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90. 잠자리 네 마리 (2015.9.28.)


  이 가을이 조용하다. 참새떼만 가끔 이곳저곳 들을 오가면서 나락을 훑으려 할 뿐, 멧새 노랫소리가 뚝 끊어진다. 농약바람이 크게 휘몰아친 탓인지 가을을 고즈넉하게 적시는 풀벌레 노랫소리가 얼마 없다. 그래도 잠자리 네 마리가 우리 집 빨랫줄에 나란히 내려앉아서 가을 숨결을 베풀어 준다. 고맙구나. 너희를 바라보면서 기운을 낼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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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9-29 09:55   좋아요 0 | URL
파랑 대문하고 노랗게 익어가는 벼가 너무 예뻐요~^^

숲노래 2015-09-29 11:48   좋아요 0 | URL
그야말로 요새는 하루가 다르게
노랗게 물드는 들이 아주 예쁘답니다.

도시에 있는 이웃님들도
이 노란 물결을
황금 물결을
가슴에 담을 수 있기를 빌어요
 

고흥집 89. 자전거로 누비는 길 (2015.9.21.)



  아이들이 아직 작으니 아버지 자전거에 샛자전거하고 수레를 붙여서 셋이 나란히 시골길을 누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크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저마다 저희 자전거를 달리면서 줄줄이 시골길을 누비겠지. 한덩어리가 되어 달리는 자전거는 언제나 한몸이다. 한몸으로 흐르는 삶은 언제나 한마음이다. 함께 바람을 마시고, 함께 들내음을 맡고, 함께 하늘을 보고, 함께 땀을 흘린다. 이 길에 함께 서는 우리는 이곳에서 가꾸는 보금자리에 우리 손길이랑 발길을 살가이 남긴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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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88. 꽃 피는 이 집에서 (2015.9.5.)



  고들빼기꽃이 핀다. 아이가 뛰논다.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무릎을 다쳐 못 걸은 지 여러 날 되어 마루에 가만히 드러눕는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꽃내음이 마루로도 퍼지는가 하고 큼큼거려 본다. 그렇지만 꽃내음보다는 내 무릎에 바른 약내음이 더 짙다. 아이들은 어떤 냄새를 맡을까? 아이들은 어떤 바람을 마실까? 아프거나 다치는 곳이 없이 튼튼하게 자라면서 씩씩하게 놀 수 있는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생각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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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87. 집으로 돌아가는 길 (2015.8.29.)



  하룻밤을 바깥에서 자면서 바깥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읍내에서 마을로 돌아가는 군내버스는 지나갔다. 택시를 부를 돈이 주머니에 없다. 버스삯 치를 돈만 있다. 이웃마을로 지나가는 군내버스가 있어서 고맙게 이 버스를 탄다. 이웃마을부터 집까지 2.5킬로미터를 걷는다. 짐을 가득 이고 들면서 들길을 걷는다. 나는 시골에서 사니 시골 들길을 걷는다. 아무도 없고, 자동차도 없다. 제비도 없고 잠자리도 없다. 그래도 나락 익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천천히 걷는다. 구름이 달라지는 무늬를 헤아리면서 씩씩하게 걷는다. 한 번 짐을 내려놓으며 어깨를 편 뒤, 새롭게 기운을 내면서 노래한다. 노래하며 걸으니 들길이 싱그러우면서 즐겁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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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86. 머리가 빼꼼 (2015.8.23.)



  도서관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아이는 저만치 앞서 달린다. 이제 마을논에도 나락이 제법 자랐다. 요즈음 나락은 유전자를 건드려서 키가 무척 작지만, 그래도 아이들 키하고 엇비슷하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작은아이 머리가 빼꼼 보인다. 작은아이는 자동차를 한손에 들고 빨래터 울타리에 굴린다. 배롱꽃이 곱게 흐드러지고, 큰아이도 어느새 작은아이 앞으로 달려나와서 까르르 웃는다. 여름이 저물려고 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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