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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기쿠보 런스루 2
유키 링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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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1.10.

목매달기보다는 길목에 서기


《니시오기쿠보 런스루 2》

 유키 링고

 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20.7.15.



  《니시오기쿠보 런스루 2》(유키 링고/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20)을 읽으며 서로 무엇을 맺고 펴면서 길을 여는지 돌아봅니다. 길을 열고 싶다면, 마음부터 열면 됩니다. 길을 트고 싶다면, 눈길부터 트면 되어요.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으니 길을 못 보거나 안 봐요. 스스로 눈길을 안 트니까, 파랑새가 내려앉은 우리 집 마당을 못 느끼거나 안 느낍니다.


  구름은 온누리 어디나 흐릅니다. 바람은 푸른별 모든 곳에 스밉니다. 아무리 깊디깊은 바다라 하더라도 햇볕이 깃들어요. 모두 하나인 숨빛이고, 다 다르게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굳이 너를 닮아야 할 내가 아닙니다. 애써 나처럼 따라하거나 뒤따라야 할 네가 아닙니다. 때로는 손을 잡거나 어깨를 겯고서 나아가되, 때로는 다 다른 곳에서 스스로 즐기는 살림을 지을 노릇이에요.


  모두 갖춘 사람이라면 무엇을 할까요? 오롯이 빛나는 사랑이라면 어떻게 말을 할까요? 모두 해내는 사람이라면 일을 어떻게 맡기거나 나눌까요? 오달지게 살림을 꾸린다면, 이 보금자리와 마을과 나라는 어떻게 반짝일까요?


  《니시오기쿠보 런스루》에 나오는 사람들은 크든 작든 눈치를 봅니다. 눈치를 안 보는 척하지만 눈치를 봅니다. 보고 싶다면 눈치가 아닌 눈빛과 눈길을 볼 노릇이에요. 저렇게 해야 하지 않고, 이렇게 가야 하지 않습니다. 잘 보이도록 고치거나 세워야 하지 않아요. 그저 사랑을 담아서 손대고 추스르고 가꿀 일입니다. 언제나 사랑씨앗 한 톨을 심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놀이를 하고 노래를 하고 쉬면 즐거워요.


  달리기를 해요. 달아나려는 달리기일 수 있고, 그냥 바람을 마시려는 달리기일 수 있습니다. 달릴 만한 곳이 없는 서울 한복판이라면, 곧장 서울에서 빠져나가요. 부릉부릉 시끄러운 곳에서 달아나 봐요. 새가 노래하고 흙내음이 그윽한 곳으로 달려가요. 신을 벗고 가벼운 차림새로 훅훅 숨을 고르면서 뛰고 달려요.


  파랗게 일렁이는 바람을 품기에 느긋합니다. 파란바람이 품는 구름이 뿌리를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이들이기에 시원합니다. 비랑 바람이랑 해를 곁에 둘 줄 안다면, 어떤 굴레에도 목매달지 않습니다. 해바람비를 품고 풀어내기에 새롭게 길목에 서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ㅅㄴㄹ


#ゆき林檎 #西荻窪ランスル?


‘분하다. 재능 좀 있다고. 얕보이지 않게 해야겠어.’ (34쪽)


“5명 있으면 다섯 개의 표현이 있을 테고 그걸 모모세가 어떻게 그려낼지 미츠 감독은 보고 싶은 걸 거야.” “그게 부담스러운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 모모세는 프라이드가 높아서 부정당하는 게 두려운 거구나.” (61쪽)


“모모세, 콘티는 잘 되고 있고?” “마감일까지는 될 것 같아요.” “좀 전에 하던 얘기 말인데, 난 실력 있는 자만 남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오만하다고 생각해.” (74쪽)


“산죠 씨 바로 위에 지금까지 갖고 싶어했던 게 있어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죠. 근데 산죠 씨는 두 손에 이미 뭘 쥐고 있어요. 그럼 어쩌시겠어요? 두 손에 쥔 게 있으니 이번엔 패스할래요? 아니면 손에 쥔 걸 버리고 잡을래요?” (148쪽)


‘재능 있고 일 잘하는 애는 회사에 있어 주길 바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하다 보면 부족하게 느껴지는 심정도 이해한다. 더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고 다른 현장을 알고 싶고. 얼마나 됐을까. 사람을 내보내고 다시 맞이하는 내 입장을 받아들이게 된 게.’ (1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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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신장판 1~10 박스세트 - 전10권 (완결)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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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3.12.26.

숲이 들려주는 말


《붓다 8 빛의 성지 기원정사》

 데스카 오사무

 장순용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0.12.31.



  《붓다 8 빛의 성지 기원정사》(데스카 오사무/장순용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0)를 되새깁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빚은 《붓다》는 ‘붓다·부처·석가모니’ 한 사람이 걸어온 길과 넋과 숨결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느 한 사람 발자취를 넘어, 온누리 누구나 스스로 품고서 사랑할 빛이 무엇인지를 짚고 알려줍니다.


  붓다라는 사람이 붓다가 된 까닭은 쉬워요. 스스로 사랑을 품으려고 했어요. 힘이나 돈이나 이름이 아닌, 오직 사랑을 품으려 했기에, 숲짐승이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듣고 들려줍니다. 오롯이 사랑으로 살아가려 했기에, 사랑빛을 품은 수수한 사람들은 어떤 바보나라에서 살아가더라도 아이들한테 아름살림을 물려주었습니다.


  우두머리를 잘 뽑기도 해야 하지만, 우두머리에 앞서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부터 가꾸고 나누어 아이들한테 물려줄 노릇입니다. 우리 보금자리를 뒷전으로 놓고서 우두머리를 쳐다본들 하나도 안 바뀝니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아이들이 아늑하지 않은 판에, 어린이집이나 배움터만 으리으리하게 꾸민들 바뀔 일이 없어요. 사람들 누구나 느긋하면서 즐겁게 보금자리를 누리지 못 하는 판에, 갖은 총칼을 잔뜩 갖춘들, 나라가 아늑하거나 포근하지 않아요.


  모든 삶은 집에서 비롯합니다. 우리 몸은 우리 넋이 깃든 집입니다. 저마다 스스로 몸을 돌보고, 몸이 깃드는 집을 돌보면 됩니다. 우리 몸과 집을 돌보듯 마을을 돌보면 되고, 나라를 돌보는 손길로 나아가면 되어요.


  모든 사람이 모든 보금자리를 “아이가 즐겁게 뛰놀면서 자라는 터전이요, 풀꽃나무가 푸르게 우거지는 삶터요, 새랑 나비가 찾아드는 마당이요, 철마다 새롭게 하늘빛을 누리는 자리”이도록 가꾸면 됩니다. 서울에서 살아야 하지 않고, 시골로 가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을 보금자리로 삼든, 이곳이 사랑자리로 피어나도록 일굴 일이에요.


  오늘날 잿집은 보금자리일 수 없습니다. 잿더미를 높다랗게 쌓은 그곳이 어떻게 집일까요? 그저 돈더미입니다. 집이 아닌 돈더미이기에 값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돈더미 아닌 살림집이라면, 철마다 어떤 멧새노래를 누리고 풀벌레가락을 즐기는지 이야기하겠지요. 집이 아닌 돈더미인 탓에 부릉부릉 매캐한 쇳더미를 끌어안습니다. 돈더미 아닌 집이라면 나무 곁에 서서 하늘빛을 맞아들여요.


  《붓다》는 수월하고 수수하게 숲빛으로 속삭입니다. 귀를 틔워 봐요. 눈을 떠 봐요. 마음을 열어 봐요. 머리를 깨워 봐요. 숲이 들려주는 말을 들어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숲한테 우리 살림살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바야흐로 사람입니다.


ㅅㄴㄹ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가 왕이든 바라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으면 따를 필요 없습니다.” (120쪽)


“그대는 그대의 본심에 의지해서 당당하게 혼자 걸어가시오. 그것이 그대의 자식에게는 훌륭한 본이 될 겁니다.” (121쪽)


“나는 그대들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려는 것이오. 그러기 위해 나는 세상을 떠돌아다녔소. 그러니까 내게서는 사람 살아가는 길을 배워야지요. 내게 다른 것을 구해서는 안 돼요 ……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선생님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은 남아 있는 법.” (124쪽)


“아난다야, 분노로 자기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침착해야지!” (250쪽)


“네가 왕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신에게, 아니 대자연으로부터는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인간이 못 되는 것이다!” (251쪽)


“인간의 마음, 바로 거기에 신이 있는 것이다. 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301쪽)


“개나 말이나 소나 호랑이나 물고기나 새나 벌레나, 심지어는 풀이나 나무까지도, 그 생명의 뿌리는 모두 한덩어리로 엉켜 있는 것이오. 따라서 모두 평등한 한 형제이니, 내 말을 명심할 일이오.” (309쪽)


#てづかおさむ #手塚治虫 #ブッダ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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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38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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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3.11.21.

푸는 실마리는 이야기


《경계의 린네 38》

 타카하시 루미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1.6.25.



  《경계의 린네 38》(타카하시 루미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1)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몸을 입은 사람이건 몸을 벗은 넋이건, 다들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로구나 싶습니다. 앙금을 이야기로 풉니다. 생채기를 이야기로 달랩니다. 멍울을 이야기로 지웁니다. 다치거나 아픈 데를 이야기로 씻어냅니다.


  대단한 꽃물(묘약)을 써야 앙금을 풀지 않아요. 놀라운 힘을 들여야 생채기를 달래지 않습니다. 잔칫밥을 누리기에 배부르지 않거든요. 사랑을 담은 밥 한 그릇이기에 새롭게 기운이 솟으면서 서로서로 즐겁게 하루를 가꿉니다.


  곰곰이 볼 노릇입니다. 우리는 다 이야기로 맺고 풀 수 있습니다. 싸워야 얻거나 이기지 않습니다. 이기거나 지는 사람이 없이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을 만합니다. 누르거나 괴롭히는 짓을 멈출 수 있다면, 두런두런 모여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으로 나아갈 만합니다.


  이야기를 하기에 서로 잇습니다. ‘이야기’란 “주고받는 말 = 잇는 말”입니다. 서로 말을 주거니받거니 하기에 마음을 이어요. 말소리 하나는 징검다리가 되어 서로 새록새록 만나는 실마리로 피어납니다.


  바쁘기에 말을 안 합니다. 바쁘니 돈으로 땜을 합니다. 바쁘기에 돈을 더 벌려고 합니다. 바쁜 탓에 마음을 잃다가 어느새 이 삶을 왜 누리는지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ㅅㄴㄹ


“아, 잠깐.” “성불했어.” “원념이 사라졌구나.” ‘더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21쪽)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는 누구일까요. “아무래도 마음이 걸려서, 조사해 봤는데, 내가 돈이 궁해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우리 아빠 엄마라고?” (40쪽)


‘아아, 한 푼도 안 되는 일에, 나도 참 마음이 좋아 탈이야.’ (50쪽)


“즉, 마츠고도 안쥬도 붉은 신부 교회의 저주를 알고 있었단 말이구나.” ‘그래, 나는 떠밀리는 척 이 저주에 편승할 생각이지!’ (87쪽)


“백지 언덕에서 캔 결별의 영철이며, 물거품 샘물이며, 망각의 회로며, 즉 이런저런 걸 다 지우고 끊어서 빚을 떼먹게 해주는 낫이었구나.” “사쿠라 아씬 그걸 다 기억했어요?” (146쪽)


“이야기도 안 듣고 낫부터 휘두르는 사신이 어딨어!” (156쪽)


#高橋留美子 #境界のRINNE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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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37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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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3.11.20.

칼을 쥔 너는 멍청해


《배가본드 37》

 요시카와 에이지 글

 이노우에 타카히코 그림

 서현아 옮김

 2014.12.25.



  《배가본드 37》(요시카와 에이지·이노우에 타카히코/서현아 옮김, 2014)이 나오고서 열 해쯤 지나지만 매듭을 짓는 뒷자락이 나올 낌새는 없어 보입니다. 그림꽃님이 뭘 망설이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만, 발을 땅에 디디면서 둘레를 보려고 한다면, 매듭은 가벼우면서 수월하게 지을 만합니다.


  이름을 드날리고 싶던 애송이는 칼자루를 쥐고서 칼잡이로서 우뚝선다지요. 손끝부터 발끝까지 핏빛에 피비린내로 물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칼을 그만 쥐자는 마음이 일었다고 합니다.


  곰곰이 보면, 칼잡이는 칼을 쥐기 앞서부터 집안일이나 살림에 등을 돌렸습니다. 스스로 하루를 짓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갉고 찢고 조각조각 도려내는 굴레를 뒤집어쓴 나날입니다. 다른 칼잡이도 비슷해요. 거의 모두라 할 칼잡이는 집안일이나 살림을 등졌습니다. 칼을 쥐면 나라를 흔들 수 있다고 여긴 어리석은 ‘칼잡이 사내’라고 할까요.


  오늘날에는 칼보다는 펑펑 쏘아댑니다. 숱한 똑똑이는 나라에서 주는 목돈을 받고서 총칼(전쟁무기)을 끝없이 만듭니다. 이 총칼을 이웃나라에 팔아서 돈을 벌고, 이 총칼로 이웃나라가 서로 죽이고 죽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북녘을 봐요. 총칼에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붓는 저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즐거울까요? 북녘 한겨레한테 기쁨이나 보람이 있나요? 우리가 깃든 남녘도 매한가지입니다. 집안에 돈·이름·힘이 없는 모든 수수한 사내는 싸움터에 끌려가야 합니다. 모든 사내가 싸움터에 가지 않아요. 돈·이름·힘이 없는 사내만 끌려갑니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주먹질(폭력)을 배우고 물들고 길들지요.


  참말로 이제부터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라가 아늑하려면 ‘순이돌이 모두 싸울아비가 되는 굴레’가 아니라, ‘순이돌이 누구나 살림빛이 되는 보금자리’를 일굴 노릇입니다.


  《배가본드》는 앞자락이 대단히 재미없었습니다. 칼부림이 뭐가 재미있나요? 칼을 더 잘 쓰는 재주가 뭐가 훌륭하나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칼부림에 칼장난이 덧없는 줄 느낀 미야모토 무사시가 ‘시골 흙일꾼 할배’하고 ‘시골 흙일꾼 아이’를 마음으로 품으면서 확 거듭나는 줄거리로 돌아섭니다. 이때부터는 조금 볼 만합니다. 칼재주나 칼장난이 아니라, 손수 사랑을 펴고 짓고 나누는 보금자리를 돌아보는 줄거리를 마주할 수 있을 때라야, 사람은 사람다울 만해요.


  무사시한테 논짓기를 알려준 할배는 ‘책이나 글’로 얻은 부스러기가 아닌, 언제나 스스로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익힌 살림살이를 들려주었습니다. 살림살이는 책이나 글에 없습니다. 살림살이는 우리가 마음에 사랑씨앗을 심고서 스스로 일구는 수수한 하루에 있어요.


  칼한테 물어보니 칼부림일 뿐입니다. 호미한테 묻다가 맨손한테 물으면 됩니다. 나비랑 잠자리한테 물어보면 됩니다. 어린이한테 물어보면 되고, 아이를 사랑으로 품는 순이한테 물어보면 되어요. 사내는 칼이나 총을 쥐면 어리석은 멍청한 낭떠러지로 달려가고 말아요. 사내는 수세미랑 부엌칼이랑 빨래비누를 손에 쥘 노릇입니다. 사내는 기저귀를 손에 쥐고서 아이를 돌볼 노릇입니다.


  싸움터에서 칼을 쥐는 사내도 어리석지만, 벼슬판에서 칼(권력)을 쥔 사내도 어리석습니다. 싸움터도 벼슬판도 걷어치울 노릇입니다. 순이가 싸움터나 벼슬판에 나선대서 바뀌지 않습니다. 엉터리를 걷어내어야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습니다.


  모름지기 살림집에는 우두머리가 없어요. 살림집에서는 누구나 살림꾼입니다. 우두머리가 따로 있거나, 이끄는 사람을 따로 앞세운다면, 그런 데에는 삶도 살림도 사랑도 숲도 없이, 늘 피비린내에 다툼질에 벼슬자랑에 썩은물이 흘러넘칩니다.


ㅅㄴㄹ


‘이오리, 너는 흙냄새가 나는구나. 나는 피냄새가 나지 않니?’ (49쪽)


“이제부터 키울 이 볍씨 한 톨 속에 우리 목숨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 (61쪽)


“뱀이 나오면 모를 심어야 해. 모는 갓난애나 같아. 자기 발로 일어설 때까진 사람이 키워줘야 하는 법이지. 살 만한 바탕이 생길 때까지는.” (89쪽)


“나 자신이 스승 밑에서 배운 적이 없어서 남을 가르칠 줄 몰라 … 팔이 없다 생각하고 휘두르시오.” (99, 101쪽)


“성에서 일하는 무사가 된다는 건, 출세한다는 게 맞지? 축하한다, 무사시. 그래도 한쪽 발은 흙을 디디며 살아라. 이걸 봐라. 이 마을 게으름뱅이들이 해냈어. 논이 늘었다고.” (213쪽)


‘흙에게, 물에게, 풀에게, 벼에게, 벌레에게, 무엇에게든.’ (224쪽)


#バガボンド #vagabond #井上雄彦 #吉川英治


+


일대 다수로 싸우는 방법이 궁금하다

→ 혼자 여럿하고 싸우는 길이 궁금하다

146


너희 무사들 세계에서도 필승불패 그런 놈은 없잖나

→ 너희 싸움나라에서도 안 지는 그런 놈은 없잖나

→ 너희 싸울아비도 늘 이기는 그런 놈은 없잖나

20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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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남매 2
츠부미 모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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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3.10.24.

동생에 누나가 될 줄 몰랐지만


《구르는 남매 2》
 츠부미 모리
 장지연 옮김
 학산문화사
 2023.7.25.


  《구르는 남매 2》(츠부미 모리/장지연 옮김, 학산문화사, 2023)을 읽고서 우리 집 큰아이한테 건네었습니다. 갑자기 생긴 동생을 바라보는 누나 마음하고, 갑자기 누나가 생긴 동생이 바라보는 동생 마음을 나란히 들려주는 줄거리입니다. 어머니를 여읜 누나는 앞으로 있으리라 생각조차 않던 동생을 맞이합니다. 아버지를 여읜 아이는 앞으로 있을 수 있으리란 생각조차 못 하던 누나를 만납니다.

  여태 남남이요, 이름이건 얼굴이건 아예 모르던 둘은 난데없다 싶은 한집안을 이루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혀요. 같은 어버이 품에서 태어났어도 다른 아이일 테지만, 다른 어버이 품에서 자랐으면 훨씬 다르겠지요.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인 둘이요, 마음도 말도 뜻도 눈길도 다른 둘인데, 한집에서 같이 지내는 사이에 조금씩 틈을 열어요. 한꺼번에 열지 않습니다. 바람이 스미듯, 햇살이 퍼지듯, 천천히 느긋이 마음을 틔우면서 서로 새록새록 바라봅니다.

  씨앗 한 톨이 흙에 안겨서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기까지 한참 걸립니다. 아무리 짧아도 이레는 지나야 하고, 웬만한 씨앗은 가을겨울을 찬바람을 흠씬 맞이한 다음에 새봄에 하나둘 깨어요. 어느 씨앗은 여러 해를 기다리고서 싹을 틔워요. 어느 씨앗은 쉰 해나 아흔 해쯤 지나고서야 싹을 틔우기도 합니다. 즈믄해를 잠들다가 깨어나는 씨앗도 있어요.

  《구르는 남매》라는 그림꽃에 왜 “구르는”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갸우뚱하면서 첫걸음하고 두걸음하고 석걸음을 읽었어요. 앞으로 몇 걸음까지 더 그리려나 모르겠습니다만, 두 아이가 아이다움에 아이스러운 하루를 저마다 다르면서 한마음으로 어울리는 길을 수수하게 들려준다면, 더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아이는 사랑받으려고 태어납니다. 모든 어버이는 사랑하려고 낳습니다. 우리 몸으로 낳든, 어느 날 한집안이 된, 여태 낯설거나 모르는 사이라 하든, 눈을 마주하고 두런두런 말을 섞는 길로 나아갈 적에는, 이제까지 느끼지 못 한 새길에 새빛으로 새살림을 일구어요. 사랑이라는 씨앗은 우리가 스스로 보금자리를 푸르게 보듬을 적에 깨어나는구나 하고 천천히 알아가요.

  아기 적부터 한집안으로 지내는 사이여도, 어느 날 갑자기 한집안으로 지내는 사이여도, 모두 느긋이 지켜보고 돌아보고 살펴보면서 마음으로 사귀기를 바라요. 서두르지 마요. 밀어붙이지 마요. 내가 좋아하기에 네가 안 좋아할 수 있어요. 내가 안 좋아하기에 네가 좋아할 수 있어요. 서로 다른 마음이기에 한 마디 더 묻고 더 들어 봅니다. 서로 이제부터 처음이니까 두 마디 더 말하고 더 귀를 기울입니다.

  이른봄에 돋아도 들꽃이고, 늦여름에 돋아도 들꽃이에요. 아직 겨울이 지나지 않을 무렵에 꽃을 피워도 나무이고, 가을에 비로소 꽃을 피워도 나무입니다. 다 다른 아이입니다. 다 다른 어버이입니다. 다 다른 사람입니다. 다 다르면서 하나인 사랑입니다. 귀를 열어 봐요. 눈을 떠 봐요. 손을 내밀어 봐요. 어떤 말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어떤 눈빛을 마주할 수 있나요? 어떤 몸짓을 느낄 수 있나요?

  가을바람에 가랑잎이 뒹굽니다. 겨울바람에 눈송이가 뒹굴어요. 봄바람에 어린이가 뒹굴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여름바람에 개구리도 제비도 뒹굴면서 함께 노래합니다.


‘평범한 남매처럼 보이려나?’ (10쪽)

‘이렇게 새삼 둘만 있으니,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모르겠네.’ (12쪽)

“게다가 코시로한테 너처럼 귀여운 누나도 생기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라니까, 인생은.” (34쪽)

“할아버지, 나, 금방 또 올게!” (47쪽)

“여긴, 잠수함 안이야. 바, 바닷속을 여행하고 있어.” (111쪽)

“집에 거의 없는 부모도 있어?” “무슨 소리야? 수수께끼 놀이?” “아니야!” “뭐, 직업에 따라선, 있지 않을까?” “밥을 거의 안 해주는 부모는? 청소를 안 하는 부모는?” (123쪽)

“다음에 또 봐! 새로운 할아버지!” ‘새로운 할아버지라…….’ (155쪽)

+

핑거 스냅 할 줄 알아?
→ 딱딱이 할 줄 알아?
→ 손가락딱 할 줄 알아?
→ 손딱딱이 할 줄 알아?
→ 딸깍이 할 줄 알아?
→ 손딸깍이 할 줄 알아?
60쪽

그것이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어딘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 아무리 즐거워 보여도 어딘가 허전하다
→ 아무리 기뻐 보여도 어딘가 허전하다
131쪽

#森つぶみ #転がる姉弟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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