 만하도록 눈을 감다가 뜬다면, ‘깜빡이다’는 눈꺼풀 움직임을 느낄 만하지 않도록 눈을 감다가 뜬다) 2. 눈이나 살을 속으로 찌르는 듯해서 좀 싫도록 견디기 어렵다

[국립국어원 사전] 1. 눈꺼풀이 움직이며 눈이 감겼다 떠졌다 하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 2. 눈이나 살 속이 찌르듯이 시근시근하다


  예전에는 ‘슴벅이다’를 ‘깜빡이다’ 못지않게 썼지만, 요새는 ‘슴벅이다’는 잘 안 써요. 이때에는 두 낱말 ‘슴벅이다·깜빡이다’가 어느 결에서 다른가를 함께 알도록 짚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슴벅이다’ 뜻풀이에 굳이 ‘깜빡이다’하고 결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태지요. 거꾸로 ‘깜빡이다’ 뜻풀이에도 이렇게 ‘슴벅이다’ 뜻풀이를 보태면 더 좋겠지요.


㉢더께

[숲노래 사전] 1. 오랫동안 내려앉거나 붙어서 단단하게 모이거나 보기에 안 좋은 것 2. 자꾸 쌓이거나 붙은 것. 겹으로 된 것

[국립국어원 사전] 1. 몹시 찌든 물건에 앉은 거친 때 2. 겹으로 쌓이거나 붙은 것. 또는 겹이 되게 덧붙은 것


  ‘때’랑 ‘더께’는 비슷하지만 달라요. 그런데 국립국어원 사전은 ‘더께’를 풀이하면서 ‘때’란 낱말을 끌어들여요. 이러면 뜻풀이가 엉킵니다. ‘더께·때’는 따로 풀이하고, 서로 풀이말에 안 써야 올발라요. 그리고 “거친 때”라고만 하면 더께라고 하는 것이 어떠한가를 잘 알기 어렵습니다. 낱낱이 풀어서 알려주어야겠어요.


㉣ 고갱이

[숲노래 사전] 1. 풀·나무에서 줄기 한가운데에 부드럽게 있는 것 2. 가운데나 복판이 될 만한 곳·자리·것. 또는 가운데나 복판이 될 만큼 뜻있거나 크거나 값있는 사람·살림·것·곳을 가리키는 말

[국립국어원 사전] 1. [식물] 풀이나 나무의 줄기 한가운데에 있는 연한 심 2. 사물의 중심이 되는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난날에는 누구나 푸나무를 가까이하며 살았기에 ‘고갱이’는 흔한 말이었고, 여느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빗대면서 썼어요. 이제는 서울살이로 몰리면서 푸나무를 가까이하는 분이 줄었기에, 이 낱말을 잘 알기 어려운 분이 많은 듯합니다. 이런 대목도 헤아려서 첫째 뜻풀이하고 둘째 뜻풀이를 찬찬히 살을 입히면 좋겠어요.


㉤ 골골샅샅

[숲노래 사전]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은 곳. 어느 한 곳도 빠지지 않게 (골골 + 샅샅. 골 = 멧골/고을. 온 멧골이나 온 고을을 하나하나 깊고 넓게 살피는 느낌을 담은 말씨)

[국립국어원 사전] 한 군데도 빠짐이 없는 모든 곳 = 방방곡곡


  ‘골골 + 샅샅’인 ‘골골샅샅’이에요. ‘골’은 멧골이나 고을을 나타내는 낱말이랍니다. 그러니까 “온 멧골이나 온 고을”을 “샅샅이” 어떻게 하는 모습이나 몸짓을 ‘골골샅샅’으로 가리키지요. 그런데 국립국어원 사전은 ‘군데’하고 ‘곳’이란 말을 앞뒤로 넣었어요. 이 대목도 다듬을 노릇입니다. 어느 곳도 “빠지지 않게” 한다는 바탕뜻을 살리면서 풀이말을 추스르면 좋아요. 묶음표에 보탬말을 넣어 보는데요, 이런 보탬말은 ‘골골샅샅’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말밑을 알려주는 셈이에요.


  다섯 낱말을 놓고 이야기해 보았어요. 어떻게 보면 좀 어렵지 않느냐고 여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누구나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이거나 마음을 쓴다면, 국립국어원 사전을 비롯해, 뜻풀이가 엉성한 사전을 우리 손으로 차근차근 바로잡거나 가다듬거나 손질하면서 알차게 가꿀 수 있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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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안구정화’나 ‘안구습기’는?



[물어봅니다] 

  이런 말을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새 ‘안구정화’나 ‘안습’ 같은 말을 다들 꽤 쓰잖아요? 저도 그냥 썼는데, 문득 이런 말도 더 좋은 말로 바꿀 수 있는지 궁금해요.


[이야기합니다] 

  어느 말을 쓰든지 우리 마음을 잘 나타내도록 찬찬히 골라서 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말을 찾기보다는 우리 마음을 잘 나타내면서, 이웃이나 동무하고 생각을 즐겁고 넓고 깊으면서 포근하고 상냥히 나눌 만한 말을 헤아리면 어떠할까 싶어요.


  저는 ‘안구정화’나 ‘안습(안구에 습기가 차다)’ 같은 말을 처음 들을 적에 “무슨 이런 말이 다 있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뜻이나 느낌을 바로 알았어요. 저는 이런 말씨는 안 쓰니, 이런 말씨를 둘레에서 쓰더라도 따라하지 않아요. 이른바 휩쓸리거나 휘말리지 않습니다. 둘레에서는 이런 말씨가 이웃님이나 동무 마음에 들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다른 말씨로 제 마음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나타내요.


 눈씻이·눈을 씻다 ← 안구정화


  먼저 ‘안구정화’를 살필게요. 이 말씨는 ‘안구 + 정화’일 테고, “눈을 + 깨끗이 한다”를 가리키는구나 싶어요. 말 그대로 “눈을 씻다”라 하면 되고, 단출히 ‘눈씻이’란 말을 새로 지어서 쓸 만해요.


  가만히 생각하면 “눈을 씻어 주네” 같은 말씨를 꽤 많은 분이 씁니다. 이 말씨 못지않게 오래오래 쓰던 말씨가 있으니 ‘호강’이에요. “호강을 시켜 주다” 같은 꼴로 으레 쓰는데요, 이때에는 ‘효도’나 ‘호위호식’ 같은 한자말 쓰임새를 담아내기도 하지요.


  눈호강·눈을 틔우다·눈이 트이다·눈이 맑아지다 ← 안구정화


  매우 보기 좋은 모습을 볼 적에 ‘눈호강’을 했다고들 합니다. 다만 ‘눈호강’은 아직 사전에 안 실렸더군요. 참으로 오랜 옛날부터 쓰던 말씨인데 말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눈호강’을 바탕으로 새로운 말을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어요. 이를테면 맛난 밥을 먹기에 ‘입호강’을 하고, 아름다운 노래나 목소리를 듣기에 ‘귀호강’을 합니다. 즐거운 길을 걸으면 ‘발호강’을 하고, 신나는 일이나 놀이라면 ‘손호강’을 할 테지요.


 슬프다·구슬프다·눈물겹다·눈물나다·눈물을 흘리다 ← 안습·안구에 습기가 차다


  다음으로 ‘안습’을 생각할게요. 눈이 물로 젖는다면 어떤 모습이나 일일까요? 바로 ‘눈물’이겠지요. ‘눈물겹다’나 ‘눈물나다’라 하면 됩니다. “눈물을 흘리다”나 “눈물이 흐르다”라 해도 되고요. 우리 눈에는 언제 눈물이 날까요? 우리는 언제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를까요?


  바로 ‘슬플’ 때입니다. 그러니 ‘슬프다·슬픔’이라 하면 되고, 비슷하면서 다른 ‘구슬프다·구슬픔’이라 할 수 있어요. 다만 ‘슬프다’나 ‘구슬프다’라는 낱말로만 이야기하기에는 아쉽구나 싶으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다”나 “눈에서 비가 내린다”라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눈물꽃’ 같은 말을 쓸 만해요. ‘눈물바람’이나 ‘눈물구름’이라 해도 어울려요. “눈물이 소나기처럼 흐르다”라든지 ‘함박눈물’ 같은 말도 쓸 수 있겠지요.


  자, 우리는 또 어떤 말을 새로 엮어서 쓸 만할까요? 우리는 눈물이 나거나 흐르는 모습을 어떤 이야기로 꾸며 볼 만할까요? 슬픈 모습을 얼마나 새로운 마음으로 조곤조곤 짜거나 꾸려서 나타낼 만할까요?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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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그녀



[물어봅니다]

  ‘그녀’는 일본 말씨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왜 이런 말씨가 안 사라질까요? 좀 구체적인 보기를 들면서 ‘그녀’를 안 쓸 수 있는 길을 더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물으신 말씀처럼 좀 낱낱이 짚어야 알아볼 만하지 싶어요. 요새는 어린이책에까지 ‘그녀’를 쓰는 분이 많은데요, 여러 가지 책에서 뽑은 보기를 죽 들면서, 어떻게 풀어내거나 담아내거나 녹여낼 만한가를 밝히겠습니다.


하지만 평화에 대한 그녀의 간절한 외침은 이뤄지지 못했어요

→ 그러나 평화를 그토록 바란 그 외침은 이뤄지지 못했어요

→ 그런데 평화를 애타게 바란 그분 외침은 이뤄지지 못했어요


  수수하게 “그 외침”이나 “그분 외침”처럼 쓸 수 있어요. 또는 그분 이름을 들면서 다듬어도 좋아요. 이 대목에서는 더 생각해 보면 좋겠는데요, 남자 어른한테는 으레 ‘그분’이란 말을 쓰는데 여자 어른한테는 뜻밖에 ‘그분’이란 말을 잘 안 쓰고 ‘그녀’라 하는 분이 많더군요. 일본 말씨를 가다듬는 길 못지않게 남녀평등이란 대목도 살피면 좋겠어요.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가운

→ 간호사가 입던 하얀 옷

→ 그 사람이 입은 하얀 옷

→ 그분이 입은 하얀 옷

→ 그님이 입은 하얀 옷


  여기에서는 ‘간호사’가 어울려요. 또는 “그 사람”이라 하면 되고, 이름을 밝혀도 되지요. 그리고 ‘그분’을 쓸 수 있는데, ‘그님’이라 해도 어울려요.


그녀들을 다스리는 일에

→ 암탉을 다스리는 일에

그들에게 날 도와 달라고

→ 암탉한테 날 도와 달라고


  암탉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그녀’를 쓴 분이 있더군요. 암탉은 그냥 ‘암탉’이라 하면 되지요.


그곳에서 그녀를 보고

→ 그곳에서 시앵을 보고

→ 그곳에서 아기 엄마를 보고


  여기에서는 “아기 엄마”라 하면 된답니다. 아기 엄마이니 “아기 엄마”라 하면 되어요.


그녀의 이마에

→ 할머니 이마에

→ 그분 이마에


  할머니는 할머니랍니다. ‘할머니’라 하면 되어요. 또는 ‘그분’이라 하면 되지요.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그녀

→ 온누리 아픔을 어루만지는 동생

→ 온누리 아픔을 어루만지는 아이


  동생을, 또는 아이를 가리킬 자리에 ‘동생’이나 ‘아이’라 하지 않고 ‘그녀’라 한 대목이에요. 자, 우리 곁에 있는 그대로 ‘동생’이나 ‘아이’라 하면 될 테지요?


  한국말에서는 ‘그’를 수수하게 쓰면 됩니다. 다음으로 ‘그이·그분·그님’이나 “그 사람”을 알맞게 살펴서 쓰면 되어요. 또는 이름을 밝히면 되고, 암탉인지 암소인지 암고양이인가를 헤아려서 쓰면 됩니다.


  ‘그녀’는 ‘피녀(彼女)’라는 일본 말씨입니다. ‘피녀’란 일본 말씨는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 군홧발에 깜짝 놀란 뒤에 서양 제국주의를 뒤쫓으려 하면서 서양 말씨 흉내를 내다가 지은 말씨예요. 일본에도 예전에는 ‘she’를 가리키는 말씨는 딱히 없었지만, 서양 흉내를 낸 말씨랍니다. 우리는 남 흉내를 낼 까닭이 없어요. 이웃한테서 배우며 우리 나름대로 새 말씨를 가꾸면 좋아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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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로하스’를 우리말로



[물어봅니다]

  저는 친환경이나 생태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로하스 모임도 하는데요, ‘로하스’라는 영어를 우리말로 풀어낼 수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어른도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어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가면 좋아요. 어린이하고 푸름이도 스스로 푸른들이며 파란하늘 같은 마음으로 우리 터전을 한결 아름답고 사랑스레 가꾸면서 활짝 웃는 길을 가면 좋고요. 이러한 길에 마음이 있다고 하니 반갑습니다.


  저는 몇 해 앞서 ‘로하스(LOHAS)’란 말을 처음 들었어요. 이 낱말은‘로하스’는 2000년에 태어난 영어이고,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를 줄인 이름이라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다짐을 찬찬히 풀어서 적은 뒤, 이 다짐을 손쉽게 말할 만하도록 ‘L.O.H.A.S.’, 이렇게 앞머리를 따서 이름을 엮었구나 싶어요.


  저한테 물어보셨듯이, 이 ‘로하스’는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영어를 알맞게 줄여서 엮은 이름입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스스럼없이 쓸 테고, 뜻도 쉽게 와닿을 만해요. 그러나 한국에서라면 한국말로 먼저 다짐을 찬찬히 적어 보고서, 이를 알맞게 줄여서 새롭게 이름을 엮으면 되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다음처럼 생각해 볼 만해요. “튼튼하게 오래오래 나아가는 삶”처럼 다짐을 한다면 ‘튼오나삶’이 되어요. “한결같이 즐겁게 가꾸는 삶”처럼 다짐을 한다면 ‘한즐가삶’이 되고요.


  줄여서 말할 적에 한결 듣기에 좋겠구나 싶도록 낱말을 엮어 보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는 저마다 다르면서 저마다 새롭고 재미난 이름을 줄줄이 얻을 수 있습니다.


  또는 단출하게 새이름을 지을 수 있어요. 저는 ‘로하스’란 이름을 놓고서 ‘참살림·참짓기’나 ‘푸른길·푸른삶·푸른살림·푸른짓기’ 같은 이름을 지어 보겠습니다. 낱말에 뜻이 드러나는 그대로, 참답게 살림을 가꾼다면 ‘참살림’이라 하면 되어요. 푸르게 오래도록 삶을 짓는 길이라면 ‘푸른길’이라 하면 되지요. 참다이 짓거나 푸르게 짓는다는 다짐으로 ‘참짓기·푸른짓기’라 할 수 있어요.


  푸른 벗님이 몸을 담은 모임에서는 그 모임에서 쓸 이름 하나를 즐겁게 지으면 됩니다. 다른 분들은 다른 모임에서 다른 이름을 즐겁게 지으면 되어요. 로하스 모임을 한다고 해서, 모든 로하스 모임에서 똑같은 이름을 쓸 까닭은 없어요. 이곳에서는 “푸른길 모임”이라 하고, 저곳에서는 “푸른꽃 모임”이라 하고, 이쪽에서는 “참살길 모임”이라 하고, 저쪽에서는 “푸른삶 모임”이라 할 수 있어요.


  푸르며 아름답고 즐거운 살림길을 바라는 모임이라면, 모임에 붙이는 이름도 푸르도록 수수한, 아름답도록 수수한, 즐겁도록 수수한, 이러면서 말 한 마디도 푸르고 곱게 피어나도록 생각을 여밀 만합니다.


  꼭 어느 한 가지 이름만 써야 하지 않기에 여러모로 이름짓기를 이야기해 봅니다. 어느 모임이든, 여러 이름을 즐겁게 두루 쓸 수 있어요. 길게 붙인 이름 하나에, 앞머리를 딴 이름 둘에, 단출히 간추린 이름 셋에, 또 저마다 귀엽거나 상냥하게 가리키는 이름 넷에, 마음껏 이름짓기를 펼쳐 보셔요.


  이름이란, 우리가 사랑으로 부르고 싶은 말입니다. 이름이란, 우리가 아름답게 꿈꾸고 싶은 말입니다. 이름이란, 나를 비롯한 이웃이 새롭게 바라보고 느껴서 즐겁게 어우러지는 길을 찾고 싶은 말입니다. 이름이란, 작은 말 몇 마디를 씨앗으로 삼아서 온누리에 푸르게 피어나는 꽃이 흐드러지기를 바라는 사랑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국말이라고 하는 씨앗 한 톨을 마음에, 혀에, 귀에, 눈에, 글씨로나 소리로나 상냥히 가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튼튼하게 오래오래, 즐겁게 한결같이, 알뜰살뜰 아름답게, 오순도순 두고두고, 사랑으로 살림짓기, 살림짓는 사랑손길, 노래하는 살림길, 웃음짓는 살림꽃길, 푸른꽃길, 푸른꽃살림, 푸른꽃모임, 푸른꽃노래, 푸른꽃밭, 푸른꽃마을, 푸른꽃누리, 푸른꽃나라, 푸른꽃바다, 푸른꽃바람, 푸른꽃나무, 푸른꽃구름, 푸른꽃하늘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름은 줄줄이 태어날 만합니다. 어떤 이름을 살펴서 쓰든, 푸르게 반짝이는 별빛을 가슴에 담아서 환하게 노래하시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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