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이 싸다

― 서울 노량진 〈책방 진호〉 / 02) 815-9363

서울 동작구 노량진1동 50-2 (장승배기로 164)



  서울로 이야기꽃을 펴려고 마실하는 길에 노량진에서 전철을 내립니다. 새벽바람으로 고흥서 길을 나섰고, 서울 고속버스역에는 낮 두 시 즈음 닿습니다. 저녁 일곱 시 반까지는 넉넉하기에 책방 한 곳에서 느긋하게 책을 누리려고 합니다.


  새삼스럽다고 할 수 있는데 〈책방 진호〉에 처음 책마실을 하던 1994년을 떠올리면 그무렵에는 까만머리였던 책방지기 아저씨가 2017년인 요즈막에는 하얀머리인 책방지기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처음 〈책방 진호〉를 찾던 지난날에는 막 열아홉에 이르려던 앳된 젊으이였던 사람은, 어느새 두 아이를 건사하며 살림을 짓는 아저씨 자리에 있습니다.



《김대건의 서한》(이원순·허인 엮고 옮김, 정음사, 1975)


얼마 후에 거센 물결에 그만 키가 부러져 떠내려가므로, 배는 폭풍과 파도에 까불리며 대양으로 밀려가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물결을 막으려고 돛을 묶어 배 뒤에 달아매어 물에 띄웠더니, 그만 줄이 끊어지면서 그것 역시 떠내려가고 말았읍니다. 이제는 배 밑에 깔았던 나무 토막과 돗자리를 싸 묶어 또 띄웠으나, 그것 역시 잃었읍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찌할 수가 없어서 오직 천주께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저희의 희망을 두고서 누워 자기 시작하였읍니다. (제15신, 1845년 7월 23일/195쪽)


  김대건이라는 분을 잘 모릅니다. 책으로만 몇 차례 마주했으나 이 나라 옛사람이지만 정작 이분하고 얽힌 이야기가 그리 널리 낱낱이 나오지는 않았구나 싶습니다. 오늘 헌책방 한 곳에서 《김대건의 서한》이라는 책을 만나면서 깜짝 놀랍니다. 김대건이라는 분이 쓴 글월이 남았고, 이렇게 남은 글월로 책 하나를 여민 적이 있군요. 이 책은 요즈음에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새 옮김말로 나오기도 했을까요?


  책방지기 할아버지는 《김대건의 서한》이라는 책에 값을 2만 원 매기셨습니다. 이 애틋하며 놀라운 옛책이 2만 원이라니! 책값이 참 싸구나! 고작 2만 원으로 김대건이라는 분이 지난날 어떤 고비나 가시밭길이나 벼랑에서 고이 이녁 길을 걸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구나!



《동물인가 천사인가, 인간 그 영원한 본질》(르네 듀보/김영준·박순철 옮김, 서광출판사, 1982)

《청록집》(박목월·조지훈·박두진, 삼중당, 1975)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2년에 시집 《청록집》을 헌책방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무렵 저는 참고서에 책이름으로만 나오는 《청록집》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느 새책방이나 학교 도서관에는 이 시집이 없었어요. 어느 날 자율학습을 슬쩍 넘겨버리고 헌책방으로 마실했다가 겉그림종이가 없는 낡은 《청록집》 손바닥책을 만났지요. 몹시 애틋하게 이 손바닥책 시집을 읽었습니다.


  오늘 나는 겉그림종이가 오롯한 《청록집》을 만나며 손을 살짝 떨었습니다. 아, 이런 겉그림이었구나! 이 해묵은 작은 시집을 놓고 책방지기 할아버지는 값을 1만 원 매기셨습니다. 아니 겨우 1만 원이라고! 책값이 이렇게 눅다니! 푼돈 1만 워느로 이 이쁜 책을 품에 안을 수 있구나!


  애틋한 시집 곁에 얌전히 있는 《동물인가 천사인가》를 집어듭니다. 우리들 사람은 천사라 할 만할는지 짐승이라 할 만할는지 묻는 책입니다. 아마 두 모두일 테지요. 풀밥도 먹고 고기밥도 먹으며 목숨을 이으니 짐승입니다. 마음으로 생각을 지어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 줄 아니 하늘지기(천사)입니다.



《학문과 인생》(고영제, 법문사, 1959)


(중학 시절에) 방학때마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의 서재가 유난히 신비스러운 것으로 느껴졌다. 백권 내외밖에 안 되는 적은 장서였으나 책장 속에 꽂힌 책들을 일일이 들춰보는 것이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는 듯한 호기심에 사로잡히면서 무척 유쾌한 일로 느꼈었다. 더구나 ‘靑柳’라는 일본인이 지은 《조선문화사대전》을 읽으면서 복잡한 감개를 느꼈다. 어린 마음에도 일본인이 저술한 역사책이기 때문에 편견이 가득차고 독소가 섞인 책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의 관훈동에 있는 고서점에 가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한적을 사서 읽지도 못하면서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관한 기본문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형용하기 어려운 즐거운 감회에 젖었던 것은 대학 시절이었는데 적어도 그때까지는 한국사에 관한 서적은 전혀 없는 줄로만 알았다. (122쪽)


  온통 새까만 한자가 가득한 조그마한 책을 만납니다. 요즈음 대학교수인 분들이 내놓는 책은 으레 두툼한 겉종이를 쓴 커다란 책이기 마련입니다. 1959년에 나온 《학문과 인생》은 작고 가벼운 손바닥책입니다.


  멋지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논문도 이처럼 손바닥책으로 내면 어떨까요? 대학교수 문집이나 정년기념 논문집도 이렇게 손바닥책으로 묶으면 어떨까요? 대학 사회에서 선보이는 학술책도 이렇게 작고 가벼이 엮으면 어떨까요?



《의미와 무의미》(김춘수, 문학과지성사, 1976)

《영한대역 이솝우화》(유승묵 옮김, 청산문화사, 1962)



  시인 한 분이 이녁 시를 스스로 풀이한 책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 시가 아닌 손수 쓴 시를 손수 풀이한 책이 새삼스럽습니다. 재미있어요. 시란 이렇게 쓰면 쉽다고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시란 누구나 이렇게 쓸 수 있다고 알려주는 이야기 같아요.


  저는 갓 스무 살을 넘길 즈음부터 혼자 통·번역 배움길을 걸으면서 오랜 책을 바지런히 찾아서 읽었습니다. 통역이든 번역이든 외국말만 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겼어요.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여겼고, 사람들 나이에 맞게 다 다르게 말결을 살릴 줄 알아야 한다고 여겼어요.


  저는 1970년대에 태어났기에 1970년대 말씨나 말결에 익숙하지만, 제가 모르는 1960년대나 1950년대나 1940년대나 1930년대나 1920년대 말씨가 궁금했어요. 이무렵 말씨는 묵은 책을 찾아서 읽으며 이럭저럭 헤아릴 만해요. 그러나 1800년대나 1700년대나 1500년대는, 또 500년대나 더 먼 옛날은 그저 꿈으로만 헤아릴 뿐입니다.


  1962년에 영한대역으로 나온 《영한대역 이솝우화》는 그무렵 영어를 어떻게 한국말로 옮겼는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훌륭한 보기예요. 가만히 손에 쥐고 살뜰히 품에 안습니다.



《독일인 헤르만 산더의 여행(1906∼1907 한국·만주·사할린)》(국립민속박물관, 2006)

《시방은 안해, 강강술래럴 안해》(최소심 이야기, 강윤주 엮음, 뿌리깊은나무, 1990)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한창 일하던 무렵 신나게 챙겨서 읽던 ‘민중자서전’입니다. 이제 전라사람으로 살아가며 전라말에 조금 더 익숙해야지 하고 생각하며 《시방은 안해, 강강술래럴 안해》를 집습니다. 진도말을 가만히 혀에 얹습니다. 삶하고 살림이 묻어나는 고장말을 조용히 읊습니다.


  2006년 어느 날이었다고 떠오르는데, 독일사람 헤르만 산더가 백 해 앞서 찍은 사진을 벌여 놓은 전시장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도록을 못 샀습니다. 다 팔리고 없다더군요. 곧 새로 찍는다는 말을 들었고, 어느 이웃님이 저한테 한 권 챙겨 주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도저도 그뿐이었어요. 저는 《독일인 헤르만 산더의 여행(1906∼1907 한국·만주·사할린)》을 끝내 못 만났어요. 이러다가 오늘 비로소 만납니다. 아, 얼마 만인지.열한 해 만인가요.


  언제 틀림없이 만날 수 있겠거니 꿈을 꾸었는데, 열한 해 만에 만나네요. 몹시 반갑습니다. 사진책 하나를 어루만지면서 웃습니다. 사람은 오래 살아야 한다고, 즐겁게 오래 살아야 한다고, 아름다운 책을 그리면서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MEADOW GREEN》(Paul A. Witty·Alma Moore Freeland, HEATH, 1964)



  아마 한국에 있던 어느 ‘미션 스쿨’ 도서관에서 건사하던 책이지 싶습니다. 오랜 붓결이 싱그러운 어린이책을 살펴봅니다. 책 끝에 빌림종이가 있어요. 1964년 책인데 빌림종이에는 “1995.11.14.”라는 날짜가 하나 있습니다. 꼭 한 번 따순 손길을 받은 책이로군요. 그리고 오늘 저한테서 따순 손길을 받네요.



《石川啄木詩歌集》(講談社, 1968)

《圖說 韓國の歷史》(姜德相·鄭早苗·中山淸隆, 河出書房新社, 1988)


  이시카와 다쿠보쿠 님 시집이 반갑습니다. 이 시집에 ‘世界の名詩 2’이라는 이름이 붙네요. 일본사람이 1968년에 꼽은 ‘온누리 훌륭한 시’로 둘째 권을 바로 이시카와 다쿠보쿠 님한테 바친 셈이로군요.


  재일조선 학자하고 일본 학자하고 함께 엮은 ‘한국 역사’라니,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을까요.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을까요. 생각이 있는 곳에 아름다운 꽃이 필까요. 사진 자료를 넉넉히 알차게 쓴 훌륭한 역사책이로구나 싶습니다.



  책을 한창 살필 즈음 〈책방 진호〉 사장님이 저를 부릅니다. “이보게, 최 군, 이리 와 봐. 아직 저녁도 안 먹었다니 컵라면이라도 들게.” 책방지기 할아버지는 먼 시골에서 서울로 마실을 와서 책방에서 저녁을 보내는 저를 걱정스레 여깁니다. 책방 귀퉁이에 앉아 컵라면 한 그릇을 받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다가 컵라면이란 얼마나 즐거우면서 반가운 선물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책방마실을 하다가 컵라면 한 그릇을 받은 적이 있던가 하고 돌아봅니다. 아마 오늘이 처음이지 싶습니다. 매콤한 국물을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오늘 나는 아름다운 책에 따끈한 국물로 마음하고 몸을 살찌웁니다. 이 책이, 이 선물이 새로운 하루를 앞둔 저한테 즐거운 노래로 스미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방마실/헌책방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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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소설책이 있었다니!

― 경남 진주 〈동훈서점〉

 경남 진주시 강남로 283

 055-758-4492



  새벽길을 나서며 순천을 거쳐 진주에 닿습니다. 진주 시외버스역에서 내린 뒤에 남강다리를 건넙니다. 고속버스역 아닌 시외버스역에서 내리면 남강다리를 건너서 헌책방 〈동훈서점〉으로 마실하기 좋습니다. 냇바람을 쐬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냇가 한켠에 깃든 헌책방에 들어서면 책도 책이지만 책방 창밖으로 내다볼 수 있는 냇물이 싱그럽습니다.



 잡지 《현대시학》(현대시학사) 1978년 4월호



  〈동훈서점〉에 깃들어 이 책 저 책 살피다가 묵은 시 잡지를 여러 권 봅니다. 아, 묵은 시 잡지라, 1970년대 분들은 어떤 시를 썼더라 하고 새삼스레 헤아리며 집어듭니다. 저는 1991∼1993년에 고등학생으로 살아내면서 1970년대 시 작품을 ‘대학입시를 앞둔 문학 시험 공부’로 낱낱이 챙겨서 읽었어요. 1990년대 첫무렵에는 1970∼80년대 시가 ‘요즈음 시’였어요.


  어느새 2017년이 되고 보니 참 묵은 시로구나 싶으면서, 뜻밖에 새로운 느낌도 나서 집어드는데, 시에 다들 한자를 엄청나게 넣고, 사회나 삶하고 살그마니 떨어진 자리에서 이야기를 펼치네 싶습니다.


  그래요, 예전에는 한자를 잔뜩 넣어야 시입네 문학입네 했습니다. 요즘에는 한자를 시에 잔뜩 넣는 분이 줄기는 했으나, 그만큼 영어를 넣는 분이 늘고, 온갖 기호를 넣는 분도 생깁니다. 앞으로 스무 해쯤 뒤에는 어떤 시를 ‘오늘시(현대시)’라고 여길까요?


  잡지 앞쪽에는 사진가 육명심 님이 시인 박두진 님을 찍은 사진이 화보로 나와요. 예전에는 육명심이 한국 작가나 예술가를 찍은 사진이 퍽 예스러워 보이면서 남다르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일본에서 1950∼1980년대 사이에 나온 사진잡지를 헌책방에서 챙기며 혼자서 사진을 배우고 보니, 《현대시학》에 실린 ‘시인·소설가 사진’을 담은 틀이나 짜임새가 일본에서 흔히 널리 쓰는 틀이나 짜임새인 줄 느꼈고,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진이 꽤 많은 줄 나중에 알았어요.


  그렇다고 육명심 님이 일본이나 서양 여러 사진틀을 고스란히 가져왔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다만 굳이 흑백으로 안 찍고 무지갯빛으로 찍어 보셨다면, 일본스럽거나 서양스러운 사람사진이 아닌 한국스러우면서 육명심스러운 새로운 사진빛이 날 만했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마술피리 그림책 꼬마 17 《나 좀 타자》(시라카와 미쓰오 글·그림/고향옥 옮김, 웅진다책)

마술피리 그림책 꼬마 32 《비켜 비켜》(하세가와 세쓰코 글·이노우에 요스케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웅진다책)

마술피리 그림책 꼬마 34 《놀러 가요》(사토 와키코 글·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웅진다책)



  간기에 펴낸날이 없는 그림책을 봅니다. 왜 간기에 펴낸날을 안 넣었을까요? 학습지 선물로 주던 그림책일까요? 전집으로만 돌던 그림책일까요? 이 이쁜 그림책을 여느 책방에서는 만나기 몹시 어렵다는 대목이 아쉽습니다. 전집으로만, 또는 학습지로만 팔아서 새책방에서는 따로 살 수 없을 뿐더러, 헌책방에서도 낱권으로 사기 어렵던 그림책을 모처럼 세 권 집습니다.



《우리들의 꿈》(남녘 젊은 시인들 엮음, 푸른숲, 1989)



  남녘 젊은 시인이 북녘 젊은 시인한테 띄우는 글월 같은 시가 흐르는 시집을 넘겨 봅니다. 1989년에 나온 시집이라서 시가 좀 철지나 보이나 하고 생각해 보다가, 어쩌면 우리는 ‘남북녘 하나되기’를 너무 머리로만 생각했기에 1989년에서 고작 서른 해쯤 지났을 뿐인데도 오래된, 또는 철지난, 또는 묵은 시 같구나 싶습니다.



《남북한 언어비교, 분단시대의 민족어 통일을 위하여》(전수태·최호철, 녹진, 1989)



  북녘에서 앞가지나 뒷가지를 잘 살려서 쓰는 보기를 이 책에서 제법 길게 실어 줍니다. 남녘에서는 아직 어렵거나 낯설다고 할 만한 말짓기도 있으나, 남녘에서 곧장 받아들여서 함께 쓸 만한 멋진 말짓기도 있어요.


  이를테면 ‘풋솜씨’나 ‘무릎맞춤’ 같은 낱말이 무척 좋습니다. ‘풋질’이나 ‘풋짓’ 같은 낱말을 써 보아도 되겠지요? ‘풋일’도 써 볼 만할 테고요. ‘엇빛(역광)’하고 ‘덧빛(보조광)’도 좋아 보입니다. 이런 대목을 남북녘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새롭게 살리면 참으로 좋겠어요.



《키 낮추기와 꿈 높이기》(노향림, 한겨레, 1988)



  시인 노향림 님 산문책을 만납니다. 이런 책이 있었네 하고 깨닫습니다. 생각해 보니 1988년은 저로서는 중학교 1학년 무렵입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선 그즈음부터 중학교 3학년 무렵까지 책다운 책은 얼마 못 읽고 학교에 매여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중학교에서도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지내야 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학교에 붙들린 푸름이라면 책을 읽을 틈이 참말 없겠지요. 이런 푸름이 나날을 보내다가 대학교에 들어간다면, 막상 책버릇이 사라지고 말아 책하고 다시 사귀기 어려울 테고요.



《대도둑 호첸플로츠》(프로이슬러/이병찬 옮김, 정한출판사, 1979)



  ‘딱따구리 그레이트북스’ 82번으로 나온 책입니다.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그때 우리 집에 전집이 있었고, 다 읽지 못했으나, 제가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모두 버려졌어요. 안 읽으니 버린다고 버리셨는데요, 안 읽어도 그렇지 책을 버리시다니, 하며 몹시 서운했어요. 국민학생 어린이는 아무래도 놀기 바쁘거든요. 나중에 눈을 뜨면 알아서 책을 다 읽을 텐데.


  어릴 적 버려진 딱따구리 그레이트북스 그 전집책이 정갈히 그대로 남았다면 얼마나 재미나게 요즈음 되읽을까 하고 생각에 잠겨 보곤 합니다. 마침 오늘 〈동훈서점〉에서 꼭 한 권이 보여서 반가이 쓰다듬으며 집습니다.



 《유리가면 下》(넬 베르디/유종숙 옮김, 동광출판사, 1985/5판)


[넬 베르디 프로필] 프랑스 쥬니어의 우상인 넬 베르디는 쥬니어 소설의 대가이다. 《유리가면》은 그의 대표작으로 만화화 되어 폭팔적인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에서 출생한 작자는 현재 스웨덴에서 살고 있다.



  만화책으로만 알던 《유리가면》이 만화책 아닌 소설책이 먼저 있은 줄 오늘 처음 깨닫습니다. 아니! 소설책이 있었잖아! 만화책 《유리가면》 마무리가 언제 나오는가 하며 손가락을 빨며 기다렸는데, 굳이 안 기다려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책방에 서서 소설책 《유리가면 下》를 읽으며 마무리를 다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마무리가 좀 싱겁긴 싱겁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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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켠 쪽책방에서 찾는 반가운 책
― 서울 장승배기 〈문화서점〉
 서울 동작구 상도2동 366-26
 02.823.5204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는 요즈음 〈대륙서점〉이라는 마을책방이 새롭게 눈길을 받습니다. 이곳 〈대륙서점〉은 오랜 마을책방이었는데, 처음 책방을 열어 가꾸던 분들은 그만두셨고, 젊은 가시버시가 이어받아서 새롭게 고쳐서 꾸려요. 학습지가 차지하던 자리를 치우고, 넉넉하면서 느긋하게 책을 누릴 수 있는 터전으로 손질해 놓았습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는 마을책방 〈대륙서점〉만 있지 않습니다. 장승배기역 3번 나들목 앞에 헌책방 〈문화서점〉이 있어요. 키가 큰 사람이라면 책방에서 허리를 펴기 어려울 만큼 천장이 낮은데다가 크기도 좁은 헌책방이에요. 아마 두 평쯤 될까 싶은 ‘쪽책방’이지요.

  쪽책방이기에 들일 수 있는 책이 적습니다. 쪽책방인 터라 들고 나는 책도 적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쪽책방이기 때문에 책을 더 꼼꼼히 살펴서 갖추기 마련이고, 이곳에 마실을 하여 느긋하게 책꽂이랑 책시렁을 살펴본다면 이곳저곳에서 우리 마음을 채울 보물이 될 만한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버섯》(조덕현 글·사진, 대원사, 1997)
《나는 버섯을 겪는다》(조덕현 글·사진, 한림미디어, 2005)


  버섯박사라 하는 조덕현 님이 쓴 책이 두 가지 나란히 있습니다. 두 가지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1997년에 낸 책하고 2005년에 낸 책을 나란히 놓고 보니, 여덟 해 사이에 한결 거듭난 글하고 사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조덕현 님은 두 가지 책 말고도 《백두산의 버섯도감 1·2》(2014)이나 《한국의 균류 1·2》(2016∼2017)를 꾸준히 선보입니다. 한길을 걷는 분이 일구는 책밭이란 남다르구나 싶습니다.


《한국의 새(새소리 녹음카세트)》(윤무부, 웅진출판주식회사, 1984)


  이제는 인터넷을 살펴도 새소리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1984년에 나온 이 녹음카세트는 벌써 서른 해도 지난 우리 새가 들이나 숲이나 마을에서 어떤 소리로 노래했는가를 귀여겨들을 수 있는 고마운 자료입니다.

  이 녹음카세트에 담은 새소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봅니다.

휘파람새, 뻐꾸기, 박새, 붉은빰멧새, 어치, 노랑할미새, 쇠유리새, 쑥새, 칡때까치, 흰눈썹황금새, 멧비둘기, 개개비, 쇠박새, 왜가리, 쏙독새, 호랑지빠귀, 올빼미, 소쩍새, 딱새, 검은등뻐꾸기, 할미새사촌, 제주휘파람새, 크낙새, 알락할미새, 되지빠귀, 원앙이, 검은머리물떼새, 호반새, 때까치, 흰배지빠귀, 검은딱새, 파랑새, 동고비, 참새, 노랑때까치, 꾀꼬리, 붉은머리오목눈이, 물레새, 까치, 섬개개비, 괭이갈매기, 멧새, 방울새, 밀화부리, 까마귀, 숲새, 진박새, 큰유리새, 둑견이, 뜸부기, 벙어리뻐꾸기, 직박구리, 오색딱다구리, 쇠딱다구리, 산솔새, 중대백로, 깝작도요, 제비


《Republic of Korea Army vol 1》(office of information HQ Pok army, 1954)


  1954년에 나온 ‘국군 화보집’은 어떤 뜻이 있을까요? 이승만 얼굴사진이 큼지막하게 맨앞에 나오고, 정일권 같은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오는 이 국군 화보집은 우리 역사가 어떤 길을 왔다고 밝힐까요? 저는 어릴 적부터 학교나 마을이나 사회에서 으레 ‘자주 국방’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말이 춤추고, 오늘날에도 이 말은 무시무시하게 떠돕니다.

  저는 이 말을 무시무시하다고 느끼는데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국방’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자주 평화’로 나아가야지 싶어요. 전쟁무기를 자랑하거나 내세우거나 드러내는 정책이 아닌, 평화롭게 어깨동무하고 손을 맞잡는 정책으로 달라져야지 싶어요.


《예술로서의 영화》(랄프 스티븐슨·장 R.데브릭스/송도익 옮김, 열화당, 1982)
《기탄잘리》(R.타고르/박희진 옮김, 홍성사, 1982)


  철지난 책은 철지난 책입니다. 그런데 어이하여 철지난 책은 수수한 차림새가 이다지 눈에 뜨일까요. 이른바 똥종이에 찍은 수수하고 빛바랜 영화 이야기하고 타고르 시집에 눈이 갑니다. 반들거리는 새하얀 종이가 아니라 이런 종이로 엮은 책을 손에 쥐어 펼치면 눈이 안 아픕니다. 예전 똥종이 책은 가볍습니다. 책을 넘기는 소리나 결이 참 보드랍습니다.

  헌책방으로 마실을 하면서 만나는 해묵은 책이나 철지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이 책을 ‘해묵다·철지나다’ 같은 낱말로만 나타낼 수는 없다고 느껴요. 숱한 손길을 타면서 살아남은 책에는 숱한 사람이 이 책을 손으로 만지면서 마음 깊이 헤아리던 즐거운 노래가 흐른다고 느낍니다. 오랜 책에서 오랜 손길을 느끼면서 오랜 마음이 흐르는 오랜 슬기를 되새긴다고 할 만합니다.


  이럭저럭 책을 골랐는가 싶어 책값을 셈하려고 하는데, 문득 손끝이 저리는 책 하나가 눈에 뜨입니다. 책방지기 할배를 부릅니다. “사장님, 저요, 이 책을 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은 책탑 한가운데에 사진책이 여럿 있어요. 여러모로 눈에 뜨이는 사진책이 있는데, 저로서는 모두 갖추었습니다. 사진책으로 이룬 책탑 가운데 하나인 《굴피집》도 두 권을 갖추었지요. 그런데 이 사진책을 여러 번 여러 곳에 빌려주었다가 마지막으로 빌려준 곳에서 아직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사진책이라고 여기는 《굴피집》이기에, 오늘 뜻밖에 다시 만나서 아주 반가워요. 다시 저희 책숲집에 이 사진책을 두 권 갖출 수 있습니다. 한 권은 손에 닳지 않도록 고이 건사하는 책으로 삼고, 오늘 만난 한 권은 누구나 손으로 만지면서 아름다운 사진결을 느끼는 책으로 삼고자 합니다.


  마을에 책방이 있어서 마을을 찾습니다. 우리 마을에 책방이 없기에 우리 집을 마을도서관으로 삼아서 꾸립니다. 이웃 여러 고을에 있는 이쁜 책방을 찾아서 사뿐사뿐 나들이를 갑니다. 마을·고을이라는 터전은 사람이 모이면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마을은 사람만 있어서는 태어나지 않는다고 느껴요.

  먼저 옹기종기 담을 마주하는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집하고 집 사이에 작은 가게가 들어섭니다. 가게가 하나둘 모이면서 저자가 생깁니다. 저잣거리에는 마을사람이 드나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웃한 다른 마을이나 고을에서 나들이를 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닥복닥 속닥속닥 발걸음이 늘고 이야기꽃이 피는 동안, 마을 이야기를 아로새기는 책방이 살며시 싹을 틔웁니다.

  마을책방도 숱한 마을가게 가운데 하나일 텐데, 마을책방은 마을가게로만 그치지 않아요. 마을사람이 마을에서 마음을 다독이고 머리를 살찌우며 생각을 키우는 배움밭 구실을 해요. 마을텃밭에서는 몸을 살리고 살찌우는 남새를 얻는다면, 마을책방에서는 마음을 살리고 살찌우는 슬기를 얻어요. 장승배기(상도동) 쪽책방 〈문화서점〉도, 씩씩하고 새로운 책방 〈대륙서점〉도, 다 같이 한결 사랑받고 눈길받으면서 곱다시 마을노래를 퍼뜨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17.11.2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헌책방마실/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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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7. 책을 사러 책방에 가는 길

― 인천 배다리 〈삼성서림〉 / 032.762.1424.



  책을 사러 책방에 갑니다. 오늘날 책을 사려면 집이나 일터에서 셈틀을 켜도 되고, 손전화로 톡톡 눌러도 돼요. 그렇지만 바깥마실을 나오는 길이라면 으레 책방으로 찾아갑니다. 책을 놓은 책꽂이를 돌아보고, 책방이 깃든 마을을 거닐며, 책방을 가꾸는 책방지기 숨결을 느낍니다.


  새책방에서는 어디에서나 똑같은 새책입니다. 헌책방에서는 어디에서나 다 다른 헌책입니다. 똑같은 값을 매기는 새책은 똑같을 수밖에 없으나, 다 다른 값이 붙을밖에 없는 헌책은 책방지기가 어느 만큼 손질하거나 갈무리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져요. 그리고 헌책방에 들어오기 앞서 ‘헌책으로 거듭난 새책’을 처음 장만해서 읽은 사람 손길이 묻어납니다.


  곱게 손에 쥐고 읽은 책손이 있습니다. 거칠게 아무렇게나 읽은 책손이 있습니다. 밑줄 하나조차 반듯하게 그은 책손이 있습니다. 울퉁불퉁하게 밑줄을 그은 책손이 있습니다. 지은이가 선물한 책이 있고, 여느 책손으로서 ‘이 좋은 책을 만난 기쁨’을 속종이에 정갈한 글씨로 적바림한 책이 있어요.



《내 동생 푸딩》(가와시마 에쓰코·우에다 마코토/임윤정 옮김, 느낌이있는책, 2012)

《불꽃놀이와 유리구슬》(가와시마 에쓰코·다카하시 가즈에/한누리 옮김, 느낌이있는책, 2012)

《보름날 여우》(가와시마 에쓰코·스도 피우/김혜란 옮김, 느낌이있는책, 2012)



  가와시마 에쓰코라는 이름을 모릅니다. 오늘 처음 만납니다. 그런데 이분 책이 나란히 세 권입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궁금한 마음에 한 권씩 집습니다. 열 몇 쪽씩 읽어 보고는 세 권 모두 장만하기로 합니다. 따스하면서 고운 마음으로 아이를 마주하는 지은이 넋을 읽을 수 있어요. 이 글에 붙이는 그림도 사랑스럽습니다. 비록 한국에서는 잘 안 팔리거나 안 읽힌 작품일는지 모르나, 나한테는 매우 아름다운 문학으로 남습니다.



《글쓰기, 이 좋은 공부》(이오덕, 지식산업사, 1990)



  이오덕 님 책은 모두 읽었습니다. 게다가 어느 책이든 스무 번이나 서른 번은 거뜬히 읽었습니다. 그래도 헌책방에서 예전 책이 눈에 뜨이면 걸음을 멈춥니다. 다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더욱이 숱하게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어느 분이 예전에 이 책을 손에 쥐고 읽었으려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삼성서림〉에서 문득 마주한 《글쓰기, 이 좋은 공부》는 이오덕 님이 어느 분한테 선물한 자국이 있습니다. 어쩌면 어느 분이 이오덕 님한테 손글씨를 받으려고 손수 찾아갔을 수 있어요.


  이 책은 어떻게 헌책방에 나왔을까요? 여러 가지 까닭이 있을 테지만, 이 책이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헌책방 책꽂이에서 곱게 새로운 책손을 기다릴 수 있으니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더군다나 속종이를 오리거나 뜯지 않고 곱게 헌책방에 내놓아 주었으니 더욱 고마워요. 애틋한 손길을 더 느낍니다.



《후쿠시마에서 살아간다》(편집부, 땡땡책협동조합, 2014)



  아마 누리책방에는 없는 책이지 싶습니다. 요새는 누리책방뿐 아니라 교보문고 같은 데에도 안 넣는 책이 퍽 늘어납니다. 참 재미있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마을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이란 얼마나 마을스러운가요. 마을책방에서 마을사람이 사랑하기를 바라는 책은 얼마나 마을다운가요.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요,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답니다. 아이랑 사랑을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하루를 책 하나로 즐거이 마무리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헌책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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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책방은 ‘오늘’문화유산입니다
― 헌책방은 언제나 새로운 곳


  서울시는 〈공씨책방〉처럼 마을 한곳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려서 사람들을 맞이하여 그 마을에 오래도록 이야기꽃이 지피도록 북돋운 곳에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비록 작은 간판 하나 붙이는 일 말고는 달리 도와준다거나 더 보람을 주지 않았습니다만, 헌책방을 비롯해서 이발소나 숱한 작은 가게가 그냥 개인사업자가 아닌 마을을 이루는 작은 밑뿌리요 밑바탕이자 밑틀이라는 대목을 행정이 깨닫고 한 걸음을 내디딘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행정은 이제 두 걸음을 내딛을 때이지 싶습니다. 한 걸음만 뗀 채 너무 오래 있거든요. 그리고 책방이 깃든 마을을 드나들거나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분들도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라고 생각해요.

 책방은 ‘바로 오늘’ 문화유산

  서울시 행정을 맡은 분은 헌책방뿐 아니라 마을에 있는 작은 책방이 모두 ‘오늘’문화유산이라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날(미래)’에 문화유산이 되기도 하겠지만, 앞날에 앞서 바로 오늘 문화유산이지요. 오늘 이곳에서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길이 문화유산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새책방도 헌책방도 날마다 책이 들어옵니다. 새책방에도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이 들어오지만, 헌책방에도 날마다 새로운 책이 들어와요.

  그런데 새책방하고 헌책방은 날마다 들어오는 ‘새로운 책’이 다릅니다. 먼저 새책방은 출판사에서 펴낸 ‘펴낸날에 요즈막인 책’이 새롭게 들어옵니다. 그리고 헌책방은 아득히 먼 옛날에 나온 책부터 펴낸날이 요즈막인 책까지 두루 들어오지요.

  헌책방에 어떻게 펴낸날이 요즈막인 책까지 들어올 수 있느냐고 고개를 갸웃할 수 있을 텐데, 출판사에서 책을 새로 내며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요. 이 보도자료는 기사가 될 수 있지만, 기사가 안 될 수 있어요. 기사가 되어도 신문사에 책이 너무 많이 쌓이지요. 신문사 기자가 책을 갖고 싶어서 챙기는 일도 있지만, 웬만한 책은 곧바로 폐지처리장으로 갑니다. 폐지처리장에서는 ‘새책(보도자료)’이 그냥 폐지로 버려지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여겨서 헌책방이 이 ‘버려진 새책(보도자료)’을 건사해 주기를 바랍니다. 헌책방이라는 터전이 없다면 ‘버려진 새책’은 기사조차 못 된 채 ‘인쇄소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곧장 폐지’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주한 대사관이 있고 외국인학교가 있으며 미군부대가 있습니다. 대사관 집 아이들은 외국사람이에요. 이 외국 대사관 집 아이들이 보던 책은 외국 대사관이 다른 곳으로 일터를 옮기면 으레 고물로 내놓습니다. 외국인학교나 미군부대도 그곳 도서관에 넘치는 책을 으레 고물로 내놓아요. 이 수많은 외국책은 보도자료와 비슷하게 폐지로 버려질 수 있습니다만, 헌책방이라는 터전이 있기에 헌책방지기는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이 외국책을 건사합니다.

  요새는 누리책방에서 외국책을 구매대행 해 주기도 합니다만, 무척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좋은 외국책을 만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서울에 있는 헌책방 〈공씨책방〉을 비롯해서 전국에 있는 숱한 헌책방은 대사관 집이라든지 외국인학교라든지 주한미군이라든지 곳곳에서 내놓는 좋은 외국책을 되살려서 새로운 문화를 이 나라에 퍼뜨리는 구실을 오랫동안 했고, 요즈음도 그대로 이어서 합니다.

  더욱이 누리책방은 새책은 구매대행을 할 수 있어도, 스무 해나 쉰 해나 백 해를 묵은 외국책은 구매대행을 못 하겠지요? 헌책방에서 값진 보물 같은 책을 만나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헌책방은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 가운데 알짜를 캐내는 마지막 거름터 구실을 해요.

 책방을 지켜야 하는 까닭은?

  헌책방지기 가운데 ‘내 건물’인 사람은 드뭅니다. 거의 모든 헌책방지기는 ‘남 건물’에 깃들어 달삯을 냅니다. 다달이 이백만 원씩 임대삯을 낸다면 다섯 해면 일억 원을 임대삯으로 내는 셈입니다. 다달이 이백만 원씩 열 해 동안 임대삯을 냈으면 이억 원을 임대삯으로 치렀겠지요.

  이를 더 생각해 본다면, 서울시에서 헌책방지기가 책방으로 삼을 건물을 사들이도록 목돈을 빌려준 뒤에 헌책방지기한테서 다달이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열 해나 스무 해 동안 헌책방지기가 건물값을 갚도록 하고서, 처음에는 서울시에서 건물을 사들여서 헌책방지기가 느긋하게 책살림을 꾸리도록 돕는 행정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서울시는 첫돈(원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받을 수 있고, 헌책방지기는 건물임자 눈치를 보는 고단함을 말끔히 씻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건물 밑돈 돕기’는 헌책방뿐 아니라 마을책방한테도 똑같이 아름다운 행정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이만 한 행정 도움이 없이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알림판만 붙이는 ‘전시행정’은 이제 끝내야지 싶습니다.

  헌책방도 여느 마을책방(독립책방)도 오늘문화유산이라고 느낍니다. 이 책방이 개인사업자이기도 하지만, 책방은 개인사업자라는 자리를 넘어서서 마을사람한테 책으로 새로운 배움과 마음밥을 나누어 주는 쉼터 구실을 하지요. 책방은 여러모로 공공재 구실을 해요. 요새는 작은도서관이 제법 생겼습니다만, 작은도서관이 거의 없던 지난날에 헌책방은 전국 어디에서나 도서관 구실까지 했어요. 게다가 헌책방이라고 하는 재미난 도서관은 이곳에 들러서 서서 읽다가 마음에 드는 책은 퍽 눅은 값에 장만할 수 있고요.

  책방이기에 꼭 지켜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방을 지켜야 한다면 왜 책방을 지켜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커다란 책방이 아닌 작은 마을책방(헌책방·독립책방)을 지키거나 가꾸거나 돌보거나 아끼거나 사랑할 까닭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작은 마을책방은 마을사람이나 나그네가 가볍게 마실하듯 들를 수 있는 쉼터입니다. 작은 마을책방은 찻집과 달리 찻값을 내지 않고도 한두 시간쯤 느긋하게 골마루를 거닐면서 책내음을 맡고 책읽기를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작은 마을책방이기에 책손은 책방지기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작은 마을책방이 스무 해쯤 되었다면, 스무 해 앞서 태어난 아이는 스무 해라는 나날을 어머니 아버지 손을 잡고 마을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자란 셈이에요. 스무 살 아이는 작은 마을책방을 둘러싸고서 스무 해라는 이야기가 온몸에 깃듭니다. 서른 해를 살아낸 마을책방이라면, 또 마흔 해나 쉰 해를 살아낸 마을책방이라면, 이 마을책방을 열 살이나 스무 살 즈음 처음 만난 책손으로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 딸아들뿐 아니라 손주까지 이끌고 찾아오는 그야말로 오랜 오늘문화유산이자 ‘오늘이야기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마을책방을 지킬까?

  서울 신촌에 있던 적잖은 헌책방이 자취를 감추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노고산동이라는 아주 조용한 마을에 1999년에 깃든 〈숨어있는 책〉은 그 조용하고 외진 골목 한켠에 헌책방을 열어 사람을 끌어모으면서 그 골목이 새롭게 살아나는 작으면서 커다란 밑틀이 되었습니다. 이제 줄을 서서 빵을 사야 하는 ‘김인환제과점’ 같은 작은 마을빵집은 작은 마을헌책방인 〈숨어있는 책〉을 드나들던 숱한 단골이 그 마을빵집에 꾸준히 드나들면서 입소문을 퍼뜨려 준 줄 알까요? 굳이 알지 않아도 되지만, 작은 마을헌책방 곁에서 작은 마을빵집이 눈부시게 피어나기도 합니다.

  연세대 앞문 건너편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던 〈정은서점〉은 연남동 한갓진 자리로 옮겼습니다. 대학교 앞문 건너편이라지만 대학생은 헌책방 나들이를 좀처럼 안 즐겼다고 해요. 연세대 앞문 건너편 다른 자리에는 한동안 〈연세헌책방〉이라는 작은 헌책방이 문을 열다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글벗서점〉이 꾸준하게 책방살림을 키워서 지하·1층·2층으로 이룬 야무진 헌책방 건물로 거듭나기도 하는 신촌입니다. 아파트를 새로 짓거나 여러 재개발로 여러 헌책방이 신촌에서 조용히 문을 닫거나 옮기기도 했는데요, 이런 굽이와 고비를 지나서 〈공씨책방〉은 한자리에서 씩씩하게 책살림을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씨책방〉을 아끼는 분들한테 한 가지 말씀을 띄우고 싶습니다. 법을 놓고 다투는 일도 나쁘지 않고, 서울시 행정을 나무라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책방이라는 터전을 놓고서 생각을 슬기롭게 기울여야지 싶어요. 책방은 책 하나로 다리를 이어서 사람이 만나도록 하는 이음터입니다. 책방은 책 하나를 품에 안고서 뿌듯한 마음이 되도록 이끄는 쉼터입니다. 책방은 책 하나를 문득 읽다가 기쁘게 배울 수 있는 배움터입니다.

  이음터이자 쉼터이자 배움터인 이 마을책방 하나를 놓고서 아주 작은 일을 꾀하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헌책방·마을책방에 가서 책 두 권 사기”를 해 보면 좋겠어요. 누구라도 헌책방이나 마을책방에 찾아가서 가볍게 “책 두 권 사기”를 해 보면 좋겠어요.

  어떤 책이든 좋아요. 꼭 두 권입니다.

  그런데 왜 두 권이냐고요? 한 권은 우리 스스로 즐겁게 읽을 책입니다. 한 권은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할 책입니다.

  천 원짜리 책을 찾아서 사도 좋고, 만 원짜리 책을 찾아서 사도 좋아요. 십만 원이나 이십만 원짜리 책을 찾아서 사도 좋을 테지요. 그런데 하루에 그 책방을 두 번 들르면, 한 번에 두 권씩 모두 네 권을 사면 됩니다.

 마을사람이 가꾸며 지키는 마을책방

  저는 어느 책방으로 나들이를 가든 제 나름대로 세운 틀이 있어요. 제가 들른 책방에서는 적어도 다섯 권, 자주 들르기 어려운 책방이라면 적어도 열 권, 이렇게 장만하겠다는 다짐을 세워 놓습니다.

  제 나름대로 세운 다짐을 지키려고 아주 조그마한 헌책방에서 ‘다섯 권이나 열 권에 이르는 마음에 드는 책’을 찾으려고 하면 한 시간으로는 모자라기 마련이에요. 두 시간이나 세 시간을 가볍게 다시 돌아보고 또 살피는 동안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책이 있어요. 틀림없이 여러 차례 훑은 책시렁에서 ‘아까 못 본 책’이 방긋 웃음을 짓습니다.

  헌책방이나 마을책방에서뿐 아니라 커다란 새책방에서도 십 분이나 이십 분 슥 둘러보려고 하면 마음에 드는 책을 못 찾거나 못 고르기 일쑤입니다. 느긋하게 한두 시간은 책시렁을 살펴야 비로소 우리 마음에 드는 책을 찾을 만해요. 이 대목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두 권 사기”란 우리가 사랑하는 마을에 있는 즐거운 마을책방을 그야말로 사랑스럽고 즐겨 보자는 뜻이에요.

  한 사람이 날마다 책방에 들르면 한 달에 예순 권에 이르는 책을 살 테고, 이 가운데 서른 권은 즐거이 읽고 서른 권은 기쁘게 선물하겠지요. 이렇게 꾸준하게 여러 책을 사고 읽다 보면 저절로 ‘책 읽는 테두리’가 넓어집니다. 우리 스스로 책 읽는 테두리를 넓힌다면, 누가 따로 헌책방이나 마을책방을 돕자는 일을 벌이지 않아도 헌책방이나 마을책방은 튼튼하게 일어섭니다.

 오래된 책방이 아닌 오래 갈고닦은 슬기

  〈공씨책방〉을 비롯한 수많은 헌책방은 그저 오래된 책방이 아닙니다. 나이만 많이 먹은 책방이 아니에요. 헌책방지기는 갓 나온 보도자료를 비롯해서 오래된 책에다가 외국책까지 두루 살핀 책살림을 온삶에 걸쳐서 온몸으로 익히고 온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헌책방을 문화유산으로 삼는다면, 또 앞날 못지않게 오늘에 걸맞는 오늘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이 대목이에요. 오래도록 갈고닦은 슬기와 눈매와 손길이 헌책방지기한테 있습니다. 이 슬기와 눈매와 손길은 돈으로 못 삽니다. 으리으리한 건물은 뚝딱 짓겠지요. 그러나 으리으리한 건물을 지키거나 건사할 줄 아는 슬기와 눈매와 손길은 뚝딱 못 지어요.

  책방지기 한 사람은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책방지기 한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바로 문화유산이요 보물입니다. 사람을 아낄 줄 아는 행정과 문화와 사회운동이 되면 좋겠습니다.

  서울시 행정은 무엇을 어떻게 왜 지키거나 보살피면 좋은가를 더 생각하면서 새로 두 걸음을 디딜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 헌책방이 마을에서 두고두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사랑스레 마을사람한테 책벗으로 이어가기를 바라는 일을 꾀하는 분들은 더 작은 자리에서 더 작은 책을 날마다 즐기고 누리면서 ‘책 이야기가 피어나는 마을살림’이라는 대목을 눈여겨보면 좋겠어요.

  책방에 가서 수수하게 책을 고르다가 책을 사서 읽으면 돼요. 우리 스스로 먼저 책손이 되고, 우리 이웃이나 동무를 데리고 와서 헌책방에 깃들거나 숨은 맛이랑 멋을 함께 누려요. 그리고 마을사람 누구나 끌신이나 가벼운 차림새로 찾아갈 수 있는 마을책방이라는 대목을 제대로 알리면 돼요. 하루 일을 마치고 사뿐사뿐 들러서 집으로 돌아가면 재미있다는 대목을 알릴 만하고, 신촌에서 술자리를 즐긴다고 할 적에도 술자리에 앞서 책 한두 권을 장만하면 삶이 더욱 즐겁고 넉넉해진다는 대목을 널리 알릴 만합니다.

  법이 사람을 지키지 않더라도, 사람은 사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법이 사람을 돌보지 않더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손에 쥐는 우리는 스스로 이웃님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마을을 돌볼 수 있습니다. 2017.9.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헌책방 이야기/책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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