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광주공항 : 광주공항에서 처음 비행기를 타 보았다. 광주 시내에서 전철로 공항으로 가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니 공항으로 가도록 이끄는 알림판이 없다.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알림판을 하나 찾았는데, 찻길에서 자동차가 보는 알림판이다. 바퀴를 달아 돌돌 끄는 수레는 없이 등짐만 졌는데, 길바닥을 보니 수레를 끌기에 매우 나쁘다. 공항 가는 길인데? 나중에 들으니 광주공항은 군사공항을 민간공항으로 함께 쓴단다. 그래, 그렇더라도 공항 아닌가. 공항에 비행기 타로 오가는 사람은 바퀴수레를 으레 굴릴 텐데, 길바닥을 이렇게 두어도 좋을까? 더욱이 알림판 하나 없이? 전투기 뜨고 지는 소리가 귀를 찢는대서 광주공항을 무안으로 옮긴다는 말이 많단다. 아무렴, 공항이 있으면 둘레 마을은 귀청 찢는 소리에 매우 고단하리라. 공항이란 곳이 그렇다. 그러면 무안 시골자락에 공항을 옮기면 그곳 시골사람이나 그곳 숲짐승이나 그곳 나무는 시끄러운 소리를 고스란히 받아도 된다는 뜻일까? 공항이란 곳을 두어야 한다면, 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에서 퍼지는 소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는지도 나란히 제대로 살필 노릇이다. 그런 일이 바로 행정이요 정책 아닌가. 2019.11.30.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이슬아 파본 : 인쇄소나 제본소에서 잘못 다루는 바람에 다친 책을 ‘파본’이라 한다. 인쇄소나 제본소에서는 말끔히 다루었지만, 책을 엮으며 미처 살피지 못해 잘못 찍힌 바람에 새책집에 넣을 수 없다고 여겨 ‘일부러 책을 찢거나 잘라서 종이쓰레기터(폐지처리장)에 보내려고 하는 책’도 파본이라 한다. 인쇄소·제본소를 잘 거친 책을 끈으로 묶다가 끈 자국이 남아도 파본이 된다. 갓 태어난 책을 창고로 실어나르다가 그만 잘못 만져서 접히거나 구겨지거나 긁혀도 파본이 된다. 새책집에 손님으로 찾아온 이가 책을 함부로 놀려서 손때를 묻히거나 구김살을 내어도 자칫 파본이 될 수 있다. 일부러 칼을 대어 한두 쪽이나 여러 쪽을 잘라내어도 파본이 된다. 이들 파본은 안타깝지만 새책으로 팔 수 없다. 아니, ‘보는책’으로는 내놓을 수 있되, ‘파는책’으로는 다루지 않을 일이다. 파본이 가는 길은 둘이다. 첫째, 종이쓰레기터이다. 둘째, 헌책집이다. 앞으로 새종이가 되어 태어나기를 바라며 종이쓰레기터에 보내는데, 구김살이 지거나 접히거나 살짝 찢어진 책쯤이라면 헌책집에서 꽤 눅은 값으로 새로운 임자를 만나도록 할 수 있다. 새것으로 사고팔 수는 없어도, 책은 줄거리를 읽는 쓰임새이기에 손때나 얼룩이 졌더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헌책집에 파본을 내놓아, 이 책을 눅은 값으로 이웃이 만나기를 바라더라도 ‘제작부수 5퍼센트 밑’으로 해야겠지. 종이가 되어 준 숲이 버려지는 일이 아깝다고 여길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치면 길에 굴러다니는 모든 광고종이나 알림종이도 똑같다. 우리 손을 거쳐서 더 아깝다고 여긴다면, 이런 책은 종이쓰레기터에 보내지 말고, 조용히 이웃에 0원으로 선물을 줄 노릇이다. 그리고 파본을 둘레에 선물로 준다면, 선물로 준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 파본을 밖에 알리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서 줄 노릇이겠지. 그리고 이때에도 ‘선물하는 파본은 제작부수 5퍼센트 밑’이어야 한다. 세금하고도 얽히는 일이니까.


글쓰는 이슬아 님이 이녁 어느 책을 ‘실수본’이란 이름을 붙여서 조금 에누리한 값으로 책집에 넣어서 팔았다고 한다. ‘아직 법을 몰라서 파본을 그렇게 책집에 넣어서 팔았다’고 할 테지. 큰가게에서는 ‘보조개 능금(흉이나 멍이 지거나 긁힌 능금. 이른바 파과)’을 팔기도 하니, 어느 모로 보면 ‘보조개 책’을 팔려고 나선 셈이기도 하다. 법으로 본다면, 글쓴이가 책에 이름을 적는 일도 ‘책을 망가뜨리는 짓’으로 친다. 법으로 치면 ‘글쓴이 서명본도 똑같이 파본’이 된다. 글쓴이가 책에 이름을 적어 넣으려면 손님이 먼저 그 책을 사야 한다. 그 책을 아직 사지 않았는데 미리 글쓴이 이름을 적어 넣으면 ‘책 파손 행위’로 여긴다.


그렇다면 왜 ‘파본’ 제도가 있을까? 왜 조금이라도 다친 책을 새책집에서 함부로 못 다루도록 할까? 글쓴이 이름을 적은 책이라든지, 제본·인쇄·편집에서 그만 잘못이 드러난 책(파본)을 ‘특별한정판(5퍼센트 밑)’으로 다룰 수도 있는 뜻은 무엇일까? 왜 숱한 출판사는 제본·인쇄·편집에서 아주 작은 티끌 하나가 드러나도 책을 바로 거두어서 모두 종이쓰레기터로 보낸 다음에 새로 찍어서 넣을까? 이 대목은 누가 낱낱이 알려줄 일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고서 스스로 조용히 깨달아야 할 일이다. 나라 곳곳에 의젓하게 문을 여는 마을책집을 헤아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정본하고 실수본’을 ‘작은 마을책집 책시렁에 더 부피를 차지하도록 놓기’를 할 노릇이 아니라, ‘제대로 찍은 책 하나만 작게 놓아, 다른 책하고 어우러지도록 할’ 노릇이 아닐까. 숱한 다른 출판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한 가지 판으로만 마을책집에 책을 넣을까. ‘우리도 특별한정판을 같이 놓고서 곱으로 책을 알리거나 팔고 싶어!’ 하고 나서면 책판이 어떻게 돌아갈까. 많이 팔린 책이라면서 겉그림이나 껍데기를 바꾸면서 ‘똑같은 책을 여러 판’으로 마을책집 책시렁을 채워 버리면, 그만큼 마을책집 책시렁에서 밀려나야 하는 책이 있다.


다시 말한다면, 몇 가지 책만 더 많이 팔아도 좋다고 여긴다면 ‘파본을 파본 아닌 실수본’이란 이름으로 슬쩍 눙쳐서 팔리라. 우리 책도 너희 책도 다같이 사랑받으면서 마을책집에 다 다른 책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마을책꽃이 피어나기를 바란다면, ‘파본이 생겼으면 조용히 종이쓰레기터로 보내고서 새로 찍든’지, 아니면 ‘5퍼센트를 남기고 종이쓰레기터로 보낸 뒤, 5퍼센트는 선물로 나눠 주려고 쓰거나 헌책집에 그냥 주든지 할 일’이다. 이 대목을 여태 몰랐으면, 글쓰기를 멈추고서 이 대목을 깊고 넓게 배우러 다녀야지. 법도 스스로 찾아보고 읽어서 새기고, 오랫동안 책일을 곧바르게 일구어 온 숱한 출판사 일꾼한테 이야기를 여쭈어서 들을 노릇이리라.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11월 가을엔 이런 사람 : 고흥에서 열 해를 살며 은행나무를 거의 못 본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던 무렵이나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 적에는 은행나무를 아주 쉽게 만났다. 가만 보면 은행나무는 매캐한 도시 바람을 걸러내는 몫을 톡톡히 하느라, 굳이 시골에까지는 안 심지 싶다. 아무튼 광주에 마실을 나와 길을 걷는데 곳곳이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벚나무처럼 봄에 눈부신 꽃을 베풀지 않으나 가을이 저물 즈음 샛노란 잎빛으로 눈부신 나날을 베푼다. 보라, 길바닥이 온통 노랑잔치(금빛잔치)로 물결치지 않는가. 이 노랑잎을 주워서 수첩에 말린다. 적어도 며칠 뒤에 쓰려 했는데 저녁에 만난 이웃님한테 살짝 넉줄글을 잎에 적어서 건네었다. 잎이 다 말랐으면 글씨가 좀 반듯했을 테지만, 그래도 좋다. 11월 가을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된다. 2019.11.28.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남이 지은 것 : 나는 책을 그냥 사는 일이 없다. 모름지기 책 하나를 사자면 그 책을 읽어 보아야 살 만한지 살 만하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무슨 뜻일까? 책을 빌릴 적에도 이와 매한가지이다. 빌려서 읽을 만한지 아닌가를 알려면 먼저 그 책을 읽어 보아야 한다. 아직 안 읽은 책이라면 살 수도 빌릴 수도 없다. 읽어 보지 않은 채 어떻게 사거나 빌리는가? 어쩌면 뜬금없는 소리로 여길 만한 말일 테지만, 살짝 바꾸어서 얘기해 보자. 그대는 무엇을 밥으로 삼아서 먹는가? 멋모르고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는가? 그대는 어떤 바람을 마시고, 어떤 햇볕을 쬐며, 어떤 풀이나 나무 곁에서 기운을 얻는가? 자동차 방귀나 공장 매연 같은, 아무 바람이나 그냥 마실 수 있는가? 햇볕 아닌 엘이디나 형광등을 그냥 쬐어도 되는가? 풀이나 나무 아닌 플라스틱이나 화학세제를 손에 댈 수 있는가? 그대는 누구하고 사귀고, 누구를 만나는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만 만나서,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하고 그대 모든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이야기를 하는가? 잘 생각해 보라. 우리는 무엇을 하든 ‘우리가 할 그 모든 일이나 놀이를 먼저 맛보거나 살피거나 어림하거나 헤아리거나 생각하거나 맞아들이기를 한 다음’에 그 일이나 놀이를 한다. ‘아직 안 읽은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는가? 이렇게 한다면 아마 아무것도 못 배우리라. 사든 빌리든 ‘미리읽기’나 ‘먼저읽기’를 해야 한다. 가장 좋기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서, 적어도 책집 한켠에 선 채로 다 읽고서 사야겠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다 읽은 책’을 ‘제대로 다시 읽고, 즐겁게 새로 읽으며, 사랑으로 거듭 읽으려고 사서 읽는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안 읽은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지 않는다. ‘한 벌 읽고서 뭔가 찡하게 울리는 책이기에 다시 읽고 새로 읽다가 사랑으로 거듭거듭 읽으려고 사거나 빌려서 읽는다’고 해야 옳다. 아직 누리책집이 없던 지난날에는 꽤 많은 이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따라 책을 그냥 사서 읽기 일쑤였다. 베스트셀러이든 아니든 스스로 책집에 서서 살핀 다음 읽어야 할 텐데, ‘베스트셀러란 이름에 갇혀’서 스스로 안 살피고서 사는 분이 너무 많았다. 누리책집이 퍼진 뒤로는 ‘엠디 추천’에 따라 책을 그냥 사서 읽는 분이 무척 많다. 누리책집에서 미리읽기를 해보고서 사는 분도 꽤 많을 테지만, 미리읽기를 안 하고 사는 분도 무척 많지 않을까? 여기에서 몇 가지를 알아야 한다. 어느 책 하나를 사서 제대로 읽고 싶다면 ‘그 어느 책 하나’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책을 나란히 놓고서 찬찬히 읽고서 ‘어느 책을 마지막으로 살는지를 스스로 생각하여 가리고 추리고 솎고 골라’야 한다. ‘그 책을 사기로 했으니 그 책만 산다’는 마음도 나쁘지 않으나, 스스로 날개돋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둘레 다른 책을 고루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무슨 말일까? 책 하나를 사자면, 적어도 백 자락에 이르는 다른 책을 죽 살피고서 ‘그래, 아무래도 이 책을 사야 할 만하군’ 하고 마음이 서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책 백 자락을 책집에 서서 읽고서야 비로소 책 한 자락을 살 만하다는 뜻이고, 이러다가 두어 자락이나 서너 자락 책을 더 손에 쥐어서 살 수 있겠지. 책 하나 사는 일이란 이렇다. 그렇다면 생각하자. 책 한 자락을 읽고서 쓰는 글은 어떠해야 할까? 책 한 자락을 살 적에 적어도 한두 벌은 그 책을 죽 읽고서 산다면, 이렇게 읽고서 산 책을 스스로 틈을 내어 깊고 넓게 읽은 뒤에 책느낌글을 써야 한다면, 책 하나를 놓고서 느낌글을 쓸 적에 그 책을 적어도 몇 벌을 되읽어야 한다는 뜻일까? 오늘날 온누리에 나도는 숱한 책느낌글은 그 책을 몇 벌이나 읽고서 쓴 셈일까? 적어도 통으로 두어 벌이나 대여섯 벌은 읽고서 쓴 책느낌글은 몇 꼭지나 될까? 영화느낌글도 이와 같다. 영화라면 모름지기 백 벌은 보고서야 영화느낌글을 써야 한다고 여긴다. 나는 이렇게 한다. 그런데 백 벌 아닌 이백 벌을 본 다음에도 따로 짬을 내지 못해서 영화느낌글을 못 쓰기도 한다. 서로서로 마음으로 나눌 만한 영화느낌글이라면, 이런 글은 적어도 같은 영화를 백 벌은 보고 나서야 써야 할 노릇이라고 본다. 거듭 말하지만, 책느낌글도, 그 책을 백 벌쯤은 되읽을 만하다고 여기는 글을 놓고서 별점을 100점 꾹꾹 눌러서 줄 만한 책을 이야기한다면, 어떤 책이어도 아름답고 어떤 글이어도 사랑스러우리라. 남이 지은 것을 놓고서 삭여서 우리 것으로 삼자면 백 벌이란 걸음을 걸을 노릇이다. 스스로 지은 것을 놓고서는?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짓는다면 아마 적어도 즈믄 걸음을 즈믄 벌쯤 지난 셈이겠지. 2000.12.1.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음악실 :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빈틈없이 꾸민 노래칸(음악실)에서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켜도 좋으리라. 그런데 이보다는 나무 곁에서, 풀밭에 맨발로 서서, 숲 한복판에서, 바닷가에서, 들판에서, 어버이나 어른이 일하는 마당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노래하고 신나게 악기를 켤 수 있다면 한결 즐거우면서 새롭게 배우리라 느낀다. 2015.5.7.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