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에서 길을 묻는데

 


  월요일에 고흥을 떠나 순천을 지나 통영에 닿은 뒤 시외버스로 다시 마산에 갈 적이다. 길을 잘 모르겠기에 시외버스역 일꾼한테 어느 곳으로 걸어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느냐고 길을 여쭈는데, 한심하다는 말투로 거기까지 걸어갈 생각 말고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면서 내 고무신을 흘낏 보더니 “저기 마트에 가서 신부터 사서 신으쇼.” 하고 내뱉는다.


  이런 이들하고는 말을 섞을 일이 없을 뿐더러,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아깝기에 혀를 쯔쯔 차고는 내 갈 길을 갔다. 먼 길이건 가까운 길이건 자가용을 몰든 택시를 타든 천천히 걷든 그곳을 가는 사람 마음이다.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은 천천히 걸어서 사진을 찍을 생각이니 걸어가는 길을 묻는데, 왜 뚱딴지 같은 이야기를 할까. 게다가 요즘 이 나라에서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을까? 참 야릇한 사람들이다. 이런저런 일로 마산을 몇 차례 스치곤 했는데, 모든 마산사람이 이녁과 비슷하지는 않을 터이나, 이런 이들이 살아가는 곳은 스쳐서 지나가지도 말자는 생각이 든다. 4347.3.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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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가 살아온 나날



  서울마실을 한다. 2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걷는다. 망원역으로 가는 길이다. 전철역으로는 하나이지만, 인천부터 달린 전철을 새로 갈아타서 기다리기보다는 밖으로 나와 걸을 때에 더 나으리라 여긴다. 갈아타느라 땅밑길을 더 걷고 싶지 않으며, 아이들하고 바깥바람을 쐬며 햇살과 하늘을 마주하고 싶다.


  큰길가를 걷다가 자동차 소리가 너무 시끄럽기에 큰길 안쪽 골목을 걷는다. 시골 아닌 서울인만큼 골목을 걷더라도 큰길 자동차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린다. 인천만 해도 골목으로 접어들면 큰길 자동차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서울은 참 자동차가 많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골목에도 자동차가 끝없이 오간다. 좁은 골목마다 두 줄로 자동차가 선다. 사람이 걸어서 지나다니기 고단하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좁은 골목을 지나가면서 무엇을 생각할까. 골목이 좁은 까닭은 자동차를 두 줄로 세운 탓인 줄 얼마나 느낄까. 골목이 좁은 까닭은 바로 이녁 스스로 골목에 자동차를 들이밀고 지나가기 때문인 줄 얼마나 알까.


  작은아이 손을 잡고 걷다가 문득 무언가를 본다. 이 골목에 나무가 있나 없나 살피며 걷다가, 골목집 담벼락에 붙은 나무기둥 하나를 알아차린다. 아, 너 나무전봇대로구나. 그렇지만 몸통이 잘린 나무전봇대로구나. 게다가 담벼락과 하나가 되면서 예전에 네가 나무전봇대였는지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조차 없구나. 어쩌면 너는 담벼락과 하나가 되었기에 이 모습을 아직 그대로 남길 수 있겠구나. 담벼락과 하나가 되지 못했으면 밑동부터 잘리며 오롯이 사라져야 했겠지.


  서울 시내에는 나무전봇대가 얼마쯤 남았을까. 서울 시내 나무전봇대를 알뜰히 돌보거나 건사하는 손길이나 눈길은 있을까. 나무전봇대 자국으로 남은 이런 예쁜 나무기둥은 얼마나 있는가. 나무기둥으로 남은 나무전봇대가 사람들 삶자국을 보여준다고 깨닫거나 헤아릴 사람은 얼마나 될까. 4347.3.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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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임석재 (‘골목마실’ 사진에 붙이는 말)

 


  《서울, 골목길 풍경》(2006)이라는 책을 내놓은 건축가 임석재 님이 있다. 나는 이 책이 ‘소재는 골목길’이지만, 그저 ‘건축 이야기’만 풀어놓는다고 느낀다. 골목도, 골목빛도 보여주지 못하는 책이라고 느낀다. 건축을 읽으려고 골목 몇 군데를 돌아보았을 뿐, 골목이 이루어지는 흐름과 까닭과 삶과 사랑은 한 줄조차 못 담았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안타깝게도, 이녁은 골목을 거닐면서 ‘사람내음’을 맡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골목동네를 이룬 사람들 냄새, 골목동네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냄새, 골목동네에서 어깨를 맞대며 작은 집이 촘촘히 이어진 그곳에서 사랑하는 냄새, 들을 맡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반드시 골목에서 나고 자라야만 골목 이야기를 잘 읽거나 제대로 읽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골목에서 나고 자랐어도 ‘하루 빨리 골목을 떠나고픈 사람’한테는 골목빛이 안 보인다. 조용히 삶을 즐기는 사람일 때에는 골목동네에서 살지 않아도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 골목빛을 느낀’다.


  2005년에 숨을 거둔 김기찬 님이 있다. 나는 김기찬 님 사진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김기찬 님은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골목동네를 마실하면서 살갑고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었으나, ‘나그네’라는 옷을 벗지 못하셨다. 나그네 허울을 벗었으면 얼마나 예뻤을까. 사진잔치를 골목동네에서 했다면, 골목동네에 조그마한 달삯방을 얻어서 한 주에 하루쯤이라도 작은 달삯방에서 먹고자면서 골목숨을 느껴 보셨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날마다 ‘출근 도장’을 찍듯이 찾아와서 나들이를 하는 동안 마주하는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골목집에서 먹고자면서 새벽에 느끼고 아침에 맞이하며 낮에 복닥이면서 저녁에 어스름과 함께 찾아들다가 밤이 되어 그윽하게 서리는 빛이 있다. 이러한 빛은 골목동네 사람으로서, ‘동네 주민’으로서 살 때에 비로소 맛본다. 김기찬 님 골목 사진에는 바로 이 ‘골목맛’이 없다.


  그렇지만, 김기찬 님은 ‘출퇴근 도장’을 찍듯이 아주 자주 골목마실을 하셨다. 비록 동네 주민은 못 되었지만 ‘나그네’로서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겼다. 나그네답게 동네 주민과 따사롭게 만나고, 홀가분하게 어울리면서, 골목동네 사람들 속내와 속살과 속말을 사진으로 푼더분하게 담았다.


  이와 달리 임석재 님은 나그네도 아니고 주민도 아니었다. 그저 ‘구경꾼’으로 골목을 드나들었다. 이 눈길과 발걸음은 얼마나 다른가? 왜 학자는 하나같이 구경꾼이 되기만 할까? 강 건너에서 구경하는 불이란 얼마나 잘 바라보면서 ‘기록’하는 학문이 되는가?


  학자들이 ‘강 건너 불구경 학문’에 머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학자들이 강 너머로 헤엄쳐서 건넌 뒤, 불난 동네에서 불을 끄려고 하든, 불난 사이사이를 거닐든 하기를 바란다. 사진 한 장 덜 찍어도 된다. 사진 한 장 더 찍어야 하지 않는다. 스스로 동네 주민 되어 동네에 녹아들면, 사진 한 장을 덜 찍더라도, 이녁이 담는 사진마다 아름다운 빛이 스민다. 이때에 시나브로 골목빛이 태어난다.


  ‘인간미 없는 학문’은 재미없다. ‘인간미 없는 학문’으로 골목을 바라보아 기록했다면, 이런 기록은 학문이 될는지 모르나, 골목동네 사람들한테 스며들거나 다가설 수 없다.


  얼마쯤 지내다가 떠날 구경꾼으로서 바라보는 골목 모습이란 무슨 멋이 있겠는가. 몇 차례 드나들다가 더는 찾아오지 않을 구경꾼으로서 지켜보는 골목 모습에 얼마나 잘 속속들이 찬찬히 살가이 따사롭게 바라본 이야기가 있겠는가.


  김기찬 님은 언제나 나그네였지만, 아예 작정하고 나선 나그네였기에, ‘아름다운 인간미’를 잃지 않고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임석재 님은 ‘학문에 매달린 구경꾼’ 발걸음만 이은 탓에 학문은 되었을는지 모르나, 이야기는 풀어놓지 못한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 바로 이런 삶이 모인 나라가 아름다운 나라가 된다.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가 잘 해야 아름다운 나라 되지 않는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제 삶자리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면, 이때에 아름다운 나라이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구경꾼이나 나그네 아닌 ‘마을사람’이나 ‘동네사람’으로서 제 보금자리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며 ‘제 보금자리 이야기’를 적바림하기를 빈다. 4347.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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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나누는 골목집

 


  아파트는 햇볕을 나누지 않는다. 빌라 또한 햇볕을 나누지 않는다. 새마을주택이건 적산가옥이건 판잣집이건, 나즈막한 골목집은 모두 햇볕을 나누면서 살아왔다. 골목집을 허무는 때부터 햇볕은 돈이 더 있는 사람들 집이 몽땅 끌어안는다. 서로 어깨 맞댄 채 살던 작은 사람들은 햇볕을 함께 골고루 나누려고 했지만, 돈을 움켜쥔 사람들은 이녁 아파트와 빌라에만 햇볕이 들도록 새 건물 높이높이 넓게넓게 올린다.


  왜 시골사람이 이층으로 안 올리고 마당을 넓게 두었을까. 시골에서 자라다가 도시로 와서 뿌리내린 사람들이 왜 이층으로 올리더라도 이웃집에 햇볕이 깃들 수 있도록 살피면서 마당을 꼭 따로 두었을까.


  어떤 빌라에도 마당이 없고 꽃밭이 없다. 어떤 아파트에도 꽃밭이나 마당은 아주 비좁을 뿐 아니라 이곳에 햇볕이 들도록 마음을 쏟지 않는다. 어떤 빌라나 아파트에도 이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마당이나 꽃밭이나 텃밭을 누리도록 짓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다가 손바닥만 한 빈틈이 생겨 나무가 자라고, 나무가 자라는 곁에 찰싹찰싹 달라붙어 새봄 기다리는 풀이 돋는다. 도시에서도. 서울 한복판에서도.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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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골목에는 참깨꽃

 


  도시인 인천에서 골목마실을 할 적에는 골목집과 골목길 잇닿는 시멘트 마감이 햇볕에 바래고 빗물에 삭아서 틈이 나곤 한 데에 뿌리를 내린 골목꽃을 흔히 만났습니다. 봉숭아도 자라고 맨드라미도 자라요. 언젠가 패튜니아가 인천 골목집과 골목길 사이 틈바구니 아주 조그마한 데에서 돋아나 꽃송이 활짝 벌린 모습을 보기도 했어요.


  시골인 고흥에서 살아가며 고샅꽃을 봅니다. 시골은 골목 아닌 고샅이요, 예전에 모두 흙길이던 데를 시멘트로 바르며 시골집과 고샅길 사이에 틈바구니 조그맣게 벌어집니다. 시골에서도 햇볕에 바래고 빗물에 삭으며 틈바구니 생기고, 이곳에서 온갖 풀씨가 날아들어 뿌리를 내립니다.


  가을걷이로 한창 바쁜 요즈음, 집집마다 콩을 털고 깨를 텁니다. 콩알은 제법 굵다 할 테지만 깨알은 아주 작습니다. 깨알을 털면서 바닥에 넓게 자리를 깔지만, 자리를 벗어나 뒹구는 깨알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이 깨알은 바람을 타고 시멘트 시골 고샅길을 돌돌 구르다가 틈바구니 만나 기쁘게 깃들어 뿌리를 내립니다. 빗물이 스미고 햇살 한 조각 스밉니다. 시골마을 고샅 틈바구니에서 어느새 조그맣게 줄기가 오르고 자그맣게 꽃송이 벌어집니다.


  시골 고샅에서는 참깨꽃입니다. 시골 고샅꽃은 참깨꽃입니다. 이 가을 지나고 겨울 지나 봄이 새로 찾아오면, 바로 이 틈에서 유채꽃도 피어나겠지요. 이때에는 유채꽃이 새삼스레 시골 고샅꽃 됩니다.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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