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2. 책을 읽는 자리 - 헌책방 공씨책방 2013.3.5.

 


  마음을 사로잡는 책은 마음을 살찌웁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은 마음을 북돋웁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숲은 마음을 일으킵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빛은 마음밭에 씨앗 하나 뿌립니다.


  책방에서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습니다. 집에서 책을 읽고, 길에서 책을 읽습니다. 책방에 선 채 책을 읽으며, 책방 바닥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잠자리에 드러누워 눈을 붙이기 앞서 책을 읽다가, 밥을 끓이면서 책을 읽습니다.


  책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깃듭니다. 책에는 사람과 이웃한 벌레와 풀과 새와 물고기와 짐승과 나무가 푸른 숨결 나누는 이야기가 감돕니다. 책에는 사람들이 따사로운 넋으로 일구는 하루하루 삶자락이 스밉니다. 책에는 사람이 마시는 바람과 물과 하늘과 흙이 어우러지는 따스한 기운이 뱁니다.


  사람이 있어 책이 태어나고, 책이 있어 사람들 스스로 오늘을 되짚으며 생각을 추스릅니다. 생각을 열어 꿈을 여는 날갯짓 펼치는 사람들 자라고, 책이 있어 사람들 슬기와 깜냥을 차근차근 갈고닦으면서 알뜰살뜰 엮습니다.


  책 하나 읽을 수 있는 자리 있기에, 책방이 서고, 마을이 흐르며, 보금자리가 넉넉합니다.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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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1. 차곡차곡 쌓는 책 - 헌책방 숨어있는책 (2012.12.2.)

 


  처음부터 책이 쌓인 헌책방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들어오는 책을 쌓습니다. 책손이 쉬 알아보고 얼른 골라서 사들이는 책은 쌓일 틈 없습니다. 책손이 눈여겨보지 않는 동안에도 책은 꾸준히 들어와, 책방 일꾼은 천천히 책탑을 쌓습니다. 처음에는 책꽂이만 채우던 책이고, 나중에 바닥에 깔리는 책이며, 차츰 한 겹 두 겹 이루는 책입니다.


  차곡차곡 쌓아서 탑을 이루는 책을 바라볼 때에는, 온누리에 책이 참 많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누군가는 이쯤 되는 책을 한꺼번에 장만할 수 있겠지요. 돈 몇 억쯤 쉽게 움직이면 헌책방 한 군데 통째로 사들이는 일이야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돈 몇 억쯤 움직이며 책 몇 만 권 한꺼번에 사들인다면, 이 책들을 어떻게 건사하고 어떻게 만지며 어떻게 읽을까요. 헌책방 일꾼은 한 권 두 권 손수 만지고 다듬어 책꽂이에 꽂다가 바닥에 쌓는 책이지만, 책손이 이 책들을 하나하나 만져서 살피고 읽자면 얼마나 기나긴 나날 품을 들여야 할까요.


  헌책방 일꾼은 손으로 책을 만지면서 책을 읽습니다. 헌책방 일꾼은 이녁이 건사하지 않으나, 누군가 이 책들 아름답게 건사하기를 바라며 알뜰살뜰 책을 어루만집니다. 시골 흙일꾼은 손으로 씨앗을 심고, 손으로 곡식과 열매를 갈무리해서, 이녁 아닌 다른 사람들 배부르게 먹으라고 내놓습니다. 흙은 언제나 흙일꾼 혼자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열매를 맺습니다.


  나누라고 하는 책입니다. 나누라고 하는 열매입니다. 나누라고 하는 생각이고 마음이며 사랑입니다. 새로운 책이 꾸준하게 나오며, 새로운 이야기 꾸준하게 퍼집니다. 새로운 열매 꾸준하게 거두어들여 새로운 숨결 꾸준하게 돌봅니다. 새로운 생각과 마음과 사랑이 꾸준히 샘솟아 우리 지구별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빛을 뿜습니다.


  책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사랑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습니다. 꿈과 믿음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4346.3.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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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0. 책에 깃든 빛누리 - 헌책방 이가고서점 2012.5.3.

 


  밝은 아침에 책을 읽습니다. 환한 낮에 책을 읽습니다. 뉘엿뉘엿 해가 기운 뒤에는 책을 덮습니다. 깜깜한 밤에는 즐겁게 잠을 잡니다. 들일을 하거나 집일을 하는 동안 종이책을 내려놓습니다. 풀을 뜯거나 밥을 차리며 종이책을 쥘 겨를이 없습니다. 깊은 밤에 새근새근 잠을 자며 종이책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밝은 아침에 밝은 햇살을 머금는 숲입니다. 환한 낮에 따순 햇볕을 받아먹는 숲입니다. 사람이 읽는 책은 숲에서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란 나무를 베어 빚습니다. 숲이 있기에 책이 있고, 숲내음이 책내음으로 거듭납니다. 숲이 있어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얻고, 숲이 있어 사람들은 집을 지으며, 숲이 있어 사람들은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이야기를 책에 담아 나눕니다.


  밝은 아침에 책을 읽을밖에 없습니다. 책으로 몸을 바꾼 나무는 밝은 아침에 밝은 햇살을 머금으며 빛나거든요. 환한 낮에 책을 읽을밖에 없습니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환한 낮에 따순 햇볕을 받아먹으며 새로운 빛이 되거든요.


  책을 읽는 사람은 나무를 읽습니다. 책이 머금은 아침빛을 읽고, 책이 받아먹은 낮볕을 읽습니다. 나무는 어떤 아침빛을 머금어 책으로 거듭났을까요. 나무는 어떤 낮볕을 받아먹고 자라면서 책으로 다시 태어났을까요.


  온갖 책이 두루 꽂힌 책시렁 사이를 거니는 사람은, 온갖 나무 두루 자라는 숲 사이를 거니는 셈입니다. 숱한 나무 아름다이 자라는 숲을 거니는 사람은, 숱한 책이 알뜰히 꽂힌 책터를 누비는 셈입니다.


  책에 깃든 빛누리를 떠올려요. 책이 태어난 삶자락을 헤아려요. 책으로 이루는 숲을 생각해요. 책에서 샘솟아 찬찬히 퍼지는 사랑누리를 내 보금자리에 살포시 펼쳐요.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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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9. 알아볼 수 있는 책이란 - 헌책방 대성서점 2013.1.17.

 


  쪽종이에 책이름을 몇 가지 적은 다음 헌책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이 책 있어요?” 하고 여쭙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쪽종이에 적은 책이름으로는 책을 못 찾습니다. 쪽종이에 책이름 적은 분으로서는 그 책을 꼭 만나서 읽고 싶을지라도, 그처럼 바라는 책을 그날 그곳에서 찾으려 하는 마음은, 복권에 뽑히기를 비는 마음하고 같습니다. 곧, 하늘에서 ‘책이 떨어지기를 바라’서야 책이 떨어질까요. 스스로 책시렁을 살피고, 스스로 책탑을 옮기면서, 차근차근 책을 살피고 헤아리며 만나야 책을 알아채어 장만할 수 있습니다.


  새책방에 찾아갈 적에도 쪽종이를 들고 찾아가면, 이녁이 바라는 책은 거의 못 찾기 마련입니다. 아마, 인터넷책방이라면 이럭저럭 찾아볼 만하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나날이 인터넷책방으로 옮길 테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차츰 ‘꼭 읽어야겠다 여긴 책’만 읽고, 마음을 살찌우거나 생각을 북돋우거나 사랑을 일깨우는 책은 못 만나면서 살아갈 테지요.


  알아볼 수 있는 책이란, 마음을 기울여 살피는 책입니다. 알아보는 책이란, 사랑을 쏟아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알아보아 즐기는 책이란, 생각을 빛내면서 삶을 읽도록 돕는 책입니다.


  잘 보일 만한 자리에 알뜰히 꽂혔으나 안 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안 보일 만한 자리에 듬성듬성 꽂혔으나 이내 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서 못 알아보지 않습니다. 눈이 밝아서 잘 알아보지 않습니다. 책을 마주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집니다. 책을 사귀려는 마음씨에 따라 달라집니다. 책하고 어깨동무하려는 마음결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아해 봐요. 사랑해 봐요. 즐겁게 웃어 봐요. 환하게 노래해 봐요. 그러면, 책이 나한테 찾아와요. 내 곁에서 빙글빙글 웃고 춤추는 책들이 내 품에 포옥 안겨요.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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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8. 헌책방 앞 겨울 붕어빵 - 헌책방 작은우리 2012.11.30.

 


  찬바람 부는 날씨가 되면, 서울 불광3동 헌책방 〈작은우리〉 앞에는 붕어빵을 굽고 물고기묵을 뜨끈한 국물에 덥히는 자리가 생깁니다. 봄과 여름 동안 헌책방을 찾는 책손은 뜸하지만,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무르익는 동안, 헌책방 앞에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가을을 놓고 책을 읽는 철이라 여기기 때문은 아니요, 겨울이 되어 이불 뒤집어쓰며 읽을 책을 찾으려 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찬바람 부는 철에 붕어빵을 굽고 물고기묵을 덥히기 때문에 사람들 발길이 북적입니다.


  동네사람들이 천 원 이천 원, 때로는 삼천 원 사천 원어치 붕어빵이나 물고기묵을 먹거나 싸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식구들 배를 채우는 기쁨을 헤아립니다. 단돈 얼마로 내 몸과 식구들 몸에 따순 기운이 감돌 수 있습니다. 날이 추울수록 따스한 먹을거리 하나가 그립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헌책방에도 찬바람이 깃듭니다. 차가운 바람이 솔솔 스며들어 책 하나 쥐는 손을 자꾸 비벼야 합니다. 그러나, 내 눈을 틔우고 내 생각을 열어젖히는 살가운 책을 만날 때마다 손이 시나브로 얼어붙는 줄 깨닫지 못합니다. 내 눈과 마음은 온통 아름다운 이야기 한 자락에 쏠리니, 내 손으로도 내 발로도 내 몸으로도 추위가 아닌 즐거움을 한껏 누립니다.


  동네 아이들이건 동네 어른들이건, ‘헌책방 앞 붕어빵’이라고는 못 느끼곤 합니다. 아마, ‘빵집 옆 붕어빵’이나 ‘족발집 옆 붕어빵’이라고들 느끼리라 봅니다. 찬바람 수그러들어 따순바람 불 적에는 이내 붕어빵을 잊겠지요. 따순바람 불 때에는 다른 먹을거리를 찾거나 길거리 나무마다 새로 트는 잎사귀와 꽃망울에 눈길이 가겠지요.


  따순 기운 도는 붕어빵 하나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따순 넋 북돋우는 책 하나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김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그릇으로 몸을 움직이는 힘을 얻습니다. 사랑 솔솔 피어나는 책 하나로 마음을 빛내는 꿈을 살찌웁니다. 몸을 튼튼하게 다스리면서 마음 또한 튼튼하게 건사합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돌보면서 몸 또한 예쁘게 가다듬습니다. 아이들과 즐거이 나눌 밥을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즐거이 나눌 살가운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바쁜 발걸음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바쁜 마음으로는 스스로 즐겁지 못합니다. 바쁜 삶으로는 하루를 빛내지 못합니다. 느긋하며 따사롭고 넉넉하며 포근한 마음밭일 때에 책씨도 꿈씨도 사랑씨도 이야기씨도 자랄 수 있습니다. 4345.1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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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demian 2012-12-07 17:01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바쁜 삶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가고 요구하는 이 시대에 느긋하고 따사롭고 여유로운 마음밭을 생각해봅니다..

숲노래 2012-12-08 01:09   좋아요 0 | URL
늘 즐거우며 너그러운 하루 누리셔요

saint236 2012-12-07 20:18   좋아요 0 | URL
흠 저런 곳이 아직 있었군요. 예전에 저기가서 많이 사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숲노래 2012-12-08 01:10   좋아요 0 | URL
헌책방 마실 즐겁게 누리시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