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6. 셈대에 놓은 책덩이와 - 헌책방 영록서점 2012.11.02.104

 


  헌책방을 처음 다니는 사람이든 오래 다닌 사람이든 ‘책을 보는’ 사람이 있고, ‘책꽂이를 보는’ 사람이 있으며, ‘헌책방 가게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헌책방 일꾼을 보는’ 사람이랑, ‘헌책방 둘레 마을을 보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사진을 찍기 때문에 늘 모든 모습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나는 사진을 찍으니까 어느 모습을 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랑하거나 내세울 만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창피하거나 안쓰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추켜세울 사진도 아니며, 깎아내릴 사진도 아니에요. 책으로 살아가는 숨결이 어떠한가를 돌아보는 사진입니다.


  적잖은 헌책방은 혼자 사장이 되고 직원이 되며 청소부가 됩니다. 혼자 가게일을 보고 전화를 받으며 책을 사러 다니고 손님을 맞이합니다. 혼자 밥을 차린다든지 혼자 책을 손질하고 갈래를 나누며 상자에 담아 택배를 보내기도 해요.


  나는 2012년에 서른여덟 나이입니다. 지난 스물한 해에 걸쳐 헌책방을 다니는 동안, ‘헌책방 책살림’이나 ‘아이 어버이 집살림’이나 얼추 비슷한 대목이 많을 수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야말로 혼자 모든 일을 다 하다 보면 눈코 뜰 사이 없구나 싶지만, 어느새 모든 일을 혼자서 거뜬히 다 하며 하루를 열고 닫는 내 모습을 느낍니다. 나한테 언제 이런 재주와 힘이 있었을까 놀랍고, 내가 이런저런 집일을 제대로 배운 적 없지만 어느새 이런저런 집일을 내 나름대로 알뜰히 하는구나 싶어 놀랍니다.


  헌책방 일꾼이라서 처음부터 ‘헌책방을 어떻게 꾸려야 즐겁다’ 하는 대목을 배운 적은 없으리라 느낍니다. 모두들 몸으로 부딪히고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깨닫고 느끼며 받아들였겠지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듯, 헌책방 일꾼은 당신이 건사하는 모든 책들을 사랑으로 돌보면서 하나하나 갖추고 보듬으리라 느껴요.


  헌책방 깃든 건물이 허름하면 어때요? 아이들 돌보는 어버이가 좀 가난한 시골집에서 살면 어때요? 헌책방 불빛이 좀 어두우면 어때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가 늘 똑같은 옷을 입으면 어때요? 사랑으로 책을 어루만지면 즐겁습니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마주하면 기쁩니다. 책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아이들이 어여삐 웃음꽃 터뜨립니다. 책덩이 놓인 셈대가 어떤 무늬요 빛깔인가는, 저마다 마음밭이 어떤 무늬요 빛깔인가에 따라 다르게 보이리라 생각해요. (4345.11.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 하나 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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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6. 책마실 아이와 헌책방 - 헌책방 유빈이네 2012.10.19.43

 


  돈 이천 원을 들고 헌책방으로 마실을 나옵니다. 아이는 돈 이천 원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을 텐데, 이 가운데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나와서 만화책 하나 가만히 살피는 놀이를 즐깁니다. 아이는 여러 만화책을 살피다가 한 권을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오래도록 들여다본 만화책은 내려놓고 다른 책을 하나 집어 장만해도 되지만, 굳이 오래도록 들여다본 만화책을 장만합니다.


  내 어린 나날을 돌아봅니다. 나도 이 아이처럼 책마실을 나와서 책을 살필 적에 오래도록 들여다본 책을 장만하곤 했습니다. 사서 읽고 싶은 책을 책방에 선 채로 먼저 죽 읽습니다. 죽 읽었으니 내려놓고 다른 책을 사지 않습니다. 참말 사서 읽고 싶은 책이기에 책방에 선 채로 한참 읽어 봅니다. 한참 읽으면서 그야말로 읽을 만하구나 하고 느껴서 즐겁게 장만합니다. 이렇게 장만한 책은 책방에서 한 번, 집에서 다시 한 번, 다음에 새롭게 한 번, 자꾸자꾸 되풀이하며 읽습니다.


  삶을 읽습니다. 책 하나에 기대어 삶을 읽습니다. 삶을 느낍니다. 책 하나에 빗대어 삶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글 한 줄 쓰거나 그림 한 장 그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책에 실을까요. 사람들은 사랑과 꿈과 믿음을 어떻게 나누고 싶어 책을 내놓고 책방을 열며 책마실을 다닐까요.


  돈 이천 원을 턱으로 집고는 만화책을 한참 살피던 아이는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헌책방 아저씨한테 책값을 내밉니다. 헌책방 아저씨가 에누리를 해 줍니다. 아이는 에누리받은 돈을 한손에 들고 새로 장만한 책을 다른 한손에 듭니다. 아이는 한손에 꿈을 들고, 다른 한손에 사랑을 듭니다.


  책을 읽는 동안 길거리 오가는 자동차 소리를 못 듣습니다. 책을 읽으며 길거리 오가는 사람들 수다 소리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간질입니다. 가을해가 저물며 얼굴을 적십니다. (4345.10.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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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5.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 한 권 - 형설서점 2012.0227.17

 


 수없이 많은 책이 날마다 새로 태어나고 새로 죽습니다. 새로 죽는 책이 있으니 새로 태어나는 책이 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 꽂힐 자리만큼 먼저 태어난 책 가운데 적잖은 책이 자리를 물려주고 떠납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 더 꽂히면서 예전에 태어난 책이 제자리를 지키려 한다면 책꽂이가 날마다 늘어야 하고, 책터 또한 꾸준히 커져야 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 있고 새로 죽는 책이 있기에, 헌책방은 두 가지 책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헌책방은 어떠한 책이든 끌어안기 마련이라, 조그마한 살림을 그대로 건사한다면 책이 날마다 쌓이거나 넘쳐 그만 바닥에 책탑이 몇 겹으로 올라섭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버스역 둘레에 깃든 헌책방 〈형설서점〉을 찾아와 책을 살핍니다. 순천과 가까운 남해에 있다는 어느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삼천포에 있다는 어느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목포에 있다는 어느 학교 어느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전라남도 어디께에 있다는 문화방송 지국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 도서관에서 버린 책이 제법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인데, 한국땅 도서관에서는 대출 실적 숫자가 ‘0’이거나 0에 가까우면 으레 버립니다. 1990년을 앞뒤로 맞춤법이 예전 책이면 그냥 버립니다. 아무래도, 도서관이라며 한 번 지으면 책꽂이를 더 늘린다거나 도서관 자리를 더 키우지 않기 마련이니까, 새로 장만하는 책만큼 예전 책을 버리고야 말밖에 없는 한국 도서관이에요.

 

 이런저런 ‘도서관에서 버린 책’을 살살 쓰다듬다가, ‘1986 사랑의 책 보내기’ 운동을 하며 나돌았을 ‘기증도서’ 한 권을 만납니다. 겉에는 이런 자국이 없지만, 안쪽에 딱지 하나 붙고 도장 하나 찍혀요. 박재삼 시인 수필책을 구경할가 싶어 집어들다가 뜻밖에 알아보는 ‘옛 책마을 운동 발자국’ 하나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버려 주니 고맙게 헤아리는 지난날 발자국입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고이 건사했다면 그 도서관에서는 대출 실적 ‘0’이었으니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을 테고, 그 작은 도서관이나 그 학교 도서관에 내가 찾아갈 일은 없을 테니, 나로서는 이런 발자국을 더 살필 수도 없었겠지요. (4345.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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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2-29 10:22   좋아요 0 | URL
순천의 형설서점이군요.저고 가본지 꽤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헌책방을 운영하고 계신가 보군요.요즘 서울 헌책방도 한두군데씩 사라지는데 잘 운영되었으면 합니다.
그나저나 된장님도 남쪽 지방으로 이사를 가셨으니 전라도 지역 헌책방을 자주 돌아보시겠네요.결혼하시기전에 가끔씩 숨책에서 뵌 기억이 나는데 이제 헌책방을 들르러 서울에 올라오실 일은 아마 거의 없으시겠네요^^

숲노래 2012-02-29 22:51   좋아요 0 | URL
서울 갈 일부터 거의 없으니.......
흠... 그렇지요...
 

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4. 달라진 나무천장 알았는가요 - 아벨서점 2012.0213.33

 


 여러 달 만에 인천으로 마실하면서 헌책방 〈아벨서점〉에 들렀습니다. 아직 많이 어린 두 아이를 이끌고 책방으로 왔으니 책시렁 둘러볼 겨를이란 없고, 책방 아주머니들하고 이야기꽃 피울 틈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책방 아주머니들은 다른 손님을 마주하랴 책 갈무리하랴 책방 다스리랴 바쁘니까요.

 

 책방에 들어서며 생각합니다. 참 힘들게 오랜만에 찾아온 이곳을 앞으로 언제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하고. 이 모습이든 저 모습이든 눈에 가득 담자고 생각하며 둘째 아이 한손으로 품에 안은 채 사진을 찍습니다. 지난날 가까이에서 자주 들르던 때 느끼던 모습하고 오늘 어느 만큼 달라졌는가 하고 생각하기 앞서, ‘오랜만’이요 ‘다시 오자면 몇 달 뒤일는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나 이틀쯤 인천에서 묵으며 나들이를 했다면 바쁠 일 없이 느긋하게 돌아보고 한갓지게 이야기꽃을 피우겠지요. 이때에는 찬찬히 책시렁을 살피다가, ‘어, 천장을 모두 나무로 바꾸었네.’ 하고 깨닫겠지요. 그러나, ‘얼굴을 보며 인사를 할 수 있으니 반가우며 고맙다’는 생각으로 살짝 들러 살짝 얘기 나누다가 금세 떠나야 하면서 책시렁 한 번 휘 둘러보지 못하고 다시 책방을 나서야 합니다. 바삐 몰아쳐야 하는 움직임이기에 책방을 감도는 빛살이 예전과 달리 나무결 누런 빛이 한결 짙으며 포근해진 줄 언뜻 느끼기는 하면서도 천장을 싹 바꾼 줄 먼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책방을 나서려 하던 무렵 책방 아주머니가 들려준 말씀을 듣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 책꽂이 둘레까지 꼼꼼하게 다 바꾸셨구나.’ 하고 깨달으며 놀랍니다. 바쁜 일 틈틈이 천장갈이 하느라 얼마나 더 바쁘며 힘들었을까요. 그렇지만, 즐거이 여기고 좋아하는 일이었으니 바쁜 틈을 아끼고 힘든 몸을 사랑하며 좋은 책터로 꾸미셨겠지요. (4345.2.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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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3. 좋아하니까 사진으로 담아요 - 골목책방 2011.1207.38

 


 다큐멘터리 사진을 으레 흑백필름이나 흑백디지털로 찍으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진은 그예 사진이어야 할 뿐이에요. 사진은 필름이나 디지털이 아닌 사진이에요. 사진은 흑백이나 칼라가 아니라 사진이에요. 사진은 대형이나 중형이나 소형이 아니에요. 사진은 사진이에요. 사진은 캐논이나 라이카나 니콘이나 후지나 펜탁스가 아니에요. 사진은 오직 사진이에요.

 

 한국사람들이 ‘결정적 순간’ 같은 일본 번역말로 사진을 헤아리는 일은 너무 슬퍼요. 한국사람들이 ‘흑백-칼라’라는 외국말로 사진을 바라보는 일은 몹시 안타까워요.

 

 나는 ‘바로 이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요. 나는 ‘까망하양-무지개’를 사진으로 담아요.

 

 내가 사랑하는 바로 이 모습을 좋아하니까 사진으로 담아요. 내가 바라보는 무지개빛을 사랑하기에 사진으로 찍어요.

 

 가난한 사람한테는 가난한 빛이 있겠지요. 그래, 이 빛은 틀림없어요. 다만, 가난한 빛이란, 사람을 돈에 따라 살피는 빛일 뿐이에요. 사랑스러운 사람한테는 사랑스러운 빛이 있을 테지요. 그래, 이 빛 또한 어김없어요. 그러니까, 사랑스러운 빛이란, 사람을 사랑으로 돌아보는 빛이랍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언제나 똑같이 느껴요.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터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책을 찾아요.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는다 할 적에는, 내가 가장 사랑할 만한 사진을 가장 사랑할 만한 빛으로 그리려 해요. (4344.12.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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