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책집에는 새로 나오는 책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흐른다면, 헌책집에는 지난날 나와서 사라진 책으로 오래된 이야기가 나란히 흐릅니다. 요즈음 나오는 새책으로도 페미니즘이나 사진이나 여행이나 역사나 육아를 밝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지난날 나온 헌책으로도 페미니즘이나 사진이나 여행이나 역사나 육아를 밝힌 이야기를 엿보면서 ‘오래된 페미니즘’을, 이른바 ‘오래된 노래’를, ‘오래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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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하고 오늘



  어제 우리는 책집마실을 으레 즐겼습니다. 어제는 오늘날처럼 누리책집이 없었으니 스스로 다리품을 팔아야 비로소 책을 만날 수 있었고, 헛걸음을 하더라도 다시 찾고 또 찾고 거듭 찾으면서 책 하나를 고마이 품에 안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책집마실을 다니려고 다리품을 팔 적에는 책만 만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책을 만날는지 설레면서 마음에 새바람이 불었고, 책집으로 가는 마을이나 골목이나 시골길을 누렸어요. 오늘날 우리는 책집마실을 굳이 안 해도 누리책집에서 손쉽게 책을 만납니다. 오늘날에도 책을 고마이 품는 분이 있습니다만 지난날하고는 좀 달라요. 지난날에는 고마이 품은 책을 건사하다가 이웃한테 물려주거나 헌책집에 기꺼이 내놓아 가난한 이웃이 넉넉히 ‘새 헌책’을 누리도록 다리를 놓았으나,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개인 누리책집’을 열어서 ‘새 헌책’을 장사하곤 합니다. 새 헌책을 장사하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누리책집으로 책을 만나는 일도 재미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다리품을 파는 책집마실이 줄어들면서 책집마실을 하는 동안 이웃집이나 이웃마을이나 이웃골목을 차분히 돌아보고 헤아리면서 두근두근한다든지 새로 보고 배우는 숨결이 좀 옅어집니다. 손쉽게 책을 얻거나 개인 누리책집을 여는 길을 얻었다면, 이만큼 우리 손을 떠나거나 잃거나 잊는 삶과 사랑도 있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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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모든 글은 쓰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사랑은 나누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책은 읽히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꿈은 이루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길은 걷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삶은 가꾸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마음은 아끼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아이는 돌보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슬기는 살리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밥은 먹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모든 빛은 밝히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도록 하려고 읽힌다면 애써 태어난 책이 썩 달가워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사라지지 않도록 읽힐 책이기보다는, 사랑하도록 읽을 책이요, 삶을 가꾸는 길에 즐겁게 피어나는 꿈을 배우도록 곁에 두는 책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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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는 척하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책 가운데 ‘삶을 짓는 길’을 들려주거나 밝히는 책은 몇 가지일까요? 잘 팔리거나 꾸준히 팔리는 책 가운데 ‘사랑을 짓는 길’을 얘기하거나 짚는 책은 몇 가지일까요? 우리는 ‘짓는 길’을 걷는 책이 아니라 ‘짓는 척하는 길’을 달콤쌈싸름하거나 이쁘장하게 꾸며 놓은 책에 홀린 채 길을 잃는 하루는 아닐까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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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모름지기 낫을 쥐어 풀을 벨 적에는 몸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납작 엎드리지 않고 구부정하게 손만 바닥으로 뻗으면 등허리가 휠 테지요. 풀베기이든 벼베기이든 보리베기이든 다 같아요. 신을 벗고 맨발로 맨흙을 밟으면서, 때로는 무릎을 꿇거나 엎드린다 싶을 만큼 흙바닥하고 하나가 되어 낫을 가볍게 놀리면 풀포기나 벼포기나 보리포기는 석석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눕습니다. 풀포기는 기계 아닌 손길 흐르는 낫으로 벨 적에 반깁니다. 맨발에 맨손으로 맨흙을 밟고 맨풀을 쥐어 보셔요. 그러면 풀하고 흙이 낫질을 어떻게 하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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