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으로 읽다



  두 눈으로 읽는 책이 있고, 마음으로 읽는 책이 있습니다. 두 눈을 뜨기에 보이는 책이 있고, 두 눈을 감으니 보이는 책이 있습니다. 삶으로 쓰거나 지식으로 쓴 책이 있다면, 꿈으로 쓰거나 사랑으로 쓴 책에, 살림으로 쓴 책이나 졸업장으로 쓴 책이 있어요. 이름값이나 손재주로 쓴 책도 있고, 저마다 즐거이 걸어온 길대로 쓴 책이나, 숲을 짓는 마음으로 쓴 책에, 바람 담는 품으로 쓴 책이 있어요. 어떤 책을 두 눈으로 알아보든 두 손에 바람 같은 숲내음이 흐르는 책을 쥘 수 있다면 아름답습니다. 어느 책을 마음으로 읽거나 새기든 온몸으로 숲길을 걸어가는 기쁜 웃음짓으로 새롭게 책을 곁에 둘 수 있으면 사랑스럽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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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걸음 읽기



  둘레에서 저한테 으레 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제발 남보다 한 걸음 앞서 가려 하지 말고, 반 걸음만 앞서 가라”입니다. 이 말이 때로는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제 삶하고는 안 맞습니다. 저는 반만 살다 죽을 수 없고, 제가 할 일을 반만 하고 끝낼 수 없습니다. 둘레에서 저를 잘 모를 뿐인데, 저는 무척 오랫동안, 거의 마흔 해를 ‘반걸음질’로 살았습니다. ‘온걸음질’이 아닌 반걸음질을 말이지요. 반걸음질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말 그대로 반토막 삶입니다. 반만 산 셈입니다. 생각해 봐요. 말을 할 적에도 ‘온말’을 할 노릇이지, ‘반말’을 하면 어떤가요? 책을 애써 샀는데 반만 읽어도 좋은가요? 책을 반토막만 살 수 있나요? 책을 샀으면 오롯이 읽을 노릇 아닌가요? 책을 온것으로 살 일이겠지요? 글쓰기에서도 똑같아요. 둘레에서 저러더 “제발 반 걸음만 앞서 가서 글을 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례사 비평을 하란 소리입니다. 좋은 얘기 반만 하고, 궂은 얘기 반은 굳이 하지 말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반토막 글쓰기, 이른바 주례사 비평을 하면 누구한테 뭐가 좋을까요? 글이나 책에 궂은 줄거리가 있도록 쓴 사람한테도, 이웃님(독자)한테도 좋을 일이 하나 없어요. ‘반토막’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그 반토막을 제가 따라주면 다시 반토막을 더 말합니다. 그 반토막을 할 수 있으니 다시 뒤로 더 물러나라 하지요. 이러다 보면 어떻게 되나요? 바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제자리걸음이에요. 반걸음만 앞서 가면서 사람들한테 맞추어야 좋다고 말하는 분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에서 멈추거나 때로는 뒷걸음질까지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온걸음’을 떼어야 합니다. 온걸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노릇입니다. 한 걸음씩 걸어야 비로소 앞이 트입니다. 사람들한테 맞출 노릇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라볼 앞길을, 빛줄기를, 새삶을, 노래를, 사랑을 즐겁게 나아갈 노릇입니다. 하나 더 헤아린다면, 아픈 사람더라 “반만 나으십시오” 하고 말하면 어떨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롯이 나아야지 반만 나을 수 없습니다. 반걸음만 나을 수 없어요. 온걸음으로 다 나아야 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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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화를 흘린 하루



  아침 일찍 길을 나서다가 시골버스에서 손전화를 흘렸습니다. 흘린 손전화를 되찾지 못했습니다. 자리에 흘렸구나 하고 깨닫고는 버스로 돌아가서 둘러보았지만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잃어버린 손전화를 새로 장만해야 하니 일이 갑자기 생기고 돈도 나갈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오늘 하루는 아주 길었습니다. 잃은 손전화를 찾으려고 뛰어다니느라 길었다기보다, 손전화 없이 시골길을 걷고, 집일을 조금 건사하다가 등허리를 펴려 눕고, 저녁일을 보고, 작은아이하고 누워서 말을 섞고, 이모저모 하는데 며칠이나 몇 해쯤 흐른 듯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손전화를 손에 쥐면서 매우 먼 곳에 있는 벗이나 이웃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말에 치이느라 하루를 잃을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놓아 온나라를 하루 만에도 오간다지만, 막상 그리 빨리 오가면서 하루가 더 길어졌을까요? 오히려 하루가 더 짧고 바쁜 삶은 아닐는지요? 우리가 책을 읽을 수 있다면 하루가 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책을 못 읽는다면 하루가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tsf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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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책집, 한칸책터



  책집은 만 평이나 십만 평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터는 백 평이나 천 평쯤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집이든 책터이든 만 권이나 십만 권이나 백만 권쯤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한 뼘만큼 작은 책꽂이를 둔 책집이어도 좋습니다. 한 칸짜리 책시렁을 놓은 책터여도 아름답습니다. ‘한뼘책집’하고 ‘한칸책터’를 곳곳에서 누구나 느긋하게 누릴 수 있으면 사랑스럽습니다. 으리으리한 집을 짓는 도서관이 없어도 됩니다. 마을 한켠에, 골목 어귀에 책꽂이 하나 두고서 ‘한칸도서관’을 꾸며도 되어요. 전시관이나 공연장이나 약국이나 빵집 한켠에 ‘한켠책집’을 꾸며 놓고서 어슬렁어슬렁 다니다가 책 하나 장만해서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길도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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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더라도



  책을 읽더라도 이웃님 삶을 제가 고스란히 따라가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웃님 삶을 지켜보면서 배울 뿐입니다. 제가 책을 읽을 적에는 저 스스로 앞으로 새로 지을 살림을 얼마나 슬기롭고 고우면서 착하게 거듭나는 길을 걸을 적에 즐거울까 하고 배우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종이라는 책도 읽고, 바람이라는 책도 읽으며, 풀잎이라는 책도 읽습니다. 아이 눈망울이라는 책, 곁님 손길이라는 책, 비님 따스함이라는 책을 비롯하여 온누리 모든 책을 두루 읽고, 스스로 걸어가는 하루라는 책을 새삼스레 씁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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