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15 새책



  우리 낱말책에 ‘헌책’은 올림말로 있고, ‘새책’은 올림말로 없습니다. 2022년까지도 이대로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을 모르는 분이 많아 ‘새책 헌 책’처럼 띄어쓰기가 틀리는 분이 숱해요. 다만 낱말책 올림말이 아니더라도 ‘새책 헌책’처럼 둘 모두 한 낱말로 삼아야 알맞습니다. 헌책은 손길을 타거나 읽힌 책이라면, 새책은 손길을 안 타거나 안 읽힌 책입니다. 헌책은 새롭게 읽는 책이라면, 새책은 처음으로 읽는 책입니다. 헌책은 새롭게 잇는 책이라면, 새책은 아직 모르는 곳으로 첫발을 디디는 책입니다. 2000년에 태어난 분이 헌책집에서 1950년 책을 만나서 읽을 적에는 ‘살림(물건)으로 보면 헌책이되, 줄거리·이야기로 보면 새책’을 맞이한다고 하겠습니다. 아직 모르는 모든 책이 새책입니다. 처음으로 마주하면서 생각을 새삼스레 일으킬 새책입니다. 온갖 헌책을 바탕으로 새록새록 여미거나 지어서 선보이기에 새책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낯설지만 설레는 길을 가만히 이끌거나 북돋우는 새책입니다. 우리말 ‘새’는 ‘사이’를 줄인 낱말입니다. 곧 ‘새책 = 사잇책’이요, 이곳(익숙한 여기)하고 저곳(모르는 저기) 사이에 있으면서 둘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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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2.5.4.

책하루, 책과 사귀다 114 헌책



  대구에서 2022년 5월부터 새롭게 여는 마을책집 한 곳은 바깥기둥에 김수영 노래책(시집)을 붙입니다. 제법 값나가는 ‘헌책’을 누구나 바라볼 수 있도록 붙이셨더군요. 이 책은 사람들 눈길을 이따금 받고 햇빛도 받으면서, 천천히 바래리라 봅니다. ‘헌책’을 모르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새책집에서 장만한 모든 책은 곧바로 헌책입니다. 책숲(도서관)이 품은 모든 책은 여러 사람 손길을 타니 언제나 헌책입니다. 우리가 집에 들인 책은 다 헌책입니다. 새것으로 사건 헌것으로 사건 모두 헌책입니다. “헌책 = 만진 책”이란 바탕뜻이요, “헌책 = 손길을 탄 책”이란 다음뜻이며, “헌책 = 읽힌 책”이란 속뜻입니다. 겉이 바래거나 속종이가 누런 헌책을 집어들어 넘겨 본다면, 이때부터 ‘책을 마주하는 매무새’가 바뀝니다. 보시겠어요? 허름한 책이건 갓 새책집에 놓인 책이건 ‘줄거리·알맹이·이야기’가 똑같습니다. 겉모습 탓에 줄거리가 휘둘릴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속읽기’를 하려고 책을 쥡니다. 글쓴이나 펴냄터 이름값을 잊어버리고서 오직 ‘속살’을 바라볼 적에 슬기롭게 책을 받아들입니다. 손길을 타면 헌책은 새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땅에서 거듭나는 책은 하늘빛을 품으니 “헌책 = 하늘책”이란 참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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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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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2.5.2.

책하루, 책과 사귀다 113 자기반성과 자기자랑



  스스로 한 짓이 창피하거나 부끄럽다면서 이른바 ‘뉘우침(자기반성)’을 한다는 글을 쓰는 글바치가 제법 있습니다만, 적잖은 ‘뉘우침글(자기반성문)’은 어쩐지 ‘나자랑(자기과시)’으로 읽힙니다. “모임자리(파티)에 가려고 예쁜 옷을 너무 많이 사서 너무 헤펐다고 뉘우침글을 쓰는 글바치”가 참말로 뉘우치는 빛일까요? 그이는 ‘예쁘고 비싼 옷을 잔뜩 살 만큼 돈이 많다’는 ‘나자랑’을 하려는 속내인데, 마치 ‘뉘우침’이기라도 되는 듯 꾸민 셈 아닐까요? 시내버스삯이 얼마인지 모르는 분, 하늘집(옥탑방)하고 땅밑집(지하방)이 어떤 곳인지 이름조차 모르는 분, 가난살림을 겪은 적이 없는 분, 똥오줌기저귀를 손수 빨고 삶아서 널고 곱게 개어 아기 샅에 댄 적이 없는 분, 아기를 안고서 디딤칸(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땀을 뺀 적이 없는 분, 호미를 쥐어 씨앗을 심은 적이 없는 분, 나무를 타고서 논 적이 없는 분, 스무 해 넘게 입느라 해진 바지를 손수 바느질로 기운 적이 없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는 ‘뉘우치는 시늉을 하는 자랑글’을 어느 만큼 알아채는가요? 우리는 ‘뉘우치는 척하며 뽐내는 글’이 얼마나 겉치레요 허울좋은 달콤발림인가를 곧장 눈치채면서 부드러이 나무랄 줄 아는 마음빛이 있는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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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2.5.1.

책하루, 책과 사귀다 112 검은꽃



  저는 이따금 “나는 왜 인천에서 태어났지?” 하고 생각합니다. 문득 마음속으로 “다 뜻이 있어.” 하는 소리가 흐릅니다. “뭔데?” “훗. 네가 알 텐데?” 알쏭한 소리가 그치고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인천에 ‘인천제철’이 있어 빨래를 바깥이나 마당에 내걸지 못했는데, 인천에는 ‘공단’이 월미도에 화수에 송현에 주안에 부평에 남동에 검단에 …… 어딜 가든 수두룩합니다. 공단에 못 끼는 공장은 더욱 많아요. 발전소도 폐기물처리장도 흘러넘쳐요. 서울·경기 쓰레기를 인천에 파묻거든요. 인천에서 찍어낸 공산품은 으레 서울·경기로 보냅니다. 그런데 인천제철뿐 아니라 유리공장에 화학공장에 자동차공장에 …… 아, ‘인천새’는 두루미라지만 두루미가 어디에서 어찌 살까요? 경인고속도로에 경인철도에 골목사람은 미닫이를 꾹꾹 닫아걸어도 집안에 스미는 쇳가루에 깜먼지로 날마다 콜록거렸고, 거의 모든 아이들은 코앓이(축농증)나 살갗앓이(피부병)로 시달렸어요. 이런 인천을 드디어(?) 제대로(?) 떠나 전남 고흥에 2011년에 깃들고서 2017년부터 포항마실을 합니다. 포항에 아름다운 마을책집이 여럿 있거든요. 그런데 포항엔 포항제철·현대제철이 있군요. 이야, 포항 쇳가루를 마셔 보니 아련한 먼지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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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11 시험공부



  여태껏 살며 하기 싫다고 여긴 일이 있나 돌아보면 ‘없다’입니다. 참으로 없나 하고 짚으니 그야말로 없습니다. ‘싫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싶으면 “다 뜻이 있겠거니.”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싫다’를 녹였어요. “여태 굳이 안 한 일을 맞닥뜨리며 뭔가 보고 배우겠거니.” 하고 스스로 추슬렀어요. ‘싫다’는 느낌이 피어오를 적에는 몇 가지 난달이 있습니다. 첫째, 달아나기. 그런데 달아나면 이 싫은 일은 끝까지 찾아와요. 둘째, 받아들이기. 아무리 싫다 싶어도 그냥 받아들이고 보면 어느새 아무것이 아닌 일로 녹아서 사라져요. 셋째, 싫은 일이니 싫어하면서 하기.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싫다는 마음을 품고서 싫은 일을 해보면 마음이 죽고 몸이 지쳐요. 몸에서 안 받는 김치는 이제 거들떠보지 않고, 살갗에 두드러기가 돋는 차림옷(양복)은 이제 안 입고, 생각날개를 펴는 길하고 어긋나는 짓이어도 돈벌이가 되는 일은 처음부터 손사래칩니다. 둘레를 보면 ‘셈겨룸(대학입시)’을 바라보며 숨죽이는(시험공부하느라) 푸름이가 너무 많습니다. 푸른날을 숨죽인 채 살면 열린배움터에 들어가도 숨을 못 펴지 않나요? 셈겨룸을 버리고, 마침종이(졸업장)를 잊어야, 비로소 책다운 책을 읽고 피어날 수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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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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