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책꿈 키우기
48. 여행길에 챙기는 책


  전남 고흥에서 서울을 오가자면 시외버스로 네 시간 사십 분을 달려야 합니다. 시외버스 일꾼이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싱싱 달리면 네 시간 이십 분 만에 닿기도 합니다. 강진이나 해남이나 장흥이나 통영이나 완도 같은 곳에서도 서울로 가자면 참 오래 걸려요. 시외버스 가운데에는 완도에서 부산을 오가는 길이 있는데, 이 버스길은 자그마치 여덟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나들잇길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면 즐거울까 헤아려 봅니다. 워낙 먼길이니 눈을 감고 쿨쿨 자면 될까요. 귀를 틀어막고는 노래를 들으면 될까요. 혼자 떠나는 길이 아니라면,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네 시간 남짓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쉽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그런데, 고흥 같은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서울로 나들이를 다녀오자면, 가는 데와 오는 데에 열 시간 가까이 걸려요. 버스 타는 곳까지 가는 겨를을 살피고, 버스가 떠나기까지 기다리는 겨를을 살피며, 시골 읍내에서 버스를 내린 뒤 마을까지 다시 들어가는 겨를을 살피면, 하루를 꼬박 시외버스에서 보내는 셈입니다.

  우리는 하루 내내 멍하니 지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내내 아무것을 안 하면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 가운데 두 시간쯤 들여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꿈을 품을 수 있어요. 하루 가운데 두 시간쯤 쏟아 텃밭을 가꾸거나 꽃이나 나무를 가만히 지켜볼 수 있어요. 하루 가운데 두 시간쯤 바쳐 숲길을 거닐 수 있어요. 하루 가운데 두 시간쯤 기울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린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시외버스를 이틀에 걸쳐 열 시간 가까이 달려야 하면, 가방 가득 여러 가지를 챙깁니다. 시골에서 벗어나 서울로 가는 동안 읽을 책 세 권, 서울에서 볼일을 마치고 시골로 돌아오는 동안 읽을 책 세 권, 이렇게 적어도 여섯 권을 챙깁니다. 시외버스에서 글을 쓰려고 작은 노트북을 챙깁니다. 그리고 작은 공책 몇 권을 챙겨요.

  처음에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깁니다. 바깥마실을 가는 길에 어떤 일을 하면 하루가 기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천천히 그립니다. 이러고 나서 책을 한 권 읽습니다. 시외버스는 덜덜 떨리고 바퀴 구르는 소리가 제법 크지만, 내가 사랑할 만한 아름다운 책을 손에 쥐고 들여다보면, 모든 빛과 소리를 잊습니다. 책에 깃든 이야기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오직 책만 들여다봐요.

  책을 한 권 다 읽으면 살며시 덮습니다. 공책을 펼쳐요. 아침부터 이때까지 떠오른 생각과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책을 읽다가 든 생각도 적고, 시외버스를 타면서 본 여러 가지 모습도 적어 봅니다. 이러고 나서 작은 노트북을 꺼내어 글을 씁니다. 책을 읽은 느낌을 쓰기도 하고, 시골과 서울이 서로 어떻게 다른 터전인가를 헤아리면서 글을 쓰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한국말사전을 쓰는 일이기에, 한국말을 알맞고 바르며 곱게 살리는 길을 곰곰이 쓰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아침에 본 들꽃 이야기를 쓰기도 하며, 철마다 달라지는 날씨와 하늘빛과 들내음 이야기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글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얼마 앞서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커피우유와 소보로빵》(푸른숲주니어 펴냄,2006)이라는 책을 챙겨서 읽었습니다. 카롤린 필립스라는 분이 쓴 청소년문학입니다. 이 책은, 독일에 있는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다룹니다. 독일 사회는 처음에 ‘일할 사람이 모자라’다며 이주노동자를 많이 받아들였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독일사람은 일자리를 좀처럼 얻지 못하고 이주노동자가 독일 사회 곳곳을 차지한다면서, 독일사람 스스로 예전과 다르게 ‘이주노동자를 다른 눈길로 보면서 푸대접하는 얼거리’를 건드립니다.

  한국에도 이주노동자가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지는 통계로 잡히지 않습니다. 어쩌면 백만이 넘을는지 모릅니다.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저마다 곳곳에서 일자리를 얻어 바지런히 일합니다.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일요일은 거의 못 쉬고, ‘하루 여덟 시간 노동’이 아니라 ‘하루 열네 시간 노동’까지 하기 일쑤입니다. 쉬는 날도 거의 없이 아주 오래 일하는데, 이주노동자가 받는 일삯은 한국노동자하고 견주면 턱없이 적습니다.

  한국 사회를 보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여러모로 말썽이 생겨요. 똑같은 일을 똑같이 하더라도 정규직 노동자가 더 많이 받습니다. 게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보험 혜택을 못 받거나 상여금이 없거나 휴가조차 없곤 합니다. 노동자 모습만 바라본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이런 세 가지 계급이 있다고 할 만해요.

  《커피우유와 소보로빵》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 가운데 하나는 살결이 까무잡잡하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학교나 마을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손가락질을 받으면, 제 살빛을 징그러이 여깁니다. 제 살갗을 화장품이나 물감으로 하얗게 발라 보곤 합니다. 그러고는 속으로, “샘에게 피부 색깔만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전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문제였다. 독일사람들 중에는 피부색을 진한 갈색으로 바꾸기 위해, 한여름에 햇볕에 나가 그을리려고 안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83쪽).” 하고 생각해요.

  독일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와 똑같아요. 한국사람도 한여름에 살결을 까무잡잡하게 태우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결이 까무잡잡한 사람’을 보면 ‘깜둥이’라 하면서 놀려요. 어느 한쪽에서는 살결을 까무잡잡하게 태울 때에 ‘튼튼하고 보기 좋다’ 하지만, 어느 한쪽에서는 살결이 처음부터 까무잡잡한 사람을 낮잡거나 얕잡습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가 어느 날 살갗을 하얗게 발랐을 때, 이 아이 어머니는 아이더러,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알았어? 네 피부는 죽을 때까지 갈색이야. 그리고 난 내 아들의 피부가 희어지는 것 싫어! 지금 이대로가 좋아. 정말로 중요한 건 여기, 그리고 이쪽에 뭐가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이야(86쪽)!” 하고 외칩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 머리와 가슴을 쿡쿡 찔렀대요. 살빛을 보지 말고 머리와 가슴을 보라는 뜻입니다. 겉모습을 꾸미려 애쓰지 말고, 머릿속을 살찌우고 가슴에 사랑과 꿈을 담으라는 뜻입니다.

  우리한테는 눈이 있어서 무엇이든 바라봅니다. 눈은 이것을 보고 저것을 봅니다. 그러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을 어떻게 느끼는가요. 이것은 아름답습니까? 저것은 밉살맞습니까? 이것은 멋집니까? 저것은 추레합니까? 아름답거나 밉살맞다는 잣대는 무엇입니까? 멋지거나 추레하다는 틀은 무엇입니까?

  시골을 둘러보면,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살짝 허름하다 싶은 옷을 입습니다. 양복을 빼입거나 까만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서 신은 뒤 논이나 밭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하얀 수건을 목에 두르며 일하는 사람은 있지만, 까만 안경을 쓰고 머플러를 날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논밭에 맨발로 들어가는 사람은 있지만, 뾰족구두를 신고 논밭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살짝 허름하다 싶은 차림에 밀짚모자를 쓰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까만 양복에 까만 구두에 까만 안경을 쓰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운전수를 두고는 까만 자가용을 타고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어떤 사람은 시외버스로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로 일반국도를 달립니다. 어떤 사람은 두 다리로 시골길을 걷습니다. 네 가지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네 가지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낄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이 네 가지 모습 가운데 어느 쪽 길을 걷고 싶어하는지 궁금합니다.

  두 다리로 시골길을 걷는 사람은 가장 느리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가장 느리다고 할 만한 사람은 들내음을 맡고 숲빛을 바라보며 하늘바람을 실컷 들이마십니다. 새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다가, 저도 모르게 스스로 노래를 불러요. 나무그늘이 좋으면 풀밭에 앉아서 도시락을 꺼냅니다. 들꽃 한 포기를 쓰다듬고, 나무 한 그루를 가만히 어루만집니다.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온몸으로 이 땅을 밟고 느끼면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온마음 가득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려는 사람이라면, 이 땅을 두 다리로 걷는 사람입니다. 마음속에서 이야기 한 자락이 싱그럽게 솟아날 수 있어야 새로운 생각을 지어서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노래를 지어서 부르든 춤을 추든 할 수 있어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철도로 빠르게 달린 뒤, 부산 바닷가 어느 저잣거리에서 회 한 접시를 술 한잔 곁들여 먹고는 다시 서울로 고속철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일도 ‘여행’이라면 여행입니다. 그러면, 이런 여행길에서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겪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사나흘에 걸쳐 자전거로 달린 사람이라면, 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외버스로 천천히 여러 고을을 거쳐 찾아간 사람이라면, 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포 즈음 들여 천천히 모든 마을을 두루 돌며 찾아간 사람이라면, 이들은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요?

  가장 느리다는 사람이 가장 길고 깊으며 너른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가장 더디다는 사람이 가장 맑고 밝으며 살가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밥짓기를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어요. 가게에서 쌀을 사다가 전기밭솥에 안칠 적하고, 전화를 걸어 밥 한 그릇 시킬 적하고, 손수 논을 일구어 나락을 거둔 뒤 벼를 손수 절구로 빻고 키로 까부르고 조리로 일고 나무까지 해서 아궁이에 불을 붙여 천천히 밥을 지을 적하고, 느낌과 이야기와 삶과 생각은 모두 다릅니다.

  마실길에 책을 몇 권 챙기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삶을 이루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삶을 가꾸는 이야기를 그리며, 삶을 사랑으로 채우는 이야기를 가만히 보듬습니다. 4347.9.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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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도화면에 있는 도화고등학교 책 동아리 청소년한테 들려줄 이야기로 쓴 글입니다. 시골 청소년들이 기운을 내면서 즐겁게 삶을 짓는 길을 익힐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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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책꿈 키우기
47.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하고 스스로 묻기 앞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생각해 봅니다. ‘어떤 밥을 먹어야 하나?’와 ‘어떤 꿈을 꾸어야 하나?’와 ‘어떤 사랑을 해야 하나?’를 스스로 물어 봅니다. 이런 물음에 스스로 대꾸를 할 수 있을 때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같은 물음을 풀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재미없게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재미있게 살아야 할까요? 재미있게 살아야겠지요. 안 즐겁게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즐겁게 살아야 할까요? 즐겁게 살아야겠지요. 사랑 없이 따분히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사랑스럽게 웃으며 살아야 할까요? 사랑스럽게 웃으며 살아야겠지요.

  맛없는 밥을 먹어야 할까요, 아니면 맛있는 밥을 먹어야 할까요? 맛있는 밥을 먹어야겠지요. 몸에 나쁜 밥을 먹어야 할까요, 아니면 몸에 좋은 밥을 먹어야 할까요? 몸에 좋은 밥을 먹어야겠지요.

  옷을 놓고 한번 생각해 봅니다. 비싼 옷을 입어야 할까요, 값싼 옷을 입어야 할까요? 이렇게 묻는다면 대꾸할 말을 섣불리 못 찾으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옷을 입을 때에는 옷값이 대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옷’과 ‘나쁜 옷’이라고 할 적에도 헷갈리지요. 무엇이 좋은 옷이고 무엇이 나쁜 옷인지 어떻게 가르겠어요. 옷을 입을 때에는,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습니다. 입어서 아늑하거나 즐거운 옷을 입습니다. 값이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아요.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착한 사랑을 해야겠지요. 따스하면서 아늑한 사랑을 해야겠지요. 넉넉하면서 참다운 사랑을 해야겠지요. 꿈도 사랑과 같습니다. 삶도 사랑과 같습니다. 누구나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착한 길로 나아갈 때에 활짝 웃으면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오자와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가운데 《은빛 숟가락》이 있습니다. 2014년 8월까지 한국에서는 6권이 나왔고, 일본에서는 10권까지 나왔습니다. 책이름이 ‘은빛 숟가락’인데, 은수저라면 은빛이 돌 테고, 은으로 만든 수저가 아니어도, 은수저를 선물하는 마음이라면 은빛이 됩니다. 아끼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담는 은빛이라고 할 만합니다. 튼튼하게 자라고 씩씩하게 크라는 마음을 물려주려는 은빛이라고 할 만해요.

  《은빛 숟가락》 1권 96쪽에서 “아마, 동생들의 ‘맛있는 표정’에 빠져든 것이 내가 요리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겠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어머니와 동생 둘이 있는 주인공 사내는 고등학생입니다. 고등학생 가운데 수험생인 3학년입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만 큰병을 앓고 병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수험생인 고등학교 3학년 사내 아이가 집일을 도맡고 동생들 밥차림도 도맡습니다. 이때 이 사내 아이는 마음속으로 생각해요. 무엇을 차리든 동생들은 늘 맛있게 먹습니다. 어머니가 마련한 ‘손으로 쓴 요리 공책’을 옆에 놓고 밥을 차리기는 했지만, 동생들은 다 같이 모여 앉아서 먹는 밥을 아주 즐거워 해요. 그러면,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으로서 동생들 밥차림을 도맡을 만한 ‘한국 사회 푸름이’는 있을까 궁금합니다. 골을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고 즐겁게 집일을 하면서 밥을 차릴 ‘한국 사회 남자 고등학생’은 몇이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2권 123∼124쪽에서는 “맛있는 이유는 알고 있어. 리츠 형 자리에 리츠 형이 앉아 있고, 엄마 자리에 엄마가 앉아서 가족이 다 함께 먹기 때문이야.”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렇지요. 라면 한 그릇을 먹더라도 함께 마주보고 앉아서 먹을 때에 맛있습니다. 빵 한 조각도 서로 나누어서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먹을 때에 맛있습니다. 비싼 밥을 먹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밥을 먹으면 돼요. 이름난 밥집에 찾아가서 사다 먹어야 맛있지 않아요.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먹으면 맛있지요. 이때에는 즐거운 느낌에다가 따스한 기운이 감돌아요.

  3권 123쪽에서 “응, 그리고 바질도 키워. 작은 화분이지만 매일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쑥쑥 자라. 근데 요즘 푸른 차조기잎만 벌레가 먹네. 우리 집 벌레는 일식(일본 요리)을 좋아하나 봐.”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집에서 손수 밥을 짓는 사람은 조그맣게 텃밭을 가꾸고 싶습니다. 가게에서 사다가 쓰는 푸성귀도 나쁘지 않지만, 작은 꽃그릇에 키워서 그때그때 따서 쓰는 푸성귀야말로 가장 싱싱하고 싱그러우면서 맛난 줄 알거든요.

  4권 157쪽에서 “나중에 리츠는, 그때까지 여러 번 밥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으면서, 같이 밥을 먹는 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밖에서 다 같이 먹는 밥은 대부분 맛있지만, 거기서 가지런히 손을 모아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한 유코를 보고 가슴 설레었다고 말했다.”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한 마디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잘 먹었습니다’ 한 마디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새롭게 되새깁니다. 밥을 차린 사람 가슴속으로 따뜻한 무엇이 타고 오릅니다. 밥을 차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봅니다. 우리는 서로 아끼고 보살피려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갑니다. 맛있는 떡은 서로 먹으라고 건네려는 마음으로 함께 살지요.

  5권 24∼25쪽에서 “그때는 가다랑어포밥 만드는 법도 몰라서 그 애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지. 그로부터 항상 난 그 애가 했던 그 말에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밥 한 그릇으로 마음을 달랩니다. 밥 한 그릇에서 사랑이 싹틉니다. 밥 한 그릇에서 꿈이 자라고, 밥 한 그릇으로 어깨동무를 해요.

  그나저나, 나는 아름다운 만화책에서 읽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찬찬히 옮겨적습니다. 아름다운 책이면 모두 아름다운 책입니다. 만화책이라서 덜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글만 있는 인문책이기에 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빚거나 사진을 찍거나, 이야기를 엮는 사람들 마음속에 따스한 숨결이 흐를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책이 태어날 수 있어요. 따사로운 숨결로 즐겁게 빚은 이야기가 감도는 만화책이니, 이 만화책을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언제나 싱그럽게 즐겁습니다.

  6권 154쪽에서 “도어체인 사이로 겨우 들여다본 실내는 정리돼 있어 청결해 보였다. 하지만 루카의 머리는 멋대로 자라 있었고, 옷은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그래도, 딱 하나뿐인 아이스크림을 나눠 주려 한 동생을, 난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은 6권째에 아주 큰 고빗사위가 흐릅니다. 주인공인 사내 아이한테 ‘키운 어머니’와 ‘낳은 어머니’가 따로 있다고 해요. 주인공인 사내 아이는 그동안 ‘키운 어머니’가 ‘한 분뿐인 어머니’로만 알았지만, ‘낳은 어머니’가 있는 줄 나중에 알았고, 저를 낳은 어머니가 어떤 삶과 사랑과 꿈인지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낳은 어머니’를 찾아갔더니, 이분은 집에 없고 다섯 살짜리 아이가 집을 지킵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는 더벅머리에 큼지막한 옷을 입었고, 어머니가 밥을 챙겨 주지 않아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로 하루치 끼니를 때운다고 해요. ‘낳은 어머니’를 만나러 갔던 주인공 사내는 ‘틀림없이 친동생’이로구나 싶은 다섯 살짜리 아이를 바라보다가 눈물을 짓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눈물을 씻어요. 가방에 있던 도시락을 건넵니다. 그러고는, 이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도시락을 새롭게 싸서 ‘낳은 어머니’가 아닌 ‘낳은 어머니가 낳은 동생’을 보러 찾아갑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나는 늘 생각합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은 굳이 안 합니다. 내가 품는 생각은 늘 한 가지입니다. 내 오늘 하루를 사랑스럽게 누리면서 아름다운 삶으로 가꾸자,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읽으려 하는 책은 오늘 하루를 사랑스럽게 누리는 길에 동무가 되는 책입니다. 아름다운 삶을 스스로 가꾸는 길에 이웃이 되는 책을 살핍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을 찬찬히 되읽으면서 삶과 사랑과 꿈과 사람을 새롭게 헤아려 봅니다. 4347.9.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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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책꿈 키우기
46. 어버이가 물려주는 책 (삶책, 집안책, 가문책)


  러시아 타이가 깊은 숲에 ‘아나스타시아’라는 사람이 산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블라지미르 메그레’라는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메그레라는 사람은 러시아 도시에서 살고, 아나스타시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음속에 새긴 뒤 차근차근 갈무리해서 책으로 씁니다. 2014년 5월까지 모두 여덟 권이 한국말로 나왔는데, 여덟 권에 붙은 이름을 살피면 ‘새 문명(8권)’, ‘삶의 에너지(7권)’, ‘가문의 책(6권)’, ‘우리는 누구?(5권)’, ‘함께 짓기(4권)’, ‘사랑의 공간(3권)’ 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8권을 읽어 봅니다. 22쪽에 “재앙은 피할 수 없어요. 그 원인은, 사람들에게 옳지 못한 해결방안을 강요하는 누군가의 고인적인 생각이에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35쪽에 “봄이 되어 먼 나라로부터 새들이 숲, 고향 벌판으로 날아올 때면, 사람들이 새들을 보고 기뻐해요. 그 복된 기쁜 에너지 덕에 여러 가지 질병이 사람들로부터 떠나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오늘날 한국에서 들려주거나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옳지 못한 길을 알려주면 엉망진창인 일이 터지기 마련이에요. 아주 마땅합니다.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를 바라보는 사람은 참말 아름다운 마음이 돼요.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을 맑게 다스립니다. 아무리 모질거나 못된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멧새가 사랑스레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 그만 부드러우면서 따사로운 마음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는 새마을운동 때부터 제비집을 함부로 허뭅니다. 옛이야기 흥부전에도 나오듯이, 제비집을 함부로 헐지 말라 했어요. 제비가 집을 지으면 제비를 잘 돌보고 아낄 뿐 아니라, 늘 제비집을 올려다보면서 새끼 제비와 어미 제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라 했어요. 제비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다시 찾아올 때에 물어 나르는 ‘복 씨앗’이란 바로 노래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하늘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날갯짓입니다.

  농약을 함부로 써서 멧새를 죽인 일, 농기계를 지나치게 많이 쓰면서 논에 살던 뜸부기를 몽땅 죽여 없앤 일, 예부터 한겨레뿐 아니라 이웃 여러 나라에 아름다운 꿈을 불러일으킨 까치가 푸대접받도록 내몬 일은 모두 우리한테 슬픔입니다. 까치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 반가운 사람이 온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데, 참말 새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겨레는 먼먼 옛날부터 즐거운 웃음꽃을 피웠는데, 이제는 새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총을 쏘아서 죽이려 합니다. 콩알을 쫀다고, 열매를 파먹는다고, 아주 새를 미워합니다.

  새는 왜 콩알을 쪼거나 열매를 파먹을까요? 새가 배를 채울 먹이인 벌레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벌레는 왜 사라졌을까요? 사람들이 농약을 아주 끔찍하도록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새는 예부터 사람들 논밭 둘레에서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사람을 도왔습니다. 한집 이웃인 새였습니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맑고 낭창낭창 아름다운 노래를 베풀었어요.

  《새 문명》이라는 책 42쪽에 “철창 속에서 몇 년을 보낸 서커스 짐승들은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다. 그들은 완전히 사람한테 의존한다.” 같은 이야기가 흐르고, 59쪽에 “다시 환생하는 다른 방법도 있지만, 자신 내부에 정보를 남길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적어요. 바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지만, 삶을 공부하고 모든 걸 터득해야 해요. 그렇지만 현세를 과거와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요. 때문에, 사람들 내부에는 삶의 지식이 없고, 하느님을 체감할 수 있는 느낌이 없어 자신의 삶에서 혼돈을 겪는 것이에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철창에 갇힌 서커스 짐승뿐 아니라 동물원에 갇힌 짐승은 스스로 먹이를 찾을 줄 모릅니다. 그러면, 짐승만 이러할까 궁금합니다. 우리들 사람은 어떠한가요?

  제비집에서 깨어난 새끼들을 보면,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날갯짓을 하도록 돕지 않습니다.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합니다. 날갯짓을 하지 않으면 어미 제비는 한참 기다리다가 떠나요. 새끼 제비가 혼자 둥지에 남아도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집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서 해마다 이 모습을 봅니다. 올해에는 마지막 어린 새끼가 이틀 동안 아주 외롭게 혼자 있었어요.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되는 날, 드디어 어린 마지막 새끼 제비도 겨우 둥지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고는 서툰 날갯짓을 했고, 이때 어디에선가 어미 제비가 빠르게 날아와서 새끼 제비를 데리고 다른 형제 제비가 있는 곳으로 이끌더군요. 그러니까,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스스로 날갯짓을 할 때까지 어디엔가 조용히 숨어서 끝까지 기다렸어요.

  사람도 이와 같아요. 어버이는 아이를 언제까지나 싸고 돌 수 없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도록 이끕니다. 이를테면, 열여섯 살쯤 되면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을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빨래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하고, 비질이나 걸레질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겠지요. 들에서 나물을 스스로 뜯을 줄 알아야 할 테며, 제법 먼길도 혼자 심부름을 다녀올 줄 알아야 할 테지요.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은 어떻게 읽거나 느껴야 할까요. 우리는 왜 우리 마음속은 안 읽거나 못 읽을까요.

  가만히 살피면,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는 하지만, 어른이 되기까지 살아오며 그러모은 슬기로운 넋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자가용을 몰아 아이들을 태우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이 땅을 찬찬히 밟으면서 누릴 놀이나 일을 물려주지는 못합니다. 훌륭하다는 책을 많이 사서 아이한테 읽히기는 하지만, 정작 어른 스스로 ‘내 이야기’를 ‘내 삶을 밝히는 모든 지식과 이야기’로 엮어서 아이한테 물려주는 분은 몹시 드뭅니다.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가운데 6권은 책이름이 ‘가문의 책’입니다. 그러니까, 러시아 타이가 깊은 숲에서 사는 사람은 우리한테 “우리 집안 슬기를 밝히는 이야기”를 스스로 써서 스스로 물려주라는 뜻을 밝히는구나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줄 뿐 아니라 슬기를 물려줄 때에 어버이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슬기를 물려받을 때에 아이입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물려주거나 물려받지 않습니다. 사랑을 물려주고 물려받아요. 꿈과 이야기를 물려주고 물려받습니다.

  75쪽에 “현대의학은 사람을 치료하기보다는 아주 진부한 비즈니스를 하는 거야. 그리고 사업인 이상, 사람들이 아파야 알약을 생산하는 거대 회사들한테 더 이익이 돼. 환자가 많을수록 소득도 더 커지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하, 그렇지요. 예부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디가 아프면 어떤 풀을 뜯어서 먹거나 바르라’ 하고 알려주었습니다. 배가 고플 때에 먹는 풀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알려주었어요. 옷을 짓는 천으로 엮을 실을 얻는 풀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알려주었어요. 바구니나 멍석을 짜는 풀이라든지 지붕으로 얹는 풀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알려주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약국에 가고, 가게에 가서 옷을 사며, 돈을 모아서 아파트를 장만할 뿐입니다.

  82쪽에 “다양한 사람들의 몸이 요구하는 식품의 종류와 양은 당연히 동일할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 맞는 표준이나 통일된 처방 또는 식단도 있을 수 없다.”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94쪽에 “오늘 돈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오직 돈과 권력만이 사람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 여겨. 그리고 동전을 벌려고 애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믿도록 확신시키지.” 같은 이야기가 흘러요. 이러한 이야기는 무엇을 들려주려고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떤 마음으로 읽을 때에 내 삶을 살찌울 만한가 헤아려 봅니다.

  돈은 많은데 웃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대통령 자리라든지 국회의원 자리에 있으나 노래하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변호사나 판사 같은 자리에 있지만, 즐겁게 글을 쓰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할머니가 고구마를 찌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할아버지가 밭을 갈다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활짝 웃습니다. 돈은 없다 하지만 웃고 노래하는 어른이 제법 있습니다.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며, 그냥 집에서 빙글빙글 뒹군다 하더라도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어린 조카하고 즐겁게 놀 줄 아는 어른이 제법 있습니다.

  어버이가 물려주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어버이가 물려주는 책이란 ‘아이가 홀로서기를 할 적에 즐겁게 꺼내어 읽고 생각하도록 이끄는 슬기꾸러미’라고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책이나 더 두꺼운 책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책이면 됩니다. 즐거운 책이면 되고, 아름다운 책이면 돼요. 따사롭게 어깨동무할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을 이 땅 모든 어버이가 쓰고, 이 땅 모든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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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책꿈 키우기
45. 나도 책을 쓸 수 있을까


  책은 누구나 씁니다. 참말 책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쓰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누구나 책을 씁니다. 다시 말하자면, 책을 쓰려는 마음을 품고 날마다 내 이야기를 스스로 짓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씁니다. 참으로 어떤 책이든 다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책이든 쓰려고 생각을 기울이면 누구나 어떤 책이든 씁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책이든 꼭 쓰겠다는 생각을 품고 날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어떤 이야기이든 차근차근 살을 붙이고 북을 돋우면서 가꿀 수 있으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이든 실컷 써서 책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시집을 쓸 수 있고 소설책을 쓸 수 있으며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쓸 수 있는 한편, 자기계발책이나 역사책이나 과학책 모두 쓸 수 있습니다. 교육책이나 사진책도 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쓸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삶에 맞추어 보기를 들어 볼게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삶이니 ‘시골살이’로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시골살이가 어떠한가를 시로 씁니다. 시를 하루아침에 백 꼭지를 쓸 수 있을 테고, 하루에 한 꼭지씩 써서 백 날에 걸쳐 쓸 수 있습니다. 이틀에 한 꼭지를 쓰거나 한 주에 한 꼭지를 쓸 수 있어요. 달과 철을 살펴 달마다 한 꼭지를 쓰거나, 철이 바뀔 무렵 한 꼭지를 쓸 수 있어요. 시집 한 권이 될 만큼 꾸준히 시를 씁니다. 자, 그러면 ‘시골살이’ 시집이 태어납니다. 소설책 쓰기도 시집 쓰기와 같습니다. 동화책이나 그림책은 어떠할까요? 동화책이라는 틀과 그림책이라는 틀에 맞추어서 쓰면 돼요. 동화책을 쓸 적에는 어린이가 함께 읽을 만하도록 써야 합니다. 소설책은 어른만 읽는 책이니, 어른 눈높이를 살리면 될 텐데, 동화책은 나이 어린 아이가 읽을 수 있게끔 낱말 하나도 더 살펴서 쉽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그렇다고 소설책은 아무렇게나 써도 되지 않아요. 소설책을 쓸 적에도 되도록 쉬우면서 바르게 글을 여미어야 합니다.

  그림책은 좀 다를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림책에는 그림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면, 그림을 함께 그리면 됩니다. 그림은 화가만 그리지 않습니다. 누구나 그리는 그림입니다.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열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그리고 사랑스레 나누면 되는 그림입니다. ‘시골살이’란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차근차근 그림을 그립니다. ‘시골살이’이니까, 아무래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 내음을 담뿍 담아야겠지요? 도시에서는 철마다 다른 빛이나 숨결이 없어요. 그러나 시골에서는 철마다 다른 빛이랑 숨결이 있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적에는 ‘시골살이’ 흐름을 잘 살피고 짚어서 담아야 합니다.

  자기계발책은 어떻게 쓸까요? 시골에서 살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애쓴 모습을 이야기로 엮어서 담으면 됩니다. 시골에서 날마다 어버이를 도와 낫으로 풀을 베다 보니 팔뚝과 등허리에 힘이 붙어, 어떤 일이든 거뜬히 할 수 있더라, 이런 이야기도 자기계발입니다. 시골에서 어버이 일을 거들며 새벽 일찍 일어나 버릇하니, 언제나 새벽 네 시이면 눈을 떠서, 겨울에는 새벽부터 아침까지 맑은 넋으로 서너 시간쯤 아름다운 책을 읽었고, 이동안 아름다운 책을 읽으니 어느새 내 마음이 사랑스럽게 거듭나더라, 이런 이야기도 자기계발입니다.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어버이 일을 거들다 보니, 일이란 무엇이고 농사란 무엇이며 밥 한 그릇과 흙 한 줌이 무엇인가를 깊고 넓게 살필 수 있더라, 온누리와 지구별과 사회를 아주 깊고 넓게 읽을 수 있더라, 하는 이야기도 자기계발입니다.

  역사책은 어떻게 쓸까요? 내 어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고, 내 이웃 아재와 아지매가 지내는 모습을 살핍니다. 내 할매와 할배가 살아온 이야기를 귀여겨듣습니다. 이웃 할매와 할배를 찾아가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이야기를 여쭙습니다. 이런 모든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으고 갈무리하면, 어느새 ‘시골살이’ 역사를 담는 책이 됩니다.

  과학책은 어떻게 쓸까요? 논에 얼마나 많은 목숨이 있는지 찾아보셔요. 밭에 얼마나 많은 풀이 자라고 벌레가 있는지 살펴보셔요. 논생물도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논과 이웃 논은 논생물이 얼마나 다른가를 견줄 수 있습니다. 밭에서는 풀벌레와 들풀을 꼼꼼히 살펴서 가짓수와 갈래를 모두 살필 수 있고, 밭마다 얼마나 다른지, 또 빈터가 된 여느 풀밭이랑 숲속에서 자라는 풀을 꼼꼼히 견줍니다. 이러면서 ‘시골살이’에서 엿보는 과학책이 태어납니다. 한편, 논밭과 들과 숲에서 만나는 풀을 모두 그러모아서, 이 풀마다 예부터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썼는지를 살펴보셔요. 약풀로 안 쓰는 들풀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모든 풀은 저마다 약풀로 씁니다. 이러한 대목을 인터넷으로든 식물도감에서든 모두 뒤져 보셔요. 그리고, 풀을 스스로 그림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붙이면, 아주 멋진 ‘들풀 과학 이야기책’이 태어납니다.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를 살펴보아도 과학책이 됩니다. 콩이 자라는 한살이를 낱낱이 살펴도 과학책이 됩니다. 우리 집에서 거둔 콩으로 몇 가지 요리를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온갖 요리를 해 보면 요리책도 나옵니다.

  교육책은 어떻게 쓸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옛날 사람들은 학교도 없이, 또 글도 없이, 또 책도 없이, 어떻게 농사짓기를 가르쳤을까 하고 헤아려 보셔요. 마음속으로 옛날 모습을 그려 보셔요. 옛날 옛적에는 시골사람 모두 언제나 노래를 불렀으니, 베틀을 밟거나 절구질을 하거나 모내기를 하거나 풀베기를 하거나 아기를 어르거나, 그러니까 우리 삶에서 늘 부르던 노래를 곰곰이 알아보셔요. 이러한 ‘시골살이’가 바로 학교요 배움이자 가르침인 줄 깨닫는다면, 먼먼 옛날부터 시골사람이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일구며 살아온 나날이 교육이자 학교이니, 이러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교육책이 태어납니다.

  사진책은 어떻게 쓸까요? 사진 작가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시골에서 지내는 모습을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으로 찍어요. 놀거나 일하는 모습을 모두 찍어요. 쉬거나 어울리는 모습을 모두 담아요. 바다에서도 찍고 들에서도 찍습니다. 집에서도 찍고 마을에서도 찍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어떤 사진 작가보다 깊고 넓게 ‘시골살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속속들이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값비싼 장비가 없어도 됩니다. 내 손전화로 사진을 찍어도 됩니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베틀북 펴냄,2002)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어엿하게 자라서 어버이 품에서 벗어나 혼자 새롭게 살겠노라 꿈을 꾸는 ‘늑대 루카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늑대 루카스가 제금을 나겠다고 하니, 루카스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녁 아이가 홀로서기 하려는 뜻을 높이 섬깁니다. 루카스네 아버지는 루카스한테 ‘늑대로서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을 종이에 적어서 건넵니다. 그런데, 늑대 루카스는 아버지가 종이에 적어 준 ‘먹을 수 있는 것’을 하나도 못 먹습니다.

  늑대 아버지는 늑대 아들한테 무엇을 먹으라고 했을까요? 늑대 아버지는 ‘엄마 염소와 아기 염소’, ‘빨간 모자’, ‘아기 돼지 세 형제’, ‘피터’, ‘엄지동자와 형제들’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곧 알아챌 텐데, 프랑스 작가가 빚은 그림책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에 나오는, ‘늑대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프랑스 옛이야기에 나오는 귀여운 동무들입니다.

  늑대 아들은 어떻게 할까요? 배가 고파서 잡아먹으려고 할 때마다 묻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늑대한테 ‘불쌍히 여겨 잡아먹지 말아 달라’고 말합니다. 늑대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무도 못 잡아먹습니다.

  어떡할까요? 아버지가 물려준 지식으로는 그저 배를 쫄쫄 굶습니다. 이대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굶어죽어야 할까요? 불쌍하고 귀여운 동무나 이웃을 모른 척하면서 잡아먹어야 할까요?

  실마리는 우리가 스스로 풀어야 합니다. 이 실마리를 푸는 길이 바로 ‘글쓰기’요 ‘책쓰기’입니다. 무엇을 글감으로 삼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글감이 됩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스스로 즐거운 글감으로 여겨, 가만히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생각하셔요. 그러면, 글은 저절로 샘솟습니다. 내가 하루하루 즐겁게 가꾸는 삶에서 글이 태어납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과 함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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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책삶 헤아리기
8. 책을 읽고 나서


  나카가와 치히로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림책을 그리는 일본사람입니다. 이분이 빚은 그림책 가운데 《내가 진짜 공주님》(크레용하우스,2001)과 《작은 새가 좋아요》(크레용하우스,2002)와 《오늘 할아버지랑 자야 한대요》(미세기,2008)가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이 가운데 《내가 진짜 공주님》은 일본에서는 ‘풀꽃공주’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습니다. 한국말로 옮기면서 책이름이 바뀌었어요.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빚은 이야기책 가운데 《천사는 어떻게 키워요?》(동쪽나라,2005)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판이 끊어졌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한테 이 예쁜 책을 사서 읽어 보라 알려주고 싶어도, 새책방에서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도서관에 이 책이 있으면 빌려서 볼 수 있겠지요. 또는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이 책이 헌책방에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

  책이름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천사를 어떻게 키워요 하고 묻습니다. 참말 어떻게 키울까요? 천사 키우기를 들어 본 적 있나요? 천사 키우기를 동생이나 동무한테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천사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책이나 인터넷에서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야기책에서 ‘천사를 키우는 아이’는 어느 날 문득 천사를 만나서 ‘키운다’고 합니다. 아이로서는 스스로 천사를 키운다고 여길 테지만, 천사는 누구한테 키워질 수 있지 않아요. 천사는 스스로 태어났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천사는 아이하고 동무입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천사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숨을 쉬고 물과 밥을 먹습니다만, 천사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먹을 일이 없겠지요? 도깨비도 아무것도 안 먹어요.

  그런데, 천사는 한 가지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무엇일까요. 천사한테 무엇 한 가지가 꼭 있어야 할까요.

  “들판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은 생각보다 정말 넓었습니다. 또 깊이도 아주 깊어서 땅에 착 달라붙어 있지 않으면 저 깊은 하늘로 빨려들 것 같았습니다(72쪽).”와 같이 흐르는 대목을 곰곰이 읽어 봅니다. 학교에 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볼 어린이나 푸름이가 얼마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볼 어른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너무 바쁜 탓에 하늘을 볼 겨를이 없지 않나 궁금합니다. 하늘 말고 길바닥을 내려다보아야 누군가 흘렸을는지 모를 돈이라도 주울는지 모릅니다. 아니, 오늘날에는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살피며 걸어야 합니다. 비켜서지 않고 그저 앞으로만 걷는 수많은 사람한테 안 부딪히려면 앞을 살피며 걸어야 합니다. 길 곳곳에 있는 광고판과 전봇대에 안 부딪히려면 앞을 잘 보고 걸어야 합니다. 건널목을 살피고, 이것저것 살필 것이 아주 많습니다.

  하늘은 지구별에서 파란빛으로 보입니다. 숲은 지구별에서 푸른빛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요즈음 하늘빛과 숲빛을 모두 잃습니다. 도시에서는 높다란 건물과 전깃줄과 가로등이 하늘을 뒤덮습니다. 도시에서는 아스팔트와 찻길과 아파트와 온갖 건물이 숲을 밀어냅니다. 우리들은 하늘빛을 모르는 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숲빛과 등진 채 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숨을 쉬지만, 어떤 바람을 들이켜는지 생각하지 않아요. 날마다 물을 마시지만, 정수기로 거르는 물만 알 뿐입니다. 날마다 밥을 먹지만, 밥 한 그릇이 어떤 손길을 거쳐 나한테 오는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요즈음 천사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요즈음 천사를 헤아리는 어린이나 어른은 몇이나 될까요. 천사를 말하는 사람은 바보 같다고 여길 만한 사회이리라 느낍니다. 천사를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뚱딴지 같다고 느낄 만한 학교요 정치이며 문화이리라 느낍니다.

  그나저나 천사한테는 꼭 한 가지가 있어야 한답니다. 바로 ‘이야기’입니다. 천사는 이야기를 먹으면서 산다고 합니다. 아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운을 차리고 환하게 빛난다고 합니다. 즐겁게 이야기를 들은 천사는 ‘별똥’을 눈대요. 천사가 즐겁게 이야기를 들은 만큼 별이 새롭게 태어나서 하늘을 밝힌대요.

  어버이와 아이가 다릅니다. 여느 어른과 어버이가 다릅니다. 이웃과 내가 다릅니다. 동무와 동무도 모두 다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가슴에 품습니다. 다 다르면서 저마다 재미있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슴에 담습니다. 천사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먹습니다. 책에서 본 이야기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내가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면서 즐겁게 가꾼 이야기를 먹습니다. 웃고 노래하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즐기는 천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천사한테 웃음 어린 이야기를 들려주면, 천사는 웃음이 가득한 별을 낳습니다. 우리가 천사한테 밝은 노래를 불러 주면, 천사는 밝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별을 낳습니다. 우리가 천사한테 따사로운 사랑을 속삭이면, 천사는 따사로운 사랑으로 빛나는 별을 낳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한결 깊이 바라보면서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듯이 서로를 바라보아요. 숲을 마주하듯이 서로서로 마주해요. 서로서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어요.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요.

  책을 읽고 나서 할 일은 언제나 한 가지입니다. 스스로 삶을 즐거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가꾸기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가꾼 삶으로 이야기를 빚습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누린 삶으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스스로 사랑스레 보살핀 삶으로 이야기를 일굽니다. 4347.8.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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