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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삽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꽃삽을 쥐고 달립니다. 도서관학교 둘레에서 마음껏 땅을 파며 놀 수 있으니, 아주 기쁘게 꽃삽을 쥐고 달립니다. 이 길로도 저 길로도 신나게 달릴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마음껏 놀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땅을 쪼고, 나는 신나게 풀을 벱니다. 풀베기를 마친 뒤에는 팔다리 등허리를 쉬면서 책을 읽습니다. 책시렁에 두기만 하고 여태 안 읽은 《벼랑에 선 사람들》을 찬찬히 읽어 봅니다. 참말로 벼랑에 몰려 보지 않고서는 벼랑이 어떤 끝자락인지 알 수 없습니다. 벼랑길까지 나아가 보지 않고서는 이웃이 겪는 일을 제대로 알 노릇이 없어요.


  꽃삽 한 자루로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에요. 이 마음을 고이 건사하고 아끼면서 아름답게 살림을 짓는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도서관학교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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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길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1.)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도서관학교 앞뒤에 자란 풀은 꽤 베었습니다. 지난 구월하고 시월 두 달에 걸쳐 거의 날마다 두 시간씩 낫을 쥐어 벤 끝에 이만 한 보람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어디로든 실컷 달릴 수 있고, 꽃삽을 쥐어 마음껏 파헤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은 파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길까지 파면 비가 온 뒤 다니기에 나쁘거든요.


  지난 두 달 동안 풀을 베어 거님길로 바꾸어 놓은 자리를 따라 두 아이하고 천천히 거닐어 봅니다. 베어서 눕힌 풀이 잘 마르니, 우리가 밟을 적마다 토토톡 소리를 내는데, 풀벌레도 이때에 둘레에서 껑충껑충 뜁니다. 밤에는 꽤 쌀쌀한데 아직 풀벌레는 이 도서관학교 곳곳에서 살아갑니다.


  이제 도서관학교 앞문 자리부터 건물 앞쪽으로 들어서는 자리에 새길을 내 보려 합니다. 얼마든지 새길을 낼 만하다고 여기며 낫을 쥡니다. 새길을 내다가 쉬면서 건물 앞 이순신 동상 둘레 풀을 벱니다. 쉬려면 그냥 앉아서 쉴 노릇이지만, 나는 ‘쉬엄쉬엄 낫을 놀리는 몸짓’이 쉬는 셈이라고 여깁니다.


  건물 앞 운동장 자리에 한 줄로 풀을 베고서는 논둑에서 억새를 끊어서 눕혀 봅니다. 오늘 하루에 다 마칠 수 있겠네 싶으면서 오늘 다 마치지는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을 지어야 하거든요. 기운을 풀베기에 다 쓰다가는 아이들을 굶깁니다. 낫을 갈아서 말리고, 다리도 쉬면서 주전부리를 아이들한테 줍니다. 용인에 계신 도서관 지킴이웃님이 멋진 호두과자랑 양갱을 보내 주셨어요. 아이들은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그림책을 들춥니다. 작은아이는 호두과자를 한 점씩 집어서 아버지 입에 넣어 줍니다. 나한테는 너희가 예쁜데, 너희한테는 아버지가 예쁘구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도서관학교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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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돌 (도서관학교 일기 2016.10.27.)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도서관학교 둘레 풀을 한 시간쯤 베고서 숫돌로 낫을 갑니다. 슬슬 숫돌질을 하면서 등허리를 쉽니다. 낯이랑 손을 씻으며 후유 숨을 돌립니다. 베어서 깔아 놓은 풀을 자박자박 밟으면 빠지직빠지직 소리가 나기도 하고 뽁뽁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짚하고 흙을 밟는 느낌은 언제나 싱그럽습니다. 집에서 부엌칼을 갈듯이 도서관학교에서 낫을 갑니다. 부엌칼을 날마다 갈면서 도마질이 부드럽듯이 낫날을 날마다 갈면서 낫질이 부드럽습니다. 낫으로 풀을 베어 놓는 자리는 날마다 늘어나고, 작은아이는 날마다 더 넓은 자리를 마음껏 달리고 뜁니다. 얘들아, 머잖아 도서관학교 둘레가 온통 너희들 놀이터로 바뀔 테니 늘 새롭게 꿈을 꾸렴. 어떤 놀이터를 꾸밀는지 늘 즐겁게 생각을 지으렴.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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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도서관학교 일기 2016.10.29.)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우리 집 뒤꼍에 석류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석류나무는 큰 감나무 옆에 있었어요. 처음 고흥집으로 살림을 낼 적에는 자그마했지만 어느새 제법 자라 올봄에 뒤꼍 너른 자리로 옮겨심었어요. 너른 자리로 옮겨심으니 꽃이 제법 피고 열매도 제법 맺습니다. 올해에 맺은 석류알을 훑어서 씨앗을 덜어 도서관학교 둘레에 심어 봅니다. 몇 톨이 싹터서 나무가 될는지 잘 모릅니다.


  도서관학교 둘레에는 작은 흙더미가 몇 군데 있습니다. 이 흙더미는 아이들한테 좋은 놀이터입니다. 아이들은 흙더미를 ‘산’으로 여겨 올라타고는 죽죽 미끄럼을 타며 내려옵니다. 흙더미를 둘러싸고 환삼덩굴이 잔뜩 뒤덮고 쑥이 돋았는데, 드디어 오늘 환삼덩굴하고 쑥을 거의 다 덜어냅니다. 작은아이는 좋아라 웃으며 흙더미에 올라가더니 “아버지 나 어디 있게?” 하면서 ‘아직 덜 걷어낸 쑥대밭’ 사이에 숨습니다. 늦가을을 앞두고 거의 마른 쑥대는 어른 키만 하기에 작은아이가 숨바꼭질을 하기에 좋습니다.


  슬슬 도서관학교 큰나무 둘레 풀을 걷어냅니다. 큰나무 둘레 풀을 걷은 지 얼추 닷새쯤입니다. 이제 큰길가 풀까지 걷습니다. 마침 이때에 마을 어른들이 지나가다가 제 낫질을 봅니다. 도서관학교 어귀에 있는 커다란 아왜나무를 두고 ‘그늘이 져서 나쁘’니 베어내면 좋겠다고 얘기하십니다. 이 아왜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써야겠다고 하시기에, 마을 어른들도 나무를 모르시네 하고 생각하며 말씀을 올립니다. “이 나무는 아왜나무예요. 불이 나면 나뭇가지나 줄기에서 물이나 거품이 나와서 불이 못 퍼지게 막아요. 그래서 숲이나 산에 한 줄로 길에 심어서 산불을 막는 구실을 해요.”


  아왜나무를 땔감으로 쓴다면? 아마 불이 꺼질 뿐 아니라, 다른 장작까지 못 쓸 테지요. 우람하게 잘 자란 나무는 마을에서 ‘명물’도 되고, 멋진 볼거리에 ‘좋은 그늘’이 될 만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적에는 비도 바람도 막아 주어요. 나무 한 그루가 쉰 해 남짓 자라서 우뚝 선다면, 이 나무는 돈으로 사거나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도 삼고 집짓는 기둥이나 도리로도 삼으며 책도 짓고 연필이나 종이도 지어요. 그러나 모든 나무를 다 베지는 않아요. 알맞게 돌보고 집이나 마을 둘레에도 살뜰히 건사해요. 도서관학교 나무가 이만큼 살아남은 대목을 고이 여기면서 이 시골마을 지킴님 구실로 바라보아 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도서관학교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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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 (도서관학교 일기 2016.10.18.)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도서관 이야기를 묶어서 도서관 지킴이 이웃님한테 띄울 적마다 봉투에 손으로 주소하고 이름을 씁니다. 이렇게 한 지 어느덧 아홉 해가 됩니다. 지난 아홉 해 동안 손글씨로 주소하고 이름을 쓴 봉투를 받은 이웃님은 책꽂이 한칸을 도서관 이야기책으로 채울 만하리라 생각해요. 손으로 천천히 쓴 글씨가 깃든 봉투처럼, 우리 도서관도 천천히 자리를 잡습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글씨를 빚듯, 우리 도서관도 손으로 조금씩 가다듬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짓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도서관학교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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