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장

영어를 처음 배울 적에 이른바 ‘단어장’이 꽤 판쳤습니다. 이 한국말을 저 영어로 ‘낱말 : 낱말’로 엮은 꾸러미입니다. 예전에는 참말로 ‘단어장 공부’를 하기 일쑤였는데, 이는 영어에서만이 아니라 국어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국민학교란 이름이던 학교에서 쓰던 전과를 보면 ‘국어 과목 말풀이’를 ‘낱말 : 낱말’ 얼거리로 풀이하곤 했습니다. 국어 과목은 어떻게 ‘낱말 : 낱말’인가 하면,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말을 이렇게 다뤘지요. ‘한자말인 낱말 : 한국말인 낱말’ 얼거리였습니다. 그때에는 사전조차 마치 단어장 같았어요. 낱말 쓰임새나 결이나 풀이를 다루지 않고 단어장처럼 ‘일대일’ 얼개였어요. 오늘날 숱한 한국말사전도 아직 단어장에 머뭅니다. 사전이란 단어장이 아닌데, 사전이란 “말에 깃든 숨결을 알아보기 좋도록 풀어내고 밝혀서 이야기로 엮어 노래처럼 들려주는 꾸러미”인데요. 2019.5.1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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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다

몸이 고되거나 힘들거나 아프면 밥을 저절로 끊습니다. 물마저 끊습니다. 때때로 며칠씩 안 먹고서 지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 먹고 지내도 똥이며 오줌은 꾸준히 나옵니다. 어떻게 왜 나오나 하고 궁금하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비록 입으로 넣는 밥은 없다지만, 햇볕이며 바람이 스며들고, 맨발로 디디는 풀밭에서 풀내랑 흙내가 감겨들어요. 비가 오면 빗물을, 몸을 씻으면 냇물이 살갗을 거쳐 젖어들어요. 푸나무는 따로 입이 없어도 온몸으로 햇볕이랑 바람이랑 빗물이랑 흙을 받아들여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마 사람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여기에 몇 가지가 더 있어요. 눈길을 받아들이고 손길을 맞아들입니다. 마음을 맞이하고 사랑을 받습니다. 2019.5.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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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저 즐거이 읽고 누린다. 그저 즐거이 지어 같이 나눈다. 그저 즐거이 심어 찬찬히 지켜보며 거둔다. 그저 즐거이 돌보며 사랑한다. 그저 즐거이 쓰며 살림을 가꾼다. 2019.5.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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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버스를 타든 전철을 타든 걸어서 다니든 어디에 서서 기다리든 으레 책을 꺼내어 읽고, 글꾸러미를 꺼내어 적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힐끗거리는 이가 꽤 있지 싶어요. 때로는 힐끗질을 느끼고, 때로는 오로지 내가 손에 쥔 책이나 글꾸러미만 느낍니다. 부엌에서 밥을 지을 적에 아이들이 힐끗거리든 말든 그저 밥을 짓습니다. 신나게 빨래할 적에 아이들이 곁에 서서 빤히 지켜보든 말든 그대로 빨래를 하고요. 누가 우리를 보더라도 우리는 우리 마음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기쁘면 넉넉하지 싶습니다. 남눈을 느끼고 싶다면 느껴도 되어요. 느끼되 흘려보내고서 우리 마음눈을 보고 느껴서 하루를 지으면 될 뿐이지 싶습니다. 누가 힐끗 흘끗 한다면, 그이 눈길에 내 사랑이 가만히 퍼지기를 바랍니다. 2019.4.2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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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 다녀오겠다는 바보짓



아이들하고 쓸 글살림을 챙기려고 순천마실을 합니다. 고흥에서는 문방구가 읍내에 두 곳 있으나 저희가 바라는 글살림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순천에는 꽤 큰 문방구가 있어서 찾아가 보는데, 한숨이 절로 나와요. 잘못 생각했군요. 요새는 문방구에 찾아갈 노릇이 아니라, 집에서 누리집을 뒤져 장만해야 할 노릇이로군요. 찻삯하고 품을 들여서 도시에 있는 큰 문방구에 가 본들, 사람들이 자주 찾거나 많이 사는 것만 들여놓을 뿐, 요모조모 헤아려서 갖추려 하는 글살림은 찾을 길이 없어요. 따지고 보면 큰책집도 엇비슷합니다. 큰책집이라 해서 갖은 책을 두루 갖추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싶은 책을 더 갖추려 하고, 잘 팔린다 싶은 책을 넓게 둡니다. 여러 갈래에서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을 온갖 책을 두루 갖추려 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나라 곳곳에 새롭게 문을 여는 마을책집은 어떤 책을 갖출까요? 잘 팔릴 만한 책을 둔대서 잘못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잘 팔리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살림은 무척 좋다고 여깁니다.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즐겁게 삶을 북돋아 슬기로이 어깨동무할 뿐 아니라, 스스로 숲바람이 되도록 넌지시 일깨우는 책을 살뜰히 알아보고서 곱다시 갖출 수 있다면, 더없이 빛나는 책집이 되리라 느껴요. 그냥저냥 읽을거리를 한켠에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저냥 읽을거리만 둘 적에는 책집이 아닙니다. 책집은 사뭇 다른 곳입니다. 숲을 종이로 옮긴 곳이 책집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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