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노래] 심사평


2019.8.30. 국립한글박물관에서 2019년에 다섯걸음을 맞이하는 ‘책 속 인물에게 보내는 한글 손편지 공모전’을 열었다고 한다. 온나라 어린이가 보낸 손글씨 글월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 어마어마한 손글씨 글월 가운데 꼭 하나만 ‘대상’으로, 꼭 여섯만 ‘으뜸’으로, 꼭 스물만 ‘버금’으로 가리는 일이란 터무니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누구는 뽑고 누구는 안 뽑고,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겠구나 싶은데, 따지고 보면 손글씨로 느낌글을 쓴 모든 어린이는 공모전에 보내기 앞서 스스로 종이에 저희 생각을 얹으면서 기쁨을 누렸으리라 여긴다. 상을 받으려고 쓴 손글씨 느낌글이 아닌, 스스로 삶이 피어나는 보람을 맛본 손글씨 느낌글이라고 할까. 이리하여 스물일곱 글자락을 애써 고르면서 다음처럼 ‘심사평’이라는 글을 손글씨로 남겨 보았다.


“책이란 우리 마음이 새롭게 나아가도록 이야기로 북돋우는 씨앗이라고 느껴요. 어린이 여러분은 저마다 즐겁게 이야기씨앗을 마음에 품으면서 즐거웠을 테지요? 손으로 쓴 느낌글에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심은 씨앗뿐 아니라, 글씨라는 씨앗, 바로 ‘글이 씨가 되어 이야기로 꽃이 피는 사랑’을 담는 보람도 누렸으리라 생각해요. 누구보다도 잘 쓰려는 글이 아닌, 가장 잘 알려진 책을 골라서 읽는 길이 아닌, 어린이 여러분이 스스로 믿고 사랑해서 곱게 아끼는 숨결을 찬찬히 헤아리는 자리였기를 바랍니다. 1학년부터 6학년 어린이까지 저마다 다른 꿈·걱정·사랑·시샘·슬픔·괴로움·바람·아쉬움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대상·으뜸·버금 같은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모든 글은 ‘꽃글’이었어요. 버금 자리에 들지 않았어도 어김없이 ‘꽃글’입니다. 이 꽃글을 늘 기쁘게 어린이 여러분 마음에 담으면 좋겠어요. 하루하루 노래하는 걸음으로 배우고 익혀서 펼쳐 보셔요. 어른은 아이를 가르치지만, 거꾸로 아이한테서 배우기에 어른이랍니다. 두 손 가득 아름다이 피어나는 오늘을 듬뿍 품고 가득 나누어 보셔요. 고맙습니다. 숲에서 태어난 바람 한 줄기를 모든 분들한테 띄웁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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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노래. 다시


1996.1.6. “다시 하겠습니다!” “뭘 다시 해? 이 ○○○○○야! ○○○○ ○○○가 어디에서 말대꾸야!”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한 사람은 이 한겨울에 더욱 차가운 내무반 바닥에 대가리를 쿵쿵 소리를 내며 박고 버티면서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하고 외치고, 다른 한 사람은 머리박기를 하는 사람을 군홧발로 있는 힘껏 걷어차면서 갖은 막말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다시 하겠다는 데에도 그토록 두들겨패야 할까. 너희가 이등병이나 일등병일 적에 그렇게 얻어맞고 살아서 너희가 병장이란 작대기를 넷 달면 그렇게 죽도록 두들겨패야 할까. 그런데 있잖아, 너희들, 다시 살고 싶지 않니? 발길질도 막말질도 따귀질도 없는 고요하며 사랑스러운 나라에서 다시 살고 싶지 않니?


2009.3.8. “다시 빨면 돼.” 새로 빨아서 보송보송 말린 이불에 아이가 쉬를 신나게 누어 주셨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 마디 “다시 빨자.” 신나게 이불빨래를 한다. 오줌쟁이 아이는 아버지가 뭘 하나 갸웃갸웃 구경하더니 저도 발로 복복 이불을 밟으면서 물놀이를 하고 싶은 눈치이다. 그래, 이불빨래가 아니라 물놀이란다. 이불을 빨래한다는 핑계로 아직 물이 꽤 차가운 이 삼월에도 즐기는 물놀이란다.


2013.12.14. 꼭 마흔 살 먹은 그림책을 다시 장만한다. 일본에서 1973년에 처음 나오고 한국에서 2008년에 처음 옮긴 그림책인데, 몇 해 앞서 한 자락 장만했는데,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못 찾아서 다시 장만하기로 한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그림책 하나 다시 장만한 줄 모른다. 그동안 찾던 책이 짠 하고 나타나니 반가울 뿐이다. 어디엔가 있는 책을 다시 산다면, 같은 책을 집에 두 자락 건사하는 셈일 텐데,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이라면 두 자락 아닌 석 자락이나 넉 자락이 있어도 즐겁다고 느낀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새롭게 느낀다. 하나는 예쁘게 건사하는 책으로 삼아, 아이들이 자라 어른 되어 저희 아이를 낳을 적에 물려주거나 선물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닳고 낡도록 신나게 들여다보는 책으로 삼을 수 있다. 예전에는 ‘같은 책 다시 살 돈’이 있으면 ‘새로운 다른 책을 하나 더 사자’고 여겼지만, 이제는 굳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다른 책을 장만할 돈은 언제라도 새롭게 벌어서 누릴 수 있다고 깨닫는다. 스스로 돈이 없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책을 장만하지 못한다고 깨닫는다. 나한테는 내가 즐겁게 읽고픈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살림이라고 생각할 때에 비로소 책을 장만할 만하다고 깨닫는다. 왜냐하면, 한 달에 오백만 원이나 천만 원을 번다 하더라도 이것 하랴 저것 하랴 한 달에 책값 만 원조차 못 쓰는 사람이 있다. 한 달에 천만 원 벌면서 이웃돕기에 만 원을 못 쓰는 사람이 있다. 한 달에 이십만 원이나 오십만 원 벌면서 이웃돕기에 만 원을 잘 쓰는 사람이 있지. 우리 집 살림을 돌아보면 한 달에 십육만 원 벌던 신문배달부 적에도 다달이 구만 원을 적금으로 부으면서 남은 돈으로 책을 사서 읽곤 했다. 돈이 아니라 마음에 걸린 일이 책읽기라고 할까. 마음이 있을 적에 책을 장만한다. 마음이 있을 적에 책을 펼쳐 읽는다. 마음이 있을 적에 책에 서린 넋을 즐겁게 받아안는다. 마음이 있을 적에 책 하나 읽으며 삶을 새롭게 가다듬어 스스로 거듭난다. 마음이 없을 적에는 책을 장만하지 않는다. 마음이 없을 적에는 책을 펼칠 틈이 없다고 여긴다. 마음이 없을 적에는 애써 책을 읽어도 책에 서린 넋을 제대로 맛보거나 살피지 못한다. 마음이 없을 적에는 책 하나 읽으며 스스로 삶을 새롭게 가꾸지 못한다. 둘레 이웃들 누구나 마음 느긋하고 넉넉하며 아름답게 하루를 누릴 수 있기를 빈다. 마음이 느긋하고 넉넉하며 아름다울 적에 비로소 책을 읽으며, 다른 이웃한테 사랑스레 손길을 건넬 수 있고, 이 지구별을 푸르게 가꾸는 빛을 베풀 테니까.


2014.1.4.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헌책집 〈소소책방〉에 들렀는데, 마침 《스타가 되고 싶어?》 1권과 2권이 있다. 아, 강경옥 님 옛날 만화책이네. 고등학생 때 읽은 만화책인데 아주 새삼스럽다. 아무 망설임 없이 장만한다. 숱하게 읽은 만화책이고, 우리 책숲에도 갖춘 만화책이지만 다시 장만한다. 차근차근 읽는다. 고등학생이던 지난날 느낌을 떠올리고, 마흔 살 오늘날 느낌을 되새긴다. 아름답구나. 예쁘구나. 이런 이야기를 그무렵 푸름이는 얼마나 두근두곤 설레면서 읽었던가. 강경옥 님 만화를 놓고서 얼마나 오랫동안 신나게 수다를 떨었던가. 그런데 1993년에서 스무 해가 흐른 2013년에 강경옥 님 만화책 가운데 《설희》를 표절한 연속극이 공중파에서 흐른다. 적잖은 사람들은 표절이고 아니고를 안 따지면서 공중파 연속극을 즐긴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은 표절인 줄 아닌 줄 하나도 모르면서 공중파 연속극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아름다움을 사랑스러운 빛으로 선보인다. 꿈씨앗을 마음밭에 심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제도 오늘도 꿈씨앗을 스스로 가꾸고 돌보면서 하루를 맑게 빛낸다.


2019.8.7. 달포쯤 앞서부터 몇 해 만에 다시 쓰는 글이 있다. 전국 곳곳 헌책집이 눈에 뜨이게 사라지면서 ‘헌책집 이야기’를 글로 쓰기가 몹시 힘들었다. 어느 곳은 미처 다시 찾아가지 못했는데 그만 문을 닫아서 끝절을 못하기도 했고, 어느 곳은 헌책집지기가 조용히 눈을 감으면서 문을 닫기도 했다. 이밖에 다른 아픈 일이 있어서 몇 해 동안 ‘헌책집 이야기’를 안 썼다고도 할 텐데, 나로서는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데에 온힘을 쏟느라 한동안 못 썼다고도 할 만하다. 전남 고흥이란 두멧시골에서 살며 어찌 헌책집으로 마실을 다니고 이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겠는가. 한 해에 고작 서너 곳조차 가까스로 다니면서 헌책집 이야기를 쓰기 어렵더라. 그런데 아이들을 낳고 돌보면서 못 쓰고 미룬 글이 많다. 2008년에 다닌 헌책집을, 2012년에 다녀온 헌책집을, 2014년에 다녀온 헌책집을, 또 2018년에 다녀온 헌책집을 그저 미적미적하면서 그때 그곳 이야기를 안 쓰고 지나갔다. 이제 이 해묵었다 싶을 이야기를 하나씩 틈을 내어 써 놓으려고 한다. 비록 이제 아무도 다시 찾아갈 수 없는 사라진 헌책집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쩌면 그만 사라지고 만 헌책집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헌책집이 책을 사랑하고 꿈꾸던 맑고 밝은 숨결을 새롭게 살려서 쓰고 싶다. 속이 저리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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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노래. 중2병


2019.7.15. 누가 ‘중2병’이란 말을 지으니 ‘중2병’이 생겨난다. 처음부터 ‘중2병’이 있을 턱이 없다. 중1이건 중2나 중3이건 아픈 아이는 아프기 마련이고, 안 아픈 아이는 안 아프기 마련이다. 초등학생부터 아프기도 하고, 고등학생까지 내처 아플 수 있다. 그리고 중2여도 고2여도 아플 일이 없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중2병’일까? 첫째, 남들이 이런 이름을 붙이면서 푸름이를 재고 따지고 등돌리는 흐름이니, 이 흐름을 고스란히 따르면서 생긴다. 둘째, 한집을 이룬 사람들끼리도 서로 하루를 그리거나 나누거나 이야기하지 않고 손전화를 오래오래 들여다보면서 따로따로 노니, 한창 철이 들며 꽃으로 피어날 아이들이 그만 축 처지거나 시든다. 활짝 피어나거나 깨어날 무렵인 열다섯이란 꽃나이가 ‘꽃나이’ 아닌 ‘병’으로 뒤바뀌는 셈이다. 2020년을 앞둔 2019년 올해를 비롯해 요즈막에는 ‘중2병’이란 엉터리 말을 내뱉거나 퍼뜨리면서 푸름이를 수렁으로 내모는 물결이지만, 내가 열다섯이란 나이를 살던 1989년에는 ‘고2병’이란 말이 나돌았다. 그런데 더 앞서 1980년대 첫머리라든지 1970년대를 떠올리면, 더 거슬러서 1950년대나 1900년대나 1800년대를 헤아리면, 그때에는 ‘열다섯 = 꽃나이’라 일컬었다. 우리는 이제껏 기나긴 나날을 ‘열다섯 꽃나이’란 이름으로 살며 푸르게 철드는 아름다운 살림을 지었으나, 현대물질문명사회에다가 제도권의무교육이 뿌리를 뻗으면서 그만 ‘꽃나이’ 아닌 ‘중2병’이란 엉터리 이름을 우리 스스로 퍼뜨리면서 아이들을 괴롭히고, 어른도 스스로 괴롭다. 이제, 엉터리 이름은 땅에 묻고 푸르게 철드는 이름인 ‘꽃나이’를 되찾아야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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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다


2002.4.26. “네? 저기, 뭐라고요? 한 달이 아닌 하루에 읽은 책이 서른 권이라고요?” “저기요, 하우에 고작 서른 권밖애 못 읽었다는 게 제 모습이고, 제가 아는 어느 이웃님은 하루에 쉰 권을 읽어요. 아, 아, 죄송해요. 보통은 한 달에 열 권 정도 읽으면 많이 읽는다고들 말하지요. 그런데, 피디님은 모르시겠지만, 책방계에는 바깥에 말을 안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책을 사랑으로 읽는 사람은 ‘시간’이나 ‘권수’로 읽지 않아요. 그래서 하루에 쉰 권뿐 아니라 백 권도 가뿐히 읽어요.” “네? 백 권이라고요?” “앗! 죄송합니다. 모르는 분들한테 함부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피디님이 모르셔서 그렇지요, 책을 사랑으로 읽는 사람한테는 하루에 쉰 권이나 백 권 읽는 숫자가 대수롭지 않고 힘들지도 않아요. 하루에 새로 태어나는 책이 몇 권인데요! 하루에 백 권을 읽는다고 해도, 하루에 이 지구라는 별에서 새로 태어나는 책을 다 읽을 수 없다고요!” “네? 아니, 뭐라고, 아니, 하루에 전 세계에서 태어나는 책이 뭐라고요?” “아무리 책을 사랑하는 사람도 이 지구에서 날마다 태어나는 모든 새로운 책을 다 읽지 못해요. 그래서 하루에 서른 권이나 쉰 권을 읽어도 다들 똑같이 말해요. ‘아아, 내가 오늘 읽은 책보다, 오늘 못 읽은 책이 더 많네!’” “…….” “후후. 피디님, 그렇습니다. 저희는요, 하루에 서른 권씩 읽으며 살아도요, 저희가 날마다 놓치는 책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요. 이 대목을 생각해 주셔요. 저희는 하루에 서른 권씩, 한 해로 치면 만 권을 가볍게 읽는다고 여기실는지 모르지만, 저희 생각으로는요, 저희는 ‘날마다 놓치는 책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책을 참 모르네’ 하고 생각하고, 우리끼리 얘기해요. 한 해에 책을 1만 권을 읽어낸다고 해서 많이 읽는 셈이 아닙니다. 이 대목을 부디 알아주셔요. 저희는 ‘모르는 책’이 대단히 많아서 ‘이 모르는 책을 알아가면서 삶을 배우려’고 즐겁게 새로운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ㅅㄴㄹ 


(숲노래 책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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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노래] 물 1994-2019


1994.6.20. 조교로 일하는 선배가 오늘 목돈을 벌었다면서 저녁에 술자리를 열 테니 같이 가자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지겹다. 그런 날이 아니어도 그냥 날마다 늘 술자리를 펴잖은가? 속으로 한숨을 쉬다가 생각한다. 옳거니, 어쩌면 오늘이 좋은 ‘날’일는지 모른다.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한다. 아주 벼르기로 한다. 활짝 웃으면서 술집으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선배한테 묻는다. “선배님!” “응? 왜?” “오늘 참말로 마음껏 술을 마셔도 됩니까?” “그래! 아까 말했잖아? 오늘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마셔! 하하하!” 선배한테서 다짐을 들었으니 되었다. 1학년 새내기인 우리들은 선배를 가운데에 앉히고 빙 둘러싼다. 500들이 맥줏잔을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놓는다. 맥줏잔을 다 놓고 돌아가려는 술집 일꾼을 부른다. “저기요, 기다려 주셔요.” 내 몫으로 500들이 맥줏잔을 받기 무섭게 한칼에 비우고 돌려준다. “다시 채워 주셔요.” 선배는 이 모습을 보더니 “이야, 술 잘 먹네! 좋아! 그렇게 마셔야지.” 그런데 500들이 맥줏잔 한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술집 일꾼이 내 잔을 새로 채워서 가지고 오면 “저기요, 기다려 주셔요.” 하고는 꼭 44벌을 되풀이했다. 500들이 맥줏잔을 한칼로 비울 적마다 손가락을 꼽으면서 셌다. 넋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셌다. 너덧 벌쯤은 선배가 웃으면서 보다가, 열 벌을 넘고 스무 벌을 넘자 선배 낯빛이 싹 바뀌었다. 그렇지만 나는 44벌까지 달렸다. 이동안 뒷간을 아예 가지 않았고, 그냥 앉은자리에서 500들이 44잔을 한칼에 비웠다. 술자리를 마칠 즈음에야 비로소 뒷간에 갔는데, 얼추 10분 넘게 오줌만 누었다. 어쩌면 20분 넘게 오줌만 누었을는지 모르겠다. 다들 내가 뒷간에 가서 쓰러진 줄 알았단다. 그러나 나는 뒷간에서 10분인지 20분인지 30분인지도 모르도록 오줌만 누었는걸.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버티고 서서 선배한테 말했다. “선배, 앞으로 후배한테 술 좀 사 주지 마세요. 후배한테 뭘 사 주고 싶으시면 그 돈으로 책을 사 주셔요. 저는 책 살 돈이 모자라서 사고 싶은 책을 다 못 사는데, 술값 말고 책값으로 해 주셔요.” 선배는 이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안하다. 앞으로 술 마시자고 안 할게. 내가 아주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뭐 그렇지만 책을 사 주겠다는 말은 안 하더라.


1994.7.14. 선배가 한 달쯤 앞서 있던 일을 까맣게 잊었나 보다. 또 “맘대로 마셔” 술자리를 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선배는 뭔가 징하게 겪어야 하는구나? 오늘도 지난달처럼 500들이 맥줏잔 한칼질을 한다. 오늘은 지난달처럼 44벌까지 달리지 못하고 40벌에서 멈추었다. 아, 40잔은 집어넣었는데 41잔째에서 더는 안 들어가네. 선배가 지난달 일을 떠올린다. “아, 지난달에 똑같은 일이 있었지!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선배, 이 짓을 두 판째 겪었으니, 이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맙시다.”


2010.2.28. 잠결에 물이 녹는 소리를 들었다 싶어 퍼뜩 깨어난다. 그러나 꿈이었다. 한숨을 쉬고 입맛을 다신다. 곁님도 잠결에 물이 녹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곁님 또한 꿈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기다린다. 늘 기다리고 언제나 기다리며 자꾸 기다린다.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내 하루하루 삶을 글로 적바림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따순 봄을 기다리면서 내 글과 사진에 조금 더 따순 기운이 스밀 수 있기를 바란다. 잠든 아이 이마를 쓸어넘긴다. 깊은 밤에 아이가 쉬 마렵다며 깨어나기에 기저귀를 푸니 벌써 오줌으로 젖었다. 오줌을 참다 못해 조금 지리고 일어났을까. 아이는 제 오줌그릇에 앉는다. 푸직푸직 소리가 난다. 아하, 요 나흘 동안 물똥을 싸더니 아직 속이 안 좋아서 이렇게 또 자다가도 물똥을 싸는구나. 아이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는다. 한참 똥을 누는 아이를 기다린다. 다 눈 아이를 안아서 밑을 씻는다. 바지를 다시 입힌다. 이제 속이 개운한지 깊은 밤인데 조잘조잘 떠들며 노래까지 부른다. 아이로서는 깊은 밤이건 한낮이건 아침이건 새벽이건 똑같을까. 놀고 싶을 때에 놀고, 잠보다 밥보다 놀이가 더 좋을까. 아침이 되어 비가 멎는다. 어제는 하루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며 도랑 얼음과 계단논 얼음도 꽤 녹았다. 그러나 다 녹지는 않았다. 아직 비가 찬비인 듯하다. 찬비를 지나 따순비가 되어야, 그러니까 그냥 봄비라 할 비가 아니라 참말로 따뜻한 봄비가 되어 온 들판과 멧자락 얼음과 눈을 스르르 녹일 수 있을 때에 우리 집 겨우내 얼어붙은 물도 녹을 테지. 똑같은 비라 할지라도 찬비는 얼음을 녹이지 못한다. 똑같은 비인데 따순비는 얼음을 녹인다. 똑같은 가슴이더라도 찬가슴은 사람들 마음을 녹일 수 없겠지. 똑같은 글이더라도 따순글이 될 때에 다른 사람들보다 내 가슴부터 사르르 녹일 수 있겠지. 이 비가 지나고 비를 몰고 온 매지구름이 물러나면 바야흐로 따스하면서 살랑바람이 부는 파란 봄하늘이 찾아올까 궁금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거듭 기다린다. 이제 집에서 빨래하고 설거지하며 걸레 빨아 집안 구석구석을 닦고 싶다.


2014.6.9. 오늘 바다로 마실을 가면서 책을 두 자락 챙길까 하다가 한 자락만 챙긴다. 동시책을 한 자락 챙기면서 틀림없이 너끈히 다 읽으리라 여겼으나, 동시책을 다 읽고 나서 더 읽을 책까지 챙기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바다로 마실을 갈 적에 책을 넉넉히 챙기면 나로서는 책을 느긋하게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바다로 가면서 책을 챙기면 책을 바라보느라 바다를 덜 바라본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끼리 놀아야 할 때가 있다. 이동안 나는 혼자 조용히 동시책을 읽는다. 동시책을 반쯤 읽고 나서 아이들한테 간다. 아이들은 모래밭에서 모래를 뒤엎느라 바쁘다. 나는 아이들을 살며시 바라보다가 바닷물 찰랑이는 데로 걸어간다. 맨발로 바닷물을 첨벙첨벙 밟는다. 아, 바닷물은 이 느낌이어서 좋지 즐겁지 싱그럽지 하고 생각한다. 혼자서 바닷물을 밟고 누비면서 재미있다. 조금 뒤 아이들이 다가온다. 바닷물을 밟으면서 노는 아버지를 알아챈다. 이제 아이들은 모래놀이보다 바닷물놀이가 훨씬 재미있다. 한여름에도 차가운 바닷물에 온몸을 담그면서 아이들은 바닷물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속으로 생각한다. 너희들 참말 물을 좋아하네. 너희들 참으로 바다가 반갑구나. 아이들은 왜 이렇게 물을 좋아하면서 즐길까 궁금하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적부터 물을 늘 마주하기 때문일까. 우리 몸은 거의 모두 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우리가 먹는 밥이 거의 모두 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바닷물에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모래밭으로 나오자고 하면서 동시책을 마저 읽는다. 아이들은 모래밭에서 살짝 있다가 다시 바닷물에 들어간다. 얼른 동시책을 덮는다. 나도 바닷물로 들어가서 아이들과 섞인다. 세 시간 가까이 바닷물을 누비면서 논다. 바다에 있는 동안 바다만 바라보고 바다만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숲에 가면 숲만 누리고 숲만 생각한다. 집에서는? 집만 바라보고 집만 생각하겠지. 마당에서 제비집을 볼 적에도, 제비집만 바라보면서 제비집만 생각한다. 바다에서 동시책을 읽으면서 바닷물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아마, 동시책보다 바닷물 소리 때문에 책을 더 살뜰히 읽었으리라 느낀다. 동시책이 아무리 아름다웠다 하더라도 바닷물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덮었으리라 느낀다.


2015.8.6. 골짜기에 깃들어 책을 읽으면 대단히 재미있다. 깊고 깨끗한 골짜기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만 해도 아주 우렁차고, 이 우렁찬 물살 소리를 가로지르는 멧새 노랫소리에다가, 바람이 나뭇잎하고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어우러진다. ‘데시벨’로 치면 아주 높은 소리가 퍼지는 골짜기인데, 이런 데에서 책을 손에 쥐면 아뭇소리가 안 들린다. 아주 고요하고 차분하게 책에 사로잡힌다. 골짜기에 깃들어 책을 읽더라도 눈길을 다른 데에 두면 괴롭다. 이를테면 여름날 휴가철을 맞이해서 시골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골짜기에 함부로 버린 온갖 쓰레기가 눈에 뜨이면 ‘책’이 아니라 ‘쓰레기’에 자꾸 눈길하고 마음이 가고 만다. 골짜기에는 ‘쓰레기를 보러’ 오지 않는데, 휴가철 언저리에는 그만 ‘쓰레기에 눈길이 가’니, 이를 어쩌나? 한 마디로 말해서 마음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는 셈이다. 도시에는 자동차가 아주 많다. 여느 때에 ‘자동차 노래’를 부르는 작은아이는 장난감 아닌 실물 자동차가 쏟아질듯이 넘치기에 눈을 뗄 줄 모른다. 도시에서는 작은아이 손을 붙잡고 걷지 않으면 자동차에 휩쓸리겠다고 느낀다. 그런데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자동차를 안 쳐다본다. 너무 많으니 안 쳐다볼 수 있을 테고, 자동차를 쳐다보면 ‘내 할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하지 못하니, 쳐다보아야 할 까닭도 없다. 골짜기에서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 골짝물하고 골짝바람하고 골짝나무하고 골짝이웃이 모두 내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도록 돕는다. 그러고 보면, 배우려는 사람들이 깊은 숲이나 절집으로 깃들려고 하는 까닭을 알 만하다. 숲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곳인가? 사람들이 고요하면서 차분한 마음이 되도록 이끄는 데가 바로 숲이다. 도시라는 곳에도 찻길하고 건물만 있지 않고 너른 숲이 함께 어우러진다면, 도시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 누구나 고요하면서 차분한 마음이 되어 사랑과 평화를 꿈꾸는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도시라는 터를 지으며 숲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잔뜩 세우는 까닭이라면, 사람들이 못 깨어나도록 할 셈이지는 않을까? 도시에 일자리를 잔뜩 마련해 놓고, 지하상가를 끝없이 뚫으며, 갖가지 문화시설이나 체육행사를 꾀하는 까닭도, 사람들이 숲이라고 하는 살림터랑 배움터를 까맣게 잊고는 쳇바퀴질을 하도록 내몰려는 속셈이 아닐까? 도시에 겨우 마련한 손바닥만 한 공원마다 그렇게 농약을 뿌려대어 잔디밭이건 나무밑이건 앉기 어렵도록 하는 까닭도, 사람들이 풀잎이나 나무한테서 바로 기운을 받아 참다이 깨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종살이에 길들도록 하려는 꿍꿍이가 아닐까?


2016.7.20. 아이들한테 가만히 속삭인다. 얘들아, 오늘은 어떤 날씨가 될까? 너희는 오늘 어떤 날씨이기를 바라니? 아이들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 다시 속삭인다. 자, 우리 하늘을 볼까? 자, 우리 바람맛을 느껴 볼까? 아침 낮 저녁으로 바람맛을 보고 햇볕맛을 보면, 날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 어렵지 않다. 그저 몸으로 누구나 알아차릴 만하다. 이러한 날씨는 마당에 설 때뿐 아니라, 마루나 부엌이나 어디에서라도 느낀다. 모든 바람은 온누리를 골골샅샅 흐르기에, 우리 마을이랑 집을 둘러싼 날씨는 내가 늘 마시는 바람결로 헤아릴 수 있다. 시골집에서 살며 마시는 물은 냇물이거나 골짝물이다. 뒷숲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나 숲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땅밑으로 흐르는 물이니 땅밑물이기도 하겠지. 여름에도 겨울에도 늘 흐르는 이 물을 마시면서 새삼스레 아이들한테 묻는다. 우리 어여쁜 아이들아, 이 냇물맛은 어떠하니? 시원하니? 맑니? 다니? 차갑니? 상큼하니? 우리 집 아이들이 삶을 읽고 살림을 읽으며 사랑을 읽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숨결로 자라기를 비는 마음이다. 이러면서 나도 삶이랑 살림이랑 사랑을 읽는 슬기로운 어른으로 아이들 곁에서 무럭무럭 크자고 꿈꾼다. 밥맛뿐 아니라 풀맛이랑 흙맛을 읽고, 바람맛이랑 비맛을 읽을 수 있는 어른으로 살자고 생각한다.


2018.8.5. 참 오래 한 가지 생각을 하면서 물에 몸을 맡겼다. ‘나는 헤엄을 못 쳐’ 같은. 이제 이 생각을 더는 안 한다. 요새는 ‘나는 물하고 사귀면서 놀고 싶어’ 하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물에서 헤엄질을 하지는 않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든, 아니면 숨을 다 내뱉은 빈몸으로든, 물속 깊이 잠기며 놀기를 즐긴다. 헤엄질도 재미있을 텐데, 자맥질도 매우 재미있다. 더구나 제법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서 얌전히 바닥에 앉아 본다든지, 엎드리거나 눕는 자맥질이 매우 재미나네. 자맥질을 할 적마다 조금씩 길게 해 보는데, 내가 물속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지낼 수 있나 놀라곤 한다. 그렇다고 아직 10분이나 20분쯤 물속에 잠기지는 못하는데, 우리 살갗이 뭍에서는 바람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듯이 물에서는 물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지 않나 하고 문득 느껴 보았다. 굳이 코나 입으로 숨을 가득 담아서 물속에 잠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살갗은 물이 몸속으로 못 들어오게 막는 구실도 하지만, 이러면서 물에 깃든 숨을 알맞게 걸러서 받아들이는 줄 느낀다면, 물속에서 얼마든지 길게 자맥질놀이를 할 만하구나 싶다. 이렇게 자맥질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다 보면, 물고기가 물속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함께 느낄 만하네. 뭍에서는 뭍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요, 물에서는 물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로구나. 우리가 뭍에서 으레 적외선 테두리로만 바라보는데, 자외선이나 감마선이나 알파선이나 베타선이나 엑스선을 볼 줄 안다면, 이러한 빛줄기를 보는 눈으로 마음을 활짝 열 줄 안다면, 더욱 재미나겠구나 싶다. 뭍하고 물을 거쳐 하늘을 날며 볼 수 있다면, 그때에는 새가 온누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배우겠지? 종이책을 한동안 덮고서 골짝물에 잠기니, 갖가지 새로운 책이 나를 이끌면서 새롭게 가르쳐 준다.


2019.7.12. 아침이면 물을 4리터 남짓 마신다. 그냥 벌컥벌컥 마신다. 물이 몸에 얼마나 잘 들어오는지 모른다. 아침마다 물을 4리터 남짓 마실 적마다 생각한다. 물을 마시면 굳이 다른 밥을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안 생긴다고. 어쩌면 우리가 물을 안 마시거나 덜 마시니까 자꾸 끼니를 채울 밥을 지어서 몸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여기지는 않을까 하고. 이렇게 물을 신나게 마시다가 어느 날에는 굳이 물을 안 마시곤 한다. 며칠쯤 다른 어떤 밥도 몸에 안 넣고 물조차 안 넣으면서 지내는데 뱃속이나 몸이 매우 가벼우면서 싱그럽다고 느낀다. 이런 때에 새삼스레 생각한다. 물만 마셔도 배가 부르고 몸이 반기기도 하지만, 굳이 입으로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짓을 하지 않더라도 살갗으로 ‘바람에 깃든 물’을 늘 받아들이니 물조차 따로 마실 까닭이 없을 수 있겠구나 하고.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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