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너질

1991.4.6. “야, 너 말이야 …….” “저기 죄송합니다만, 선생님은 저를 언제부터 알고 보셨다고 자꾸 ‘너너’라 하십니까?” “응? 뭐라고?” “아무리 교사하고 학생 사이라고 해도, 교사가 학생한테 반말을 하면서 ‘너너’라고 부를 권리는 없습니다.” “뭐야?” “다른 교사라면 이런 말을 굳이 안 합니다. 어차피 들을 생각도 마음도 없이 주먹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교사한테는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입니다만, ○○○ 선생님은 학생을 그래도 학생답게 마주하겠다고 하셔서 이런 말씀을 여쭙니다.” “…….” “자, 보세요. 학교에서 학생은 다 왼가슴에 이름표를 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교사 가운데 왼가슴에 이름표를 하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학생은 마치 죄수하고 똑같다는 뜻입니다. 학생은 마치 죄수하고 같으니 너너질을 해도 된다고 여기시는 듯한데요, 잘 생각해 보세요. 학교라는 곳에서 교사들은 교사 이름을 모른다면 막 성을 내요.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이 어른이든 아이이든 어떻게 이름을 다 알거나 외워요? 교사도 왼가슴에 이름표를 달아야 이름을 알지 않아요? 그렇다고 교사인 분들 가운데 ‘이름 좀 알려주셔요’ 하고 물을 적에 상냥히 이름을 알려주는 분이 있나요?” “…….” “○○○ 선생님, 제 왼가슴에 제 이름이 적혔어요. 읽으실 수 있지요? 학생한테 어떤 부름말을 써야 할는지 모르시겠으면 배우세요. 학생한테서도 배울 줄 아는 사람이라야 교사다운 교사입니다.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사람이 교사가 아닙니다. 교과서는 교과서대로 쓰고, 여태까지 학생보다 길게 살아왔다는 나날을 바탕으로 삶을 보여주고 알려주면서 이야기로 이끄는 사람이 교사입니다. 자, 저뿐 아니라 모든 학생한테 똑같아요. 왼가슴에 붙인 이름표에 있는 이름을 부르세요. ‘○○○ 학생’이라 부르면 됩니다. 말을 놓든 말든 이 사회는 나이 어린 사람한테 막하는 슬픈 모습이니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너너’란 이름이 아닌 ‘○○○’란 이름이 다 따로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사람으로 본다면 ‘너너’도 ‘번호표’도 아닌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1998.4.7. “어라, 너 어떻게 ‘文’ 자를 알아? 너 이 책 어디서 찾았어? 이야, 되게 오래된 책이네.” “여보세요, 아저씨, 아저씨는 저를 어디에서 보고 알았대서 첫밗부터 ‘너너질’입니까?” “뭐야? 뭐야?” “전 ‘뭐야’가 아니고 제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저씨보다 어리거나 젊어 보이는 사람한테 함부로 ‘너너’ 하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저씨가 얼마나 똑똑한 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저씨만 한자를 읽거나 아저씨만 한자 빼곡하고 깨알같은 글씨가 새카만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배운 사람이라면 다 알지요.” “이 새끼 뭐야?” “저는 ‘뭐야’도 아니지만 ‘새끼’도 아니에요. 아저씨는 아저씨한테 오랜 스승님이 있다면 그 스승님 아이나 손자한테도 ‘너너질’이나 오늘처럼 이런 말씨를 쓰시려나요? 대통령이라고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대통령 아들이나 손자한테도 너너질을 하거나 오늘같이 이 말씨를 쓰십니까?” “……” “아저씨 어딜 달아나려 하세요? 달아나지 마세요. 아저씨가 쏟은 물을 주워담고 가야지요. 사람을 함부로 여긴 잘못을 저지르셨으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가야지요. 그리고 좀 배우시기 바랍니다. 아무한테나 너너질을 했다가는 큰코 다치십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차마 부끄럽고 창피해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못 숙이시더라도, 다음부터는 어디 가서 그렇게 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아저씨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한테든 늙어 보이는 사람한테든 똑같이 고개숙여 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거든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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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

1992.5.24. “야, 쟤네 집 되게 부럽다. 어떻게 저런 집에 살지?” “그게 뭐?” “부럽지 않냐? 저런게 크고 좋은 집?” “뭐가 부러워?” “안 부럽냐? 난 부러워 죽겠다.” “미친 놈. 부러우면 너도 저런 집을 그려.” “말도 안 돼.” “네가 말도 안 된다고 여기니까 너는 저런 집에 못 사는 거야. 부러우면 부러워하지 말고, 너도 앞으로 저런 집에 살겠다고 생각해. 네가 그런 생각을 안 하니까 그냥 부러워하기만 할 뿐 저런 집에 못 살지.”


1994.4.2. “어쩜 저렇게 날씬하고 잘생겼지?” “뭐가?” “뭐긴. 저 사람 말이야.” “저 사람이 뭐?” “너도 저 사람 좀 봐. 책만 보지 말고.” “난 안 볼래.” “좀 보라니까. 부럽지 않냐?” “뭘 쓰잘 데 없는 걸 다 부러워하네. 부러우면 너도 저렇게 살면 되잖아.” “아이고, 난 죽어도 안 되네요.” “넌, 네가 왜 안 되는지 모르는구나.” “뭐가?” “생각해 봐. 난 저 사람이 어떻고 말고 쳐다볼 마음도 없지만, 저 사람이 날씬하고 예쁜 몸매하고 얼굴로 태어났든 말든 그게 뭐가 어떤데? 네가 날씬하고 예쁜 몸매하고 얼굴이고 싶으면, 제발 그만 부러워하고 네가 그렇게 살면 돼. 네가 왜 안 날씬하고 안 예쁜 줄 알아?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너는 네 멋이 있고 저 사람은 저 사람 멋이 있어. 네가 너를 스스로 사랑할 줄 알면, 그리고 네가 스스로 날씬하고 예쁘기를 바라면 네 몸은 저절로 그렇게 바뀌어. 네가 마음으로 제대로 바라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살려는 생각이 없는데 네가 어떻게 바뀌겠니? 부러우면 있잖아, 남을 쳐다보는 짓 그만하고 너 스스로를 쳐다봐. 그리고 네가 스스로 너한테 얘기해 줘. 오늘부터 네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그렇게 얘기해 주면 넌 그렇게 바뀌어.”


2001.10.3. “참 부럽습니다.” “뭐가요?” “어떻게 그렇게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쓸 수 있나요?” “뭘 시시한 걸 부러워하시나요?” “아니 어떻게 안 부러울 수 있어요? 저는 책도 한 주에 한 권도 겨우 읽고 글도 하나도 못 쓰는데요.” “아효. 책읽기나 글쓰기가 부러우세요?” “그럼요. 얼마나 부러운데요.” “그러면 알려드릴게요. 책을 많이 읽고 싶으시면 그저 많이 읽으시면 되고요, 글을 많이 쓰고 싶으시면 그저 많이 쓰시면 되어요.” “네? 그게 뭔 소리예요?” “바라시면 바라는 대로 오늘부터 하시면 다 됩니다. 그러나 바란다고 하면서 정작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부러워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 되어요. 저는 제가 잘 하는 어떤 일이 있다면 남을 부러워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남을 쳐다보지 않기도 하고, 오직 제가 할 일만 쳐다보면서 그 길을 오늘부터 합니다. 저를 부러워하지 마시고요, 이웃님 스스로 사랑해 주시면서 이웃님 마음으로 오늘부터 그 부러워하는 그 일을 그저 차근차근 해보세요. 그러면 다 되어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부러워하면 그저 죽을 때까지 부러워하다가 죽어요. 그러나 부러움이란 마음이 아닌 ‘하자’는 마음으로 그저 오늘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하면, 이렇게 하기를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하다 보면, 어느새 이웃님 스스로 더없이 놀랍고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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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다

2014.1.5. 자가용을 타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숱한 빛과 바람을 모두 놓치고 말곤 합니다. 무엇보다 ‘아무런 책도 못 읽고’ 말아요. 굳이 자가용을 탈 까닭이 없어요. 자가용을 몰아 보셔요. 두 손은 손잡이를 잡아야지, 책을 손에 쥐지 못해요. 자가용을 모는 이 옆에 앉아 보셔요. 혼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먼길을 달릴 적에는 자가용을 모는 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또 졸지 않도록, 두런두런 말을 걸어 주어야 해요. 그러니, 자가용을 모는 이뿐 아니라 자가용을 타는 이까지 책을 읽지 못해요. 자가용을 타면, 종이책뿐 아니라 삶책 또한 못 읽어요. 다른 자동차를 살펴야 하고, 길알림판을 찾아야 하며, 이래저래 앞 찻길만 한참 쳐다보아야 해요. 자동차를 모는 이와 자동차를 함께 탄 이 모두 둘레를 살피지 못해요. 게다가, 자동차 소리만 들어야 할 뿐, 자동차가 지나가는 마을이나 숲이나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퍼지는 숱한 소리는 하나도 못 들어요. 아니, 다른 소리에 마음을 기울일 틈을 못 내지요. 봄에 봄내음을 자동차에서 못 맡아요. 가을에 가을내음을 자동차에서 못 느껴요. 자가용에서 내려야 비로소 봄빛과 가을빛을 온몸으로 누려요. 자가용하고 헤어져야 비로소 종이책과 삶책 모두 가슴으로 안을 수 있어요.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도 좋지만, 들하고 나무하고 숲하고 바다하고 하늘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를 기울여 봐요. 기계가 들려주는 노래는 살그마니 내려놓고, 우리 목소리를 가다듬어 스스로 예쁘게 노래를 불러 봐요. 우리 이야기를 동무한테 들려주고, 동무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요. 풀밭을 거닐며 풀내음을 맡고, 나무 곁에 서서 나무를 포옥 안으며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요. 언제나 우리 둘레에 있는 책을 읽어요. 늘 우리 곁에서 따사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숱한 책을 사랑스레 누려요.


2019.5.26. 출판사는 ‘믿음’으로 우리 책을 내주지 않고, 우리는 출판사에 ‘믿음’으로 우리 글꾸러미를 보내주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마음이 이어진 둘은, 그동안 서로 지켜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새길을 그렸기에, 반가이 만나 기쁘게 책을 짓는 길을 함께 뚜벅뚜벅 걷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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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한창 글손질을 하고, 또 예전에 써둔 글을 되살피면서 묶어야 할 테지만, 이웃책집 어느 분이 책집살림을 가꾸면서 미운 손님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읽고는, 일찌감치 이 글을 걸쳐 놓고자 한다 ..


+ + +


책집


2013.9.20.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들에서 삽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은 바다에서 삽니다. 숲에서 일하는 사람은 숲에서 삽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공장에서 삽니다. 운동경기를 하는 운동선수는 운동장에서 삽니다. 책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책집에서 삽니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이 들바람을 쐬듯, 책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책집바람을 마십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이 바닷노래를 부르듯, 책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책집노래를 부릅니다. 숲에서 일하는 숲지기는 숲내음을 맡아요. 책집에서 일하는 책집지기는 책집내음과 책내음을 맡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공장지기는 어떤 내음을 맡을까요.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는 운동선수는 어떤 내음을 맡을까요. 들내음과 바닷내음은 들지기와 바다지기 삶을 어떻게 북돋울까 헤아려 봅니다. 책집지기가 맡는 책내음과 책집내음은 책집지기 삶을 어떻게 살찌울까 생각해 봅니다. 책집지기 스스로 아름다운 하루 일구면, 책집마실 누리는 책손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다운 책에서 길어올리겠지요. 책집지기 스스로 즐거운 삶 가꾸면, 책집마실 즐기는 책손 또한 삶빛 고이 밝히는 책빛을 실컷 맞아들이겠지요. 커다란 책집에서도 조그마한 책집에서도 책내음이 흐르고, 책노래가 감돌며, 책사랑이 퍼집니다. 책빛은 삶빛이면서 사랑빛입니다. 책노래는 삶노래이면서 사랑노래입니다. 책집마실을 하면서 책 하나 손에 쥔 우리들은 책밥·삶밥·사랑밥을 먹습니다.


2013.10.12. 헌책집이거나 새책집이거나, 책집에 가면 즐겁다. 나를 부르는 책을 만나서 즐겁기도 하지만, 책이 있어서 즐겁다. 어떠한 책이건 내 마음과 눈과 넋과 말을 북돋우는 사랑스러운 책에 둘러싸여 몸을 쉴 수 있어 즐겁다. 책을 한 권도 못 고른 채 바삐 돌아나와 다른 곳에 볼일을 보러 가야 하더라도, 살짝 책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골마루를 빙 한 바퀴 돌면 숨이 놓인다. 어수선하거나 어지럽던 실타래가 풀린다. 책내음을 맡는 동안 내 마음자리가 제자리를 잡는다. 푸르게 우거진 숲속에 깃들면 몸속 깊은 데까지 푸른 숨결이 서려 고운 넋 되는 느낌하고 같다고 할까. 따지고 보면, 책이란 모두 종이이다. 종이란 모두 나무이다. 나무란 모두 숲이다. 숲이 종이로 다시 태어나고, 종이는 책으로 거듭 태어나서 책집에 놓인다. 이 책이건 저 책이건 모두 나무요 숲이다. 이 책도 저 책도 다 함께 나무이면서 숲이다. 책내음 맡는 사람은 나무내음을 맡는다. 책내음 즐기는 사람은 숲내음을 즐긴다.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데는 숲이라 하잖은가. 숲에서 책을 읽으면 가장 느긋하고 사랑스럽게 이야기에 빨려들 수 있다잖은가. 숲을 숲에서 읽으니 즐거울밖에 없다. 숲을 숲에서 누리니 웃음이 피어나고, 꿈이 자라며, 사랑이 샘솟을밖에 없다. 이리하여, 책집에 가면 즐겁다. 나를 부르는 책을 만나며 즐겁다. 나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을 촉촉히 적시거나 보드랍게 어루만지는 책을 마주하며 즐겁다. 나무내음 맡고 숲바람 쐬고 싶어 책집마실을 한다.


2014.5.15. 책집이라는 곳은 푸른 숨결이 이야기로 거듭나면서 빛나는 곳이라고 느낀다. 책집이라는 곳은 숲에서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던 나무들이 종이로 다시 태어나면서 깃드는 곳이라고 느낀다. 책집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빚은 사랑이 고운 노래가 되어 흐르는 곳이라고 느낀다.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책꽂이 앞에 책탑을 쌓는다. 나즈막한 책꽂이 위쪽에 책을 하나둘 얹으니 어느새 책더미가 된다. 꽂힌 책을 살피고 쌓인 책을 헤아린다. 빽빽한 책꽂이를 들여다보고 높다란 책탑을 바라본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어떤 책이 있을까. 어떤 삶과 어떤 사랑이 어떤 책마다 싱그럽게 숨쉴까. 책집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면 새로운 누리가 열린다. 책집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면서 새로운 마음이 된다.


2014.7.7. 멋진 찻집에 가 본 사람은 안다. 멋진 찻집이 참말 얼마나 멋진 줄. 멋진 숲에 마실을 다녀온 사람은 안다. 멋진 숲이 어느 만큼 멋진 줄. 멋진 이웃을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워 본 사람은 안다. 멋진 이웃이 그야말로 얼마나 멋진 줄. 책집에 가 본 사람은 책집을 안다. 책집을 안 가 본 사람은 책집을 모른다. 복숭아꽃을 본 사람은 복숭아꽃을 안다. 복숭아꽃을 못 본 사람은 복숭아꽃을 모른다. 스스로 보고, 느끼며, 마음에 담아, 생각을 기울일 적에 알 수 있다. 못 보면 못 느끼고, 못 느끼기에 마음에 못 담아, 마음에 못 담으니 생각을 기울이지 못한다. 사람들이 책집에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기를 빈다. 한 달에 한 걸음쯤이라도 책집마실을 할 수 있기를 빈다. 누리집으로 책을 사더라도, 스스로 아주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책이라면, 가까운 마을책집이나 먼 단골책집에 말을 넣어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책마실을 할 수 있기를 빈다. 요즈음은 책 한 자락조차 ‘무료배송’을 하지만 ‘부러 찻삯과 품과 겨를을 들여’ 책빛마실을, 또는 책숲마실을 해볼 수 있기를 빈다. 왜냐하면, 책집에만 책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책집에는 온갖 책이 어우러진 기운이 있고, 갖가지 책이 골고루 섞인 바람이 분다. 책집으로 찾아가는 동안 이웃을 만나고 마을을 살피며 내 두 다리를 느낀다. 책집에 서서 ‘내가 미리 여쭌 책’을 찾는 동안 내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책을 만나곤 한다. 책집에 찾아가서 ‘내가 미리 여쭌 책’뿐 아니라 내가 이제껏 헤아리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책을 만나기도 한다. 책집에 가 본 사람은 안다. 책을 사려면 책집에 가야 하는 줄. 책집에 가 본 사람은 안다. 책은 책집에서 빛이 나고, 책집에서 빛이 나는 책을 내 가슴에 고이 품으면서 밝은 노래가 흐르는 줄.


2015.10.17. 책집이 여기 있으니, 즐겁게 찾아간다. 여기에 있는 이 책집은 언제나 마을쉼터 구실을 하니, 나는 이곳에서 마음을 쉬면서 느긋하게 책을 살핀다. 이 조그마한 책집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도 사랑스러운 책터로 고운 숨결을 이을 테니, 바로 이 책집은 누구나 홀가분하게 드나들면서 이야기를 새록새록 얻는 만남터로 거듭난다. 책집이 여기 있으니, 마을이 한결 싱그러이 춤춘다. 여기에 있는 이 책은 언제나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노래가 될 테지. 나는 노래를 부르려고 책집에 간다. 나는 노래를 함께 나눌 이웃을 만나려고 책집에 선다. 나는 노래를 짓는 슬기로운 숨결을 되새기려고 오늘 여기 이 책집에서 책시렁을 찬찬히 살펴본다.


2018.11.6. 누리책집에서 또각또각 글판을 두들기지 않고, 두 다리로 책집마실을 하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요? 누리책집에서 책을 산 분은 아마 다들 알 테지만, 누리책집에서 책을 고르고 살펴서 값을 치르기까지도 품이나 겨를을 꽤 들여야 합니다. 딸깍딸깍 조금 한대서 쉬 끝나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여 책집까지 스스로 다녀오는 일보다 품이 적게 든다고만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누리책집에서 새책은 그때그때 새로 올라온다지만, 그동안 태어난 오랜 숱한 책은 다 올라오지 않거나 못합니다. 우리가 다리품을 팔면서 마을책집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헌책집을 다니지 않는다면, 온누리에 가득한 어마어마한 책을 두루 만나지 못합니다. 아주 조금만, 아름다운 책을 늘 마주하더라도 아주 살짝 맛볼 뿐입니다. 다리품을 팔면서 마을책집으로 마실을 다니면, 첫째, 우리 마음눈을 넓힐 수 있습니다. 둘째, 도시에 있는 숲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리책집으로도 마음눈을 넓힐 책을 손에 넣겠지요. 그러나 자동차 소리가 뚝 끊긴 채 고요한 숲바람이 일렁이는 숨결은 누리지 못해요. 조그마하든 널따랗든, 마을책집은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을 누리는 쉼터이자 놀이터이자 만남터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적에는, 줄거리(지식)만 받아먹지 않습니다. 줄거리를 이루기까지 어떤 숲이 어떤 사랑으로 살았는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요. 살아숨쉬는 이야기가 깃든, 숲에서 자란 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리며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사랑한 노래가 깃든 종이에 얹은 삶을 누려 봐요.


2019.5.25. 아직 ‘책집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이 많을 수도 있다고 여겨요. 더구나 어릴 적부터 책집을 못 겪은 분이라면 그야말로 모르겠지요. 생각해 봐요. 어릴 적에 숲을 겪은 적이 없는데 숲을 모르겠지요. 어린 나날에 사랑을 누리거나 받은 적이 없다면 참말로 사랑을 모를 만해요.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을는지 모릅니다. 삶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펴며, 꿈을 나누는 일을 널리 넉넉히 신나게 해야겠구나 싶어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또 책집에서도.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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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 창비 + 비평가 2019.5.24.

왜 표절을 할까요? 왜 표절작가인 줄 뉘우치지 않을 뿐더러 슬그머니 다시 글을 써서 팔려고 하는 짓을 할까요? 왜 이런 표절작가 글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새로 실어 줄까요? 모두 돈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일 뿐 아니라, 이들이 어떤 짓을 했든 ‘돈을 치러서 책을 사줄 독자하고 도서관하고 학교’가 있다고 믿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가 슬기롭고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아름답고 착하면서 참하고 넉넉한 읽음님이 되어서, ‘표절작가 신경숙이 아니어도 읽을 책은 잔뜩 있단다’라든지 ‘표절작가 신경숙을 싸고돌면서 버젓이 글을 실어주는 창비 출판사나 계간지 같은 너희가 아니어도 읽을 책은 수두룩하게 있지’ 같은 마음이 된다면, 이런 엉터리는 쫓아낼 수 있을까요. 표절작가이든 ‘표절작가 글이나 책을 팔아치워서 돈을 버는 큰 출판사하고 비평가’이든, 다같이 호된맛을 못 보았으니 표절이란 짓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호된맛을 모르니 표절작가를 싸고돌 뿐 아니라, 이들을 내세워 돈에 눈먼 장사꾼 출판사로 치닫는구나 싶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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